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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Sep 22. 2019

철이 들려면 철학부터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근래에 인문학, 철학, 교양 관련 서적 및 강좌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까?


철이 들려면 철학을 공부하라?!

                                    -  글 짓는 목수 -

          

  저자 '야마구치 슈'는 저명한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 리더십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기업에서 인문학과 철학을 현업에 적용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철학과 경영을 접목하는 컨설턴트이다. 철학이라는 학문을 현실에 적용하기 쉽게 풀어내려고 노력한 모습이 역력하다. 사실 쉽지만은 않은 책이었다. 시대별이 아닌 주제별(4가지 - 사람, 조직, 사회, 사고)로 과거 유명한 철학자들의 이론을 현실에 접목시키고 철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과학, 경제, 정치, 심리 등과도 연계시켜 설명하고 있다. 과거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저자의 생각을 적절히 섞어서 현실을 얘기한다. 

The specialist who hasn't refinement is the most dangerous.

철학과 교양 없는 전문가들이 세상을 병들게 한다.


   사람들은 일상에서 "교양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한다. 길에 꽁초를 버리는 사람,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전화를 받는 사람, 노상 방뇨하는 사람 등 많은 종류의 무(無) 교양 있다. 이런 종류의 무교양은 사회에 크게 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들이 일컫는 정치, 과학, 경제, 의학, 사법, 치안, 군사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교양이 없을 경우는 말이 달라진다. 그들이 미치는 사회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그릇된 교양과 철학은 사회와 국가 나아가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과거 히틀러, 마오쩌둥, 스탈린 등 그들의 철학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전문가가 되기 전에 온전한 인간부터 되어야한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는 이런 전문가들에 손에 의해 바뀌어 간다. 그들이 철학적으로 비인간적이라면 비인간적인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움직인다.

                          

  세상이 소수 권력자들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하기 쉽다. 사실 그들은 모니터링만 할 뿐 실제 행동하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 같은 실무자들이 행동하기 때문에 세상이 움직인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사상과 질서 속에서 순응하며 일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대로 된 철학(생각)을 장착하고 그들을 감시해야 한다. 그들이 우리를 그릇된 곳으로 인도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대중이 모두 교양을 갖추기 힘들기 때문에 교양을 갖춘 소수의 지도자, 전문가들이 있다면 대중은 따라가기만 해도 상관없다. 과거 예수나 공자 같은 성인들은 무지한 대중을 바른 길로 인도했었다. 


  교양 없는(무지한) 국민들이 교양 없는 지도자와 전문가를 만났을 때만큼 위험한 경우는 없다. 그 국가와 사회의 말로(末路)는 실로 처참할 수밖에 없다. 아직도 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의 일부 국가들이 그런 상황을 겪고 있지 않은가?             

    

"도망치는 자가 승리자다."

                           - 질 들뢰즈 (Gilles Deleuze), 프랑스 철학자 -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왜일까? 게임은 우리 사회를 닮아있다. 빨리 눈치를 보고 상황을 파악한 후 도망쳐야 한다. 치고 빠지는 걸 잘하는 자가 살아남는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을 재미있게 게임 속에 녹아냈기 때문에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 아닐까? 쉬지 않고 계속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런닝맨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파라노이아(정주하는 사람)와 스키조 프레이나(도망치는 사람) 이론이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큰 인상을 남겼다. 한국인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부분이라 반감이 있을 수 있다. 


정착과 유목의 개념이랄까?


  우리는 조상 대대로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한 곳에 정착하며 살아온 민족이다. 침략과 확장보다는 방어와 안주에 집중해온 민족이다. 유교의 영향으로 선비정신이 뿌리 깊이 박혀있고 북방의 유목민족(몽골, 여진, 말갈 등)과 섬나라 일본을 천한 민족으로 업신여겨왔다.  


 시대가 바뀐 현재 정주하는 인간은 더 이상 도망치는 인간보다 안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환경과 상황에 맞게 빠르게 움직이고 변화할 수 인간이 불확실한 미래에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고집하는 것은 자살행위 일 수 있다. 과거 1차부터 3차 산업까지의 지속적인 성장 속에선 정주(定住)형 인간과 산업 생태계의 궁합이 잘 맞았다. 성장이 지속되는 한 안정되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불확실성이 커진 저성장의 시대에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하고 때론 빨리 도망칠 줄 아는 민첩함이 더 중요해진다.

                                    

파라노이아(정주형) -> 농경, 일관성, 외길인생, 무거움, 소유
스키조 프레니아(도주형) -> 유목, 다양성, 다직종, 가벼움, 공유                   


  우리는 과거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등 환경과 상황이 힘들더라도 버티고 견디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도망치는 자를 비난하고 손가락질 해왔다. 이제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시대의 변화는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시스템은 죄책감을 덜어준다.

