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촌스러워! 좋아! 클래식하다고 해두지 뭐"
- 영화 [클래식] 중에서 -
클래식은 촌스럽지만 촌스러운 기억은 오래간다. 당신은 동의하는가?
영화 [클래식] 중에서
클래식(Classic, 古典)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생뚱맞지만 나는 과거 보았던 영화 [클래식]이 떠오른다. 2003년 화제의 멜로드라마였던 그 영화는 나의 기억 속에는 한국 멜로드라마의 고전으로 기억된다. 우리말에서 '고전'과 '클래식'은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지만 이 두 단어는 서로 다른 어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고정관념이긴 하지만 고전하면 책을 떠올리게 되고 클래식하면 왠지 음악을 떠올리게 된다.
"XX님은 정말 생각이 어디로 튈지 모르겠어요"
누군가 내게 말했다. 클래식이란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멜로 영화인걸 보면 내가 좀 특이하긴 특이했나 보다. 어쨌든 당시 이 영화가 화제가 되어 조인성과 손예진이 우산 없이 재킷 안으로 몸을 숨긴 채 빗 속을 뛰어가는 장면은 수많은 연인들이 로망이 되어 자주 패러디 되곤 했었다. 그 덕에 당시 우산 공장 사장은 울상을 짓고 남성용 고어텍스 재킷은 불티나게 팔리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나만 하는 걸까?
나에게도 그 영화 속 클래식 재현의 기회가 있었다. 과거 대학 시절 비 오는 날 캠퍼스에서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같은 과 여자후배와 마주쳤다. 건물 입구에서 비가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를 발견했다. 나는 그녀에게 재킷을 벗어서 내밀었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나를 한 번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갑자기 자신의 코트를 뒤집어쓰고 쏜살같이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갔다.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빗속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또다시 그녀와 마주쳤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똑같은 상황이 재현되었다. 건물 입구에 서서 쏟아지는 비를 올려다보는 그녀를 뒤에서 발견했다.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고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그녀의 손에 쥐어주고 빗속으로 뛰어갔다. 그땐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놀라던 그녀의 눈동자와 허겁지겁 뛰어가던 그 뒷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때 그녀는 나를 어떤 심정으로 바라봤을까? 갑자기 생뚱맞게 궁금해진다.
영화 [클래식] 중에서
죄송하다. 잠시 이야기가 소설 같은 에세이로 빠졌다가 돌아왔다. 어찌 됐건 영화 [클래식]의 그 장면은 로맨스의 고전이 되었다. 지금도 연인 혹은 썸 타는 남녀가 같이 걷고 있다가 갑자기 비라도 오면 입던 옷을 벗어 그녀의 머리를 가려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분명 클래식의 영향이 없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비유가 너무 비약적이거나 확증편향적일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고전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친숙하게 된 것 그것이 바로 고전이 아닐까?
고전(Classic)과 대중(통속, Popular) 사이
고전이란 인간의 오랜 역사 속에서 반복되며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깨달음이나 스토리 혹은 음률 같은 것이다. 삶 속에 깊이 뿌리내려있지만 바쁜 현실 속에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고전이라는 것은 시대가 바뀌고 시간이 흘러도 그것이 담고 있는 것은 변함없는 울림을 준다. 그래서 고전을 많이 읽고 보고 들으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수많은 고전(古典 : Classic)이 있다. 고전소설도 있고 고전음악도 있고 고전영화도 있다. 고전적이다의 반대되는 말은 '현대적이다'지만 이건 단지 사전적인 의미이고 일반적으로 대중적이다(통속적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이 시대를 관통하는 의미와 내용을 지녔지만 그 시대에 어울리는 표현이나 스토리와는 멀어져 가는 것이 사실이다. 자기 표현의 시대에 그 표현력이 둔탁하고 재미없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시대에 따라 고전은 갖가지 형태로 변형되고 재창조되며 새로운 모습으로 표현된다.
음악으로 치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협주곡이 고전이라면 BTS나 블랙핑크의 음악이 바로 대중 음악인 것이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들의 음악보다 BTS나 블랙핑크의 음악이 더 자주 접한다.
책으로 치자면 홍루몽, 서유기 등 아주 오래된 고전을 비롯해 현대의 톨스토이[무엇으로 사는가]나 생텍쥐베리[어린 왕자] 혹은 데일카네기[인간관계론] 같은 책들(서평참조)이다. 그리고 성경 또한 경전(經典)이지만 일종의 가장 오래된 고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대중소설은 무엇일까? 개인적인 생각이 가미된 것이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웹소설류가 대중소설이지 않을까? 형식보다는 내용과 재미를 중시하고 거기에 의미와 메시지까지 포함한 웹소설이 가장 인기 있는 소설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고전(Classic)과 대중(Popular)의 사이에 또 다른 것이 존재한다. 그걸 우리는 뉴에이지(New Age)라고 부른다.
"클래식은 클래식이고 뉴에이지는 뉴에이지에욧!"
누군가와 클래식과 뉴에이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친구였는데, 그는 클래식과 뉴에이지에는 확연한 선이 있다고 얘기했다. 물론 내가 그보다 음악에 대해 아는 것은 적지만 내가 생각하는 클래식과 뉴에이지는 좀 달랐다.
