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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Sep 07. 2022

나를 들뜨게 하는 일

[인생 학교: 일] 로먼 크르즈나릭

"전 이 일이 제일 중요합니다"

"전 이 일이 제일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가치관은 다르다. 일에 대한 가치관 또한 다르다. 일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 같이 일을 하게 되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다시 목수일로 돌아온 지 몇 개월이 흘렀다. 또다시 갈등이 피어난다. 회사는 점점 바빠지기 시작하고 일이 밀려든다. 실내 인테리어 공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사람은 부족하다. 부족한 인력은 남겨진 자들의 시간으로 메워진다. 그 진리는 지난 10여 년이 넘는 시간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곳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 로봇이 아닙니다"

"그럼 저더러 어떡하란 말입니까?"


  결국 현장 관리자와의 불화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빨리 일을 끝내야 하는 현장 관리자와 나 사이에 갈등이 생겨난다. 하루 15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노동은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킨다. 로봇이 움직이는 것과 같다. 고 카페인의 에너지 드링크를 들이키며 내일의 에너지까지 당겨 쓴다. 그럼 다음날의 노동강도는 배가 된다.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피로에 찌든 몸은 눈꺼풀을 무겁게 만들고 졸음운전에 하나님을 너무 일찍 만날 뻔했다. 몸이 피로하면 사고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일이 염려되어 오버 타임에 대해서 사전에 회사와 얘기를 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녹지 않다. 


"노동을 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그러나 영혼 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


                                                                                   - 알베르 카뮈 -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이 저지른 죄악으로 인간에게 땀 흘려 일해야만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일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노동, 즉 일은 인간의 삶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며 우리는 인생에 상당한 시간을 노동에 할애하며 살아간다. 문제는 이 노동이 인간의 영혼을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상당수의 직장인들이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 또한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고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과거와 다른 점이라면 일 이외에 다른 것에서 자아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뿐이다. 물론 지금 나의 일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목수라는 직업이 가져다주는 다이내믹한 경험이 매력적이다. 다만 지금처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고 절충하며 사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며 내가 노동에 질식당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다.

공원에서


"'우리 마음을 들뜨게 하는 일'이란 대개 현재 직업보다 밥벌이가 시원찮은 경우가 많다"

                                                                                  - 책 속 인용문 -


  책을 읽다가 이 구절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 또한 수백 편의 글과 수십만 자에 달하는 소설을 썼지만 단 한 푼의 금전적 이득을 취해본 적이 없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데 할애한 시간만 해도 몇만 시간은 될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은 내가 글을 쓸 때 가장 들뜬 마음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돈도 음식도 여자도 물질도 이런 들뜬 기분을 장시간 지속시켜준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여태껏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써 내려간 글이 나를 변화시키고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지식+삶+상상 


   사실 난 만약 글쓰기가 현재의 밥벌이보다도 더 나은 금전적 소득을 가져온다고 해도 밥벌이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더 많은 시간을 하고 싶은 것에 할애할 순 있겠지만...) 예전에 소설을 쓰면서 수상 후보에 오르고 할 때는 정말 등단하면 다 때려치우고 글만 써야지 하는 허황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의 글은 책 속에서 온 것도 있지만 상당 부분이 삶 속에서 온 것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일과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들이 글감이었다. 책 속의 지식과 나의 삶이 잘 버무려지고 거기에 해마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무의식과 상상력이 더해지면 의미 있는 무언가가 탄생한다. 그게 바로 내가 쓰고 있던 글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난 전문 지식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직업 작가도 아닌 그냥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 평범함을 비범하게 만드는 것은 나를 들뜨게 하는 것을 통해 나를 드러내고 지속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밥벌이만 하고 살면 뱃살이 찌지만 들뜨는 일을 하며 살면 마음이 살찐다. 


"인간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을 2배 더 싫어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도박에서든 직업진로를 바꿀 때든 똑같았다."                                                  - 책 속 인용문 -


  나 또한 그러했다. 매달 15일 계좌에 찍히던 적지 않은 금액의 월급이 어느 순간 찍히지 않았다. 입금은 없고 출금만 계속되던 시기가 있었다. 계좌 잔고에 적지 않은 금액이 있었음에도 채워지지 않는 잔고를 바라보는 나의 얼굴은 시간이 갈수록 생기를 잃어가고 줄어든 잔고만큼 나의 자존감도 낮아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호주로 가기 위해 집도 차도 살림도 정리하면서 느꼈던 상실감은 그것들을 소유할 때의 기분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모국에서 괜찮은 연봉에서 타국의 최저시급으로 내려왔을 때는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에 대해 자꾸 되묻고 있었다. 그 상실감이 오랜 시간 나를 옮아 매고 놓아주지 않았다. 물론 그 상실감을 맛보았기에 지금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나도 짝이 없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많이 들었던 얘기 중에 하나다. 주변에 결혼한 나와 친구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조언이랍시고 해줬던 기억이 난다. 어차피 후회할 거 하고 하는 것이 낫다는 참으로 안타깝지만 뼈가 있는 말이다. 직업을 바꾸고 삶의 터전을 바꾸는 것 또한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딛고 난 후 깨달은 것은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있다는 것, 중요한 것은 그 얻음은 저지르지 않고서는 평생 알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이다. 결혼도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듯이 말이다. 

인테리어 공사 중에


"책만 읽고 목수가 될 수 없듯이, 실제 행동을 취하지 않고는 직업을 바꿀 수 없다."


                                                                                               - 책 속 인용문-


  목수일을 하면서 느낀 것 중에 하나는 누가 아무리 설명을 해줘 봐야 소용없다는 것이다. 직접 나무를 자르고 못을 박고 해 봐야지만 어떻게 하는지 익힐 수 있다. 목수일은 입이 아닌 손과 발로 하는 것이다.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기억하는 목수가 진정한 목수이다. 


   호주라는 낯선 땅에서 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이곳에서의 시작이 목수여서인지 다시 목수일로 돌아왔지만 매번 직업을 바꿀 때마다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몸이 새로운 상황 속에 놓이고 시간이 흐르면 두려움은 금세 사라지고 어느새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는 새로운 일을 대하는 태도가 변했다. 과거엔 모르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면 지금음 새로운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더 앞선다. 비록 깊이 있는 경험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면서 나의 생각과 가치관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가혹하게도 인생은 돈과 의미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들더군요"

                                                                                 - 책 속 인용문 -


 누구나 하는 고민이 아닐까? 나도 항상 이 사이에서 고민해왔다. 아직도 그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의미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하지만 돈을 버는 일에도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다.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벌고 보다는 그 일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경험을 가져다주는지에 집중한다. 돈을 쫓으면 소유가 늘어나지만 의미를 쫓으면 경험이 늘어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의미와 경험이 충만한 인생, 그게 참다운 나를 찾아가는 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오늘도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들뜬 마음으로 글을 쓰며 나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다.  

 

당신은 어떤 들뜬 일로 의미 있는 인생을 만들 것인가?

인생학교 -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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