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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Mar 28. 2023

모호하고 다양한 천국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당신은 누군가를 꽃 피어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의 꽃이 피어나도록 돕는 것이지 그 사람에게서 당신의 꽃이 피어나게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 책 속 인용문 -


나이가 들어가면서 꽃이 좋아진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그 자리에 서서 요리조리 사진을 찍고 꽃을 관찰하며 향기를 맡는다. 꽃마다 모두 저마다의 색깔과 향기를 가지고 있다. 자연은 이처럼 다채로운 꽃들이 피어나서 아름다워지는데  왜 우리 인간 세상은 이런 다양한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와 나는 다른 꽃으로 태어났는데 너는 나와 같은 꽃이어야만 같이 할 수 있는 것일까? 한 가지 꽃만 있는 꽃다발보다는 여러 가지 꽃이 조화를 이룬 꽃다발이 더 좋지 않은가?

Various flowers in Australia


다른 꽃


너와 나는 다르다. 나는 물 위에 핀 연꽃이고 너는 산속 바위틈에 핀 야생화이다. 누군가는 잘 가꾸어진 화단에 핀 맨드라미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저마다 자라야 할 환경과 식생이 다를 수밖에 없다.

물 위에서 야생화가 피지 않고 산속 바위틈에서 연꽃이 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다들 비슷한 환경 속에서 길러지고 자라난다. 연꽃으로 태어나고 야생화로 태어났지만 모두 잘 가꾸어진 화단에서 키우려 한다. 다행히 화단에서 자라날 수 있는 꽃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씨앗은 꽃을 피우지 못하고 화단에서 고통받으며 썩어 없어질 것이다.

물 위의 연꽃과 바위 틈 야생화

소명


내가 신의 존재를 믿기 시작하면서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 인간은 모두 저마다 자신의 소명의 길이 있을 수 있겠다는 것이다. 그럼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한결 쉬워진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 속에 자신 노력과 의지를 통해 원하는 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신은 시공간의 밖에서 이미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 시공간(과거, 현재, 미래)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지만 인간은 시공간 안에 갇혀 이것을 한 번에 볼 수 없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누어 다르게 인지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 씨앗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만 우리는 신의 의도와는 다른 시공간에 갇혀 자신의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뿐이라 생각한다. 연꽃으로 태어났는데... 잘 가꾸어진 화단으로 가져와 심었다. 연꽃은 절대로 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자신만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로 태어나 누군가의 보살핌 속에 싹을 틔워야만 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때론 이 보살핌이라고 여겨지는 행위가 우리를 정체성을 찾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왜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환경이 원하는 꽃과 자신 안에 품고 있는 씨앗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 [정글북] 중에서

[정글북] 동화 속 스토리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늑대들 속에서 키워지고 자라났기에 자신이 인간인 줄 알지 못한다. 인간이지만 늑대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우리 인간 또한 공동체라는 곳에 속해져서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공동체


문제는 동물 집단은 그렇게 공동체를 형성해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고 유리하지만 인간은 좀 상황이 다르다.


인간 공동체는 저마다 그들만의 고유하고 비슷한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이 공통의 가치관(혹은 신앙)이 그들의 공동체를 유지하고 지속해 나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인간은 사유하는 동물이다. 세상에 수많은 철학과 사상 그리고 종교가 탄생한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각자는 서로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자들끼리 뭉쳐서 공동체를 이루며 다른 가치관을 가진 자들과 맞서며 대결해 왔다. 이런 수많은 가치관들로 인간은 역사 속에서 수많은 분쟁과 갈등을 겪어왔다.


