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나 부요케 하는 자

[토마스 복음서]를 읽다가... - 여섯 번째 이야기 -

by 글짓는 목수

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세상을 발견하여 부자가 된 자는 누구든지, 그에게 그 세상을 포기하게 하라."

- [도마복음 110장] -


1. Jesus said, " Whoever finds the world and becomes rich, let him renounce the world." -Thomas 110 -

이 구절을 읽고 난 후,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영웅본색(英雄本色)으로 80년~90년대를 호령하던 전설적인 배우 주윤발이다. 그는 정말 "영웅본색" 영화 제목처럼 영웅 같은 삶을 살았고 지금도 여전히 대중들의 기억 속에 그리고 현재의 삶 속에서 영웅으로 살아가고 있다.

영웅 본색 중에서


"그 돈은 내 것이 아니다. 그저 잠시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일 뿐"


- 주윤발 (周潤發)-


그는 당시 이소룡과 성룡으로 대표되던 무협영화가 성행하던 시기에 홍콩 르와르 영화에 불씨를 당긴 인물이다. 그 불씨는 아시아 전역으로 퍼졌고 그는 글로벌 스타덤에 올라섰다. 그리고 그는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가난의 밑바닥에서 시작한 삶은 부의 정점을 찍었다.


현실 속에서 그리고 또 영화 속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겪으며 세상의 모든 것이 덧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일까? 그는 자신의 전 재산 (약 800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약속하고 "내 꿈은 행복해지는 것이고 보통 사람이 되는 것이며 돈은 행복의 원천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금 그는 스크린에서의 연기가 아닌 실제의 평범한 시민들의 삶 속에서 그들과 함께 소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주윤발인줄 아무도 모름 ㅋ

주윤발은 다시 시작으로 돌아갔다. 지난번 이야기 때 [첫 문장과 첫인상은 같다 (서평)]에 여러 번 얘기한 바가 있다. 그는 가난으로 시작해서 다시 가난한 생활로 되돌아갔다. 그는 아마도 시작과 끝이 같아야 하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처음은 의도하지 않았고 나중은 의도적인 노력과 깨달음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럼 반대로 생각해 보면 부자로 태어난 사람은 나중도 부자여야 한다는 같은 논리는 어떨까? 더 어렵다. 사실 부자(금수저)로 태어난 자가 죽을 때까지 그 부를 유지하고 시작과 같이 되게 함은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럼 가난의 되물림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가난과 행복

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늘나라가 너희들 것이요."

[도마복음 54장]


1 Jesus said, "Blessed are the poor, for yours is the kingdom of heaven."

- Thomas 54 -


가난이라는 굴레는 참으로 벗어나기 어렵다. 그 누구도 물려받은 가난에서 머물고 싶어하는 자는 없다. 누구나 벗어나려 발버둥 친다. 사회가 공정하다고 믿고 열심히 일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가난의 책임은 개인에게 있는가 아니면 시스템(국가와 사회)에 있는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호주에 온 이후 교회에 나가며 읽게된 성경 구절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이것이었다. 이건 비단 [도마복음] 뿐만이 아니라 성경 곳곳(마태복음 5:3 , 누가복음 6:20)에서 발견된다. 가난한 자가 어떻게 복될 수 있다는 말인가? 세상에 이 가난 때문에 고통받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고 이딴 말을 하는 것인가.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성경이 진리라더니 어쩜 이리도 비현실적인 말만 짓거리고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때 그 구절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가난은 시작이다


수렵시대에 살던 인류에게는 가난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그건 잉여 생산물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경사회와 산업자본주의 사회를 거치면서 잉여(剩餘)라는 부가 생겨났다. 자신이 다 쓰지도 못하는 재화를 가지는 것이 타인에게 부러움(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대부분의 욕망은 부러움에서 시작되기 마련이다. 부러움은 타인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을 만든다. 그건 다른 말로 표현하면 타인을 자신을 위해 더 많은 재화를 축적하는 노동력으로 이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 이상 쌓을 수도 없이 불어난 재화라는 부는 화폐(교환수단)라는 축소된 저장소로 옮겨간다. 질량과 부피가 줄어든 부의 형태는 더 많은 부를 축적하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은 그 화폐조차도 부담스러운 세상이 되었다. 이젠 0.00000...1 나노(Nano)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세한 공간 속에 무한한 부를 저장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유한함 속에 무한함을 담을 수 있게 [다섯번째 이야기 참조]되었다. 그 사이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커져간다.

