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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Sep 17. 2019

닿지 못하는 그리움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

"Would you like cream on the top?" (크림 얹혀 드릴까요?)


  일요일 낮 시내의 한 스타벅스에서 하얗고 달콤한 크림을 얹은 모카 푸라프치노 한 잔과 함께 책을 읽는 것은 내가 시드니 온 이후 생긴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중의 하나이다. 벤티 사이즈의 모카 푸라프치노 한 잔은 점심시간 뱃속의 허기를 잊고 책을 읽을 때 소모되는 칼로리를 보충해준다.     


  학교를 마치고 늦은 오후 따뜻한 햇살에 이끌려 바다로 걸어간다. 트레인 한 정거장을 걸어서 Circular Quay 역까지 걷는다. 마천루 (摩天樓)가 즐비하게 늘어선 시티의 빌딩 숲을 지나 드디어 바다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신비스러운 형상의 오페라 하우스(Opera House)와 고풍스러운 하버브리지(Harbour Bridge)가 바다와 함께 한눈에 들어온다. 주말 늦은 오후의 햇살을 만끽하려는 인파로 곳곳이 북적인다. 평일은 관광객이 대부분이지만 주말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뒤섞여 더 많은 인파가 몰린다.

Skyscraper near Circular Quay Station

  나는 오페라 하우스 맞은편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볼거리가 넘쳐난다. 어디서 찍어도 작품 사진이 되는 풍경과 곳곳의 길거리 공연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온 국적을 알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은 나의 동공이 쉴 시간을 주지 않는다.


  청명하게 푸른 하늘이 떨어지는 노을빛을 잔뜩 머금은 오페라 하우스의 새하얀 지붕과 대비를 이루며 오묘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거대한 철골 구조물의 하버브리지가 남자의 강인함을 표현했다면 오페라 하우스는 아름다운 여자의 곡선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남녀가 그렇게 바다를 가운데 두고 서로 바라보고 있다.


  우연히 누른 카메라 셔터에 찍힌 오페라 하우스 앞에 한 여자의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인다. 흥분과 환희로 이곳저곳의 풍경을 눈과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한 관광객과 달리 홀로 고독을 담고 있다. 수수한 옷차림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아직은 차가운 바다의 봄바람을 겉옷을 끌어당겨 팔짱을 낀 채 하버브리지 아래 오페라 하우스가 한눈에 들어오는 방파제 길을 홀로 걷고 있다. 나도 따라 걷는다. 귀속에서 흘러나오는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의 쓸쓸한 피아노 선율이 티 없이 순결하게 빛나는 오페라 하우스와 그 앞을 걷고 있는 국적을 알 수 없는 한 여자의 외로움이 영화 스크린 속 한 장면처럼 나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Deck bench in front of Habour bridge

  하버 브리지 아래 원형 벤치가 새롭게 단장했다. 돌로 되어 있던 벤치는 데크 팀버로 바뀌었다. 오페라 하우스를 바라보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옆 카페에는 라틴음악에 몸을 실은 연인들이 지나가는 주말 오후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벤치 곳곳에는 연인들이 뒤로 병풍처럼 웅장하게 펼쳐진 하버브리지를 배경으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가방에서 카페에서 읽던 책을 꺼냈다. 귀속으로 울려 퍼지는 잔잔한 음악과 떨어지는 노을을 맞으며 책을 읽어 내려간다. 몇 분을 읽어 내려갔을까? 잠시 눈을 들어 앞을 내다본다.


그녀가 다시 눈 안에 들어왔다.


  방파제 끝의 배의 정박을 위해 로프를 묶는 기둥에 홀로 앉아 있는 그녀가 또 다시 오페라 하우스를 배경으로 앉아 있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셔터를 눌렀다. 이번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 장면을 담고 싶었다.

Opera House and a girl

  그녀를 한참 동안 관찰했다. 수많은 인파가 지나가는 동안 그녀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오페라 하우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그러다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 한참 내려다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바다를 향한다. 불어오는 바람에 그녀의 머릿결이 나부낀다. 울고 있지 있을까? 너무 멀어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내 머릿속 그녀의 눈가엔 이미 눈물이 글썽이고 있다. 핸드폰 사진 속에 그리운 사람이 있다. 사진과 바다를 번갈아 보며 바다 건너 먼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다. 사랑했던 사람이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건...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건... 바라만 보며 만나지 못하는 둘은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빛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만나지 못하는 인연을 가슴속에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다. 닿지 못하는 아쉬움이 그리움을 더욱 간절하게 만든다. 여기에는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사연들로 간절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그리움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 가까이 있어도 찾지 않고 곁에 있어도 모르는 소중함을 지구 반대편에서 알게 된다. 거리의 가까움이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멀어짐이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이어준다. 


  거리에는 핸드폰을 들어 화상 통화를 하며 연인과 가족들에게 이곳의 분위기를 전하는 이들이 눈에 띈다. 사랑하는 이들과 이 순간을 공유하고 싶다. 볼 수 있지만 서로 닿지 못하는 간절함이 가득하다. 이곳에...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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