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기름이 떨어져 주유소에 들렀다. 차에 기름을 가득 채우고 출발하려 안전벨트를 매려던 찰나였다.
"똑똑, Could you help me to give me a ride? please" (저 좀 태워주실 수 있을까요 부탁입니다)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차창을 쳐다봤다. 차장 밖을 보고 다시 한번 더 놀랐다. 창밖에는 낯선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호주인으로 보이는 그 할아버지의 몰골은 아무리 봐도 정상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한쪽 눈은 붕대로 감겨 있고 얼굴 곳곳이 상처인지 피부병인지 알 수 없는 흔적들로 벗겨져 있었다. 한쪽 팔도 가슴팍으로 오므린 채 움직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입에는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 아무리 봐도 무슨 병이라도 걸린 사람 같아 보였다. 병은 그렇다 치고서라도 코로나가 다시 번지고 있는 상황이라 낯선 누군가를 차에 태운다는 게 꺼림칙했다.
"Sorry, no English" (미안해요, 영어를 못해요)
나는 말소리가 전달될 수 있을 정도로만 창문을 내리고 말했다. 그 잠깐 사이 나의 머리는 아마도 태워주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보다 영어를 못 알아듣는다고 하는 편이 좀 더 나을 거라 판단했던 모양이다. 그는 병원에 갔다 나오는 길인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걷는 게 힘들다며 조금만이라도 태워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초지일관 그의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 No English를 반복했다. 그는 고개를 떨구더니 절뚝거리는 발걸음을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 차 안에 앉아 힘겹게 걸음을 옮기는 그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양심이라는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며 나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다.
한동안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여 보도블록을 걷고 있는 그 할아버지 옆에 깜빡이를 켜고 차를 세우고는 가볍게 경적을 울렸다. 그때 할아버지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한 표정이었다.
"Hey~ Please get in" (저기요 타세요)
그는 절뚝거리며 내 차 쪽으로 걸어와 문을 열고 힘겹게 몸을 구겨 넣는다. 나는 그 사이 코로나 방역수칙 준수를 위해 마스크를 잽싸게 귀에 걸쳤다. 그는 연신 땡큐를 연발하며 나에 대한 감사함을 어떻게든 전하려 애쓰는 모양새다. 하지만 나는 그 감사의 말도 그냥 아껴두고 말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지만 감사의 표현까지 입막음을 할 수 없음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차를 몰았다.
"Where are you from?" (어디서 오셨어요?)
차 안에 한참 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그 할아버지가 그 정적을 깨고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 정적이 깨지지 않길 바랬지만 항상 바람은 바람일 뿐이다.
"I'm from Korea"
"Oh really?"
내가 한국인이라는 말을 듣고 나자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얼굴에 화색이 도는 모습이다. 그리고 터진 그의 과거 인생 스토리는 그가 나의 차에서 내리기까지 10여분 남짓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와 나를 낯선사이에서 친구사이로 만들어 놓았다.
1970년, 이맘 때였다고 했다. 그가 한국땅에 첫 발을 디딘 것이... 그는 대형 벌크선의 기관공이었다고 한다. 그가 타던 배가 한국의 부산 앞바다에 수리를 위해 입항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배의 오너이자 친구의 부탁으로 배 수리가 완료될 때까지 선박 슈퍼바이저(관리감독)로 한국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과거 조선소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 그 와의 대화는 더욱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부산의 망미동에 거쳐를 마련하고 한국생활을 시작했고 가끔씩 찾던 미군 부대 근처의 외국인 바(Bar)에서 첫 부인을 만났다고 한다. 그녀는 바텐더로 일하는 여성이었다고 했다. 떠나간 전 미군 애인을 잊지 못하고 슬픔에 빠져있던 그녀에게 첫 눈에 반해버렸다고 했다. 그녀는 매일 같이 자신을 찾아오는 그 호주 남자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가려던 그녀의 아메리칸 드림은 오스트레일리안 드림으로 바뀌었다. 둘은 사랑했고 그는 친구 사장에게 부탁해 한국 조선소에서 그렇게 몇 년간을 더 슈퍼바이저로 일을 하며 머물렀다. 사랑은 결실을 맺었다. 그녀와 결혼을 하고 그녀를 데리고 호주로 왔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서 그 몇 년간의 추억이 자신이 살아온 시기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낯설지만 새로운 환경과 순박하고 정겨운 한국인들의 모습 그리고 찾아온 사랑은 그가 지금 꿈에서라도 다시 돌아가고픈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듯 행복은 영원할 수 없었다. 한국인 아내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다.
