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목수 Sep 17. 2022

돈을 벌지 말아야 할 단 한 가지 이유

[삶의 무기가 되는 자본론] 시라이 사토시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는 게 더 쉽다."

                                                              

                                 -  프레드릭 제임슨 -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돈... 싫어하진 않는다. 싫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면 우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는 돈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숨 쉬고 먹고 자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행위조차도 돈을 지불해야만 한다. 지구에서 눈에 보이는 것에는 모두 주인이 있다. 개인이나 단체 혹은 국가가 그것을 소유하고 우리는 그것을 돈 혹은 그것을 소유할 합당한 이유를 제시해야만 그것을 가지거나 이용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


  나는 철학에 관심이 많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는 여럿 있지만 칼 마르크스는 그 범주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범주에 넣어도 될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만들어 놓은 세상은 그의 자본론으로 모두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철이 좀 지난 설문조사이긴 하지만 2015년 영국 BBC가 지난 1000년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27.9%의 득표율로 칼 마르크스가 1위에 올랐다고 한다. 2위는 데이비드 흄으로 12.7%를 얻었다. 두배가 넘는 격차로 마르크스는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철학자로 자리매김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산업혁명과 산업 자본주의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영국에서 공산주의 사상가가 가장 인기가 많다는 것이...


"숨만 쉬는 것도 이렇게 힘드냐? "


  여기 호주 시드니의 생활비는 정말 가혹하다. 기본적으로 주거비용이 장난이 아니다. 2평 남짓 작은 한 방 한 칸을 최소 주에 200불 이상 지불해야 셰어 할 수 있다. 좀 괜찮은 방을 얻으려면 300불 이상 지불해야 한다. 한 달에 거의 최소 80만 원 이상을 밤에 몸을 누일 자리를 위해 지불해야 한다. 그 이외에 생활비(학비, 식비, 교통비, 통신비, 비자 관련 비용)를 포함하면 한 달에 최소 생활비가 1500불(140만 원)은 들어간다. 돈을 벌어야만 한다. 자본주의 세상은 당신이 돈을 벌지 않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본에 봉사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는 분명 주객전도된 상황이다"

                                                                                                 - 책 속 인용문 -


  '사람 나고 돈 났지' 남진의 노래 중에는 이런 곡이 있다.  우리는 우스개 소리로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이 말을 하는 사람도 돈이 사람보다 우위에 있는 세상을 인정하고 있다는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돈(화폐)이라는 것은 인간의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태어난 도구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우리가 이 도구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불편한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인간에게 가장 끔찍한 벌은 평생 동안 쓸모없고 의미 없는 일을 하도록 만드는 것“


                                             - 도스토옙스키 -

 

  가혹하지만 인생은 돈과 의미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듯하다.  돈을 좇으면 삶의 의미를 잃고 의미를 쫓으면 궁핍이 찾아드는 것이 현실이다. 안타깝지만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 세상의 논리에 부합해 자본 증식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누가 더 많이 자본 증식에 기여했느냐가 부와 명예의 많고 적음을 판가름 짓게 한다.


  칼 마르크스는 철저히 자본과 맞섰던 인물이었다. 그는 하루 16시간을 공장에서 기계와 함께 일하는 아동들의 현실을 바라보며 절망했다. 도대체 자본이 무엇이길래 그들을 그렇게 가혹한 노동의 현장으로 내몰고 최저 생계만을 이어가는 삶을 안겨주는 것인가?


  그는 노동자들을 위해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자본론]을 집필하면서 그들과 같은 궁핍한 삶을 이어갔다. 그는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지 못해 친구인 프리드리히 엥겔스에게서 생활비를 얻어서 살아야 했다.  나 또한 돈과 의미 사이에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지만 의미의 시간은 돈을 버는 시간을 포기하게 만든다. 나도 일과 후 다른 긱잡(Gig)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여기서는 많은 이민자들이 밤낮없이 일을 하며 낯선 땅에서 돈 없고 집 없는 설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친다. 시간을 돈과 바꾸는 삶을 이어간다.

 

 방향과 속도의 차이


  우리가 돈와 의미 이 둘 사이에서 이렇게 갈등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방향성과 자아 정체성이 나아갈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가 생겨난 것은 불과 5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20만 년이라는 인류의 역사에 비하면 아주 짧은 기간이다. 인간은 각자 본연의 유전 정보와 후천적 환경에 의해 각자의 개성이 발현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산업 자본주의 세상은 인간의 노동력(육체적 혹은 정신적)을 극도로 끌어내 재화와 자본의 양을 늘려나가는 세상을 만들었고 인간을 일률적인 노동의 도구로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가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만들어진 노동의 형태에서 고통받는 또 하나의 근본적인 원인은 세상의 변화 속도에 인간의 유전 정보의 변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체가 각종 바이러스, 암, 비만 같은 질병에 노출되는 것 또한 우리의 신체가 변화된 식생활과 환경의 변화에 유전 정보가 따라서 변화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인 것이다. 공장에서 기계와 혹은 사무실에서 컴퓨터와 함께 정해진 패턴대로 움직이는 인간은 20만 년 전 다양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 다양한 패턴으로 살아가던 수렵 시대의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에서 크게 변한 게 없다.

