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처음으로 여자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했다. 카페에서 오랜 시간 그녀를 지켜봐 왔다. 그리고 용기 내어 고백했다. 남자는 처음으로 여자 앞에서 해본 말이었다. 여자는 마시던 커피를 입에서 뿜어내며 당황했다. 그리고 잠시 헛웃음을 터뜨렸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무슨 말이라도 해야만 했다. 남자가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못 들은 걸로 할 테니, 그냥 빨리 잊어주세요, 그럼 저 가볼게요 안녕.”
남자의첫 고백은 거절이었다. 그녀는 가방을 챙겨 서둘러 카페를 나갔다. 남자는 멍하게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난 그녀에게 그냥 친구 그 이상이 될 순 없겠구나’
남자는 생각했다.
‘하아~ 망했다. 이제 어떻게 다시 보나…’
여자는 생각했다.
남자는 오랜 시간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면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남자는 여자가 확신이 없었고 그건 아마도 그녀가 생각하는 그 어떤 조건에 자신이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것 때문이라 생각했다.
남자는 그녀의 시선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옮겼다. 그리고 글은 악보 위에 올라갔다. 가사가 되었다. 남자는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르며 그녀를 상상했다. 상상이란 하면 할수록 점점 커져가기만 했다.
결국 여자가 남자를 선택했다. 남자는 달려가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 어느 때보다 서로의 눈빛은 서로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때르르릉”
그런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 있던 그녀가 사라져 버렸다. 꿈이었다.
여자는 남자가 고백을 한 이후부터 이상하게 그 남자가 계속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남자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남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그리고 그 남자의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 남자에 대한 얘기들을 들었다. 보면 볼수록 그가 계속 떠올랐고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남자는 그녀를 단념했고 여자는 그를 생각했다.
여자는 교제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교제하는 남자보다 그 남자가 더 많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교제하는 남자는 그녀에게 부족함이 없었다. 좋은 직업에 출중한 외모에 특별히 흠잡을 곳이 없었다. 하지만 그 남자와 대화를 하면 지루했다. 그가 하는 말은 그녀의 생각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교과서 같은 말과 행동이었다. 불편함과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더 이상 무언가 나아질 게 없다는 것과 같았다. 만남은 지겨웠지만 이별이 지쳐서 만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너랑 있으면 혼자 있는 것 같아”
여자는 교제하던 남자에게 말했다. 그리고 와인 한 병을 사들고 그를 찾아갔다. 이미 술을 마셨다.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그를 찾아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를 직접 보고 직접 듣고 싶었다.
어느 날 늦은 밤 카페를 마감할 때였다. 그녀가 와인 한 병을 들고 비틀거리며 카페로 들어왔다. 남자는 당황했다. 남자는 그녀 옆에 앉아서 그녀와 함께 와인을 마셔주었다. 서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 대화는 너무 흥미로웠다. 서로의 생각은 달랐다. 그래서 서로에게 더욱 궁금해졌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더 이야기하고 싶었다.
“저 남친이랑 헤어졌어요 흑흑”
“….”
남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녀는 남자의 어깨에 기대었다. 여자의 샴푸 향이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여자는 슬며시 남자의 손을 끌어당겼다. 그게 처음으로 그녀와 손을 잡은 순간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카페 마감해야 하는데…”
“저 가볼게요, 늦은 시간 미안했어요”
남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무심코 튀어나온 말이었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여자는 가방을 챙겨 서둘러 카페를 나가버렸다. 남자는 멍하게 앉아서 한참을 생각했다. 이제 조금씩 그녀를 마음 속에서 지워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지우는 것을 멈춰야 하는 건가. 남자는 그녀가 마시다 남긴 와인 잔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와인 잔을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그게 그녀와의 첫 입맞춤이었다.
그날 이후 여자는 남자가 일하는 카페에 자주 나타났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청바지와 캔버스화에 수수한 모습은 살색이 많이 드러나 보이는 원피스와 색이 짙은 구두 그리고 얼굴에도 색 대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하나 주세요”
그녀는 항상 앉던 자리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남자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푸웃!”
