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Gigged : The Gig Economy, the End of the Job and the Future of Work
긱(Gig) 경제란 단어가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사전적 의미로 일이다. 주로 임시적으로 하는 일을 일컫는 비격식 표현이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비정규직'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쉽지만 지금은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이용되고 있다.
'노동을 쉽게 사고파는 시대가 도래했다'
- by 글 짓는 목수 -
저자(새라 케슬러)는 최근 미국의 노동시장의 변화를 중심으로 세계 노동시장의 미래에 대해 고민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노동시장이 공유경제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전례 없는 10년간 장기 호황을 누리고 있다. 나스닥과 다우지수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실업률 또한 사상 최저라는 뉴스 보도까지 들린다. 일자리가 넘쳐난다.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
중요한 것은 넘쳐나는 일자리의 많은 부분이 긱 (비정규직) 일자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 경제의 호황은 결국 자본가와 기업가들의 입맛에 맞는 노동시장을 만들어준 결과인가?! 물론 양질의 비정규직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우버(Uber)를 모르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여기 호주에도 많은 사람들이 우버를 이용하고 있다. 이제 우버 시스템은 단순 차량 공유 서비스에서 딜리버리(Uber Eats), 맞춤형 일자리 공유까지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우버는 지금 미국 노동시장의 대변혁의 중심에 서 있다.
우버 잇
우버(Uber)는 과연 누구를 위한 플랫폼인가?
우버는 플랫폼 경제이자 공유경제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에어비엔비(Airbnb), 쏘카(Socar), 인스타그램(Instagram), 유튜브(Youtube) 같은 유형이든 무형이든 개인의 자산(집, 자동차, 물건, 정보, 콘텐츠)만 공유하는 플랫폼과는 조금 다르다. 실시간으로 인간의 노동력까지 같이 제공한다. 이것이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다.
우버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일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원하던 자유와 노동이 공존하는 근로 환경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독립 노동자(혹은 독립 계약자 : 플랫폼을 이용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을 하고 원하는 시간에 여가와 휴식을 누리는 세상을 맞이했다. 꼰대 상사들의 갈굼도 사라졌다. 더욱이 일반 자영업과는 달리 투자비용(임대료, 인건비등) 낮아 진입 장벽이 거의 없다.
기업은 직원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각종 책임(4대 보험, 퇴직금, 각종 복리후생 등)을 탈피할 수 있게 되었다. 직원들 사기를 올리기 위한 회식도 없다. 가장 큰 매력은 노조(노동조합)가 없다는 것이다. 독립 계약자(우버 기사)들은 서로를 알지 못하며 동료가 아닌 보이지 않는 경쟁자일 뿐이다. 노동쟁의가 없다. 이 얼마나 좋은가? 대중으로부터저질 일자리이라는 비난의 화살보다는 새로운 고용 창출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노동자와 기업가(자본가) 모두가 원하던 이상적인 일자리다. 획기적인 노동 환경의 변화는 미래의 대안으로 받아들여지는 듯 보였다.
'버튼 하나면 언제든 일할 수 있다'
- by 새라 케슬러 -
출근과 퇴근은 내 손에 쥐어진 스마트 폰 속 애플리케이션 터치 한 번으로 결정된다. 8시부터 5시까지 주 5일을 지키며 일하는 시대는 이제 곧 역사 속에 기록될 조상들의 일상이 될지 모른다.
플랫폼 노동자가 늘어간다
미국은 클라우드 소싱(용역)으로 플랫폼에서 일하는 시대로 변모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플랫폼(앱)을 통해 찾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보수로 일을 하는 시대를 맞이 했다. 아마존(메커니컬 터크) 같은 거대 IT기업들은 이런 크라우드 노동자(단순 인지, 판별 업무부터 코딩 업무까지)를 통해 인공지능(AI)을 완성해 가고 있다. 아마존의 어마어마한 시가총액은 그 가치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차량 공유 업계(Uber)는 현재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경쟁업체(Lyft 등)의 등장과 치열한 가격경쟁을 위한 독립 계약자들의 임금이 줄어들고 노동환경 또한 열악해지고 있다. 시간대별(출퇴근, 수요가 많은 시간 , 일하기 힘든 시간), 지역별 요율의 차별화하여 시공간적 자유를 요율(수입의 크기)로 통제, 억압하고 있다.
많은 독립 계약자들이 이에 불만을 품고 법적 소송으로 이어져 사회 이슈로 불거졌다. 최근(19년 9월 19일)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의회에서 우버 기사를 독립 계약자가 아닌 직원으로 봐야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다시 택시회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우버는 땅 파서 장사한다?!'