 

"교육은 우리를 특정한 직업군에 가두어 버린다. 적어도 진로를 정하는 데 상당한 강제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 로먼 크르즈나릭, 인생학교 [일]  중에서-

 

 학교는 그런 노동자를 양산해 내는 교육시스템 정착시켰다. 우리는 유년기부터 시작해 청소년기를 거치는 수년간을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노동자가 되기 위한 습관을 만들어 간다.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이 노래를 기억하는가? 초등학교 시절(당시 국민학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종이 울리면 일제히 교실로 들어가 수업을 듣고 종이 울리면 휴식을 취하고 종이 울리면 밥을 먹고 종이 울리면 하교를 하며 또다시 똑같은 시간에 다시 등교하는 반복적이고 일률적인 스케줄을 수년간 소화해 낸다. 그런 일률적인 시공간의 제약 속에서 훈련된 인간은 비슷한 인간으로 자라나게 되고 시간에 맞춰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휴식을 취하고 돈을 받고 또다시 출근을 하는 일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면서 고통받고 있는 자신과 타인의 모습을 지켜보면 인생은 다 그런 거지 하며 소주잔을 기울이며 서로를 위로한다.

 

테일러 주의(Taylorism)


  과거 학교라는 공간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곳이라기보다는 산업자본주의 시스템에 인간을 길들이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재화를 만들어내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한 인간은 양품으로 인정받고 관리자(정부, 기업, 단체 등)가 되고 교육과정을 잘 따르지 못한 혹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인간은 불량품으로 관리와 통제를 받아야 하는 노동자가 된다.


  또한 학교가 더 오랜 시간 아이들을 잡아두게 함으로써 부모들이 더 많은 시간을 산업자본주의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한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야 부모들이 다시 일터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학교종이 땡땡땡을 외치며 다음 세대의 일꾼으로 길러지고 자본주의는 그렇게 계속적인 노동력을 공급받아서 돌아간다.

 

  나 또한 어린 시절 두 부모가 맞벌이를 하던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공장에서 어머니는 장사로 밤낮없이 일을 하셨다. 아침 8시부터 해 질 녘까지 학교에서 보내다 집에 와도 부모님은 아직 일터에 계셨다. 한국의 산업 자본주의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감은 발전을 이루지 못한 듯하다. 눈에 보이는 발전에만 이목이 집중되는 동안 우리는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을 잃었다는 것은 몰랐다.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외면된 시간에 대한 대가는 나중에 치르게 되는 법이다.


"나는 세상의 종말을 고한다면 그것은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세상을 뒤덮은 사회 시스템은 자본제이며 이 자본제를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현대사회의 모순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책 속 인용문 -


  우리는 왜 돈이 필요한가? 그건 돈이 우리의 욕망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즉 자본은 우리의 욕망을 대변한다. 자본이 증식하듯 욕망도 계속 증식한다. 자본주의 세상은 욕망을 자극하고 욕망은 자본을 증식시키는 공생관계로 자리 잡았다.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욕망에 이끌려 선악과를 따먹은 것처럼 결국 돈으로 대변되는 욕망이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를 만들었다. 산업 자본주의는 엄청난 번영과 발전을 이룩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많은 것이 희생되었다. 자연은 파괴되고 지구는 점점 생명이 살기 힘든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대해진 자본은 비대한 권력을 만들고 권력은 더 높이 올라서려는 욕망을 자극한다. 현재 미중 대결 구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세계 질서가 무너지고 전운이 감돌기 시작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물질의 풍요는 더 큰 경쟁과 위협을 만들어 내었다. 사실 자본주의 경제 발전은 부국강병(富國強兵 : 나라를 부유하게 하여 강력한 군대를 가지는 것)의 또 다른 말일뿐이다. 자본주의 경제 발전은 자국을 지키고 타국을 멸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나이 들고 병들면 믿을 거라곤 돈 밖에 없다니깐"


  나이 드신 노인들이 자주 하시는 말이다. 인간성이 말살되고 부모와 자식 간의 유대도 약화되고 예전의 가족 간의 관심과 보살핌은 이제 돈으로 대체되었다. 돈이 있어야 나이 들어 좀 더 나은 의료 및 양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요즘 실버산업은 가장 돈 되는 비즈니스로 급부상하고 있다. 살아서 숨 쉬는 동안에 험한 꼴 당하지 않으려면 돈이라도 많이 쥐고 있어야 한다. 젊어서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는 나이 들어 고독사 하지 않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돈이 많으면 사람들의 관심과 발길이 끊이지 않는 법이다. 비록 순수한 관심이 아닐지라도... 이렇게 자본은 자신을 지키고 무시받지 않고 관심이 끌어내기 위해서 반드시 더 많이 가져야만 하는 것이 되었다.  다 같이 죽을지언정 나 먼저 죽지 않으려면 벌고 또 벌어야 한다. 우리는 돈을 벌어야 할 수 많은 이유를 가지고 살아가지만 돈을 벌지 말아야 할 단 한 가지 이유애써 외면 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는 게 더 쉽다."

                                                                                       - 프레드릭 제임슨 -


   서두의 말처럼 자본주의는 인류의 번영을 가져왔지만 인류의 종말도 가져올지 모른다. 이제는 욕망과 자본의 증식을 멈춰야 할 때가 아닐까?


[삶의 무기가 되는 자본론] with Dark Mocha in Oliver Brown


작가의 이전글 믿음이 없이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