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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Aug 01. 2021

자유는 돈으로 살 수 없다

[지식 편의점] 이시한

"넌 왜 그렇게 돈을 열심히 버냐?"

"돈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서요"


   얼마 전 같은 집에 사는 동생과의 식사자리에서 그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이곳 호주에서 청소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 호주에 온 이후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 처럼 쉬지 않고 악착같이 일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그는 호주에 온 지 8년이 넘어가는데 아직 시드니 밖을 한번 나가보지 않을 정도로 일만 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게다가 그는 몇 개월 전부터 자영업으로 독립했다. 각종 청소장비와 약품 등 각종 도구들을 다 구비하고 무빙(이사청소)부터 홈 청소, 오피스, 학교 등 가리지 않고 의뢰가 들어오면 달려간다. 이제는 입소문도 나고 단골고객도 생겨서 락다운인데도 불구하고 일이 끊이지 않는다. 나 또한 청소일을 해봤기에 본인이 직접 영업해서 청소일을 의뢰받아하면 수입이 꽤 괜찮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적지 않은 돈을 벌었으리라 짐작되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는다. 어떻게 더 많이 벌 까에만 관심을 쏟고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여자도 만나고 결혼도 하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다면서 시간은 돈으로만 향한다.



  

   생각 없이 집어 든 책이 의외의 몰입을 가져왔다. [지식 편의점] 그냥 우연히 이른 아침 이불속 침대에서 집어 든 책을 오전 내내 누워서 다 읽어버렸다. 저자 이시한은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여러 고전들을 자신의 생각과 경험들을 섞어 쉽게 잘 풀이해 주고 있다. 고전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던 나에게 길잡이가 되어준 것 같다. 18권의 인문학 고전들을 한 책에 집어넣었다. 그가 소개한 모든 고전이 흥미롭지만 그중에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마이클 샌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나의 상념들을 얘기해보려 한다.


경제적 자유란


   앞에서 소개한 동생과의 일화처럼 우리는 자유를 얻기 위해 돈을 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세상이다. 신권에서 왕권으로 다시 금권(金權)으로 이어진 역사가 잘 말해주듯 이제는 돈이 그 모든 것들 위에 있다. 오죽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까지 있겠는가? 과거 역사는 민중의 자유 쟁취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신과 왕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어낸 것 같았지만 지금은 돈이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자유를 빼앗기고 있지만 그것이 자유를 얻기 위한 길이라고 말한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대리모 서비스 6250달러, 교도소 감방 업그레이드 82달러


   돈은 생명도 살 수 있고 죄를 지어도 호텔방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해 준다. 심지어 사람도 죽여준다.

   저자의 패스트 트랙 얘기가 인상 깊다. 놀이동산에서 웃돈을 주면 기다리지 않고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것은 돈이 질서를 초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그 말은 누군가는 돈을 주고 줄을 서 있는 다수의 시간을 조금씩 뺏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다수의 동의를 구한 양보가 아닌 엄연한 불평등임에도 사람들은 그냥 볼멘소리만 하며 그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이것이 평등의 가치에 부합하는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돈이 질서과 체계 위에 서게 되면 사람들은 돈을 신봉하게 된다. 부를 축적하는 가장 기본 정석은 돈으로 타인의 시간을 빌리는 것이고 그렇게 축적한 부는 타인의 시간을 뺏을 수 있는 특권을 준다. 그렇기에 돈이 없는 자는 시간도 없다. 돈은 무한하지만 시간은 유한하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소수 민주주의


   민주주의(民主主義)의 반대말은 사회주의(社會主義)이다.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의 반대를 공산주의(共産主義)라 생각하지만 사실 공산주의의 반대는 자본주의가 맞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민주는 개개인, 사회주의는 공공의 이익을 더 중요시한다. 이 둘은 상충하는 관계이다. 개인을 중시하다 보면 사회유지가 어렵고 사회를 우선하다 보면 개인이 희생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 국가이다. 지금의 북유럽 국가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우리가 말하는 공산주의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공산주의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공산주의를 운용하는 인간이 문제일 뿐이다. 인간의 욕망을 너무 간과했다. 아직까지 우리는 민주주의 체제에 더 가까운 국가에 산다. 능력 있고 힘 있는 개인이 자본주의라는 수단을 이용해 국가를 이끌어가는 구조이다. 그렇기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같이 움직인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민주가 다수의 민주가 아닌 소수의 민주로 변질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소수 민주주의이다. 소수가 대부분의 부를 가지고 나머지 다수를 그들이 가진 부로 움직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투표권을 쥐고 있지만 그 투표권은 여론이 움직이고 여론은 돈이 움직인다.


