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목수 Aug 04. 2020

목수의 종류

외장 목수와 내장 목수

목수에도 종류가 있다.


  밖에서 일하는 목수와 안에서 일하는 목수라고 말하면 쉽게 이해될까?


  외장 목수, 집과 건물 등 건축 구조물의 기초(뼈대와 구조)를 만드는 일을 한다. 일이 거칠고 힘들며 밖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내구성과 안전성 등의 기준이 까다롭다. 외부 공사이다 보니 날씨와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비가 오면 그날은 쉬는 날이다. 장마철은 그들에게 휴가 시즌인 것이다. 휴가비는 없지만...


"오늘은 데마찌네~"

 <*데마 찌(てまち): 작업 대기, 작업 시간 중에 일거리가 없어 손을 놓고 있는 상태>

 

  건축일에는 일본말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마루에 앉아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올려다보시며 어머니가 해주신 파전에 막걸리를 마시곤 하셨다. 옆에 앉아 집어먹던 어머니의 파전 맛을 기억한다. 비 오는 날은 아침부터 입에서 침이 고인다.


  반면 내장 목수는 실내 일을 주로 한다. 한국에선 인테리어라고 하고 여기 호주에서는 샵 피팅(Shopfitting)이라고 얘기한다. 점포나 매장의 특성상 내구성이나 견고함 보다는 외관(外觀) 미적 효과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일이다 보니 더 섬세한 작업이 많다. 점포의 실내 인테리어는 길어야 2~3년 정도면 바꾸기 때문에 집이나 건축물처럼 내구성에 대한 기준은 높지 않다. 외관만 이쁘면 장땡이다. 실내 작업이기 때문에 날씨나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아 365일 일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쉬는 날이 거의 없다. 점포의 오픈일이 정해져 있어 마감 공사 때는 야간작업도 불가피하다. 정말 피곤하다. 

목공

   처음 호주에서 시작한 일은 외장 목수 일이었다. 40대 중반의 우락부락한 인상의 사장 목수(기술자)와 부목수(중간 기술자)의 픽업트럭을 타고 이곳저곳을 많이 돌아다녔다. 주로 하우스(단독주택)의 지붕 공사를 했다. 지붕 공사와 수리/보수 전문 목수였다. 목수일이 너무 다양하고 광범위해서 한쪽 분야를 특화해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집을 기초부터 지어 올라가는 빌더(Builder, 시공업자) 목수가 아니라면 대부분 한 두 가지의 일을 전문적으로 한다. 그래야 돈을 벌 수 있다. 한두 가지에 집중해야 반복 숙달되어 일의 속도가 올라가는 법이다. 여기 호주는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시간이 돈이다.


바깥일은 태양과의 사투


   11월  호주 시드니의 뜨거운 태양 아래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뼈대가 완성된 지붕으로 컬러 본드(Colorbond, 패널 지붕)와 인슐레이션(지붕과 골조 사이에 집어넣는 단열 솜)을 잘라서 올리다 보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선글라스와 창이 넓은 모자 그리고 쿨토시는 필수다. 물론 선크림도 듬뿍듬뿍 발라준다. 그런 노력에도 나의 피부는 날이 갈수록 흑인으로 변해간다. 한낮의 패널 지붕 위의 온도는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을 정도다. 신발 밑창이 녹아버린다. 내 살이 삼겹살이 될지도 모른다. 때문에 지붕 위에서 1시간 이상 일을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빨리 자재를 올려줘야 한다. 아니면 뜨거운 열기에 더해진 분노의 막말과 함께 공구가 날아올지도 모른다.

호주의 강렬한 태양

  외장공사는 환경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좋은 점은 해가 지면 집에 간다. 호주의 건축 규정상 하우스 건축은 일과 시간 이후 작업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만약 야간에도 공사를 강행하다 소음이나 먼지등의 민원이 들어가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하기 때문에 할 수도 없다. 


  바깥일을 해서일까? 외장 목수들은 다소 거칠어 보인다. 책에서도 배웠지만 환경이 인간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한다. 그럼 나도 거칠어 질까? 요즘 대세인 상남자(터프가이)가 되고 싶다면 외장 목수를 추천한다. 