“왜 웃어요?”
“아무것도 아녜요”
그녀는 입술에 아이스크림을 잔뜩 묻히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겼다.
“저번에 여기 앉아서 저에게 뭐라고 했었죠?”
“푸웁!”
남자는 마시던 물을 뿜어내었다. 시간만 흘렀을 뿐 같은 장소 같은 남녀 하지만 바뀐 역할극이었다. 남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왜냐 여자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억이 안 나요…”
그렇게 서로는 잠시 서로를 쳐다봤고 여자의 입술이 남자의 입술에 부딪쳤다.
“저 가볼게요, 빠이빠이!”
남자는 멍해졌다. 자신의 입술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핥았다. 이번엔 진짜 첫 입맞춤이었다.
‘달콤하다…’
“딸랑딸랑”
다시 카페 문이 열렸다. 그녀였다. 그녀는 카페 문 앞에 서서 말했다.
“다시 한번 더 물을께요, 저번에 여기서 저에게 뭐라고 하셨죠?”
“저 그쪽을 좋아해요, 아주 많이”
여자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사랑은 전달되었고 다시 연결되었다.
사랑은 시간이 지나야 드러난다. 그 시간을 견뎌야 한다.고백은 어쩌면 사랑의 씨앗을 뿌린 것일지도 모른다.뿌리를 내리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사랑은 그렇게 성장한다…
[第一次 First time] 중에서
위의 단편은 2001년 발매된 대만 가수 광량(光良, Michael Wong)의 처음(第一次,First time) 가사를 편집 각색해서 만든 소설이다.
2001년 나는 대학생이었고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나의 짝사랑은 고백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싹을 틔우지 못했다. 그렇게 사랑의 씨앗을 뿌리지 못 한 채 떠나야 했다. 폐쇄된 공간에서 그 썩어가는 씨앗을 품고 적잖은 시간을 힘들어했던 것 같다.
싹을 틔우지 못한 사랑은 썩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랑이 스며들면 고백을 해야 한다. 그럼 그 이후에 그 사랑이 싹을 틔울지 말지는 고백을 받은 사람 몫이 된다. 고백은 어쩌면 사랑을 주고 났으니 가장 후련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줘버리면 미련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심이었고 진실되었다면 상대도 느꼈을 것이고 그것을 받아줄 수 없다면 그 씨앗은 상대의 마음에서 썩어 들어간다. 미련과 후회가 없으면 시간이 흘러 추억이 되지만 사랑을 받아서 줄 곳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이 이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든 없든 상관없이 찝찝한 기억으로 남게 된다.
이건 사랑의 속성이다. 생겨나면 자라나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사랑의 감정은 허락 없이 생겨나지만 생겨난 사랑이 꽃피우지 못하면 다른 모습으로 형태를 바꾼다.. 즉 고통이나 미련 혹은 미움 같은 감정으로 그 모습을 바꿔서 커져간다. 사랑이 상처받으면 생겨나는 것들이다. 수시로 생겨나는 욕구가 아닌 시간을 견디고 생겨난 감정이라면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때가 되면 상대에게 건네야 한다. 그건 상대가 씨앗을 받을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다. 때는 씨앗을 건네는 사람이 정한다. 그때부터 시작된다.
모든 성장은 그렇듯 시련과 고난을 함께해야 더욱 단단해진다. 우리는 어쩌면 이미 다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완성된 사랑을 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씨앗부터 시작해 싹을 틔우고 성장하는 힘든 성장의 과정을 생략하고 아름다운 꽃과 그 꽃의 열매만을 원한다. 그래서 사랑의 시작인 초라한 씨앗은 종종 썩어간다.
그리고 우린 그런 초라한 씨앗이 아닌 많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가진 큰 나무가 되어 먹음직스러운 열매들로 환심을 사고 욕망을 채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