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그때 얼마 동안 레스토랑에 일을 했던 적이 있다. 워킹과 학생으로 온 20대의 청년들과 회식자리에서 내가 던질 질문에 한 어린 청년이 알려준 MBTI는 기존에 내가 알던 4가지 성격 유형에서 16가지로 늘어나 있었다. 물론 세상에 그 많은 사람들은 16가지 유형으로 나눈다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4가지는 좀 심하지 않나 하고 항상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인간은 어떻게든 자신과 상대방을 좀 더 빨리 알아가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해 그것을 유형화시키고 보편화시켜 나가는 듯 보인다. 그리고 그 분석 방법은 갈수록 정교함을 더해간다. 수많은 세월 쌓여온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의 빅데이터가 이제는 사람을 더욱 세분화시켜서 분류하기 시작했다. 언젠간 이 유형은 다시 32가지, 64, 128...로 계속 세분화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럼 언젠간 인간도 개나 고양이처럼 수많은 품종으로 구분되지 않을까?
MBTI (Myers Briggs Type Indicator)란...
이 성격유형 분석은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의 대가 카를 구스타프 융의 연구를 토대로 만들어진 지표이다. 나름 오랜 시간 축적된 데이터와 통계자료를 근거로 했기에 나름 과학적인 분석법이라 말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네 가지의 큰 지표를 통해 인간의 성향을 분석한다. 아래 도표가 한눈에 보기 쉽게 보여주고 있다.
MBTI 구성요소
첫 번째는 내외향성이다.
함께 있는 시간과 혼자 있는 시간 중 무엇을 선호하느냐에 대한 물음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건 극과 극으로 나누어지기보다는 둘 다 포함하지만 어느 쪽을 좀 더 선호하느냐의 차이로 드러날 수도 있다. 또한 시기와 환경에 따라서 함께 하는 시간과 홀로 되는 시간 비중이 바뀌기도 한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완전히 고립되긴 어렵다. 물론 요즘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은둔형 외톨이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 누구도 그런 삶을 원하진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함께 하는 시간과 혼자 있는 시간의 비중이 다를 뿐 한 곳에만 계속 머물 수 없다.
누군가는 함께 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이 드러나고 그 속에서 에너지를 얻고 활력을 얻는 사람이 있는 반면 혼자 잇는 환경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에너지를 얻고 생기를 얻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아 마지막에 다시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완전 직관형이다
두 번째는 감각과 직관이다.
이건 사물과 사건을 인지하는 데 있어서 사실과 증거에 따라 판단하는 쪽과 추측과 추론 혹은 상상을 통해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좀 더 디테일하게 표현하면 감각형은 주로 오감(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으로 들어온 객관적 사실 정보에 의존하는 편이고 직관형은 생각(느낌, 통찰, 무의식, 상상, 추리)등의 주관적인 추론정보에 의존하는 편이다.
나는 완전한 직관형에 가깝다. 그래서 다소 엉뚱하고 신기한 상상들을 많이 한다. 이 상상력이 내가 글을 쓰는 원동력이며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사실 그동안 이 영역이 표출되지 않아 많이 힘들어했던 것 같다. 이제는 이런 생각들을 내 마음대로 표현하는 것이 나의 취미가 되었다. 밥벌이도 되면 좋으련만...
세 번째는 사고와 감정이다.
이건 다르게 얘기하면 이성(理性)적인 사람과 감성(感性)적인 사람으로 구분하면 쉽게 이해될 듯하다. 사람과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지에 대한 물음이라고 볼 수 있다. 이성적인 사람은 울고 있는 사람에게 왜 울고 있느냐 무슨 일이 있느냐를 먼저 확인하고 조치를 취하려 할 것이고 감성적인 사람은 같이 슬퍼하며 위로의 말을 먼저 건넬 것이다. 문제해결과 이해공감 중 무엇이 우선이고 중요한가에 대한 물음이다.
결과에서 보듯이 나는 사실 이 두 영역에서 갈등을 많이 하는 편이다. 내가 쓴 글에는 유독 이 '이성과 감성'에 관한 글 <이성과 감성사이>이 많다. 그리고 조회수도 가장 높다. 매일 일상에서 가장 많이 하는 고민 또한 이 둘 사이에서의 고민이다. 내가 칼럼과 소설 사이에서 매일 고민하며 글을 쓰는 것이 그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칼럼도 아니고 소설도 그렇다고 에세이도 아닌 정체성이 애매한 짬뽕퓨전 글들이 적지 않다. 이성적인 글을 쓰고 있으면 감성적인 글이 못내 아쉽고 감성적인 글을 쓰고 있으면 이성이 계속 간섭한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우찌해야 하나... 뭐 요즘은 조금 감성 쪽으로 기울어가는 듯하다.
네 번째는 판단과 인식이다.
