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하나 된 자

[토마스 복음서]를 읽다가... - 열두 번째 이야기 -

by 글짓는 목수

1.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가로되, "마리아는 우리를 떠나야 한다. 여자들은 삶을 받아들일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 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보라! 나는 그녀를 인도하여 그녀가 남성이 되도록 할 것이니라. 그리하여 그녀 또한 너희 남성들을 닮은 살아있는 영혼이 될지도 모르리. 3 그녀 스스로를 남성으로 만드는 모든 여자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니라. "

- [도마복음 114장] -


1 Simon Peter said to them, "Mary should leave us, for females are not worthy of life. "2 Jesus said, "Look, I shall guide her to make her male, so that she too may become a living spirit resembling you males. 3 For every females who makes herself male wi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 "


[미술관에 간 화학자]라는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상념들이 과거의 기억들과 빠르게 연결되고 확장되며 상상을 만들어낸다. 그 상상이 [도마복음]의 마지막 구절과 연결되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연상된 그 신기하고 놀라운 상상을 얘기해 보려 한다. 이어질 이야기는 나만의 상상을 통한 추론임을 염두해 주길 바란다. 왜냐?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 상상을 글로 옮기지 않으면 나 스스로도 이것이 정리되지 않아 쓰면서 정리해 보려 한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뇌는 손가락으로 생각하고 정리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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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마지막을 지킨 자가 누구인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 자리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사도 요한, 성모 마리아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 이 세 사람이 예수의 최후를 지켜봤다. 그리고 예수사후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했고 처음으로 알린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 사실은 사도 요한이 남긴 복음서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럼 예수 부활의 장면을 서술한 요한복음 속 내용은 요한이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전해 들은 내용을 기록한 것일까?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몸을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 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 [요한복음] 20:11~14 –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12 사도들과 함께 예수와 전도 여행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사도라는 칭호가 주어지지 않았다. 왜일까? 물론 당시 여성의 신분으로 성자의 제자 칭호를 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생전 예수를 따라다니며 수많은 그의 행적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비중 있는 인물인 마리아는 [사도행전]에서 조차 나타나지 않는다. 그럼 그녀는 왜 다른 사도들처럼 예수의 행적과 말씀들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을까?


마리아 복음서


20세기 초 [도마복음]이 발견된 이집트의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고대 복음서에는 [가롯유다 복음서]를 비롯해 [막달라 마리아 복음서]도 발견되었다고 전해진다. 그것들은 정경에서 삭제되어 사본이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다. 왜일까? 그 안에는 어떤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었을까? 과거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국교로 정해지고 하나의 경전(Bible)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많은 복음서들이 불타 없어졌다. 아마도 [마리아 복음서] 또한 그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마리아 복음서

시몬 베드로는 예수의 사도 중 첫 번째로 알려져 있다. 또한 가톨릭에서는 초대 교황으로 추대된 인물이다. 축구 경기로 친다면 12명 중에 예수가 감독이고 베드로가 팀의 주장 선수급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베드로는 예수의 제자 중에서 존재감이 큰 인물이다. 우직하고 충성스러운 모습의 상징이다. 하지만 축구경기에서 주장선수가 베스트 플레이어는 아니다. 스타플레이어는 따로 있을 수 있다.


베드로는 예수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그가 보는 가운데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자이다. 모든 사도들이 비슷하지만 누구 하나 예수와 같이 십자가를 짊어진 자는 없었다. 아마 그들은 예수 사후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고 난 후 회심(回心)하고 여생을 모두 예수를 알리는데 전념했다.


남성과 여성의 충돌


시몬 베드로는 막달라 마리아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두에 도마복음 마지막 장에도 언급되듯이…) 막달라 마리아는 사도 요한처럼 어리면서 총명했을 거라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글자도 읽을 줄 모르는 무지한 자였다. 성경(신약)에 있는 베드로 전서는 대필자가 그의 말을 옮겨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베드로가 비록 예수를 따르는 충직한 제자였을 수는 있지만 여자인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총애를 받는 모습에 경쟁심이나 질투 섞인 감정을 느꼈을 수 있을 거 같다. 당시 여자들을 비천한 존재로 여기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자신보다 뛰어나고 총명한 여성에 대해 좋은 감정을 느낄 리 만무했다.

