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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Dec 22. 2022

영원히 되돌아 보기 위해 쓰다

[기억의 뇌과학] 리사 제노바

"세상은 온통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과 건망증에 시달려 불안한 중년들과 치매를 걱정하는 노년들로 가득 차 있다."

                                                   - 책 속 인용문 -


당신은 지금 저 세 부류 중 어디에 속해 있는가? 나는 이제 중간으로 넘어온 듯하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틈만 나면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언젠간 모두 사라질 나의 기억을 남기고 싶어서... 나의 뇌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눈으로 기억하고자...


"우읍! 아~ 냄새! 또 깜빡했네"


비닐 가방의 지퍼를 열자 퀴퀴한 썩은내가 진동을 한다. 며칠 전 수영장에 도착해 수영가방을 열었을 때였다. 며칠간 여행을 다녀온 뒤 다시 열었던 가방 안에는 축축이 젖은 수영복이 그대로 가방 안에 며칠 동안 방치되어 썩은 내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늘어나는 건망증에 나도 모르게 화가 난다. 화를 내서 해결될 일도 아닌데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뇌에 대한 실망감이 커져간다.


우리는 일상에서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꼭 기억해야 할 것들은 잊어버리고 별 쓸데없는 것들은 기억나는 기이한 현상을 겪으며 살아간다. 글을 쓰다 보면 평소 생각지도 못했던 기억들이 떠오르지만 그 기억을 메모하려고 핸드폰을 찾으면 어디 뒀는지 기억이 안나는 이런 아이러니한 뇌를 어찌해야 할까? 해마 속 깊숙이 잠자고 있던 심해 기억에 집중하는 동안 전두엽에 있던 단기 기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우리의 뇌는 왜 이렇게 내 맘 같지 않을까? 세상에 연구하고 밝혀내야 할 수많은 과학 분야가 있지만 우리의 뇌만큼 복잡하고 신비로운 세계도 없는 것 같다.


청년 시절에는 배우고 공부하고 기억해야 할 수많은 것들을 뇌 속으로 하나라도 더 집어넣으려 밤낮없이 공부했다. 지금은 세월의 양만큼 많은 기억들을 그때 그때 머릿속에서 끄집어내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이 필요할 때마다 빨리빨리 떠오르지 않는 CPU가 안타까워 한다. 이러다 노년이 되면 이렇게 떠오르지 않던 것조차도 떠올려야 할 이유를 떠올리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다.


"85세 노인들 중에서 둘의 하나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있다. 당신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그렇다면 당신은 그를 돌보는 보호자로 살고 있을 것이다"

                                                                                               - 책 속 인용문 -


얼마 전 교회에서 주차 안내요원으로 봉사 활동을 할 때였다. 중년과 노년 사이를 지나고 있는 한 어르신이 교회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형, 저 어르신 나가려고 하면 잡아요, 알았죠?"


교회 동생이 그 어르신을 붙잡고 다시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서 나에게 말했다. 그는 치매 초기 증상을 가지신 분이라고 했다. 일전에 교회 밖으로 혼자 나가셨다가 길을 잃어버리셨던 모양이다.  그 어르신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교회 안을 이리저리 서성이며 뭐가 그리 즐거운지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웃고 다녔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아 보였다. 치매가 무서운 건 치매 당사자보다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받는 고통 때문일 것이다. 오랜 시간 같이 했던 기억을 잃어버린 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은 사라지고 그 사람을 항상 처음 만나는 사람 대하듯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은 기억을 잃어버려서 환자가 되었지만 우리는 그와의 기억을 잃어버릴 수 없어 환자가 되어간다.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언젠간 노후화되고 손상된 해마로 기억이 점점 사라지는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기억이 사라진 자들 곁에서 고통받으며 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든 더 살려고 발버둥 치며 생명 연장을 꿈꾸지만 오래 산다고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닐 듯하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가족과 지인들 사이에서 나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차라리 내가 그 기억을 먼저 잃어버리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기억이든 새로 만들어서 나중에 의식적으로 불러낼 수 있으려면 해마가 반드시 필요하다...(중략)... 알츠하이머병이 공격을 시작하는 곳이 바로 해마다."

