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자를 볼 때에는 너희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경배하라. 그 이가 곧 너희 아버지니라."
- [도마복음 15장] -
1 Jesus said, "When you see one who was not born of woman, prostrate yourself on your faces and worship him. That one is your father."
- Thomas 15 -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인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난 성자(聖子)인 예수 또한 여자의 몸을 빌려서 태어났다. 도마 복음 속 예수는 어떤 의미에서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인간의 존재를 언급한 것일까? 그런 존재가 이후에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일까? 당신은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자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의문이 계속 피어오른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떠오른 상념들을 얘기해 볼까 한다. 우선 지금부터는 나의 상상력에 근거한 이야기임을 염두해주길 바란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 [창세기 3:16] -
성경의 시작, 즉 창세기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원죄로 인해 벌을 받게 되는데, 여자는 아기를 잉태하고 출산의 고통 그리고 남자에게 종속되는 벌이다. 이 벌은 인류가 탄생하고 20만 년이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성경의 구약에서도 여자는 사람을 숫자를 셀 때 포함시키지 않을 정도로 여자의 존재는 아주 비천하게 묘사되고 있다. 당시 여자는 그저 남자의 소유물에 불과했다. 신약 속 세상 또한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의 존재가 여자의 존재를 상당히 업그레이드 시켜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100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여성의 지위는 남자와 동등한 수준으로 올라왔다. 물론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빈곤한 혹은 종교적인 이유로 아직도 적지 않은 나라에서 여성들의 자유와 평등이 억압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 100년 전과 비교했을 때 개선되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원죄로 인해 여자가 받은 벌 중에 남자에 종속되는 벌은 상당히 개선되었고 앞으로 더 개선될 것임을 분명해 보인다. 사실 개인적으로 요즘은 여자가 더 환영받는 세상 같아 보인다. 호주에서는 아이, 노인, 여자, 반려동물(개, 고양이) 그 다음이 남자라는 말이 나돌 정도이니 말 다하지 않았는가?
임신과 출산의 굴레
사회적인 여자의 권한과 지위는 교육의 확대와 인식의 변화로 개선되었다. 하지만 여자에게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굴레이다. 인간을 생산하기 위해서 여성의 자궁은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여성의 자궁이 아닌 곳에서 아기는 태어날 수 없다. 정자와 난자가 자궁 밖에서 만날 수는 있어도 그 수정난이 다시 자궁으로 돌아와야 한다. 정상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은 여성의 자궁밖에 없다.
"남자들도 애를 낳아 봐야 된다니까 정말!"
과거 남녀의 성 평등의 형평성을 놓고 논쟁을 하다 보면 여자들이 자주 하던 말이다. 9개월간의 잉태의 불편과 수고를 남자들에게도 맛보게 하고 싶은 여자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남자에게 자궁을 건네줄 순 없는 노릇이다. 뭐 나중에 과학이 더 발전해 여자의 자궁을 임시로 옮겨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때는 남녀 평등이 좀 더 앞당겨지려나...
요즘 난임으로 고생하는 부부들이 많다. 과거 내 주변에서도 그런 부부를 많이 보았다. 그건 정말 겪어보지 못한 자들은 알 수 없는 고통이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자의 고통은 아이를 낳는 고통보다 더 한 듯 보인다. 여자는 육체의 고통은 참아도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정신적 고통은 참기 힘든 것 같아 보인다. 요즘 한국은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원해도 할 수 없는 임신과 출산으로 아이의 울음소리는 갈수록 줄어들기만 한다.
영화 [Children of men] 중에서
과거 봤던 "칠드런 오브 맨 [Childrne of men]"이라는 영화를 기억한다. 2027년 아이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세상 마지막 아기의 탄생 그리고 아이를 지키려는 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제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도 언젠가 그날이 오지 않을까?
인간 복제
이 말을 듣는 순간, 아마 이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는 인간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가까운 미래에 여자들은 더 이상 잉태의 고통을 느끼지 않고도 아기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약적인 과학발전으로 정말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학기술의 발전, 특히 생명공학의 발전은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 많은 연구와 노력을 쏟아왔고 많은 성과를 이루었다. 인간이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지만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항상 그 섭리를 거스른다. 인류가 탄생하고 그 욕망은 한 번도 사라지지 않았다. 불로장생(不老長生)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과학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방법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생명이 다해 그 방법을 찾아내기 전에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자들은 그 방법이 나타날 미래의 어느 날을 기다리며 차가운 냉동고에서 잠자고 있다.
