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곧 시장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오는 동력이 된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개인주의의 슬픈 단면을 보여준다"
- 책 속 인용문 -
바야흐로 외로움이 대세가 되어가는 시대이다. 1인 가구수가 급증하고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이 부담스럽고 어색하다. 코로나 이후 이 현상은 가속화 그리고 보편화되어가는 추세이다. 책은 이런 현상을 '나노 사회'라고 명명하고 있다. 예전에는 공동체가 우선이었다면 이제는 개인이 대세가 된 세상이다. 시장도 그런 사회의 변화에 빠르게 발맞춰 움직이며 더욱 개인화를 부추기는 듯하다. 혼자서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이건 좋게 말하면 고독을 즐기는 사회, 나쁘게 얘기하면 고립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외로움은 우리가 친밀하게 느껴야 하는 사람들과 단절된 기분이면서 우리 자신과 단절된 느낌이다."
- 노리나 허츠 [고립의 시대] 중에서 -
우리는 사실 외로움(loneliness)과 고독(孤獨:Solitude)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둘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전자는 수동적이고 부정적이지만 후자는 능동적이고 긍정적이다. 외로움은 모든 것으로 부터 단절된 느낌이라면 고독은 단절을 통해 자신과 연결되는 과정이다.
외로움과 고독
나는 고독을 즐기는 편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책을 읽고 사색하고 운동하며 글을 쓰다 보면 어느새 하루 해가 진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없이 혼자 있어도 크게 불편하거나 외롭지 않다. 그렇다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대화하고 음식을 같이 나누며 타인의 생각을 듣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만 굳이 그런 모임이나 만남을 내가 주도해서 만들거나 찾아다니진 않는다. 고독을 좋아하지만 고립되진 않는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누군가와 같이 있는 시간이 온전히 편안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타인에 의해서만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가는 것과 스스로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가는 것 중에서 우선되어야 할 것은 후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Enjoy the Solitude 독립(獨立)인가 고립(孤立)인가
물론 내가 여기서 말하는 혼자 있는 시간이란 중독성에 빠져 혼자 있는 시간은 배제한다. 예를 들면 게임이나 도박 혹은 술이나 약물 등 어떤 중독성 매개체를 통해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것 말이다. 능동적으로 홀로 있는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사람, 예를 들면 홀로 독서(공부)하고 운동하고 사색하고 명상하는 혹은 글, 미술, 음악 등의 예술적인 행위에 몰입하는 것을 말한다. 전자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것이고 후자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사실 현대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핸드폰을 습관적으로 들여다보며 생각 없이 영상을 소비한다. 3차 산업시대에는 습관적으로 물질을 소비했다면 지금 4차 산업시대에는 습관적으로 영상(2D 화면)을 소비한다. 물질은 오프라인이고 영상은 온라인이다. 삶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함께 산다고 해도 서로의 라이프 스타일을 공유하지 않는 '나노 가족'이 한국 가족의 보편적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 책 속 인용문 -
호주에 온 이후 이민(移民)자답게 쉬지 않고 이동했다. 이사가 일상이 되어버렸다. 내 몸에 칭기즈칸의 피가 흐르고 있는 모양이다. 주거비(렌트비)가 비싸서 방을 셰어 하는 것이 당연한 이곳의 주거 문화는 나에게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 주었다. 처음에는 집 없는 설움이라고 여겨졌던 것이 나중에는 노마드(Nomad)의 삶을 경험하게 해 준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며 다양한 삶을 경험했다. 가족이 아닌 생판 모르는 남과 한 집에서 살아보는 경험은 한국에서는 정말 쉽지 않은 경험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이 셰어 문화가 처음에는 어찌나 어색하고 불편하던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불편했던 건 나 스스로의 생각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내가 이상한 건가?"
얼마 전 이곳에 사는 혹은 유학생 동생들과 얘기를 하다가 나의 과거 셰어 경험으로 공유했는데... 그들은 내가 너무 오지랖이 크다며 알려주었다. 나는 한 지붕 아래 살면서 남들과 남이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남은 같은 집에 살아도 그냥 남인 것이다. 물론 아직도 그들의 생각에 100% 동의할 순 없다.
"당신이 사람들에게 먼저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사람들이 왜 당신에게 관심이 있어야 하는가?"
