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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Feb 07. 2023

생존을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 김영하의 독후감을 듣고...

"삶은 생존하는 것이다."

                                       - 글짓는 목수 -


세월이 갈수록 삶의 중력은 무게를 더해간다. 이 무게를 버티는 것이 삶이다. 하지만 무작정 버틸 수는 없다. 우리가 이 무겁고 힘겨운 삶을 버티기 위해선 필요한 세 가지가 있다. 삶이 죽음으로 향해가는 공포가 아닌 새로운 삶으로 향해가는 희망이 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유튜브의 맞춤형 AI는 내가 보고 싶고 알고 싶고 관심 있는 사람 혹은 주제를 계속 보여준다. 우연히 첫 페이지에 뜬 '김영하' 작가의 모습이 나의 클릭을 유도했다. 나는 김영하 작가의 문체를 좋아한다.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거슬림이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 필터가 필요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나는 책을 읽으면 보통 그 저자의 생각을 내 생각의 필터로 걸러서 생각하고 정리한다. 김영하 작가의 글은 읽다 보면 필터 없이 흡수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글의 내용을 떠나서 그의 문체는 나와 잘 맞는 것 같다.  

알쓸인잡

그가 출연한 [알쓸인잡]이라는 프로그램은 몇 명의 패널(각각의 분야, 예술, 문학, 과학, 음악등)들이 출연해 한 출연자가 던지는 이야기나 주제에 대해서 토론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나마 최근에 본 교양예능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괜찮았던 것 같다.


나 또한 과거 한국에서 독서 토론을 했던 경험이 있다. 매주 한 권의 책을 선정해 책 속의 주제로 여러 사람이 각기 다른 의견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토론은 정말 의미 있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한 가지를 봐도 생각은 천차만별인 것이 인간이다. 우리나라가 분열과 혐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하는 것은 어쩌면 이 토론 문화의 부재가 낳은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만 옳다는 생각이 가장 위험하다. 그런 생각이 독재와 전체주의의를 만들어 간다. 일치시킨 생각과 방향은 강한 추진력을 발휘하지만 오래갈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 세상은 복잡 다양함으로 향하고 그것은 진리이다.


자연의 이치는 복잡 다양


또한 이건 자연의 이치이다. 우주는 정돈에서 혼돈으로(방안은 청소하고 정리해도 계속 어질러지는), 개체는 다원화하는 방향 진화했고(종은 같지만 수많은 종류의 개와 고양이, 딱정벌레등), 질서와 체계는 단순에서 복잡으로(법과 제도는 갈수록 많아지고 복잡해진다, 십계명에서 시작한 율법은 이제 셀 수 조차 없이 많아졌다.) 관계 또한 시간이 갈수록 단순한 감정에서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변해간다. 이걸 좀 유식하게 표현하면 세상 만물은 모두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흘러감을 의미한다. 이건 과학의 빅뱅 이론과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 하나의 점에서 시작한 우주는 끝없이 확장하고 퍼져나가며 그 가속도는 계속 증가한다.




또 이야기가 옆으로 샜다.


그럼 이런 복잡 다양한 인간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을 어떡하면 좀 더 조화롭고 즐겁게 버틸 수 있을까? 그 답을 김영하가 어니스트 섀클턴(E.H. Shackleton)의 탐험 전기를 쓴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라는 책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알게 되었다. 섀클턴은 영국의 남극 탐험가이다. 그는 남극을 정복한 사람이 아니다. 그가 남극점에 도착했을 땐 이미 그곳에 노르웨이의 깃발이 꽂혀있었다. 하지만 그는 남극을 정복한 자보다 더 유명한 인물로 평가된다. 왜일까? 섀클턴은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하지만 그것마저도 실패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는 그 실패를 통해 더 큰 일을 이뤄낸다.

남극 대륙

"그럼 나는 남극대륙을 처음으로 횡단하는 자가 되겠어!"


이 도전은 언뜻 보기에 뭐 그리 대단할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남극 대륙은 미국의 1.35배에 달하는 크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의미는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극한(寒)의 추위 속에서 그 넓은 대륙을 횡단한다는 것은 정말 극한(限)의 도전이었다. 그들은 남극을 횡단하던 도중 결국 부빙들에 의해 배가 고립되고 조여 오는 빙하에 의해 배가 부서졌다. 그들은 빙하 위에서 보조선(Life boat)을 끌고 남극을 벗어나야 했다.

