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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l 03. 2021

맞춤복과 기성복

[슈트] 김영하

[우리는 모두 어떤 옷과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 사랑은 때로 매우 굳건하다]

                                                                                                  - 【슈트】 본문 중에서 -


  김영하의 단편집을 완독 했다. 김영하 작가는 인간의 심리의 한 부분을 깊이 파고들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주가 뛰어난 것 같다. 그는 각각의 소설마다 우리가 한 번쯤은 느껴봤을 혹은 공감할만한 내면 심리를 이야기 속에 재현한다. 첫 문장은 그의 단편 [슈트]를 읽고 나서 가장 인상에 남는 문장이다. 저 문장과 함께 떠오르는 상념들을 적어 보려 한다.


   나에게는 한국에서 가져온 옷들이 있다. 한국에서 새 옷을 사서 가져온 것은 아니다. 그 옷들 중에서 몇 벌은 10년이 넘는 세월을 나와 함께 했다. 당시엔 나름 큰 맘먹고 샀던 옷이다. 그렇다고 아주 비싸거나 고급 명품 같은 옷은 아니다. 보통 옷을 사 입는데 돈을 들이는 성격이 아니라 그냥 대충 사서 입는다. 그렇게 사서 몇 번 입지 않고 옷장 속에서 잠자고 있는 옷들이 적지 않다. 이상하게 외출을 할 때 옷장을 열면 항상 손이 가는 옷이 있다. 그 옷이 지금 이곳 지구 남반구까지 와 있다. 그 옷은 마치 시간이 갈수록 나의 체형에 더 잘 맞춰지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 옷이 어울린다는 말도 종종 들었다. 얼마 전 세탁을 하다 그 옷이 뜯어졌다. 10년이 넘는 시간 닳아질 데로 닳은 옷감이 견디다 못해 상처가 난 것이다. 그날 나는 그 옷을 손수 꿰맸다.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오래될수록 소중해진다.


[너는 장미에게 바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장미가 그토록 소중해진 거야]

                                                                                                    - 【어린 왕자】 중에서 -


    맞다. 내가 함께한 시간이 그것의 가치를 만든 것이다. 다른 이가 봤을 때는 빛바랜 낡고 가치 없는 옷으로 비칠 수 있지만 나에게는 나의 몸에 잘 맞고 입으면 안정감과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최애템인 것이다. 마치 새우깡처럼 ♩♪손이 가요 손이 가 ♫  자꾸자꾸 손이 가♬ 


  감상이 길었다.


   소설은 아버지의 죽음을 접한 아들이 미국으로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면서 벌어진다. 아버지는 어릴 시절 자신이 세상에 나옴과 동시에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무정한 사람이다. 그런 아버지의 시신을 찾으면서 아버지가 살아온 과거를 알게 된다. 젊고 어린 흑인 여성을 통해 알게 된 아버지의 과거, 그는 미국에서 수많은 여자들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팔며 살아왔다. 여자들은 아버지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고 그도 그 아름다움을 가꾸고 지키는 법을 알고 있었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아름다움을 그가 남긴 수많은 고급 슈트를 통해 체감한다. 자신에게도 맞춤복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아버지의 슈트를 입는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그 흑인 여성과 아들을 자칭하며 찾아온 다른 남자의 달라진 눈빛을 느끼게 된다.  


   그는 아마도 그 순간 그동안 자신과 맞지 않는 옷(길)을 입고 있었다는(걸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 듯하다. 현실과 주변의 시선에 맞춰 내면의 자신을 속이고 살아온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여자를 품는다. 여자는 다시 살아난 아버지를 만난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주인공은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강요로 그림이 아닌 시(글)를 쓰는 삶을 산다. 그것이 마치 자신과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사는 것처럼... 아버지는 비록 시체의 화장을 하며 이 여자 저 여자를 전전하는 불안정한 삶을 산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일 수 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여자들에게 인정받고 자신의 예술적 기질을 비록 하얀 캠퍼스가 아닌 하얀 시신의 얼굴에 표현했을지라도...


맞지 않는 옷을 입는 사람들


   우리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은 고르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맞지 않은 삶을 사는 자들이 많다. 그 속에서 고통받는 삶을 살아가지만 세상의 시선과 자신이 쌓아온 시간의 흔적들을 놓을 수 없어 더 깊은 고통의 굴레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시간이 갈수록 그 굴레는 수많은 책임과 역할들로 현재의 자신을 더 단단히 옮아맨다.


    소설 속 아버지라는 인물은 사회적, 가정적인 시선에서 바라봤을 땐 비난받아 마땅한 인간으로 보일 수 있다.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떠나버린 무책임한 아버지이다. 하지만 그가 만약 계속 가정을 지키고자 했다면 그 가정은 더 좋지 않을 파국을 맞이했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한 사람에게 얽매여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주인공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라왔고 둘에게서 물려받은 그 성향을 어머니로부터 억압받으며 살아온 것이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 많은 현대인들의 모습을 나타내려고 한 것 같다. 천편일률적인 성공과 남들이 모두 바라는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동화 같은 스토리가 인생 최대의 목표가 되어 버린 세상은 개개인이 타고난 소명을 거스르며 세상이 정해놓은 길만 달려가게 만든 것은 아닐까?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친구의 아내가 주인공이 왔다간 자신의 집을 대청소하는 부분은 마치 세상은 그런 류의 인간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묘사하는 듯하다. 세상은 이상적인 삶의 기준을 만들고 그렇게 교육한다. 우리는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을 알기에 우리는 내면의 자신을 감추고 그 삶의 굴레에 끌려가며 살아가는 건 아닐까?


   누군가는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아서 입고 누군가는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그 옷에 자신을 맞춰가며 살아간다.  


   마치 맞춤복과 기성복처럼... 우리는 대부분 공장에서 찍어낸 기성복을 입고 있다.

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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