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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Sep 18. 2022

신과 돈 그리고 시공간

[삶의 무기가 되는 자본론] 시라이 사토시 (두 번째 이야기)

  신(God)과 돈(Money) 그리고 인간(Man)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 난 이런 뚱딴지같은 생각을 즐긴다. 접점이 없을 것 같은 것에서 접점을 찾아내고 연상(聯想)하며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내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읽고 난 후 문득 책의 내용과는 좀 동떨어졌지만 그렇다고 전혀 관계가 없다고도 볼 수 없는 그런 상념들이 떠올라 글을 적어본다.


시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신은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난 존재이다. 돈은 시공간을 먹고 증식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존재이다. 돈이 시공간을 통해 증식하려면 매개체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이전 글[도토리가 참나무가 되듯이...]에서 신은 자신을 본떠서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도 신의 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나만의 가설을 얘기했다. 인간이 신과 같이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는 것은 우리가 시공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 속(무의식, 꿈, 몰입)에 머물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다시 돌아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돌아보자. 자본주의는 인간이 자본에게 봉사하는 시스템으로 바꾸어 놓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돈을 벌기(증식시키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각성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 일반적인 노동은 인간을 각성 상태에 머물게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시공간을 계속 인지할 수밖에 없다. 시공간의 제약에 갇혀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라는 말이다. 돈은 그런 인간을 좋아한다. 아니 돈은 인간을 그렇게 만들어야만 자신이 증식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을 시공간에 가둬 놓아야 돈이 시공간을 초월한 신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돈(자본)은 시간(금융)과 공간(부동산)을 이용해 인간을 조종하며 증식한다. 그럼 자본은 어떻게 시공간을 이용하고 인간을 시공간에 가둬 놓을까?


시공간을 통한 부등가 교환


  자본주의는 크게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 그리고 토지 자본주의로 나눠볼 수 있다.


  산업자본주의는 공간의 변화를 통해 돈을 증식시킨다. 예를 들면, 한국에 없는 철광석은 호주에서 넘어와 잉여자본(부가가치)을 만들어 내고 호주에 없는 반도체는 한국에서 넘어가 잉여자본을 만들어 낸다. 호주에서 철광석을 캐내는 비용(원가)은 분명 한국에서 판매되는 가격보다 싸다. 즉, 100만 원의 철광석 원가는 한국으로 오면서 150만 원이라는 가치로 증식된다. 이윤과 각종 비용이 생겨나 50만 원이라는 부가가치(잉여)가 생성되었다. 50만 원의 자본이 생겨났다. 장소(공간)의 이동을 통해 자본이 증식하는 과정이다. 재화가 필요(수요)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증식할 수 있다.  과거 대항해 시대에 유럽은 식민지를 만들고 그런 대륙간 불공정 무역을 통해 막대한 자본을 증식시켰다. 지금도 세계 무역은 막대한 자본을 증식시키는 수단 중 하나이다.


  금융자본주의는 시간의 변화를 통해 돈을 증식시킨다. 산업자본주의에서 생성된 자본은 금융을 통해 그 몸집을 다시 한번 더 크게 부풀린다. 여기선 재화나 서비스의 유통이 필요 없다. 추상적인 관념을 통해 증식한다. 그 관념은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이고 그건 서로 간 지켜야 하는 약속이며 모두가 그 약속을 이행한다. 현재 유대인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돈이 시간을 먹고 증식한다는 것을 가장 빨리 깨우쳤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세시대 고리대업으로 시작해서 현재 전 세계의 금융가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돈은 빌려주기만 하면 시간을 먹고 증식(이자)한다. 돈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지만 시간의 갭만으로도 증식할 수 있다. 다만 인간이라는 매개체가 있어야만 한다. 인간의 '아무개'라는 ID가 있어야 한다. 은행은 개인과 법인과 국가에게 자본을 융통해 주고 이자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각종 금융상품 및 서비스를 통해 자본을 증식해 나간다.   


