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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Mar 06. 2023

작가란...

[책들의 부엌] 김지혜

"나는 내 인생이 경계선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 책 속 인용문 -


오랜만에 감성 충만한 소설을 읽었다. 읽고 난 후 가장 인상에 남는 구절이다. 그런데 이 구절은 소설의 내용이 아니다. 책의 마지막에 작가의 말이다. 작가의 삶이 나의 삶과 적잖이 닮아있다는 생각에 소설보다 작가의 말에 더욱 인상이 간다.

[책들의 부엌]

오랜 시간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던 몸과 마음은 그곳에서 벗어나는 순간 알 수 없는 공허함과 불안감이 엄습한다. 길들여진 가축이 울타리 밖에서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주인 잃은 개 마냥 불안해 떨었다. 더 이상 먹이를 주는 사람도 안전한 울타리도 없었다. 스스로 먹이를 찾아야 하고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작가도 나와 같이 오랜 시간 직장 생활을 한 후 퇴사와 함께 불안한 시기가 찾아왔다. 몸은 직장을 떠났지만 정신은 완전히 떠나지 못했다. 몸과 정신은 분리되어 울타리 경계에 머물러 있다. 이곳도 저곳도 아닌 곳에 불안하게 서 있었다.


"닥치는 대로 소설책과 에세이를 읽기 시작했다"

                                                              

      - 책 속 인용문 -


이 공허함과 불안함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몰랐다. 모두가 출근한 오전 한적한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벌지 않는 몸이 쓰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에 그나마 가장 유익한 것이 그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나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철학, 과학, 인문학, 소설, 경제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집히는 데로 읽어 내려갔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여태껏 살아온 삶이 나를 속이고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찾아온 느낌이었다.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설명할 수 없는 의구심과 궁금증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뭔가를 쓰고 싶은 갈증이라기보다, 쓰지 않으면 해소되지 않는 갈증에 시달렸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 책 속 인용문 -


정리되지 않은 의구심과 수많은 상념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정리가 필요했다. 쓰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떠오르는 상념들과 과거의 기억 그리고 새로운 상상들을 블로그에 남기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글을 쓰는 삶이 시작되었다. 보는 것과 말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던 내가 읽고 쓰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보는 것과 말하는 것은 대상이 필요했지만 읽고 쓰는 것은 혼자여야만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딜 수 있게 됐다. 살아온 대부분의 시간을 관계 속에만 머물며 사람들을 바라보고 말하는데 익숙해져 혼자 있는 시간이 어색했던 나였다. 읽고 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혼자 있는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혼자 읽고 쓰고 생각하는 시간 속에서 내가 왜 그렇게 관계 속에서 힘들어했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동네의 작은 카페에 앉아 아침에 책을 읽고 소설을 쓰는 일이 놀랍도록 즐거웠다."


                                               - 책 속 인용문 -


지구 반대편의 새로운 세상에 떨어졌다. 드넓고 한적한 공간은 나의 생각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 같았다. 소설을 읽다가 나도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이야기와 생각을 계속 엿보기만 했다. 그 생각들을 나의 생각과 버무린 독후감만 쓰다가 이제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창조주가 되어 아담과 이브를 만들듯이 글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을 만들고 그들이 머무는 시공간을 창조했다. 내가 빛이 되어 무대 위의 그들을 비추며 그들의 삶을 관조했다. 그들의 삶 속에 사랑과 갈등과 사건들을 만들었다. 그 속에서 누군가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아프게도 때론 죽이기도 했다. 때로는 카페에서, 때로는 공원에서, 때로는 비 오는 날 차 안에 앉아서 소설 속에 머무는 것이 놀랍도록 즐거웠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힘들고 고된 현실의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찾았던 유일한 탈출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렇게 소설을 쓰고 있다 보면 내 입가에 미소가 감돌고 때로는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 감성적이었던 사람이었던가? 한국에서는 다들 나를 차갑고 날카로운 송곳 같은 사람으로 바라봤었다. 내가 상처받기 싫어서 누군가에게 먼저 상처 주는 말을 던지곤 했다. 난 그게 나를 지키고 강해지는 거라 생각했다.


"첫 소설을 쓰면서, 나는 진심으로 행복했다."


                                                    - 책 속 인용문 -


블로그에 소설을 쓰면서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한두 명씩 나의 소설을 찾아오는 단골 독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를 위해 쓰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독자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는 이상하게도 써야만 될 것 같은 무언의 약속 같은 것이 생겨났다.


'글은 작가에서 시작하지만 끝나는 것은 독자에서다'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내가 이해하고 공감한 바를 독자에게 쉽게 전달하고 거기에 새로운 것(상상)을 더하는 글을 쓰고자 고심했다. 처음에는 진정성만 담긴 두서없고 맥락 없는 글에서 이제는 진정성에 두서와 맥락을 담아 독자를 생각하는 글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그렇다고 독자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아니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게 맞겠다) 가끔씩 나의 글에 불쾌함과 불만을 드러내는 독자도 있었다. 나는 세상 모든 독자를 만족시킬 글을 쓸 재주도 없을뿐더러 그런 글을 쓰고 싶지도 않다. 글은 나의 문체이고 나의 색깔이다. 글을 쓰는 건 나의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이지 모든 색을 가진 완벽한 무지개가 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몇 명이라도 나의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독자가 있기만 하면 된다.


재작년쯤 내가 썼던 첫 소설을 퇴고하면서 공모전에 게재했다. 비록 고배의 잔을 마시긴 했지만 그때 소설을 쓰면서 스릴 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때는 정말 등단 작가가 되어 이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다. 섣부른 기대는 실망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제는 글을 쓰는 것이 그냥 일상이 되었다.


작가란...


작가(作家)라는 단어는 지을 작(作)에 집 가(家) 자를 써서 집을 짓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고 보면 글짓는 목수인 나의 필명이랑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좋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좋은 터를 찾고 설계(그림)를 하고 기초를 다지고 뼈대를 세우며 살을 붙이고 마지막에 기교를 넣어 외관을 완성하는 것처럼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한 순간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작가는 등단을 하고 작품을 내야 작가가 되는 거라고들 말한다. 난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작가란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직업 같은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머리가 아닌 손가락으로 끊임없이 생각하는 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도 소설을 읽고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며 한 편의 독후감(실제 소설 관련 독후감은 공모전 출품으로 추후 게재 예정)을 남긴다. 우리는 모두가 자신만의 특별한 집을 가지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물론 집이라고 생각하면 다들 현실의 집을 생각하겠지만 자신만의 상상 속의 집을 짓고 사는 자들도 있다.


현실에서 자신만의 특별하고 온전한 집을 짓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에 자신만의 상상의 집을 짓는 자들이 있다.


그게 바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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