"돈 앞에 장사 없다"


어쩌면 이런 수많은 가치들을 벗어난 유일한 것이 '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돈 앞에서는 자신만의 가치관, 신앙을 내세우지 않는 것을 보면 세상에서 '돈'처럼 보편적 가치를 지는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지 않는 인간 세상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이다. 돈은 싫어하는 것도 하게 하고 나의 신념과 주장도 굽히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돈이 어쩌면 많은 분쟁과 갈등을 잠재워 왔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모두가 다른 꽃


원숭이 어미가 매화꽃을 피운다면 원숭이의 새끼들도 같은 매화꽃을 피운다. 하지만 인간은 부모가 매화꽃이라고 자녀도 매화꽃으로 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피운 꽃을 자녀도 똑같이 피울 수 없다. 부모는 연꽃으로 피어났지만 자녀는 들국화로 피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은 동물과 달리 저마다의 소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이 심어준 타고난 소명이 아닌 세상이 정해준 운명의 길을 가기에 고통받는다. 문제는 부모와 사회와 공동체는 개인이 타고난 씨앗은 무시한 채 부모과 원하고 사회와 공동체가 필요한 꽃으로 만들고 피어나도록 한다.


"넌 우리가 이렇게 관심과 사랑을 쏟는데 왜 피어나지 못하는 거니?"


그렇기에 우리의 삶이 고통받는 것이다. 누군가는 화단에 활짝 핀 장미꽃이 되어 모두에게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으며 자라나지만 누군가는 화단에 뿌려져 싹도 제대로 피지 못하고 썩어간다. 그러면서 물을 주고 거름을 주는 자들은 꽃피우지 못하는 우리를 비난하고 질책한다. 왜 꽃 피우지 못하냐면서...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 자라왔듯이 또 다른 누군가를 그가 어떤 씨앗인지 알지도 못한 채 그들을 내가 생각하는 곳으로 인도하며 가르치며 그것이 옳고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내가 걸어온 길로 안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길, 즉 그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수 있는 곳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뿐이다. 나와 그가 다른 꽃, 다른 씨앗임을 알아야 한다. 누군가는 물 위에서 누군가는 바위틈에서 꽃을 피운다.


"그대가 사랑하는 것이 그대를 끌어당길 것이다. 그것을 말없이 따라가라. 그대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 책 속 인용문 -


아직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고 끌리는 것이 무엇인지 찾지 못했을 뿐이다. 어쩌면 인생의 절반은 이 길을 찾는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이 길 위를 걸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또한 인생의 중반부에 와서 이제야 그 길 찾은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이제 이 길을 따라 걸어갈 일만 남았다.


모호함과 다양함


삶은 모호함과 다양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항상 이 모호함을 명확하게 하려 하고 다양함을 보편화시키려고 한다. 끊임없이 모호함을 없애고 다양성을 짓밟으며 그것이 발전이고 화합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다른 누군가와 소통할 수 없는 그 자신만의 비밀과 고독을 가지고 있기에 독립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가톨릭 수도사,  토머스 머튼 -


진달래와 개나리처럼 어떤 꽃은 떼를 지어 군집하고 어떤 꽃은 바위틈에 혹은 길가나 들에 홀로 피어있기도 하다. 떼를 지어 피어있는 웅장함과 화려함이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도 하지만 산속 바위틈에 혹은 길가에 홀로 핀 꽃이 지나가는 등산객과 행인들의 눈길을 끌어당길 수도 있다. 군집한 꽃들은 흥분과 환희를 가져다주지만 홀로 핀 꽃은 미소와 여운을 가져다준다.


"사람들에게서 잠시 떨어져 있을 줄 아는 사람, 혼자 있는 외로움을 잘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혼자 있는 게 편하지만 결국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 외로움을 충분히 즐기고 나선 다시 사람들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기꺼이 함께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고 싶다."

 

        - 하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중에서 -


삶이 참 아이러니 한 것이 우리는 세상과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때론 억압받고 힘들어하면서도 이 두 가지를 끝까지 부여잡고 가야 한다. 인간은 홀로 떨어져서도 살 수 없고 그렇다고 집단에 섞여 자신의 색깔을 없애고 살아가는 것 또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어쩌면 삶은 이런 이런 모호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태어난 인간이 스스로가 명확하고 보편화되어 가려하면서 스스로 고통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색깔과 향기로 가득 찬 세상을 상상해 보라. 처음엔 그곳이 환상적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세상은 지옥이 될 것이다. 다채로운 색깔과 향기가 뒤섞인 모호한 세상은 어지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새롭다.


그곳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우리는 그 천국을 만드는 또 다른 하나의 꽃으로 피어나야 하지 않을까

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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