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이 먹은 어른이 7일 된 작은 갓난아기에게 삶의 자리에 대해 묻는 것을 주저치 않는다면, 그 사람은 살 것이다.
1 Jesus said, "The man old in days will not hesitate to ask a small child seven days old about the place of life, and that person will live.
- 도마복음 4:1 -
문이 열리고 조막만 한 여자 아기가 나를 올려다보며 수줍은 미소를 보인다. 나는 무릎을 구부리고 아이의 눈높이로 자세를 낮추고 반가운 인사말을 건넨다.
"안녕! ** 삼촌 보고 싶어서 이렇게 마중 나왔어? 아이고 기특하네. 이제 다 커서 삼촌 마중도 나오고"
아이는 말을 할 줄 모르지만 나의 말을 알아듣은 건지 방긋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 웃음을 드려다 보고 있으면 삶의 고단함이 사라진다. 아이의 미소는 어른의 삶을 치유하는 효과를 지닌 듯하다. 나는 오랜 시간 한 아이의 탄생과 성장을 매주 지켜봐 왔다. 처음에 나만 보면 울음을 터뜨리던 아이는 이제 시도 때도 없이 나에게 다가온다. 때론 책을 들고 때론 인형을 들고 와서 나에게 건네며 놀아달라고 한다. 나에게 친근함을 표시한다. 어른은 돈을 내어주는 자에게 몸과 마음을 바치지만 어린아이는 시간을 내어주는 자에게만 마음을 드러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린아이들과 눈이 마주치면 아이는 그 시선을 떼지 않고 계속 응시한다. 만약 낯선 어른 둘이 눈이 마주치고 계속 응시한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어색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이성 간이라면 어색하고 부끄러운 상황이 동성 간이라면 불쾌하거나 적대적인 상황이 연출될 수 있을 것이다.
말 못 하는 아이들은 왜 그렇게 시선을 맞추고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일까? 말을 하지 못하는 존재는 눈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선이 연결되는 순간 아이의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들도 가득 차 있을까?
"유아의 뇌세포 발달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인간의 뇌는 세포가 끊임없이 늘어가거나 뇌세포 간 연결인 시냅스가 계속 증가하는 방식으로 성장해나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태어나서 첫 3년 동안은 연결이 계속 증가합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면서부터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연결이 계속 끊어지기 시작해 16세가 될 때쯤에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연결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렇게 한번 끊어진 연결은 절대로 다시 회복되지 않고요"
- 석정훈 [무의식은 답을 알고 있다] 중에서 -
신기하게도 말을 잘 못하는 3세 이하의 어린아이의 뇌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뇌세포들이 빠르게 연결되고 상호작용을 하며 무언가를 하고 있다. 평온한 아이의 표정과 시선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왕성한 세뇌포 활동들은 어른이 되고 난 후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때 그 왕성한 뇌는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일까?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모두 알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부모나 어른들이 무심결에 던진 말과 행동들을 모두 기억하고 따라 한다. 그 때문에 수많은 부모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경험을 한다. 어른들은 생활 속에서 그 많은 시각적 혹은 청각적 정보들을 모두 기억해 내지 못한다. 모두 장기 기억의 해마 속(하드디스크)으로 묻혀버린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어린아이의 뇌는 풀가동되고 있으며 모든 것을 단기 기억(RAM, 메모리) 속에서 저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기억해내고 생각해내는 것이다.
"신생아 때의 일이나 세 살 무렵의 사건을 기억하는 어른은 없다.... (중략) 그들이 기억과 함께 우리를 떠나는 거야"
- 김초엽 [공생가설] 중에서 -
김초엽이 쓴 소설집 [만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수록된 [공생가설] (서평참조 : 신의 게임 속에서)이라는 소설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소설은 3세 이전 아이의 뇌 속에 외계의 존재가 머물다가 사라진다고 묘사한다. 그 외계의 존재가 머물고 있던 시기에 아이의 눈과 귀는 그 외계의 존재가 보고 듣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말을 하게 되는 시기가 되면 그 모든 기억 정보를 가지고 자신의 별로 사라져 버린다고 말한다. 우리가 3세 이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미루어 다소 황당하지만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왜일까 무엇이 아이의 기억을 모두 가져가 버린 것일까? 아니면 정말 그 당시에는 다른 존재가 아이 안에 머물고 있었던 것일까? 만약 소설 속 내용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아이가 말을 하게 될 시기에 외계 존재의 기억 세상에 알리게 되면 안 되기 때문이 아닐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어린이들의 것이다.
- 마태복음 19:14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마가복음 10:15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17 -
성경에는 아이와 같이 되어라는 내용이 반복해서 언급된다. 아이의 존재로 돌아가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 처음엔 도대체 무슨 의미 일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저런 많은 책들을 읽으며 발견되는 아이에 관한 진실들이 그것을 설명해주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신이 축복으로 아이로서 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 아이 속에는 신이 깃들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의 존재는 어른들에 의해서 때 묻어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아니면 아이의 깊숙한 곳으로 숨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 아이의 모습으로 다시 되돌아왔을 때 신은 그 아이에게 다시 돌아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의 순수함으로 돌아가라고 수없이 강조하는 것이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 [어린 왕자] 중에서 -
"어른들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어린이들로서는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중에서 -
아이들이 보는 세계와 어른들이 보는 세계는 다르다. 어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만 본다. 하지만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다. 가끔씩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의 통해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보곤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너무도 때 묻었다는 사실에 후회하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을 그리워만 한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것을 고통과 시련으로만 받아들이며 죽음의 날을 향해간다.
"아이처럼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말은 곧 인생을 유희처럼 사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어떤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왜 이 놀이를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 박찬국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중에서 -
예전에 니체의 관한 글(서평 참조 : 낙타에서 사자로 다시 아이로)을 쓴 적이 있다. 니체는 초인이 되어라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초인은 다름 아닌 아이였다.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간 존재는 세상을 고통이 아닌 유희로 받아들일 수 있다. 어른은 인생을 고난의 연속으로 인식하지만 아이는 놀이일 뿐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중에서
"아들아 아무리 처한 현실이 이러해도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란다."
-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중에서 -
세계 2차 대전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를 다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기억하는가? 아버지는 아이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놀이로 만들어 주었다. 부모는 비록 지옥에 있었지만 아이와 함께 놀이에 빠져있었다. 어른들은 항상 아이들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라는 소리 일색이다. 아이들을 어른들의 만든 틀에 맞춰 넣기 위해 통제하고 가르치기에만 여념이 없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놀아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머릿속의 수많은 연결은 끊겨버리고 상상이 자리에 현실의 고통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어른이 되고 다시는 아이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의 뇌에 자리 잡았고, 우리의 유년기를 지배했고, 우리를 윤리적 주체로 가르쳐왔다면. 인간을 비인간 동물과 구분하는 명백한 특질들이 사실은 인간 밖에서 온 것이라면..."
- 김초엽의 [공생 가설] 중에서 -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신은 아이 안에서만 존재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다시 신에게로 돌아가는 방법은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가 아이와 같다면 세상은 이렇게 변해오진 않았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