과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까지 듣진 못했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된 몸은 어딘가 잘못된 모양이었다. 호주로 돌아온 이후 아내는 몇 년을 더 살지 못하고 병을 얻어 죽었다고 했다.
불행은 불행을 낳는다는 말처럼 이후로 얻은 두 번째 아내도 죽고 세 번째 아내는 이혼으로 헤어지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 하나 찾지 않는 외톨이 신세가 되었다고 했다. 몸이 성치 않아 간신히 정부에서 주는 연금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내가 처음 주유소에서 봤을 때 중국인인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호의를 베풀고 차에 태워줬을 때 혹시나 해서 나의 국적을 물어봤다고 한다. 역시나 한국인이 정이 많다며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말을 했다. 그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의 그의 모습 그리고 한국에 대한 연민이 왠지 모르게 나의 눈시울을 적시려 하고 있었다.
"You just stop here." (그냥 여기 세워주면 돼요)
한 주유소 앞 사거리에서 신호를 받고 있을 때 그가 말했다. 자기 집이 이 근처라며 집 앞까지 가면 많이 돌아 나와야 한다며 고맙다는 말과 함께 차에서 내리려 했다.
"Sir, Just give me a second, would you mind take a picture with me?" (선생님, 잠시만 저랑 사진 한 장 찍으실 수 있을까요?)
나는 순간 그와의 순간을 기억하고픈 마음에 사진 한 장을 권했다. (사진이 흔들린 줄도 모르고) 그는 흔쾌히 나와 사진을 찍었고 그리고 차에서 내려 한국식으로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다시 절뚝거리는 발걸음을 옮기며 지나가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헤어지는 뒷모습
"시간을 내어줄수록 시간이 많아진다"
(Giving time gives you time)
- 최인철 [굿 라이프] 중에서 -
얼마 전 읽었던 책의 문구가 떠오른다. 나는 그를 내려주고 다시 한참을 돌아서 집으로 와야 했지만 나의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를 위해 내어 주었던 시간은 나와 그 서로에게 두 배의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남겨진 열쇠 뭉치
"앗! 이게 뭐지?"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리려던 찰나였다. 고개를 돌려 쳐다본 옆좌석에는 낯선 열쇠 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그 열쇠 꾸러미는 자동차 키와 집 열쇠 같아 보였다. 호주는 아직 대부분의 집에 수많은 열쇠를 사용한다. 나 또한 가지고 있는 열쇠가 4~5개는 된다. 순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싸늘한 거리를 배회하고 있을 그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문제는 그의 연락처도 그의 집 주소도 몰랐다. 나의 호의로 인해 찾아온 그의 불행에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나는 다시 차를 몰고 그를 내려준 사거리 주유소 근처로 갔다. 혹시 거리를 배회하고 있을지 모를 그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서... 그 주변을 1시간가량 찾아다녔지만 해가 저물 어두운 주택가에는 사람의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결국 그 할아버지의 흔적을 찾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나의 선의의 행동이 그에게 불행이 되어버린 현실이 얄미웠다. 이제는 그에게 한국인과의 추억도 악몽이 끝이나 버린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든다.
누가 봐도 선행이지만 그 결과는 악행이 될 수 있다. 세상은 그렇다. 선한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모두 선한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선하고 옳은 것도 다른 누군가에겐 악하고 그른 것을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옳고 선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당신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그르고 악한 말과 행동에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