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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Apr 28. 2022

인생이라는 무대 위의 나
그리고 무의식

[슬로싱킹] 황농문 - 두 번째 이야기 -

무대 위에 내가 있다.

 

어둠 속 극장 안에 한 줄기 스포트 라이트 조명이 나를 비추고 있다.

내 주변은 암흑 속에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객석에는 또 다른 수 많은 내가 앉아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무대 뒤에는 다른 이들의 무의식이 나를 지켜본다.

이제 나는 무대 위에서 연기를 시작한다. 

나의 의식은 무대 위에 연기하는 또 다른 나를 가만히 드려다 보고 있다.

 



"인간의 머릿속을 하나의 '무대'로 보고, 이 중앙 집중적인 '무대'에 우리가 지각한 정보가 모이고 소화되어 의지와 반응이 생겨난다고 보는 이론을 데카르트의 무대(Cartesian theater)라고 한다."                   

                                                                            

                                                                                     - [슬로싱킹] 중에서 -


책을 읽고 나면 피어오르는 상념들이 적지 않다.

[슬로싱킹]을 읽고 난 후, 가장 오랜 시간 나의 뇌리에 남아있는 주제가 하나 있다.

그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머릿속에 계속 상념을 일으킨다.


그 떠오른 생각을 정리해 보려 한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각자의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우리가 맡게 되는 배역(역할)은 하나둘씩 늘어난다.

누군가의 아들 그리고 딸로 태어나 누군가의 친구, 연인, 배우자 그리고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다. 또한 각자가 속한 사회와 조직 속에서 주어진 직급 혹은 직책에 따른 역할과 행동을 요구받는다. 

예를 들면, 회사라는 조직에서 사원에서 시작해 대리, 과장으로 직급이 변화되며 해당 직급과 받는 연봉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과 역량이 달라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역할과 역량에 부합하려 부단이도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그것에 부합하는 인간이 되려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내가 만들어진다.

페르소나

페르소나 (Persona)


  이 말을 한 번쯤을 들어 봤을 것이다.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쓰고 벗었던 가면을 지칭하는데서 생겨난 단어이다. 현재의 인격, 성격(Personality)의 어원이기도 하다. 우리는 연기 변신을 잘하는 배우를 명품 배우라 지칭한다. 그 말은 여러 가지 다양한 페르소나를 갖춘 연기자가 뛰어난 배우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하다.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아들과 딸로서, 남편과 아내로서 혹은 사장과 직원으로서, 형과 동생으로서등 우리는 삶에서 이 여러 가지 역할을 잘 수행하는 멀티플 인간이 되어야만 대우받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한 가지 페르소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런 인간은 현실의 삶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다양한 가면을 적재적소에서 바꿔가며 수많은 나를 연기하는 자가 명품 인격과 인생을 사는 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대 위에서 수많은 시선들에 사로잡혀 평가받고 채점된다. 채점 결과에 따라 물질적 혹은 지위적인 보상을 받는다.


자! 그럼, 우리는 무대 위에서 연기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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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통합작업공간 = 데카르트의 무대


  글의 도입부에서 내가 묘사한 상황은 뇌가 이완한 상태에서 장시간의 몰입(슬로 싱킹)에 들어가 자신의 의식을 드려다 보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건 뇌가 풀가동되며 해마 깊숙한 곳의 장기기억들과 현재 맞닥뜨린 문제의식 연결되는 과정이다. 이것이 인지심리학자 버나드 바스의 '의식의 통합작업공간' 이론을 데카르트의 무대로 표현한 것이다. 

의식의 통합작업공간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는 주인공은 우리가 현재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의식의 내용이다. 그리고 조명이 미치지 않는 어두운 공간은 암묵 기억, 즉 우리가 의식하고 있진 않지만 현재의 의식과 행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억에 비유할 수 있다."

                                                                                           - [슬로싱킹] 중에서 -


  지금부터 그 과정을 나의 경험과 상상을 곁들여 설명해 보고자 한다. 이건 내가 장시간 글을 쓰며 몰입을 할 때 경험한 것을 책 속에서 설명하는 이론과 접목시킨 것이다.


나의 현재와 과거


  무대 위에서 한 줄기 스포트라이트 불빛 속에서 연기하는 건 현재의 나의 의식이다. 이건 전두엽에서 현재 나의 문제의식과 맞닥뜨린 자아의 모습이다. 현재 내가 맞닥뜨린 상황에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또 다른 도움이 필요하다.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기 위해선 각종 소품과 상대 배역이 필요하다. 홀로 연기하는 것은 쉽지 않을 뿐더러 생동감이 떨어진다. 그럼 무엇의 도움을 받는 것인가? 또 다른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 몰입의 시간이 길어지면 과거의 수많은 나와 연결된다. 해마 깊숙한 곳 장기 기억들이 수면 위 아니 무대 위로 올라온다. 과거의 나와 연결이 시작된다. 