빅 뱅 (Big Bang)

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시작을 발견하였느냐? 그러하기 때문에 너희가 종말을 구하고 있느냐? 보아라! 시작이 있는 곳에 종말이 있을지라. 3 시작에 서있는 자여, 복되도다. 그 자야말로 종말을 알 것이니, 죽음을 맛보지도 아니할 것이라." [도마복음 18장]


2 Jesus said, "Have you discovered the beginning, then, so that you are seeking the end? You see, where the beginning is the end will be. 3 Blessed is the one who stands at the beginning: That one will know the end and will not taste death." -Thomas 18 -


부는 마치 빙백 이후 우주가 팽창하듯 무한대로 커져간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여전히 그 빅뱅의 시작에 혹은 그 근처에 머물러 있다. 그들이 바로 가난한 자들이다. 어쩔 수 없이 가난한 자(세상을 잘 몰라서, 순수한)이든 부유하지만 가난한 자(세상을 잘 알아서, 깨우친)이든 신의 눈에 보기에 둘은 같아 보인다. 하나는 연약한 존재로서 또 다른 하나는 대견한 존재로서 신의 눈에 보기에 흡족할 수 있지 않을까? 무한한 우주의 끝에 뭐가 있을까 하며 끝없이 부를 쌓아가지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우주 속에서 길을 잃어버릴 뿐이다. 가난한 자는 바로 시작에 서 있는 자 혹은 시작으로 돌아온 자들이다.


오르면 내려와야 한다


나는 산을 좋아한다. 산을 오르고 오르다 보면 깨닫는 것이 하나 있다. 험준하고 가파른 산을 오르다 보면 땀이 흐르고 근육의 통증이 수반된다. 그 대가로 산은 세상의 모습을 조금씩 내어준다. 그리고 정상에 올랐을 때 비로소 세상을 발 아래 두고 내려다 볼 수 있게 된다. 세상 속에 있을 땐 보이지 않는 것이 세상 밖을 나오니 보이기 시작한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다.

등산

"산에는 도대체 왜 올라가는 거예요? 어차피 내려올 건데..."


옛날 소개팅에서 취미가 뭐냐고 물었던 여성분에게 등산이라고 하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그 당시 "그럼 그쪽은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살아요?"라고 생각 없이 내뱉었던 답변은 두 번째 만남을 허락지 않았다. 생각 없는 질문이 생각 없는 대답을 불렀다. 결국 생각 없는 자들끼리 만나면 결과가 좋지 않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등산이라는 과정 속에서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은 것뿐이다. 사실 정상에서 내려와야만 하는 이 단순한 진리를 모르고 살아가는 이가 적지 않다. 사람마다 정상은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집 근처 앞산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백두산 혹은 에베레스트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은 내려와야 한다. 극지방, 사막, 밀림 어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은 인류지만 산 정상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머무는 곳이 아니다. 정상은 인생에서 보면 아주 짧은 한 순간이다. 그 한 순간의 환희는 기나긴 과정이 만들어 낸 것이다. 올라온 과정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고 내려가면서 그 의미를 다시 되새겨야 한다. 더 높은 곳이 있을 거라 오르려만 하는 자가 만나는 곳은 절벽이다.


무릇 인간의 욕망이란 끝이 없는 법이다. 목숨이 위태하면 숨 쉬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생명의 위협이 없으면 그제서야 배고픔이 느껴진다. 배가 부르면 좋은 옷과 집을 찾게 되고 종족 번식을 위한 이성도 찾게 된다. 그렇게 안전과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면 그 다음은 부를 통해 타인을 지배하려는 욕구가 생겨난다. 부를 이용해 부를 이루고자 하는 자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들을 통제한다. 권력이 생겨난다. 그 다음은 무엇일까? 자신의 권력을 무소불위의 자리로 만들고자 할 것이다.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것처럼... 올라가고 또 올라가고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지면 자신이 새라도 된냥 날아오르려 한다.


"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부자가 된 사람이 다스리게 놔두어라. 2 그리고는 그렇게 힘을 가진 자가 그것을 포기하게 놔두어라."

[도마복음 81장]


1 Jesus said, "Let one who has become wealthy reign, 2 and let one who has power renounce it." - Thomas 81 -


세속의 이치를 깨우진 자가 부를 통해 권력을 얻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부와 권력의 원천은 사람들로부터 나온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제 발로 산을 내려와야 하듯 스스로 돌려주고 내려놓아야 한다. 당신이 부유해지고 다시 가난해짐(사회환원)으로 많은 이들 부유해질 수 있다. 당신이 계속 정상에 서 있으면 다음 사람은 산을 내려갈 수 없다. 산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다음 세대도 누리고 내려가야 한다.


"가난하나 다른 이를 부요케 하는 자로다 "

- [고린도후서 6:10] -


과거 자주 불렀던 찬송(성도의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그 가사(구절)의 의미가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되는 듯하다. 당신의 가난과 궁핍은 어쩌면 당신의 순수함(시작)을 지키고 깨달음을 얻은 대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세상의 길과 진리의 길은 같지 않다. 둘 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두 길은 갈림길이라는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당신은 부유한가? 아니면 가난한가? 가난하다면 당신은 복된 사람이다. 마음이 평온한가 그럼 부끄러워 말라.


당신은 지금 누군가를 부요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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