민주주의 국가의 존재 이유


   돈이 삶의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야만 자본주의 경제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물질적 풍요를 통해 정신적 풍요를 얻고 싶은 자들은 열심히 벌어서 물질과 정신의 풍요를 채워가면 된다. 하지만 그 과정이 다른 이들의 물질과 정신의 침해하거나 잠식해 나가는 것이라면 문제가 된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는 자본주의의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아 체계와 질서를 만드는 존재이어야 한다. 만약 국가가 가진 자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면 국민은 결국 돈을 좇아야만 자신의 삶이 나아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진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보다는 자본주의에 치우쳤기에 사람들이 돈을 좇는 삶을 살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불편해도 불안하진 않다


   내가 호주에 온 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곳에서 없어 보여도 차별받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없어서 불편함은 감수해야겠지만 없어서 타인으로부터 느껴지는 차별이나 시선은 한국보다 덜하다. 한국에서는 전혀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거지 같은 행색으로 식당에 들어가도 낡아빠진 차를 끌고 다녀도 누구 하나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곳 도로 위에는 30~40년의 자동차 역사를 동시대에 관람할 수 있는 독특한 나라 이기도하다. 민주주의지만 사회주의 성향이 강하기에 소수 민주주의로 치우치지 않는 것 같다. 없어서 불편하긴 해도 불안하지는 않다.


다양성과 획일성


    돈이 지상 최대의 가치가 되어버린 사회는 획일화된 사회로 갈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국가는 국민총생산(GDP : Gross National Product)으로 그 국가의 가치를 평가한다.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잉여생산물을 얼마나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이다. 그 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을 만드는 것에는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한다. 내가 지금 이렇게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몇 시간씩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국민총생산에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않는 비경제적 활동이며 가치가 없다는 행위란 뜻이다.


   그럼 나는 가치 없는 인간인가? 나는 읽고 쓰면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다. 그 속에서 스스로 가치를 만들고 느끼는 것이다. 또한 많지는 않지만 나의 글을 읽고 즐거움 혹은 공감을 하는 분들과 그 가치를 공유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가치만 중시한다. 이전에 읽은 [붓다처럼](서평 참조)에서 처럼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분명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내 안에 생겨나고 다른 이에게 전달된다. 무형의 에너지가 퍼지고 전달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가 생겨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또한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무형의 에너지는 나중에 유형의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세상은 당장의 효율을 중시하고 당장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만 중시했기에 획일화된 인간들만 만들어 낸 것이다. 저자는 학교의 집단 따돌림(이지메) 이야기를 한다. 학교라는 공간에서부터 획일화된 교육방식에서 벗어난 인간은 다수에게 공격당하고 소외당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획일화로 효율성만 강요받은 아이들을 만들어낸다. 세상은 국가 GDP 성장과 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생산가능 인력에만 집중한다. 그것에만 집중하며 달려온 것 지금은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온갖 재앙과 서로 간의 혐오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현생인류(사피엔스)가 출현하고 20만 년이 흘렀다. 하지만 이 급격한 변화(환경, 인간)는 겨우 200년의 짧은 시간 안에 모두 이뤄졌다.


    돈이 아닌 보이지 않는 가치의 중요성이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 중요성을 보존하고 지향할 수 있는 실질적인 체제와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얼마 전 읽었던 [달러구트 꿈 백화점](서평 참조)이 가슴 깊은 감동을 가져오는 건 인간의 감성을 메말라 버리게 만든 돈의 자리를 다시 감성으로 대체해 버렸다는 기가 막힌 설정 때문이었다.


   돈으로도 절대 넘어설 수 없는 영역을 구분 짓고 모두가 약속해야 한다. 찍어도 찍어도 없어지지도 줄어들지 않는 무한한 돈이 유한한 시간과 생명 그리고 감성을 잠식하게 놔두어선 안된다. 이제는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 이제는 가던 길을 멈추고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신과 왕으로부터 얻어낸 자유는 다시 돈이라는 존재에게 속박되어 버렸다.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닐까?


   우리가 원하던 진정한 자유는 돈으로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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