                                                                                                    - 책 속 인용문 -

                                                                              

세상은 넓고도 거대하지만 우리는 겨우 주먹 두 개 만한 뇌로만 세상을 이해하고 기억하며 살고 있다. 나라는 자아는 생물학적으로 우리 뇌 속에 장기 기억을 보관하는 해마의 존재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작은 해마가 결국 나의 존재를 증명하고 인식하며 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책에서는 뇌전증(간질) 치료를 위해 해마의 일부를 제거한 '헨리'(Henry Molaison)라는 인물의 사례 가 인상적이다. 그는 심각한 뇌전증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기억을 반납한 최초의 인간이자 마지막 인간이었다. 그의 사례는 뇌과학 분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례로 남게 되었다.

그는 양쪽 뇌에서 해마와 그 주변 조직을 제거했다. 이후 뇌전증은 사라졌고 인간으로서 활동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것도 1분 이상 기억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오로지 전전두피질에 머물고 있는 초단기 기억에만 의존해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로 인해 해마가 인간의 기억 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 건지 살아있는 실험 대상으로 확실히 밝혀졌다.


"알츠하이머병은 또 뇌에서 기분과 감정을 제어하는 영역인 편도체와 변연계를 오염시킨다. 그러면 슬픔, 분노, 욕망 등을 조절, 억제하지 못하게 된다."

                                                                                          - 책 속 인용문 -


해마에서 시작된 손상은 마치 암덩어리가 퍼져나가듯 주변의 뇌로 옮겨간다. 치매 환자가 단순히 기억만 잃어버린다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린다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다시 한번 더 상처받고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배고프다고 울고 짜증내고 화내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된다면 어떨까. 우리는 새로 태어난 아기를 대하듯 그를 보살펴야 할 것이다. 아기는 그래도 보살피다 보면 엄마 아빠를 알아보는 기쁨이라도 있지만 이건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크기라도 작으면 컨트롤이 쉽지만 나만한 덩치의 성인을 아기처럼 다루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를 알아보지도 알아주지도 않는 낯선 존재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이건 어찌 보면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경험이기도 하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은 자신의 존재를 잃어가는 인간이 타인의 존재감마저 앗아가는 과정이다.

 

이건 반대로 생각하면 상대방에 대한 나의 과거 기억으로 인해 상처받는 것이다. 나의 기억이 오로지 나만의 기억이 되어버리는 순간 나의 기억 속에 홀로 갇혀서 고통받게 되는 것이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연인과 나눈 기억은 추억의 또 다른 말이기도 하다. 추억은 상대방과 함께한 의미있는 기억이다. 하지만 상대방과 공유하던 추억이 오로지 나만의 것이 되어 버리면 이 기억은 의미를 상실해 버린다. 그 기억들은 되뇌일 때마다 더 큰 슬픔과 고통만 안겨줄 것이다.


"그냥 적극적으로 쓰기만 하면 된다."

                                                       - 책 속 인용문 -


우리는 뇌의 노화를 막을 수 없다. 우리는 뇌를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되며 그럴 수도 없다. 언젠가는 뇌는 우리를 배반할 것이다. 컴퓨터는 노후화되면 교체가 가능하지만 뇌는 아직까지는 불가능하다. (뭐 언젠가 신박한 뇌과학자가 뇌도 교체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낼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날은 도래하지 않았으면 한다. 두렵다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다. 피부 노화를 방지하려면 매일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모자를 쓰는 습관을 가져야 하듯이 기억이 점점 사라진다면 매일 쓰고 기억의 단서를 남겨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피부가 노화되지 않고 기억이 상실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기를 늦출 수는 있다. 매일 일기를 쓰고 기억을 글로 옮기는 작업은 당신이 기억을 더 오래 보관하고 잊어도 다시 기억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다. 기억상실을 피할 수 없다면 기억을 저장하는 일을 즐겨야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 또한 쓰다 보면 기억이 강화되고 더 많은 것들이 떠오르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그렇기에 더 쓰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쓰는 것을 즐기게 된다.


우리는 점점 기능을 상실해가는 해마를 하나씩 가지고 살아간다. 노후된 해마의 기억을 밖으로 빼내어 다른 곳에 저장(외부 저장 장치 or 클라우드?) 하지 않으면 언젠간 모든 기억이 나의 존재를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그 모든 기억들을 옮길 순 없지만 소중하고 의미있는 기억들만이라도 되돌아 볼 수 있으려면 손가락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지금을 영원히 되돌아 볼 수 있도록...

기억의 뇌과학 in Masc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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