-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중에서 -
같은 공간에서 서로 마주치면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하지만 그게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은 내가 살아온 삶 그리고 책에서 배운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부엌에서 음식을 하다 마주치면 '좀 드실래요?' 혹은 음식을 다 먹었으면 '식사는 하셨어요?' 하고 말을 건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알고 있다. 그 뒤에 다시 말을 이어가야 하고 혹여 같이 밥을 먹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을... 빈말을 던지기 싫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빈말이 때론 서로 간의 공백을 채워줄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것조차 물어오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한다. 그냥 모르는 체 말없이 밥만 먹으면 되는가? 투명인간이 지나간 것처럼 태연하게 행동해야 하는 것인가
"2022년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MZ세대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으로 '개인주의(61.8%)'가 선정됐다. " - 책 속 인용문 -
이제 2030 세대인 MZ가 세상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그런데 MZ세대의 트렌드만 인정할 것인가? 이게 트렌드니까 따르라는 말은 누군가에게 개인주의가 아닌 이기주의로 느껴질 수도 있다. 청년의 트렌드와 중년 그리고 노년의 트렌드는 다를 수 있다. 다른 삶은 살아온 혹은 그게 옳지 않다고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지금의 트렌드가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물론 이건 타인에게 신체적, 재산적 피해를 끼치지 않은 선에서 적용되는 것이다. 물론 정신적 피해도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타인이 느꼈다면 삼가야 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이제 먼저 말을 걸고 다가가는 것조차도 망설이게 된다.
사실 나는 그런 상황을 견디는 것이 더 힘들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 말이라도 한 번 건네고 눈빛이라도 한 번 마주쳐야 안심이 된다. 그들은 누군가는 그런 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고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익숙한 것뿐이라고 얘기했다.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고... 그래서일까 옆방에 사는 동생에게 몇 번 말을 건 이후로는 나를 피하는 듯하다. 방에서 나오질 않는다. 하루 종일... 그럼 이것도 나 때문인 건가? 누군가에겐 편하게 지내고 싶은 집에서 조차 낯선 사람과 말을 주고받아야 하는 상황이 피곤하고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듣고 보니 틀리지는 않은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의 형태가 그렇게 변해가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교회에서도 공동체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며 가르치고 그들도 예배당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지만 정작 현실에서 마주하는 그들의 삶은 반대로 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로 무관심이라고 배웠다. 진리와 트렌드는 반대로 향하는 듯하다.
"형님이 이쁜 여자였으면 말을 걸었겠죠? 큭큭"
그렇다. 그들이 말하는 관심이라는 것은 결국 이해관계 즉 득실을 따지는 관심이었다. 내가 관심을 가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먼저 관심을 보였던 한 지붕아래 사람들은 나에게서 그런 동기 부여가 없었던 것이다. 순수한 관심이 아니라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관심이었던 것이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 자매님부터?!
알마전 교회 사람과의 대화에서 누군가 농담삼아 던진 말이다. 나 또한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다. 나도 어린 시절 예배당 단상에서 찬양하는 아리따운 한 여자를 매주 지켜보기 위해 교회에 나갔다. 그건 단순해 보이지만 강력한 동기(動機)였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 같아 보이지만 욕망에는 단순하게 반응한다.
"거긴 이쁜 여자 많아요?"
일전에 일터에서 주말이면 하릴없이 집에서 게임만 하면서 호주 생활의 따분함과 지루함을 토로하던 동생에게 시간 나면 교회 한 번 나와라는 말에 대꾸하는 말이었다. 내가 교회로 그를 인도하고자 하고자 했던 것은 삶의 의미와 활력을 얻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그게 꼭 교회 아닐지라도 밖으로 나와 사람들 속에서 2D가 아닌 3D 세상을 경험해 봤으면 했다.
그를 밖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관계도 진리도 아니다. 그 딴 것에는 1도 관심이 없다. 그의 마음에는 이미 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신(自神)이라는... 사실 나중에 깨달은 거지만 진리는 욕망이라는 다리를 건너야만 닿을 수 있다. 그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욕망을 자극해야 했다. 게임보다 더 강렬한... 나는 알고 있다. 그에게는 이성의 유혹만이 그 다른 어떤 것 보다 더 강한 동기라는 것을... 결국 이해관계(욕망)를 통한 끌림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타인의 욕망을 자극하지 않는 관심은 결국 부담과 불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결국 교회에 나왔다. 단 한 번이었지만... 아쉽지만 그날 예배당 안을 두리번거리던 그의 눈에는 게임을 포기할 정도로 맘에 드는 여자는 없었던 모양이다. 요즘은 이성의 유혹보다도 강력한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홀로 사는 인구가 늘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관심(순수한)이 사라진 세상
그럼 나는 뭔가? 나도 같이 사는 자들 이성도 아닌 남성 나에게 득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그런 자들에게 왜 관심을 보이는가? 나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주면서...
