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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Oct 04. 2019

You must come back home

[사회인]을 보고 난 후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


  오랜만에 가슴뭉클해지는 영화를 봤다. 영화 '사회인'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의 인생을 야구 게임 속에 잘 녹아내었다. 홈인(home in), 홈에서 시작해 홈으로 돌아와야 한다. 많이 살아서 돌아오면 이기는 게임이다. 돌아올 곳이 없다면 레이스를 지속할 수 없는 법이다. 달리고 넘어지고 적의 공격을 피해 가며 만신창이가 되어서라도 홈으로 돌아와야 한다. 홈 밖에서는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야구 경기는 그런 인간의 귀환 본능이 만들어낸 스포츠가 아닐까?

사회인

  우리는 사회라는 전쟁터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매일 아침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전장으로 향한다. 세상 속에 섞여 이리저리 뒹굴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우리는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돌아갈 곳을 생각하며 삽니다"


  얼마 전 목사의 설교가 문득 기억난다. 여기 호주에는 수많은 한인들이 그들만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타향 만 리 떨어져서도 한국의 소식에 항상 귀 기울인다. 이민 1세대들은 비록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얻었을지라도 한국을 잊지 못하며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호주가 아닌 한국이 고국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싫어서 미워서 떠나왔지만 고향의 향수까지 미워하진 못한다. 그들은 언젠간 돌아갈 고국이 있었기에 이 곳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은 것이다. 돌아갈 곳이 없었다면 그 힘겨운 나날들을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비단 한인뿐만이 아니다. 많은 여러 나라의 이민자들은 자신들만의 문화와 생활습관을 지켜면서 고국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 언젠간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타향살이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향수는 짙어지기 마련이다.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은 퇴근 시간이다. 몸과 마음의 긴장이 이완되는 시간이다. 퇴근길은 막혀도 화가 나지 않는다. 집은 늦게 가도 나를 반겨주기 때문이다. 집으로 가는 마음이 그렇게 즐거운 것이다. 여행 또한 마찬가지다.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 유랑이다. 여행을 갈 때는 항상 설레고 기대되지만 여행이 길어지면 집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오기 마련이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화장실 들어갈 때 맘과 나올 때 마음이 이렇게 다른 것이다. 


 'Come Back Home"


 "이 사회를 탓하던 분노가 마침내 증오가 됐어 진실들은 사라졌어 혀 끝에서  YOU MUST COME BACK  HOME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YOU MUST COME BACK  HOME 거칠은 인생 속에  YOU MUST COME BACK  HOME~  ♩ ♪ ♬"


  90년대 초 한국의 젊은이들을 우상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히트 곡이다. 당시 수많은 가출 청소년들이 이 노래를 듣고 집으로 돌아갔다. 부당한 세상 속에 상처 받은 청년들에게도 돌아갈 안식처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려는 것이었을까? 집은 그들을 보듬어주고 쉴 곳이 되어주었다. 집은 언제나 돌아가고픈 곳이다. 해외를 이리저리 많이 돌아다닌 탓에 집에 대한 그리움이 남들보다 컸다. 과거 짧게는 한두 달 길게는 1년, 2년씩 집을 떠나 있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느끼는 그 아늑함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기분이다. 그 기분을 만끽하기 때문에 떠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집에만 있었다면 절대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의 힘겨움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집에 대한 간절함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는 돌아갈 곳이 있어서


  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를 직접 겪진 않았지만 전쟁 영화 속에 빠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전사들이 고향의 향수를 그리며 전의를 불태우는 장면이다. 그들은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에 살아야 남아야 하고 이겨야 하는 것이다. 과거 군대 시절 힘든 병영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전역 후 돌아갈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군용 모포와 포단이 아닌 따뜻한 온돌방에 푹신한 솜이불을 덮고 잘 수 있는 날을 꿈 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휴가가 군인에게 가장 큰 선물인 것은 그 때문이다. 


  인간은 그렇게 돌아갈 곳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한없이 살 것 같던 우리의 인생도 언젠간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삶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돌아갈 곳을 아는 자는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다. 삶의 순간순간을 의미 있게 사는 자는 돌아갈 곳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나도 돌아갈 것이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헛되이 보낼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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