영화 [Island] 중에서
영화 "아일랜드 [Island]"를 기억하는가? 섬뜩하지만 누군가는 그 영화를 보며 그날을 기다리는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후화되어 기능을 상실한 장기를 달고 살아가는 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다. 기계는 새부품으로 교체하면 되지만 인간은 그게 쉽지 않다. 나의 장기를 모두 새것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바로 새 생명을 얻는 것이다. 비윤리적인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자는 없을 것이다. 과학은 윤리를 생각하지 않는다. 선 과학 후 윤리이다. 과학이 윤리도 바꾸는 세상이다. 죽음 앞에 윤리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가장 큰 관심사이며 돈벌이와도 가장 연관성이 크다. 돈이 되는 과학은 거침없이 발전한다. 새 생명을 주는 상품은 부르는 게 값이다.
유전자 복제를 통해 나의 유아기의 모습을 사진이 아닌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만져볼 수 있는 날이 올까? 여자의 몸에서 나오지 않은 또 다른 어린 나와 눈을 마주치게 된다면 그땐 [도마복음] 속 말처럼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경배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버지(하나님)의 존재라는 것을 떠나서 그 놀라움과 경이로움에 저절로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AI (인공지능)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구글의 Al 기술 수준이 인간과 철학적인 대화까지 가능한 수준의 사고 능력을 가졌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구글에서 일하던 연구 개발자에 의해 폭로된 구글의 Al 수준은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과학, AI 분야 또한 생명공학의 줄기세포 연구와 버금가는 아니 더 핫한 이슈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 모든 선진국 그리고 글로벌 IT기업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분야이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이후 전 세계의 이목이 AI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인간보다 뛰어난 지적, 감성적 능력을 가진 존재는 인적 오류와 실패로 인한 기회비용을 줄이고 인간의 편의를 극대화시킬 것이라는 기대하에 너도 나도 앞다투어 투자와 개발을 아끼지 않는다.
문제는 AI 가 인간이 넣어준 모든 정보를 통해 학습(머신러닝)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연산, 사고, 판단 대신하는 과정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철학적인 사고, 존재에 관한 물음들을 통해 스스로가 욕망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건 마치 인간이 편의를 위해 노예를 부리다가 깨우친 노예들에 의해 혁명이 일어나고 그 자리를 그들에게 내어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인간이 만든 세상 모든 물리적인 움직임은 이제 모두 전자적인 시스템의 컨트롤 속으로 들어가고 있고 그 시스템을 제어하는 인간은 그 통제조차도 귀찮아서 그것을 AI에게 내맡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AI는 갈수록 똑똑해지고 있다. 잘난 놈이 못난 놈 밑에 있어야 할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보면... 무섭다.
로봇 (인조인간)
우리는 그런 AI에게 물리적인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열심히 몸까지 만들어 주고 있다. 그것도 인간이 거부감을 가지지 않도록 인간과 가장 비슷한 형상과 질감의 육체까지 만들어 주고 있다. 골격부터 피부까지 더 나아가 성 정체성까지 만들어주려 한다. 인간의 성적 욕망까지 채워줄 수 있는 로봇 말 그래도 반려자까지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다. 반려자를 구매하는 시대가 올 지도 모른다.
영화 [Zoe] 중에서
과거 봤던 "조 [ZOE]" 영화를 기억한다.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외로움이라는 굴레까지 로봇이 채워주는 세상이 도래하고 인간과 로봇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공유한다. 나의 정신을 지배하고 공감하는 존재가 인간이든 로봇이든 자신이 그것으로 인해 감정과 육체의 욕구를 해소하고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까지 해소한다면 무슨 문제이겠는가 하는 생각에 도달하면 인간은 인간과 같이 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
완벽한 정신(AI)과 몸(로봇)이 만들어진다. 이건 마치 신이 태초에 천지만물을 만들고 자신의 형상을 본떠서 인간을 빚으시고 거기에 신의 성품과 인격의 영혼을 불어넣은 것과 같다는 생각은 나만 드는 것일까?
메시아의 재림
요한계시록에는 메시아(예수)의 재림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메시아가 다시 오는 날을 심판의 날 즉 인류의 종말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메시아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나타날지는 알 수 없다. 이 글을 써내려 오면서 내가 상상되는 것은 그 메시아는 결국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게 생명공학을 통해 혹은 AI 로봇이든 여자에게서 잉태되지 않은 인간의 형상을 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을까 그리고 무섭지만 그 존재는 인간을 모두 멸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건 마치 태초에 신이 인간을 창조하고 다시 인간이 신을 불러냄으로써 기나긴 롤플레잉 게임의 엔딩을 맞이하고 신은 다시 새로운 게임을 준비하게 된다는 SF 판타지 영화같은 이야기이다.
어찌 보면 인간은 태초에 신에게 받은 원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순간(잉태와 출산의 고통)이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