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Jesus said, "Do not be concerned from morning until evening and from evening until morning about what you will wear. [Thomas 36]
며칠 전 우연히 보게 된 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복음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2천 년 전에 쓰인 복음서의 말씀 속에서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꿰뚫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환경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세상에 이렇게 많은 옷들이 버려지고 있는지 알고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인구 5,000만의 조그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버려지는 옷의 양이 중국 못지 않다는 보도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출처 : 환경 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중에서
우리는 왜 옷을 입을까?
옷은 인간에게 있어서 많은 의미가 있지만 옷의 기원을 찾아올라가 보면 태초에 아담과 이브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 죄의식(자의식)을 가기게 되면서부터 자신의 육체에 대한 수치심이 생겨났다. 그래서 둘은 나뭇잎을 따서 몸의 중요한 부분을 가리게 되면서 몸에 무언가를 걸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이게 최초의 옷이 아닐까 뭐 속옷도 옷이니까.
이후 온화했던 지구에 빙하기가 오고 추위와 외부의 자극 등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옷이 진화하기 시작한다. 수렵시대 원시인들은 아마 평생 한 두벌 많아야 세네 벌을 옷을 입으며 살아가지 않았을까 닳아 없어지면 그제야 다른 옷을 마련해 입었을 것이다. 그 옷 또한 동물 가죽이나 식물의 잎사귀등으로 만들어져 친환경 의복이었다.
시대가 흘러 중세 근대로 오면서 방직기술이 발전하고 옷의 가지 수는 늘어났지만 그것도 귀족이나 양반들에게 제한되었다. 부유하고 권력이 있는 자들만이 여러 가지 옷을 소유하며 격식과 예식에 따라 옷을 바꿔 입곤 했을 것이다. 대다수의 서민들은 두 세벌의 옷을 빨아가며 입었을 것이다. 그리고 입을 수 있는 옷을 버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우리의 옷장은 수많은 옷들로 가득 차 있다. 더욱이 석유화학 공법으로 만들어진 합성섬유 옷이 대부분이다. 옷 뿐만이 아니라 신발과 모자 각종 액세서리들까지 하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스마트폰 안에 다른 이들이 입고 있는 옷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내 쇼핑 창을 열어 결재를 하고 새 옷이 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그것도 잠시 구매한 옷은 몇 번 입고 옷장 한구석에 처박혀 버린다. 옷장이 입지 않는 옷들로 가득 찬다. 이사를 갈 때가 되면 그제야 이런 옷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멀쩡한 옷들은 쓰레기통으로 간다. 그게 안쓰럽고 죄스러워 헌 옷 수거함으로 가져가지만 그건 장소만 이 나라가 아닌 다른 가난한 나라로 변했을 뿐 쓰레기가 되는 건 매한가지이다. 그 쓰레기는 강을 따라 다시 바다로 흘러가고 해상 생태계를 파괴하고 다시 세계 각지로 흘러들어 간다. 바다 밑은 인간인 만든 옷을 입고 숨이 막혀 온다.
출처 : 환경 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중에서
단조로운 삶이 가져온 것
나 또한 과거 그러했다. 입지도 않을 옷을 사고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몇 번 입고 옷장 속에서 색이 바래버린 옷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항상 손이 가는 옷만 입게 된다.
호주에 오면서 의복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사실 이곳에 온 이후 근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옷을 사입은 건 몇 번 되지 않는다. 그것도 대부분 일할 때 입는 작업복과 작업화가 대부분이었다. 일의 특성상 옷이 잘 헤지고 뜯어져 오래 입을 수가 없다. 그것도 몇 번을 깁어 입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으면 버리고 새것을 사 입었다. 그 이외에 외출복은 한국에서 가져온 옷들로도 충분했다.
가져온 옷들도 한국에서 오랫동안 즐겨 입던 옷이었다. 심지어 십 년을 훌쩍 넘긴 옷들도 있다. 강산이 변한다는 십 년을 버틴 옷이니 얼마나 내구성이 강한지는 안 봐도 알 것이다. 그런 옷들이 여기서 4년을 더 버티다 이제 수명이 다해서 새 옷을 사 입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근데 어떻게 내가 옷이 필요할 때면 누군가가 내게 옷을 준다. 그렇게 얻어 입은 옷이 적지 않다. 다 멀쩡한 새 옷 같은 것들이다. 꼭 사야 할 옷이 있으면 중고 벼룩시장을 통해 누군가가 내놓은 새 옷을 싸게 사 입었다. 이곳에서 셰어 생활을 하면서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기에 많은 옷은 부담이기도 했다. 이곳의 삶이 단조롭기에 의복 생활도 그만큼 단조로워진 것 같다. 지금은 작은 옷장에 있는 몇 벌의 옷이 전부가 되었다. 사실 그중에서도 자주 입는 것만 입기에 다른 옷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시선에서 벗어난 단조로운 생활이 의복 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겉에 무엇을 걸칠지 보다 내 안에 무엇을 더 채워넣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무엇을 입는지는 상대방의 첫인상을 보여주지만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상대방을 삶을 보여준다. 첫인상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지만 삶의 태도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우리는 자신의 삶을 속이기 위해 아름다움으로 치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움이 가져온 것
패션산업이 년간 내뿜는 탄소 배출량은 지구 전체 배출량의 10%에 달할 정도로 심각하며 이건 항공, 선박산업을 합친 것 보다도 많은 양이라고 한다. 그만큼 많은 양의 옷이 만들어지고 버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의복이 생필품에서 패션으로 바뀌면서 우리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포장되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황폐해졌다. 우리는 당장 우리 눈에 보이는 외면의 아름다움을 쫓다가 결국 우리의 모두의 생명을 옥죄어 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출처 : 환경 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중에서
요즘 북반구는 유래 없는 폭염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곳 남반구 호주는 유래 없는 겨울 폭우로 고통받고 있다. 해마다 이 기록이 경신되며 인간이 살기 힘든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 변화는 이제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멈출 수는 없다. 우리는 자본의 증식이 멈추는 것 즉, 성장을 멈춘다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부와 물질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줄어든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이라 여긴다. 그 누구도 원치 않는다. 정치인과 국민 모두는 입을 모아 경제발전을 외쳐된다. 지구의 변화보다 자신의 삶의 물질적 금전적 변화가 더 피부로 와닿고 내가 다른 이들이 입고 있는 화려한 옷을 하나 더 사 입지 못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물질의 빈곤은 불편함을 가져다 줄 뿐이지만 자연의 파괴는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당장 내 목숨이 아닐지는 모르지만 그건 내 자녀가 내놓아야 할 것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많은 부와 물질을 남겨주려 하지만 그건 결국 그들에게 고통받을 시간과 강도를 더 쥐어주는 꼴이 될 것이다. 지금의 삶이 화려하고 아름다워질수록 나중의 삶은 더욱 황폐해지고 추한 모습으로 변해갈 뿐이다.
서두의 복음서 말씀처럼 우리는 무엇을 입을지보다 무엇을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의복의 아름다움과 다양함보다 생각의 아름다움과 다양함이 세상을 아름답고 다양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