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복음서]를 읽다가... - 다섯번째 이야기 -
1"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왜 너희는 그 컵의 바깥 면을 씻느냐? 2 안쪽을 만든 이가 또한 바깥쪽을 만든 이라는 것을 너희는 이해하지 못하였느냐?"
- [도마복음 89장] -
1 Jesus said, "Why do you wash the outside of the cup? 2 Do you not understand that the one who made the inside is also the one who made the outside?"
- Thomas 89 -
"이게 뭐야? 제대로 씻은 거 맞아요? 겉에 아직 거품이 묻어 있잖아요? 왜 이렇게 깔끔하지 못해요"
"그래도 안에는 깨끗한데..."
"이렇게 도와줄 거면 그냥 하지 마요 어차피 내가 다시 해야니까"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가 내게 말했다. 식기 건조대 위에 거품이 묻어 있는 컵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나 또한 그가 지적하고서야 거품이 묻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양의 설거지를 도맡아 열심히 했지만 누군가에겐 성이 차지 않는 모양이다. 호의가 불평이 되어 돌아왔다.
담는 것이냐 보는 것이냐?
컵이나 그릇의 목적이 무엇인가? 음식물을 담기 위한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예술품으로 미적 감상이 목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고려청자나 조선백자는 유리 전시함에 두고 그 자태를 감상하기 위해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그저 술과 음식을 담기 위한 그릇이었다. 물론 백성들이 아닌 귀족이나 양반들이 쓰던 질 좋은 물건이긴 했겠지만...
그릇은 더러운 것과 분리시켜 우리의 몸속으로 다른 불순물이 섞여 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지 않다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먹거나 혹은 개나 다른 동물들처럼 땅에 떨어진 음식물과 음료를 주워 먹고 핥아먹으면 된다. 그릇의 밖을 닦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그릇의 안을 닦는 것이 우리가 더러워지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우리의 몸을 그릇이라고 생각하면 항상 밖만 닦고 있는 형국이다. 입버릇처럼 몸과 마음을 모두 정갈하게 해야 한다는 말과는 달리 우리는 몸만 열심히 닦는다. 세상에 겉은 깨끗하고 바른 모습이지만 정신이 병들고 아픈 자들이 많은 이유이다. 몸이 더러워짐을 걱정하기보다 내 안이 더러워짐을 걱정해야 하는 이유이다.
겉은 번지르르 안은 쓰레기
레스토랑 샵 바닥을 뜯어내자 어둠에 가려져 있던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루 바닥을 받치고 있는 팀버 프레임 아래로 각종 쓰레기 더미들이 눈에 들어온다. 쓰레기 더미 안에서 바퀴벌레를 비롯한 각종 벌레들이 빛을 피해 다시 어둠을 찾아 분주히 움직인다.
"우왁! 이게 다 뭐야?"
"쓰레기를 여기다 다 처박아 놨네 참"
샵 인테리어 공사를 하다 보면 우선 해야 하는 것이 데몰리션(철거)이다. 기존의 인테리어를 부수고 철거하는 과정에서 가끔 기존은 인테리어 구조물 안에 온갖 쓰레기가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 호주에서는 건축폐기물을 버리는데도 적지 않은 돈이 들기 때문에 공사비용을 아끼려는 꼼수를 쓰는 건축 업자들이 있다. 결국 다음 공사를 맡은 우리가 다 해결해야 한다. 쓰레기들을 모두 끄집어내고 청소부터 시작해야 한다. 겉은 번지르르하고 예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쓰레기로 가득 차 있을 수 있다. 고대의 화려고 웅장한 건축물에는 핍박받은 노예의 피와 땀이 서려 있다. 수많은 노예들의 시체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은 웅장함과 화려함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이다.
"너의 모습은 너무 눈부시고 아름다워, 그래서 난 의심스러워 너의 내면도 아름다울지..."