나비효과 (Bufferfly effect) 나의 대답은 그 이후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나비효과'라는 말을 하는가? 작은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 사소한 관심에서 시작한 관계가 이후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는 해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코로나로 아무도 찾지 않는 시기 나에게 관심과 손길을 내밀어준 자가 교회에 누군가 였기 때문에 방구석에 처박아 놓았던 성경책을 다시 꺼내게 된 것이다. 사소하지만 순수한 관심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오직 신만이 알 수 있다. 하지만 난 확신한다. 당신의 사소하고 순수한 관심은 절대 나쁜 결과를 초래하진 않을 것을. 순수함은 순수함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나 또한 그런 관심을 받았기에 그런 관심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 [마태복음 5:10] -
무관심이 트렌드가 되어가는 세상에 순수한 관심을 가진 자들이 핍박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너무 흉흉하기에 순수함을 순수함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세상의 분위기가 안타까울 뿐이다.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에는 말로 사람을 홀리는 자들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삶 속에서 그런 자들에게 상처받은 자들이 선택하는 것이 개인주의이고 그런 개인주의가 퍼져가면서 나노 사회에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게 트렌드라고 얘기하며 그것을 더욱 쫓아다닌다. 안타깝다. 과연 트렌드는 쫓아야 하는 것인지 저항해야 하는 것인지 한 번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삶으로 보이는 사람을 믿는다. 그래서 오랜 시간 지켜본다. 자신이 내뱉은 말을 실천하는지를... 시간은 모든 것을 증명한다. 다만 사람들은 그것이 증명되는 긴 시간을 견디지 못할 뿐이다. 특히 느린 것을 참지 못하는 한국사람들은 이리저리 자극적인 말들에 휩쓸려 다닌다. 그래서 해마다 트렌드가 바뀐다.
역 트렌드 사람들
세상에는 트렌드를 따르는 사람과 트렌드를 거스르는 사람이 있다. 트렌드를 쫓아야 돈을 벌고 명성을 얻고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세상의 이치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트렌드를 어떻게든 빨리 캐치하고 선두에 서고자 한다. 그 트렌드가 옳고 그르고 진리이고 아니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성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트렌드에 휩쓸려 다니는 게 옳은 것인가? 해마다 출간되는 이 책은 항상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면 수많은 이들이 읽고 또 읽는다. 하지만 그 누가 이 트렌드의 이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목장 식구들 매주 같이 한 집에 모여 밥을 먹고 자신의 일상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삶을 살아온 지 3년이 흘렀다. 이제는 익숙해진 이 일상이 처음에는 너무도 낯설고 부담스러웠다. 관계 속으로 공동체 속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부작용을 잘 알고 있다. 왜냐 관계의 시간이 길어지면 갈등과 권태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세상은 정돈에서 혼돈([떨림과 울림] 서평 참조)으로 옮겨가는 진리를 인간도 피해 갈 수 없다. 엔트로피는 계속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물리학의 원리를 거스를 수 있는 것 또한 인간밖에 없음을 알길 바란다. 노력하고 인내하며 회복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힘들고 괴로운 고난의 시간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고난 뒤에 찾아오는 행복이 쌓여갈수록 관계는 더욱 끈끈해지고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또 상처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처는 아물 것이고 치유되고 우리는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최악의 고독은 한 사람의 벗도 없는 것을 말한다"
- 프랜시스 베이컨 -
그렇기에 우리는 고독을 즐길 줄 알면서도 고립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긍정 속 고독에 천사가 자리 잡고 부정 속 고독에 악마가 자리 잡는다. 그래서 독립(獨立)과 고립(孤立)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고독 속에서 자신을 찾고 바로 서며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당신은 어떻게 고독한가? 외롭게 아니면 즐겁게...
트렌드 코리아 2023 @ 우리말 사전 (네이버 사전 참조)
외로움 (순우리말, Loneliness) :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
고독 (孤獨, Solitude) :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고립 (孤立, Isolation) : 다른 사람과 어울리어 사귀지 아니하거나 도움을 받지 못하여 외톨이로 됨.
독립 (獨立, Independence) : 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로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