엘 그레코 [막달라 마리아]

예수의 여자


나는 철학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철학은 종교와 연결되어 있다.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종교이다. 인간은 인간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꼭 이 신이라는 개념을 개입시켜 해결해 나가려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건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과정이면서 인간이 완전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철학을 따라 종교를 알아가다 보면 이 세상을 아우르는 여러 가지 종교를 보게 된다. 그중에서 우리가 말하는 4대 종교 그리고 4대 성인들의 가르침을 빼놓을 수 없다. 기독교(가톨릭, 개신교), 불교(힌두교, 자이나교, 조로아스터교등), 이슬람교, 유교 그리고 한 가지 더 넣자면 유대교 그리고 4대 성인들 예수, 부처(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혹은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등은 한 번쯤은 찾아보고 거쳐가야 할 자들이다. 이 중에 다른 종교는 접어두더라고 내가 기독교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항상 의아하게 생각하던 것이 하나 있다. 기독교에는 세상의 시간을 BC(Before Chirst)와 AD(Anno Domini)로 나눈 위대한 성인 예수라는 인물이 있다.

4대 성인 (왼쪽 위부터 예수, 공자,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그런데 4대 성인 중에 왜 유독 예수만 독신이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부처(야쇼다라)도 공자(계관 씨)도 소크라테스(크산티페)도 모두 아내가 있었다. 심지어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1명도 아닌 13명(일부에선 21명으로 언급되기도)의 아내를 거느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이곳 호주에서 아이들을 가장 많이 낳기로 유명한 민족이 바로 이슬람 민족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호주도 몇십 년 뒤면 아마 이슬람 국가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피로 맺어진 모태신앙이라는 굴레는 좀처럼 벗어나기 쉽지 않다.


기독교에서는 예수에게 성자라는 칭호로서 그는 홀로 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예수에겐 여자가 없었다고 말한다. 과연 그랬을까?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이상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야기를 쓰는 나에겐 미궁의 미스터리들은 항상 궁금증과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매력적인 남성


예수는 당시 가장 신박한 예언자이자 선지자였다. 수많은 군중이 그를 추종했다. 그중에는 상당 수의 여성들도 존재했을 것이다. 예수라는 남성은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봤을 때 상당히 매력적인 남자였을 것이다. 인물은 둘째 치고라도 뛰어난 언변과 기적을 행하는 모습 그리고 선한 마음씨는 뭇 여성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했을 것이다. 또한 몸을 많이 써야 하는 목수일을 했던 만큼 그는 건장한 신체를 가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중에서

지금은 첨단화되고 편리한 전동 공구들이 많아 목수일이 그나마 편해졌지만 당시에는 모든 일을 손 공구로 그것도 얼마 없는 공구들로 해야 했으니 몸이 얼마나 고되었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나도 목수일을 하기 때문에 십분 공감할 수 있다. 그냥 손톱으로는 나무 하나 자르는 것도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동 톱으로 1~2초면 자른다.) 그래서일까 과거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들이 묘사한 회화나 조각에서 예수는 자주 근육질의 몸으로 묘사된다. (십자가에 못 박힐 당시에는 오랜 고문과 금식으로 인해 몸이 많이 야위게 묘사된 것뿐이다)


남성이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성을 찾는 것처럼 여성 또한 건장하고 매력적인 남성의 유전자를 받아들이려는 원초적 본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예수를 유혹하는 여자가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예수 또한 인간의 육체와 본성을 그대로 가지고 태어난 존재였다. 비록 그가 성자로 왔다 하더라도 인간의 육체를 가진 이상 이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먹고 자고 싸고 하는 모든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마태복음 27:46] -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듯한 마지막 말을 던지기도 한다. 그건 예수 또한 인간의 육체와 본성 속에서 받은 그 수많은 인내와 고통에 대한 마지막 하소연이었을지 모른다. 이 부분이 예수 또한 신의 속성을 지녔지만 인간의 본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미하는 중요한 구절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럼 예수는 정말 한 남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하나님이 내린 성욕에 대해서 죽는 날까지 금욕하며 참아내었던 것일까?


[다음 편에 계속...]

미술관에 간 화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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