쓰고 있던 소설에 한 구절을 떼어왔다. 요즘은 외모가 예쁘고 아름다운 이성을 볼 때면 그 안에는 어떤 다른 이면의 모습들이 가려져 있을까 궁금해진다. 얼마 전 shot 영상에서 한 못생긴 중국 여자가 나와서 음악과 함께 마술 같은 메이크업을 시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을 봤다. 조회수가 상당하다. 영상은 빠른 속도로 재생되어 짧았지만 그 과정은 꽤나 복잡하고 적잖은 시간을 소요하는 화장? 시술?이었다. 그 여성은 그렇게 외면의 아름다움을 구현해 내기 위해 인생의 적잖은 시간을 썼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을 그것에 할애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보며 또한 그 마술을 배우며 그녀처럼 외면을 가꾸는데 시간을 할애할 것이다. 매스컴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유명 연예인들의 범죄와 나쁜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어쩌면 외면의 아름다움은 내면을 가꾸는 시간을 포기한 대가일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이별보다는 아름다운 결말
우리는 세상에서 보는 대부분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에는 더럽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가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 안의 들여다볼 여유도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보이는 모습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 과정이 어떠하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결과만 아름답고 좋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선택한다. 우리는 아름다운 과정보다는 아름다운 결말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타이타닉 영화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지만 만약 그와 같은 결말이라면 사양하고 싶을 것이다. 사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과정은 둘만 아는 것이고 결말(남자는 죽고 둘은 같이 할 수 없게 되었다는)은 모두가 아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관객(전지적 관조자)의 입장에서 그 스토리를 모두 다 드려다 볼 수 있기 때문에 둘의 사랑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우리는 모든 과정을 지켜볼 수 없다. 둘만의 아름다운 사랑을 담을 것인가 아니면 타인에게 보이는 사랑을 닦을 것인가?
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한 몸에 매달리는 그 몸은 얼마나 비참한가! 2 그리고 이들 둘에 매달리는 그 영혼은 얼마나 비참한가! "
- [도마복음 87장] -
1 Jesus said, "How miserable is the body that depends on a body, 2 and how miserable is the soul that depends on these two. " - Thomas 87 -
그림 같은 두 훈남훈녀의 사진을 상상해 보라. 상상이 안되면 구글 창에 단어를 검색해 보라. 이쁘고 잘생긴 남녀의 사진은 넘치고 넘친다. 화려한 외모 남녀는 그에 상응하는 외모의 이성을 찾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더 외모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것만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형과 미용 그리고 패션에 열광하는 이유이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이 홀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외면이 화려해질수록 내면은 빈약해진다. 내면의 빈약함을 감추려 외면은 더욱 화려해져 간다.
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육신이 영혼으로 인하여 존재케 되었다면, 그것은 기적이로다. 2 그러나 영혼이 몸으로 인하여 존재케 되었다면, 그것은 기적들 중의 기적이로다. 3 진실로 나는 어떻게 이토록 거대한 부유함이 이토록 빈곤함 속에서 살게 되었는지, 정말 놀랍기만 하구나 “ - [도마복음 29장] -
1 Jesus said, "If the flesh came into being because of spirit, it is a wonder. 2 But if spirit came into being because of the body, it is a wonder of wonders. 3 Indeed, I am amazed at how this great wealth has come to dwell in this poverty." - Thomas 29 -
아직까지도 인간의 뇌를 대체할 만한 AI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인간의 뇌는 단순한 신경 세포간의 전기적 신호 전달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과연 뇌 과학이 계속 발전해 인간의 영혼의 개념까지 설명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간의 영혼은 컴퓨터가 흉내 낼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녔다. 만약 컴퓨터가 이 인간의 영혼까지 대체할 수 있게 된다면 그건 아마 신이 인간을 만들었듯이 인간이 신을 만들어 내는 기적 중의 기적이 될 것이다. 인류는 전에 없던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어쨌든 우리의 영혼은 시간이 흐름 속에서 죽어가는 육체의 유한함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신은 인간은 만들었다. 자신의 형상을 본떠서 외형을 만들고 그 안에 자신과 같은 영혼을 불어넣었다. 문제는 시간이라는 유한함도 같이 선사하였다. 우리는 이 유한한 시간 동안 신의 무한한 영혼을 발현시켜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온 것일 수 있다. 이건 마치 제한 시간 안에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게임과도 같다. 내가 신이라면 아마도 그런 재미난 게임을 지켜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누가 과연 인생이라는 덧없는 시간 안에 이 빈곤한 육체 안에 신과 같은 부유한 영혼을 담을 것인가?
아직도 몸과 그릇의 밖만 닦고 있는가? 그래 봐야 죽음을 막을 수 없고 깨짐을 피할 수 없다. 이제는 안을 닦고 무엇을 담을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담긴 것들은 보이지 않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거울을 보지 말고 눈을 감고 내 안을 드려다 보아야 한다.
우리는 유한함에 무한함을 담아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신의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