여기서부턴 클래식을 고전이라 표현하겠다. 어감상으로 고전이 모든 예술적 장르에서 포괄적인 느낌을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도 물론 고전을 좋아한다. 다만 고전은 다가가기 쉽지 않다. 왜냐 고전은 현재의 시대상과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날것과 같다. 내용과 표현이 쉽게 이해되고 공감되지 않는다. 어렵다. 고전을 많이 읽고 듣고 본 사람들은 그것에 다가가는 것이 어렵지 않겠지만 일반인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고전에는 현재의 재미라는 요소가 빠져있다. 의미가 너무 강해서 재미가 덜 하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신선식품이나 생식이 좋다는 걸 알지만 풀을 생으로 뜯어먹는 것을 선호하진 않는다. 그런 재료들을 이용해 조리를 해서 맛이란 것을 가미해서 먹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와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신선식품의 영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신선식품이 고전이라면 조리음식이 뉴에이지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고전이 고전을 낳는다.
하나의 고전이 있으면 그 고전을 읽고 듣고 봄으로서 또 다른 것들이 생겨나게 된다. 인간은 상상과 표현의 동물이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의식의 변화를 거치게 된다. 시대적 배경과 분위기에 따라 고전은 그 틀을 변형해 간다.
사실 우리가 현재 고전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그것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뉴에이지에 속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결국 고전과 뉴에이지는 같은 개념이 될 수 있다. 단지 시간이라는 흐름 안에 갇혀 있는 인간에게 현재의 것은 뉴에이지이고 과거의 것은 고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많은 이들에게 귀감과 깨달음 혹은 공감을 가져다주는 뉴에이지 작품들은 나중에 미래인들의 고전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예를 들면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구분되어 있다. 옛날에는 구약만 존재했다. 하지만 예수가 등장하고 신약이 생겨났다. 하지만 신약이 생길 당시에는 구약은 고전이었고 신약은 어찌 보면 뉴에이지였다. 예수도 지금은 고전(경전) 속 주인공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신과의 약속인 율법에서 벗어난 신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 일대 변혁을 불러일으켰던 뉴에이지의 운동가였던 것이다.
뉴에이지 글쓰기 (Writing of New Age)
나는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며 뉴에이지적인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기존에 있는 생각들을 나의 생각과 버무려 좀 새롭고 열린 혹은 엉뚱한 생각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고전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책들을 읽으며 그 속에 있는 내용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기고 하고 행간에서 피어나는 상념들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나의 과거 혹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접목시켜 색다른 스토리와 주제로 고전 속의 내용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Popular vs New Age
그럼 대중적인 것과 뉴에이지는 무엇이 다른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고전을 알아야만 뉴에이지가 가능하다. 만약 고전을 모르고 퍼진 것이라면 대중적인 것에 그친다. 우리가 고전을 많이 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고전을 알아야 거기서 얻은 깨달음과 영감을 현재의 생각과 사회에 접목해 새로운 고전(= 뉴에이지)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글을 쓸 때 고전에서 읽은 내용들이 글 속에 많이 반영되고 있음을 느낀다. 표현과 스토리만 변형했을 뿐 담고자 하는 것은 고전의 메시지이다.
하지만 사실 요즘은 이 두 가지의 구분 또한 애매해지고 있다. 대중음악이나 소설이나 영화들도 이제는 완전히 오락이나 재미 요소에서만 머물지 않고 의미와 메시지를 담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중의 의식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는 것을 반증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을 구분 짓는 중요한 요소는 아마도 무엇이 좀 더 고전에 가까운 것인가에 따라 달라지지 않나 생각된다. 대중적인 것은 유행이 지나면 잊히지만 뉴에이지로 넘어가는 것들은 시간이 가도 회자되고 계속 찾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가 어떤 것들은 고전의 전당으로 옮겨지게 되는 것이다.
고전에서 새로운 고전으로
신은 세상을 다양하게 만들었다. 다양한 세상은 갈수록 더욱 다양하게 변해간다. 좋게 말하면 다양성이고 나쁘게 말하면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뉴에이지가 난무하는 세상에 사람들이 고전과 멀어져 간다'라고...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다양한 뉴에이지가 고전을 더욱 고전답게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얼마 전에 본 [스즈메의 문단속](감상평 참조)에서도 느꼈지만 많은 감독들과 작가 그리고 예술가들은 새로운 이야기와 음악 그리고 이미지 속에 고전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단지 그 표현의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라. 기억에 남는 영화나 소설 그리고 음악들에는 항상 변하지 않는 진실과 메시지와 느낌이 담겨 있다. 복잡하고 어지러워지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도 진리와 연결되려 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예술을 하는 이유이며 다양함 속에서도 시공간을 관통하는 진리를 붙잡고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진리를 깨닫고 선을 행하며 진리를 다양하게 표현해 많은 이로 하여금 진리에 다가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칸트가 했던 말과 일맥상통한다. [진선미의 철학, 칸트] 참조
지금 내가 영화[클래식]를 다시 보며 순수한 남녀의 사랑을 다시 느끼고자 함은 대중적인(Popular) 것들에 휩쓸려 때 묻은 나의 생각과 감정 때문에 과거 놓쳐버렸던 소중한 사랑을 후회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시 고전(Classic)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럼 우리는 새로운 고전(New Classic)이 될 수 있다.
영화 [클래식] 중에서... 황순원의 [소나기]를 연상케 하는 장면
글짓는 목수(Carpenwriter) 유튜브 계정
https://youtu.be/iLyhK24dmx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