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를 기억하는가? 1988년 서울올림픽이 한국을 축제 분위기로 무르익게 만들던 그때, 그 흥에 기름을 붓는 노래가 있었으니 조용필의 [모나리자]이다. 나는 이제 갓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였지만 그 노래의 강렬했던 리듬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 [모나리자]가 30년이 지난 뒤에 또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장 유명한 그림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을 떠올리라고 하면 무슨 그림이 떠오르는가? 물론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나리자]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그림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너무나도 많은 이슈와 미스터리를 품고 있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혹자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은 모나리자 보관소라고 할 만큼 이 그림의 가치와 비중은 너무도 크다.
Leonardo da Vinci (1452~1519)
유명한 천재
[모나리자]는 그 그림 자체도 유명하지만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천재이다. 그는 2007년 세계 최고의 과학 저널 [네이처 Nature]에서 인류 역사를 바꾼 10명의 천재 중 1위에 선정되었다. 과학저널에서 그를 최고의 천재로 뽑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이력을 검색해 보면 알겠지만 역사상 레오나르도 다빈치만큼 많은 직업을 가진 인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중에서 화가라는 직업을 일 순위로 볼 수 있지만 그는 인간이 관심을 가지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인물이다. 다빈치라는 인물을 통해 세상의 모든 학문은 연결되어 있다는 나의 믿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생아로 태어난 제대로 된 교육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그런 그는 정말 자연에서 모든 것을 배우며 터득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렇기에 그의 천재성이 더욱 돋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Mona Lisa
"왠지 불안해 보이고 음란하며 쾌락적이고 열정적이지만 슬프게도 보인다"
- 프랑스 문학가 [이폴리트 텐느] -
[모나리자]를 가만히 드려다 보고 있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위에 이폴리트 텐느가 말한 것처럼 그림 속 인물의 표정에 너무 많은 것이 담겨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한 마디로 너무 오묘한 기분이 들게 한다. 모나리자의 얼굴을 한 참 드려다 보고 있으면 왠지 이게 여자인지 남자인지(눈썹을 없애서 그런가?) 헷갈린다. 온화하면서 무표정한 듯, 웃고 있지만 어딘가 슬픈듯,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면 서양적인 인물의 차림세에 배경은 또 동양의 산수화 같은 오묘함을 가지고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모호함의 진수를 보여주는 그림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전체적으로 윤곽이 뚜렷하지 않아서 신비로운 느낌을 더 한다.
동서양의 융합?!
[모나리자]의 이 오묘한 미소는 다빈치의 여러 인물화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특징이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절제된 미소는 사람으로 하여금 신비함을 불러일으키고 왠지 모를 경건함까지 더한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이 미소가 친근하다.
이건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보았던 미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미소는 불교의 부처상와 보살상에서도 자주 드러난다. 만약 모나리자가 눈을 지그시 감는다면? 아마 보살상과 흡사할 거란 생각은 나만 드는 것일까? 서양은 눈을 뜨고 있고 동양은 눈을 감고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 그 미소는 비슷하게 보이지 않은가? 서양은 외적인 것 보이는 것에 집중하고 동양은 내적인 것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눈으로 세상(지식, 과학)을 이해하려 하고 마음으로 세상(지혜, 인문)을 보는 동서양의 철학이 담겨 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다빈치의 그림은 동서양을 섞어놓은 느낌이다. 배경은 우리 조상들이 그리던 무릉도원의 산수화 같은 풍경이고 인물의 복장과 차림새는 서양의 느낌이며 인물의 얼굴과 표정에는 동서양이 겹쳐져(Overlap)되어 있다. 그래서 동서양 모두가 봐도 거부감이 전혀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다
다빈치는 이 오묘한 화법을 가장 먼저 터득한 화가였다. 그는 르네상스 화가로선 처음으로 '공기원근법'이라는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사용했다. '연기와 같은'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에서 온 이 단어는 다빈치의 그림을 신비하게 만드는 아주 과학적인 기법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전까지 크고 작음으로서 원근을 표현하는데 그쳤던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그림 속에 공기를 표현하면서 원근감과 오묘함을 드러냈다. 우리는 안개 낀 이른 아침 들판에 나가면 안갯 속에 있는 수분 입자가 공기 중 햇볕에 난반사되면서 가까이 있는 것과 멀리 있는 것의 선명도에 차이를 통해 원근감을 느끼게 된다. 다빈치는 이것을 그림 속에 구현해 낸 첫 번째 인물이었다. 멀리 갈수록 공기입자의 늘어나는 질량과 밀도에 의해 희미해지는 효과를 그림 속에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오묘한 느낌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서양에선 눈에 보이는 것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이 대세였던 시기에 동양화에서 보이는 꿈속 무릉도원 산수화의 희미한 풍경까지 한 곳에 모아놓은 것이다.
산소까지 그리다
완전히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만 의식하지 못했던 것까지 그려낸 것이다. 이건 과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공기 입자는 존재하는 물질이다. 질량과 부피를 가지고 있다. 다만 너무 작아서 인간이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공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소와 질소 원자는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공기 중에 분명히 존재한다. 이 보이지 않는 것들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지만 정작 그것을 볼 수는 없다. 다빈치는 이 원자들의 세계까지 보고 생각한 것이다. 인간의 눈에 지각되지 않는 물질까지 그림 속에 그려 넣으려고 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보이게 되면 신비롭고 경의롭고 오묘함을 선사한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의 힘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요즘 즐겨 듣는 노래이다. 우리는 신기하고 묘한 것에 끌리게 되어 있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가끔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게 이런 묘한 끌림을 경험하곤 한다. 왠지 모르게 계속 신경이 쓰인다. 마치 [모나리자]를 본 것처럼 처음 봤는데 왠지 낯설지 않고 알 수 없는 오묘하고 신비한 기분에 휩싸이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물론 그것이 느낌에서 그치는 경우도 있고 그 느낌이 궁금증과 행동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고 그 느낌이 깨지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건 인간은 그런 오묘함에 끌린다는 것이다.
상상이 상상을 부른다
이건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인간은 궁금증(호기심)이라는 것을 가진 덕분에 이런 눈부신 발전을 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오묘함과 신비함을 통해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이는 세상에는 궁금증이 있을 수 없다. 안갯속에 휩싸인 듯 보일 듯 말듯할 때 그 미지의 세계엔 뭐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고 조금씩 다가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묘하고 신기한 기분에는 그것들을 풀 수 있는 단서(실마리)가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이 묘하고 신기한 기분이 지속될 수 없다.
어떤 한 장면(그림), 한 사건, 한 문장을 통해서 생겨난 궁금증이 상상을 이어가는 실마리가 된다. 우리는 모든 것이 담긴 영상을 통해서는 상상을 하기가 쉽지 않다. 여운과 공백이 없기 때문이다. 상상이 피어날 틈이 없다. 그래서 영상이 난무하는 세상에 사는 자는 상상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멈출 줄 모르는 상상력의 소유자였다. 그의 세상을 향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그를 세계 최고의 천재라는 찬사를 붙여 주었다. 그는 너무도 오묘하고 신비한 한 장의 인물화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물론 다른 그림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수많은 이슈와 미스터리를 만들어 냈다. (이 부분도 나중에 다른 글을 통해 다뤄볼까 한다.)
그는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되는 것 마냥 자신의 미술품 곳곳에 여러가지 수수께끼를 숨겨놓고 떠난 것 같다. 지금 내가 이렇게 그에 관한 한 편의 글을 쓰게 된 것도 또한 그가 의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