객석은 과거 수많은 나의 무의식 = 체험된 기억 (경험)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 과거 속 수많은 내가 존재한다. 그들은 어둠 속 객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인생의 시간만큼 객석(과거)의 나는 많아진다. 그들은 현재 무대 위에 있는 연기하는 현재의 나를 가만히 지켜본다. 그러다가 객석에 앉아 있던 또 다른 내가 무대 위로 올라온다. 객체였던 또 다른 내가 주체가 되어 현재의 나와 만난다. 현재의 나와 만나 호흡을 같이 하며 연기를 펼친다. 이건 현재 맞닥뜨린 문제들을 무의식의 세계 속에 있던 답을 찾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살아온 세월만큼 수많은 기억과 정보 그리고 지식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들을 기억해내지 못해 이용하지 못할 뿐이다. 이 모든 기억과 정보를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다면 우리가 해내지 못할 일은 없다. 


  해마 속 장기 기억 속에는 놀이 동산 회전목마 위에 앉아서 엄마에게 손을 흔드는 5살의 나, 친구들과 모여 성인 비디오를 훔쳐보는 여드름 가득한 얼굴을 한 사춘기 15살의 나, 그리고 새로 산 말끔한 정장 차림에 서류가방을 메고 회사에 첫 출근하는 25살의 패기 있는 나가 있다. 이 기억들은 모두가 동영상으로 저장되어 있으며 그 용량은 실로 엄청나다. 

Brain and computer

뇌와 컴퓨터


  컴퓨터도 메모리(RAM)와 하드디스크(HDD) 그리고 클라우드(Cloud) 공간이라는 서로 다른 기억 공간으로 구분되듯이 우리의 뇌 또한 그러하다. 메모리는 자주 쓰는 단기 기억들을 보관하는 곳이며, 현재의 나의 문제의식과 지속적으로 연결된다. 메모리는 CPU와 연결되어 수시로 빠르게 상호작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기에 메모리는 일상에서 가장 많이 끌어다 쓰는 정보와 기억들이 저장되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자주 쓰지 않는 먼 과거의 기억과 정보는 하드디스크로 옮겨진다. 세월이 흐르고 우리가 보고 듣고 느꼈던 대용량의 정보와 기억들은 하드디스크 용량으로도 부족하다, 그러면 무한대의 클라우드 공간 속으로 옮겨야 한다. 우리 뇌의 해마가 바로 그런 장기 기억들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우리는 몰입(슬로싱킹)을 통해 해마 속 장기기억들과 연결될 수 있다. 


  객석에 앉아 있는 수많은 나 중에서 무대의 위에서 고민하는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위로 올라가 현재의 내가 가진 문제의 실마리를 제공하며 스토리가 이어지고 연기는 계속된다. 그러다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면 객석에 또 다른 내가 등장하고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간다. 이 과정이 바로 몰입의 통해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무대 뒤는 내가 아닌 다른 이의 무의식 = 습득된 기억 (학습)


  때론 아무리 깊이 생각하고 몰입의 시간을 가져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건 나의 과거 경험 속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 말은 과거의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나 문제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무대에서 연기를 하기 위해서는 여러 스텝들의 도움과 무대 장치와 소품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물론 스텝과 무대장치 소품들이 없이도 연기는 할 수 있다. 다만 그 연기는 디테일과 리얼리티가 살지 않는다. 명품 연기자라면 그것 없이도 어느 정도 커버가 되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인생이 홀로 갈 수 없는 것처럼 다른 이들의 정신세계의 도움이 필요하다.


   무대 뒤에는 타인의 무궁무진한 무의식의 세계가 존재한다. 이 무의식은 타인의 경험과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간접경험 즉, 타인의 경험과 생각의 세계이다. 우리는 타인의 생각과 경험을 통해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 타인의 삶과 생각을 드려다 볼 수 있다. 또한 타인의 말과 글을 혹은 예술 작품(음악, 미술, 영화 연극 등)을 통해서 나의 정신세계를 확장해 나갈 수 있다. 