- 글 짓는 목수 -
우버는 해마다 적자가 쌓여간다. 매출은 성장하지만 손해는 늘어간다. 그럼 왜?우버는 막대한 적자를 보면서까지 이 사업을 지속하는 것일까? 차량 공유 업계는 꽃피는 봄날을 기다리며 시련을 버티고 있는 중이다. 봄날이 올지 안 올지 아직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많은 이들이 그 가능성에 투자한다.실제로 우버는 엄청난 적자를 투자펀드(손정의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로 버티고 있다.
차량 공유 시스템과 완전 자율주행과 만났을 때 그 봄날은 실현된다.우버의 비용의 대부분(기사 운임 약 70% 이상)이다.그 비용들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 날을 기다리며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선점하는 것이 현재 차량 공유 업계의 목표이다.
긱 경제는 결국 무인 자동화 경제로 가기 전 과도기 단계이다. 인간의 노동이 기계와 컴퓨터로 대체되기 전까지만 허락된 임시 직업인 것이다. 그 논란이 지금 미국의 노동시장에서 불붙었고 한국에도 상륙한 것처럼 보인다.
'노동의 자유 -> 노동의 소멸'
- 글 짓는 목수 -
노동의 자유는 노동의 소멸로 향하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 과학과 기술발전은 노동의 가치를 계속 평가절하시킬 것이다. 노동을 지키기 위해 기술과 과학의 발전을 억제할 수는 없다.그 해결책은 무엇일까? 아직 누구도 그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
노동자와 자본가가 원했던 무마찰의 경제는 말 그대로 임시적(Temporary) 일뿐이었다. 더 큰 마찰이 생겨나고 있다. 그 마찰의 결과가 궁금해진다.
'긱(Gig) 경제 = 무마찰 경제'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해 기술의 퇴보를 선택할 것인가? 기술의 발전을 위해 노동자의 생존권을 박탈할 것인가? 어느 하나도 양보할 수 없다. 주목할 점은 발화점이 미국이라는 점이다. 전 세계 자본주의 표본인 미국은 기술 발전을 멈추고 싶지 않을 것이다. 기술은 상용화(돈)와 조우했을 때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법이다. 지금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그 논리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진다. 너와 내가 한 일은 크라우드 서버에 기록(우버의 주행기록, 승객의 평점 등)되어 있고 별점(점수)도 매겨진다. 빅데이터들이 쌓이고 있다. 데이터는 나의 업무 신용도가 되어 기업에 공유될 것이다.
나의 업무 실적을 분석한 AI가 나에게 맞는 일을 물어다 줄 것이다. 사람이 일을 찾는 시대가 사라지고 일이 사람을 찾아가는 세상이 도래할지 모른다. 그것도 먼 훗날이 아닌 가까운 미래에 말이다.
이 책은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불편한 진실들을 알려준다. 불편하지만 알아야 한다. 세상의 변화의 선두에 있는 미국의 변화가 우리 현실에서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듯 보인다.
기술 변화에 속도에 정책과 시스템의 변화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너무 빨라서 사람들은 도태된다.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런 변화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그저 남일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 변화가 나의 직장과 생계를 사라지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택시 분신
한국도 현재 택시업계와 카카오 모빌리티, 타다 등의 차량(승차) 공유 업계 간의 치열한 공방이 진행 중이다. 생존권을 지키려는 택시기사들의 잇따른 분신(焚身)에 정부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난감한 상황이다. 소수(택시업계)의 생존권인가? 이용자의 편의와 IT 생태계의 발전인가? 최근 발표된 정부의 대안은 결국 소수의 생존권을 위한 방안을 채택한 듯 보인다. 결국 차량(승차) 공유는 법적인 면허의 취득이나 임대를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결국 택시면허를 국가나 공유 업계에서 사들이거나 임대하는 방식이다. 결국 그 취득비용과 임대비용은 고스란히 이용자에게 전가되거나 모빌리티 업계가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차량 공유 생태계의 탄생은 현재의 이동 수단의 불편함과 고비용을 편의와 저비용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놀고 있는 수많은 차량)을 통한 일자리와 수익의 창출이다. 또한 차량 수를 감소시켜 환경과 교통난을 해소할 수 있다.
변화하지 않았던 택시업계 종사자들의 생존 비용을 사회가 부담하는 방법이 옳다 그르다를 말하긴 어렵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것도 옳지 않다. 다만 과거 삐삐가 사라지고 핸드폰 나타났듯이 시대의 변화는 산업과 일자리와 가치관을 바꾼다는 진리를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역사적으로 세상의 변화에 역행했던 나라는 항상 강대국의 지배를 받았다. 일본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건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메이지 유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쇄국정책을 펼친 흥선대원군과 정신 나간 서태후가 지배하던 조선과 청나라는 결국 세계의 전쟁터가 되었고 열강들의 희생양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