실내 일은 디테일과의 싸움


  도심의 번화가에 위치한 점포 인테리어를 할 때였다. 마라탕(麻辣烫, 중국식 짬뽕: 원하는 재료를 셀프로 담아주면 탕으로 끓여준다.) 가게 오픈을 위한 샵 인테리어 일이었다. 좁은 공간에서 기존 인테리어들을 부수는 작업부터 시작되었다. 좁은 실내공간 속에서 먼지와 소음에 뒤덮여 정신이 없다. 태양을 피하는 건 좋지만 좁은 공간의 갑갑함은 감수해야 한다. 샵 피팅(실내 인테리어)은 부수는 것이 먼저다. 데몰리션(Demolition, 철거)으로 기존 인테리어를 제거해야 새로 만들 수 있다. 부수는 것도 요령과 주의가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곳곳에 전기선, 파이프가 있을지 모른다. 생각 없이 부수다가는 건물 전체에 전기가 나가거나 가스 혹은 물이 새는 참사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부수고 치우는 것으로 일을 시작한다. 데몰리션(철거)하는 날이면 온 몬이 먼지로 뒤덮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누가 보면 매몰 현장에서 들어갔다 나온 사람으로 보일 정도다.


  한 번은 데몰리션을 하다가 화재경보가 울려 전 건물의 사람들이 대피하는 소동까지 벌어진 적이 있다. 밖으로 나온 사람들에게 고객 숙여 "I'm sorry"를 수도 없이 외쳤던 기억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소방차가 출동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벌금만 몇 천 달러다. 여기 호주는 특히 fire alarm이 민감하다. 열(온도) 뿐만 아니라 연기와 먼지에도 반응하기 때문에 실내 공사 시에는 필히 천장의 화재경보기를 꺼놓거나 비닐로 싸서 반응하지 못하도록 사전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실내 구조물을 만들고 가구들을 세팅하는 과정 속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마감작업(최종적으로 보이는 외관)을 할 때는 상당히 예민해진다. 샵(shop) 특성상 눈에 노출되는 부분이 매장의 분위기와 품격을 좌우하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많이 쓴다. 크렉, 흠집, 수평, 수직 등 그래서 마감시기가 되면 야간작업도 불사한다. 샵 특성상 오픈일이 정해져 있어 데드라인을 맞춰야 하는 만큼 마감시기가 되면 쉴 틈 없이 바빠진다.  주택가는 평일 일과 시간(7am ~ 6pm) 이후에는 공사를 할 수 없다. 반면 샵 피팅은 상가이기 때문에 그런 규정이 없기 때문에 야간에도 공사가 가능하다.


  한 번은 지인의 부탁으로 시드니에서 차로 4시간가량 떨어진 소도시의 쇼핑센터 샵 피팅(인테리어) 공사를 도와주러 간 적이 있다. 그랜드 오픈이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점포의 마감 작업이 한창이었다. 한국인이 거의 없는 지방 소도시라 한국인 목수를 구할 수 없어 시드니에서 비싼 출장비용까지 지급하며 사람들 불러서 오픈 전날까지 매장 공사를 마무리 지어야 했다.  48시간가량을 잠도 자지 않고 작업이 강행되었다. 오픈일을 준수하지 않으면 회사에 떨어지는 벌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사람을 더 써서라도 마감을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작업자 중에는 손에 공구를 든 채 작업을 하다 벽에 기대어 졸고 있는 사람들도 보인다. 나도 망치질을 하다 내 손을 찧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몸이 피곤하고 정신이 혼미하면 결국 사고가 찾아온다. 몸이 피곤하면 쉬어야 하는 법이다.  


"참 대단하시네요, 잠도 안 자고 어떻게 이렇게 버티면서 일을 해요?"

"어째 어째 다 하게 돼 더라구요, 그나마 수입은 괜찮으니까요, 뭐 가족들 못 보는 게 좀 힘들어서 그렇죠"


 그 회사에 소속된 직원들은 몇 달 동안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주말도 없이 일을 했다고 한다. 한 젊은 직원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가 눈에 밟히는지 쉬는 시간마다 핸드폰 속 아기 사진을 훑어보며 나에게 자랑을 한다. 샵 피팅은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가족과 소원(遠)해지고 몸이 망가질 수 있다.