나의 이야기(경험)에 이야기(학습)를 더하다


   내가 글을 쓸 때도 그러하다. 안락한 의자에 앉아 가사 없는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한 가지 문제를 깊이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럼 과거 나의 경험과 책에서 혹은 영화 아니면 타인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들이 무심결에 떠오른다. 그 기억들이 새로운 생각들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이 연결되며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과거 내가 보고 들은 타인의 지식과 기억들은 무대 뒤 어둠 속에서 잠자고 있다. 몰입의 시간이 길어지면 무대 뒤의 무의식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기억과 정보는 무대 위의 현재의 나 그리고 과거의 나에게 화려한 연기를 펼칠 수 있도록 소품과 무대장치가 되어 주고 때론 그들의 입과 행동을 통해 표현되어 사실성과 디테일을 살려준다. 


"각성한 뇌는 암기를 하고 이완한 뇌는 새로운 발상을 한다."

                                                                            - [슬로싱킹] 중에서 -


  한국 사람은 암기를 잘한다. 그래서 시험에는 강한 면모를 보인다. 그건 바로 각성된 뇌의 상태를 잘 유지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하드웨어에 강하고 소프트웨어에 약한 것 또한 바로 이 때문이다. 각성한 뇌는 단기 기억들을 이용해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효율을 올리는 데는 유리하지만 미지의 문제나 새로운 발상을 하는 것과는 멀어진다. 즉각적이고 정량(定量)적인 성취에 강하다. 장기적이고 정성(定性)적인 성취에는 소홀하다. 왜냐 제조 강국은 결국 생산효율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드웨어는 물질세계를 지배하지만 소프트 웨어는 정신세계를 지배한다. 이제는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자가 우위에 있다.  글로벌 IT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데는 다 그 이유가 있는 법이다. 

  

  어린 시절 사방이 막힌 독서실 책상에 갇혀 오로지 교과서와 수험서라는 우물 속에서 얼마나 빨리 많은 물을 퍼올리느냐에만 집중했다. 드넓은 강과 바닷속에 있는 미지의 세계를 보지 못한 것이다. 이제 우물이 바닥나고 있다. 그런데도 우물만 판다. 어디서 무얼 어떻게 만날 지 알 수 없지만 강과 바다로 가야만 다른 세계 다른 발상을 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 속에는 위험도 실패가 존재하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다 말라버린 우물을 계속 파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완벽한 무대


무대 위의 나와 객석의 관객이 같이 호흡하며 연기를 펼친다. 

과거의 수많은 경험과 무대 뒤의 수많은 타인의 경험과 생각이 수시로 무대 위를 오고 가며 

생동감 있고 디테일이 살아있는 연기가 펼쳐진다. 

그럼 객석의 관객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그 연기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뇌 속의 수많은 시냅스가 활성화되며 여러 가지 신경물질들이 전두엽과 해마 사이를 오고 가며 수많은 정보를 주고받는다. 현재 봉착한 문제에 지속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음악이 불협화음과 협화음이 조화를 이루듯이 극적 긴장상태와 반전 그리고 해소를 통해 스토리가 흥미진진해진다. 무대 위의 나는 객석의 나와 무대 뒤 타인들의 생각들이 서로 협력하며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완벽한 한 편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진다. 그 무대는 우리의 삶이 끝나는 그날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우리가 눈 감는 그날 스포트라이트는 빛을 잃고 무대는 막이 내린다. 

강수진의 발

"모든 예술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독창성과 직관력 또한 완전한 몰입 상태에서 생겨난다...(후략)"

                                                                                                        

                                                                 -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강수진 저 -

                    

  바로 몰입(슬로싱킹)의 시간이 우리가 인생에서 풀지 못한 미지의 문제들을 풀어가는 시간이다.

이건 비단 예술뿐 아니라 과학, 철학 등 깊은 사고를 요하는 분야에서도 공통적인 드러나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몰입을 통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며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낸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이 몰입이 사라져 가는 세상을 살고 있다. 수많은 각성제들로 둘러싸여 있는 세상은 우리의 뇌가 이완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의 숨 가쁜 시스템에 휩쓸려 수많은 내 속의 나와 타인의 생각을 드려다 보지 못한 채 쓸쓸히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 깨닫는다. 그 모든 것이 의미 없었음을... 


  어쩌면 세상은 우리가 모든 것을 알아가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면 안 되는 것처럼... 그래서 신이 설계한 세상과 인간이 설계해 나가는 세상이 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누군가가 설계해 놓은 세계 속에 살고 누군가는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설계해 간다."

                                                                       - 글짓는 목수 -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자가 자신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무대를 만들어 갈 것인가?


슬로싱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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