Ernest Shackleton (1874~1922)

섀클턴은 극한의 634일 동안 낙오자 한 명 없이 27명의 선원 전원을 귀환시킨다. 그는 결국 남극 횡단에 실패했지만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남극대륙 탈출의 기적을 이뤄냈다.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세 가지를 잘 알고 있었던 위대한 리더 섀클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버리지 않은 세 가지


섀클턴은 배가 난파되고 도보로 남극을 횡단해야 했을 때, 대원들 앞에서 자신이 가장이 가장 아끼는 순금으로 된 담뱃갑을 바다에 던져 버렸다. 대원들은 모두 자신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버리고 필요한 것들만 챙겨 짐을 최소화한다. 하지만 섀클턴은 음악기기(벤조기타, 축음기)와 사진기, 일기장을 챙겼다.

축음기

음악 (향수 - 고향, 가족, 연인과의)


황량한 빙하 위에서 춥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행군을 버티게 해 준 것은 음악이었다. 그들은 고향에서 자주 들었던 음악을 들으며 향수에 젖어들었고 살아야 할 힘을 얻었다. 음악은 인간에게 있어서 연상(聯想)을 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 또한 음악이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이 귀 속으로 울려 퍼지면서 떠오르지 않던 상념들과 상상이 샘솟기 시작한다.


음악은 인간의 감수성을 자극하고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음악 차체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라서 일까? 이 보이지 않는 음악이라는 존재는 보이지 않는 힘을 가져다준다. 군대에서도 군악대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조난당한 27명의 대원 중의 누군가는 항상 그들에게 고향에서 즐겨 듣던 음악을 들려주었을 것이다. 섀클턴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음악이 가져다 줄 힘을...

사진기

이미지 (사진, 미술, 기록)


그들의 고난의 행군은 매 순간 사진으로 기록되었다. 우리는 자주 그런 경험을 한다. 카메라 앞에 서면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말이다. 누군가가 나를 찍고 있다면 나는 그것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건 현재의 자신을 의식하는, 즉 자신을 들려다 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사진기의 앵글이 나를 향하면 힘들다가도 웃게 된다. 찡그리고 못생기고 고통스러운 모습을 남기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다. 선원들은 옆에서 사진사가 사진을 찍을 때마다 남겨질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 기록을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당시는 찍기만 했지 인화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기록이 이곳에서 얼어버리게 놔둘 수 없었다.


글 (일기, 문학, 기록)

[알쓸인잡] 중에서

"우리가 힘든 순간에도 일기를 쓰면 힘이 생기거든요"

                                                  - 김영하 작가 -


섀클턴은 대원 모두에게 일기를 쓰라고 지시했다. 그들은 밤이 찾아들고 행군이 멈추면 음악을 들으며 일기를 썼을 것이다.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현재의 감정과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면서 괴로움을 떨쳐내고 미래를 생각했을 것이다. 일기를 씀으로써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것이다. 그 글이 어떤 내용을 포함하고 있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만약 힘든 상황에 대한 분노와 공포의 글이라면 그것들을 글로서 떨쳐버리는 과정이었고 사랑과 감사의 글이라면 자기 긍정의 즐거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기록을 남긴다는 건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이죠"


                                               - 이호 법의학 교수 -


 [죽음의 수용소]를 쓴 빅터 프랭크 또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음의 엄습하는 나날을 일기를 쓰며 버텨냈다. 그 일기가 '로고테라피(Logotherapy)'라는 새로운 정신분석학을 창조해 냈다.


나 또한 이곳 호주에서 코로나19 락다운으로 격리된 시간 매일 방 안에 갇혀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 글을 쓰지 않았다면 아마 그 시간을 버티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알쓸인잡] 중에서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알았던 사람이었던 거죠"


                                                      - 김영하 작가 -


섀클턴은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서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힘듦 속에서도 그것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바로 예술이었던 것이다. 듣고 보고 쓰는 것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희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던 방향(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술이 지향하는 것이고 인간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인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경이롭고 아름다운 기적은 잘 먹고 잘 살 때가 아니라 고통과 시련을 견뎌낸 순간에 찾아온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인 것이다.


예술(음악, 미술, 문학)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공원에서 Centenial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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