                            

  우리는 크든 작든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시스템 속에 묻혀 있으면 자신의 행위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둔감해진다.  시스템이 크면 클수록 둔감도는 커진다. 반대로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이것이 시스템화 된 분업의 가장 큰 맹점이다. 분업은 산업 생산성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지만 인간을 시스템 속 작은 톱니바퀴로 전락시켜 버렸다. 톱니바퀴는 따로 떨어지면 쓸모없다. 시스템에 속에 있을 때만 가치 있다. 시스템에서 벗어나면 쓸모없는 인간이 된다는 얘기인가? 세상에 쓸모없는 인간들만 넘쳐나고 있다

                          

"시스템은 도덕적 해이(解弛)를 불러온다"

                                       -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철학자 -

                         

 시스템은 악의 없는 악인을 만들어 낸다. 사람들을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빠지게 한다. 내가 과거 자동차 업계에서 영업 담당자로 일할 때였다. 대기업 구매담당자의 강요 같은 권고로 대규모 물량 배분을 위해 사전 대규모 설비 및 인력 투자 요청받았다. 자사의 협력사(2차, 3차 업체)에도 생산량 증대를 위한 투자를 종용한다. 결과는 제품 사양 혹은 계획 변경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은 백지화되고 대기업 산하 수많은 협력회사들은 투자비용(부채) 회수가 되지 않고 고정비의 증가로 경영난에 처하게 된다. 소규모 회사들은 구조조정, 인력 감축 등의 심지어 도산의 위기를 맞이한다. 대기업의 담당자의 생각 없는 조치(상부에서 지시하는 데로 했을 뿐)가 어느 한 가정(중소기업에 일하는)을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웃픈(웃기고 슬픈) 사실은 파멸을 맞이한 사람은 누구 한 사람에 실수에 의해 자신이 그런 상황 맞이 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정보가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속수무책으로 위기를 맞이한다. 어쩔 수 없이 믿고 따라간 길이 낭떠러지였던 것이다.


  서로를 모르면서 죽이고 당한다. 가해자는 시스템(기업, 정부기관, 단체 등)에 속에 묻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을뿐더러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위에서 그렇게 결정 났네요' 하면 끝이다. 당한 사람은 그저 세상을 탓할 뿐이다. 이런 일은 시스템이 돌아가는 한 끊임없이 반복된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는 말이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인간을 SNS 속으로 빠뜨린다?!

                            

   소셜미디어에 관한 최신 연구가 결과가 눈길을 끈다. 우습지 않은가? 인간은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면서 즐긴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맞는 것 같다. 우리는 매일 업데이트하는 SNS에 어떤 반응이 올지 궁금하다. 궁금하다는 건 예측이 어렵다는 것이다. 복권을 맞춰볼 때의 그런 설렘과 기대감을 매번 맛볼 수 있다. 조회수와 좋아요의 개수에 나의 하루 기분이 좌우된다. 호응이 없으면 더 자극적이거나 더 신선한 무언가를 고민한다. 인간은 가까운 지인에겐 나를 감추고 온라인의 대중을 향해 나를 알리기 바쁘다. SNS가 가져다주는 도파민(행복감)에 중독된다.

SNS 중독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동물은 사회 속에서 자신을 지속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돈이나 물질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다. 우리는 오프라인(Off-line)과 온라인(On-line)의 두 개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젊은이들은 오프라인에서 인정받는 것은 어렵고 익숙지 않다. 그들 사이에선 온라인에서의 존재감이 더욱 크다. SNS는 존재 가치를 인정받은 수단으로 정착되어 간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주저 마라

                    

  미래는 배움에 익숙한 자들이 살아남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컴퓨터가 느려지고 버벅거릴 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초기화(포맷)이다. 초기화에 익숙한 사람이 미래형 사람이 될 것이다. 쌓여온 지식과 익숙해진 기술을 잊고 새로운 것을 빠르게 흡수하는 건 쉽진 않다. 그건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일수록 더욱 두려워진다.

                                        

"새것을 배우려면 과거를 지워야 한다." 

                                        - 글짓는 목수 -

                         

  나 또한 현재 호주라는 낯선 환경 속에서 경험을 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보다 기존의 것을 잊는 것이 더 어렵다. 인간은 컴퓨터처럼 신속하게 초기화가 되지 않는다. 메모리칩처럼 인간의 두뇌 데이터를 넣고 지우는 것이 된다면 가능할지도... 그럼 인간의 최종 목적지는 AI가 되는 것인가?!


  책은 철학으로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난해한 부분이 적지 않다. 세상을 좀 더 깊이 있게 드려다 보는 계기를 가져다준 책이었다. 철학과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잘 연결시켜 설명해주어 철학이 왜 필요한지를 다시금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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