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이 책을 읽게 된 건 최근 경제 관련 서적을 읽고 싶다는 순수한 의도와 함께 독서토론에서 추천하는 책이라 도서관에서 일단 찝뽕했다. 경제학 서적인데 좀 오래됐다. 2007년에 첫 출간된 책이다. 최근의 경제 흐름을 알고자 했던 나의 의도와는 좀 빗나간 선택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특이한 점은 이 책이 최근에 재출판되었다는 것과 국방부가 지난 10년간 불온도서로 선정한 책이라는 것이다. 이건 또 갑자기 웬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얘기로 빠지는 듯한...
진보주의 (좌파) 경제학?!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30분도 채 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순수 경제학 서적은 아닌 듯하다. 이젠 경제와 정치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쯤은 알지만 이 책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책 속의 저자의 논리가 탄탄히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어 설득력이 있다.
장하준과 장하성(전 청와대 정책실장)
저자인 장하준 교수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 박사이다. 경제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석학이다. 지금은 교체되었지만 얼마 전까지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던 장하성과는 사촌 관계이다.
나쁜 사마리아인은 누구?
경제학 서적인데 제목이 유별나다. 제목으로 경제학 서적이라는 것을 유추하긴 쉽지 않다.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왜 나쁜 사마리아인들로 바뀌었을까? 좋은 의도로 목숨을 구하려다 사람을 죽인 데서 유래한 착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도덕적인 선행을 법적으로 강제하자는 논란을 불러왔었다. 나쁜 사마리아인은 나쁜 의도로 사마리아인의 탈을 쓰고 사람을 죽이는 것인가?
우선 저자가 말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과연 누구일까? 그건 부자 나라들, 즉 경제 선진국(미국, 일본, 유럽 선진국들)들을 의미하고 있다. 저자는 이 경제 선진국들이 주창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보내고 있다.
그 논리를 쉽게 풀어 얘기하자면 과거 제국주의 시절 지금의 경제 선진국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오세아니아 등지에 식민지를 건설하며 자원과 소비시장을 확보하며 막강한 부를 축적해 왔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식민지들은 다들 독립해서 떨어져 나가고 이젠 그런 일방적인 식민 거래는 힘들게 되었다. 그럼 이제 합법적인 거래로 이익을 취득해야 하는데... 거기에 국가 간 "공정 자유무역거래"라는 듣기에 그럴듯한 이론을 내세운다. 그게 바로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이다. 시장의 논리에 맞게 각 나라마다 잘 만드는 것 만들어서 서로 무역하자는 얘긴데... 그게 바로 함정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신자유주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개도국(개발도상국)들은 오랜 식민 생활과 전쟁(세계 2차 대전)으로 피폐해진 상태이다. 하지만 선진국가와 전쟁 승전국들은 전쟁과 식민지배를 통해 부와 과학기술이 축적되어 하이테크 산업이 크게 앞서 있었다. 이런 선진국과 개도국이 자유무역을 한다는 것은 헤비급과 펜타급이 링 위에서 싸우는 거나 다름없는 것이다. 현대판 식민시대로 돌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난 달나라 갈 테니 넌 농사나 지어!"
- By 글 짓는 목수 -
결국 개도국은 고부가가치의 하이테크 상품은 수입해서 쓰고 원자재, 노동집약 상품 등의 저부가가치 상품만 팔아라(수출)는 얘기다. 그러면 개도국은 계속 빈민국으로 부자 나라들의 경제 속국으로 전락하게 될 수밖에 없다.
부자 나라 합의체 삼총사 - 세계은행, WTO, IMF
부자 나라들은 1986년 GATT의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해 본격적인 자유무역시대로의 서막을 열어간다. WTO를 출범시키고 전 세계가 자유롭게 무역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 양 세계 여론을 조장한다. 아울러 개도국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그리고 세계은행, IMF 등을 통해 자유무역에 유배되는 각국 정부의 규제를 합법적으로 감시한다.
우리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 구제금융을 통해 뼈아픈 경제 구조 조정을 거쳤다. 자본시장과 고용시장을 개방하고 외국 자본이 국내 깊숙이 파고들어 우리나라 기업을 쥐고 흔들었다. 그 이후 다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했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성장이었다. 자본가와 기업가들의 부가 쌓이는 속도는 노동자와 서민의 소득의 증가 속도로는 따라갈 수 없었다.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한국은 투자하기 좋고 기업 하기 좋은 자본가와 기업가를 위한 나라였지 서민이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니었다. 자살률은 증가하고 결혼과 출산을 줄어들고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해졌다.
부자나라는 그렇게 세계의 통화, 금융, 무역의 자유라는 명분 등에 업고 창과 방패를 들어 세계의 여러 개도국(개발도상국)들을 마음대로 요리했다.
가발, 신발에서 조선, 자동차, 반도체까지
저자는 개도국들은 자국의 산업 및 기술력이 경쟁력을 갖추기까지 강력한 국가의 지원과 보호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6살 아이에게 이제 너도 말하고 움직일 수 있으니 나가서 돈 벌어라는 말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어떻게 해냈지?!
과거 우리나라가 경제 성장을 이끌어온 산업인 철강, 조선, 자동차, 반도체도 처음 시작할 때 전 세계가 비웃었다. 하지만 전 국가적인 지원과 보호 아래 세계 최고의 기술 수준으로 올려놓는데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았다. 만약 자유시장의 경쟁 속에 그냥 내버려 두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가발이나 신발을 만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부자 나라들의 뱃속을 채우기 위한 경제이론이며 과거 부자 나라들 또한 강력한 자국 산업 보호와 지원을 통해 발전해 왔으면서 현재의 개도국들에게는 그럴 기회와 시간을 주지 않는다.
현재의 국제 정세는 트럼프 집권 이후 자유무역 시대는 저물어 가고 미중 간 무역전쟁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자국의 실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분위기 속에서 잠시 정신줄을 놓는 순간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이런 불확실성이 전 세계적으로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켜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과거 경제 선진국들이 만들어 놓은 신자유주의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사회주의 용이 꿈틀거리면서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중국이라는 이념이 다른 강대국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한국은 자유시장경제의 무대에 무방비로 노출되어도 거뜬할 만큼 경쟁력 있고 강한 나라가 되었는가?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발전이냐? 자유로운 경쟁을 통한 발전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신자유주의 or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
자유시장경제 or 국가 주도 경제
과거 역사를 통한 경제와 정치의 연계성을 잘 보여주는 책인 것 같다. 주석과 부가 설명이 많아 쉽지만은 않은 책이다. 현 정부의 색깔에 잘 어울리는 책인 건 확실한 듯 보인다.
이념도 국가도 정치도 결국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생긴 것이 아니던가? 무엇이 위에 있는 건지 헷갈리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