목수는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


  목수는 공구나 장비 그리고 자재의 종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차량에 다 싣고 다니기도 힘들뿐더러 모든 공구를 다 구비하는 것도 쉽지 않다. 비효율적이다. 처음 목수 일을 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 중의 하나가 수많은 공구와 자재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었다. 여기 호주의 한인들은 공구 이름도 사람마다 다르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일본말과 한국말을 섞어 쓰고 젊은 목수는 영어로 말한다. 3개 국어를 뒤섞어 쓰는 통에 공구 하나에 이름만 세 가지 이상이다. 스크류(Screw)나 못(Nail)의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길이별, 형태별, 재질별로 다르기 때문에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자재를 알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알아도 어디에 뒀는지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목수는 기억력이 좋아야 한다. 그래서 목수는 데모도(공사장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로서 기능공을 도와 함께 일을 하는 조공을 일컫는 말이다.)가 필수적이다. 기술자가 필요한 공구와 자재를 적재적소에 찾고 가져다주는 것만으로도 일을 효율을 크게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술자와 데모도 간의 협업이 중요하다.


"사람이 우선이지, 일은 데모도가 다 하는 거야~"


  나이가 지긋하신 목수(나하고 무려 더블 띠 동갑)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환갑이 넘어서까지 일을 할 수 있는 건 일은 목수가 아닌 데모도가 다 하기 때문이란다. 이 분야에서 40년이 넘게 일하신 장인의 경지에 오른 목수는 이제 도면을 한 번만 훑어봐도 머릿속에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그려진다고 한다. 다만 몸이 마음 같지 않아서 문제다. 그 문제는 능력 있고 눈치 빠른 데모도 한 명만 있으면 해결된다고 한다. 자신이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재고, 자르고, 들고, 나르고, 박고, 부수고, 가져다주는 일을 잘해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데모도를 무시하고 홀대하는 사람들은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거라고 얘기한다. 일을 다 쳐내 주는 데모도를 잘 가르치고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서로 윈윈 하는 관계가 된다는 사실을 그는 일찌감치 깨우친 듯 보인다.  


목수도 전문화, 분업화된다.


   공구와 자재의 종류가 많고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목수도 분업화 전문화되고 있다. 집을 통째로 지으려면 수많은 자재와 공구가 필요하지만 특정 파트만 하게 되면 소규모의 공구와 자재만 있으면 된다. 같은 일을 반복하기 때문에 속도와 효율도 올라간다. 그래서 지붕만 하는 목수, 마루만 하는 목수, 데크만 하는 목수, 문만 설치하는 목수, 벽만 세우는 목수 등 다양하다. 물론 두세 가지를 비슷한 일을 겸해서 하기도 한다.  


자칫하면 핸디맨(Handyman)?


  목수의 특성상 건축의 전체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많은 트레이더(Trader , 공사 계약업자 : 타일러, 페인터, 배관공, 전기공, 등)가 있지만 다들 자기 분야만 할 줄 아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목수는 그들의 일도 조금씩은 할 줄 아는 게 일반적이다. 전체적으로 공사의 시작부터 마감까지 책임져야 하는 목수의 특성상 계속 그들의 일을 보고 듣다 보니 간단한 것쯤은 그들 없이도 할 수 있다.  나 또한 목수를 따라다니면서 페인트, 타일, 철거, 납땜, 청소 등 안 해 본 게 없을 정도다.   


  그래서 목수들이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핸디맨(Handyman)이다. 우리말로 '잡부'라고 표현하면 맞을까? 이것저것 잡일만 한다라는 의미로 목수들의 비하(卑下, Degrading) 해서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목수들 사이에서는 실력 없는 목수(정교하고 난이도 높은 일은 잘 못하는)를 일컬을 때도 쓰인다.


"저런 일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어!"


  과거 같이 일했던 교회 장로인 목수가 자주 하던 말이다. 신앙심이 깊은 그는 자신이 목수라는 자부심이 강했다. (과거 예수의 직업이 목수여서 그런가?!) 다른 일(타일, 페인트, 배관, 전기)은 단순 반복하는 무식한 일이라며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물론 나한테만 하는 얘기지만) 목수일은 전체적인 공정을 생각하며 일해야 하는 일인 만큼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수많은 상황들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다이내믹하다. 일이 지루할 수 없다. 수많은 일과 직업이 있지만 자신이 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어려운 법이다. 과거 사무실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키보드만 치며 일할 때도 힘들었다.


   호주에 온 지 벌써 일 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수많은 목수를 만났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듯이 목수도 여러 종류가 있다. 앞으로 또 어떤 목수를 만나게 될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지붕 위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