사실 이 말이 더 헷갈려서 추가적으로 찾아본 정보를 내가 이해한 것은 이러하다. 이건 일종의 생활양식으로 볼 수 있다. 판단형은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환경과 상황을 선호하고 인식형은 즉흥적이고 다양하고 다이내믹한 환경과 상황을 선호한다. 전자는 미리 준비하고 행동하는 스타일이라면 후자는 임기응변에 강한 스타일인 것이다.
나는 완전히 응기응변형에 가깝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은 적다. 완전히 없을 수는 없겠지만 남들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것 같긴 하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더 크다. 새로운 상황과 환경에서 활력을 얻는다. 하지만 반복되고 틀에 박힌 상황과 환경을 잘 견디지 못하는 편이다. 그러고 보니 과거 내가 다닌 직장은 대부분 보수적이고 틀에 박힌 환경이었기 때문에 그렇게도 힘들었던 모양이다.
활동가형 인간 (ENFP) -> 중재자형 인간 (INFP)
어쨌든 다시 서두의 얘기로 돌아와서 그 청년이 알려준 MBTI 질문사항들을 20여 분에 걸쳐 나름 진지하게 답변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나온 나의 유형은 ENFP였다. 외향적이고 직관적이며 감성적이고 인식형인 인간으로 분류되었다. 그리고 유형설명 마지막에 나온 대표적인 인물로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로빈윌리암스, RM(김남준)등이 있었다. 내가 과연? 그들과 비슷한가? 성격유형분석을 읽어보니 좋은 말을 많이 적어놓아서인지 나랑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쓴소리보다는 달콤한 말이 더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나쁘지 않다.
그리고 시간(3년)이 많이 흘렀다. 그리고 며칠 전 우연히 카페에 앉아 조용히 혼자 이 테스트를 다시 진행했다. 그리고 나온 결과는 이전과는 다른 결과였다. INFP가 나왔다.
ENFP (Campaigner, 활동가) -> INFP (Mediator, 중재자)
나는 외향적인 척하는 내향형?!
다른 것에서는 성향의 변화가 없었지만 첫 번째 내외향성이 바뀌었다. 왤까? 한참을 생각해 봤다. 외향적이었던 성향이 왜 내향적으로 바뀌었을까? 그리고 생각이 깊어지자 그 이유가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며 손가락을 통해 보이고 있었다.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나는 실제로 외향적인 성향이 아니었다. 왜소한 체격에 항상 눈에 잘 띄지 않는 존재감 없는 아이였다. 알다시피 과거에는 자고로 남자라면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말 잘하고 리더십 있는 사람이 가장 모범적이고 이상적인 남자상이었다. 그래서 남자에겐 내성적인 성격이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남자라는 이유로 내향성을 죽이고 외향성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 남자로서 성공하는 가장 기본적인 수순처럼 여겨졌다.
나도 그 시절의 시대 조류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대학시절 때부터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려 불편한 관계까지도 다 감수하며 웃고 떠들고 돌아다니려 노력했다. 남들 앞에 서는 자신감을 기르기 위해 춤도 배웠다. 그런 훈련이 시간이 가면서 습관이 되어 내가 정말 외향적인 사람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하기 싫은 것도 억지로 계속하다 보면 그게 자신의 모습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사회에 나와서도 그런 성향을 지키고자 직장을 구할 때도 해외영업과 대인관계에 치우친 일들에 항상 얽매여 있었다. 그 속에서 항상 힘들어하고 고통받으면서 'No pain No gain'이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으며 내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와 고통은 다 나의 성공과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을 챙기려 했고 항상 때와 장소에 맞춰 저급한 혹은 고상한 유머를 습관처럼 던지며 항상 사람들의 눈치와 분위기를 신경 쓰며 살았다.
그러다 이 모든 관계를 떠나서 낯선 환경 속에 놓이면서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수많은 역할과 관계 속에서 벗어나니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처음에는 어색하던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속에서 또 다른 소소한 행복을 찾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항상 관계 속에서만 존재감을 찾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혼자서 사색하고 운동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온전히 내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만의 즐거움과 나의 색깔을 찾아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위장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결국에는 우리 자신을 위장하게 된다."
-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 작가 -
적지 않은 시간 나는 세상이 원하는 성향대로 살았기에 지금도 그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분위기를 띄우려 하고 모두의 요구에 부합하려 애쓰는 자신의 모습이 남아있다. 만약 과거의 환경과 상황 속에 계속 머물렀다면 내면에 감춰져 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이렇게 한적한 곳에 앉아 차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이제는 가장 마음이 편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간을 계속 누려도 될까 하는 불안함도 찾아온다. 과거의 시간 때문에 이제 나의 얼굴에 일부가 되어버린 가면을 완전히 벗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말한다. 시간이 가면 이 MBTI 성격유형도 변할 수 있다고... 맞다. 나도 변했으니까. 세월이 가면 사람은 변하게 마련이다. 중요한 건 그 변화가 진정한 나의 모습으로의 변화인가 아니면 세상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인가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