  토지 자본주의는 시간과 공간의 더블 콤비네이션이다. 그래서 조물주 위해 건물주라는 말이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부동산은 금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을 모르는 자는 없을 것이다. 빚 없이 집을 사는 사람은 없다. 아니 빚을 안 가지고 집을 사는 사람이 바보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그만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현금이 스스로 증식하는 시대는 종식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우리는 돈을 빌려 토지와 건물을 사고 빌린 돈은 이자를 더해 증식하고 증식한 만큼 그 토지와 건물의 자본가치는 상승해 나가는 구조이다. 인간은 질량을 가진 존재이다. 질량을 가진 존재는 공간이 필요하고 그 공간이 바로 부동산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부동산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다. 내가 지금 작은 방한칸을 주에 200불이 넘는 돈을 지불하며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이렇게 산업, 금융, 토지 이 모든 자본주의는 시공간의 차이 이용해 부등가 교환을 가능케 하고 끊임없이 증식한다.


"바로 노동력과 토지다. 마르크스는 이 두 가지가 상품화되었을 때 그 사회는 자본제 사회가 된다고 간주했다."

                                                 - 책 속 인용문 -


  산업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노동력을 통해 재화를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리고 재화와 서비스는 잉여자본을 창출한다. 창출된 잉여 자본은 금융(추상적)을 통해 몸집을 부풀리며 토지 자본주의(토지, 건물)를 통해 다시 한번 증식하고 부동산이라는 실물 형태에 그 거대한 몸집을 저장한다. 자본은 그렇게 노동력에서 태동해서 금융을 통해 증식하고 토지를 통해 비대해진다. 그럼 왜 부동산 가격이 이렇게 미친 듯이 상승하는지가 이해가 된다. 증식된 자본이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을 통해 시작된 산업자본주의는 시간(보이지 않는)을 통해 증식되었고 공간(보이는)을 통해 그 존재를 거대함을 드러낸다. 최근 불거진 코인 열풍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너무도 비대해진 주식(금융)과 부동산(토지)의 가치는 사람들에게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너무도 비대해진 자본이 몸을 숨길 다른 곳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내 집 마련의 꿈


  우리는 왜 태어나면서 내 집을 가질 수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가? 인간은 질량을 가진 존재로 살아야 할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반평생 혹은 한평생을 자신의 집을 마련하기 위해 그토록 일하고 또 일한다. 자본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자본은 부동산을 계속 부풀린다. 인간이 계속 노동하도록... 왜 인간은 내 집 마련이 꿈이 되어버린 것일까?  아마 신이 있다면 분명 인간이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는데 쓰라고 만들진 않았을 것이다. 이 땅에 온 저마다의 이유를 부여했지만 인간은 자본에 얽매여 소명이 아닌 세상의 운명을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진보와 빈곤] 헨리 조지


“물질적 진보와 더불어 지대가 상승하기 때문에 임금과 이자가 상승하지 못한다”


                   -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중에서 -


  헨리 조지는 토지의 공개념을 주장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자본주의에서 토지의 상품화(사유화)를 반대한 인물이다. 그는 비록 초등학교까지 밖에 졸업하지 못했지만 그는 자본이 신격화되어가는 과정의 고리를 끊는 유일한 방법은 자본주의에서 토지를 빼버리는 것이라는 비상한 통찰을 얻어냈다.


  물가 상승률에는 집값(토지 및 건물의 가격) 상승률이 반영되지 않는다. 왜일까? 우리는 여기에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물건의 가격이 낮게 유지되는 이유는 그 자본이 다른 곳에 저장되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는가? 물가는 낮게 유지되지만 집값은 계속 오르는 이유이다. 최근 코로나 이후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국가가 물가 상승에 이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인간이 먹고 입고 자는 것에 위협을 느끼면 현 체제를 전복(혁명)시키려 들기 때문이다. 국민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것이 현 권력과 체제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집은 가지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게만 해주면 된다. 살아있는 동안에만...


신- > 인간 -> 돈 -> 신


  인간은 유한한 시간과 정해진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노동한다. 그 노동은 돈을 버는 행위이며 자본은 노동을 통해 잉여자본을 만들고 금융을 통해 자연 증식하며 부동산을 통해 비대해진다. 그만큼 노동의 가치는 상승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계속 노동해야 하며 노동은 우리를 계속 각성상태에 머물게 함으로 시공간의 제약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돈은 인간을 시공간 속에 가둬 놓고 매개체로 이용하며 끊임없이 세상을 지배해 나간다. 신의 속성을 닮아가야 하는 인간은 돈이라는 존재에 의해 시공간의 제약과 욕망의 구속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신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돈을 만들었고 돈은 신이 되어 간다.


그래서 우리는 신을 믿으며 또 돈을 믿는다.

[삶의 무기가 되는 자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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