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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Nov 14. 2022

측량할 수 없는 것

줄자 (Tape measure)에 관한 상념

"How long is it?" (길이가 얼마예요?)

"That is fortyfive fortyone or something, it's a little bit different with the plan"  (그것은 4,541mm쯤인데, 도면이랑 좀 다르네)


  나는 줄자의 한쪽 끝을 잡아당기며 벽면까지 걸어간다. 줄자 끝을 벽에 붙이고 물어본다. 줄자의 몸통을 쥐고 있던 목수는 줄자를 넉넉하게 빼어내 직각으로 구부리고 구부러진 부분을 벽의 모서리에 가져다 댄다. 그리고 벽의 모서리와 줄자의 굽은 부분을 미간을 찌푸리며 쳐다본다. 그리고 도면을 번갈아 드려다 보며 말한다.


 목수들이 쓰는 공구에는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공구는 줄자(Tape measure)가 아닐까 생각된다. 호주 사람들과 처음 일을 했을 때 줄자가 영어로 무엇인지 몰랐다. 자꾸 '테이프 테이프' 거리길래 붙이는 종이테이프를 갖다 줬다가 웃음을 샀던 기억이 있다. 모든 걸 다 제쳐두고 딱 한 가지만 들고 현장에 가야 할 상황이라면 단연 줄자를 선택할 것이다. 내가 보아왔던 기술자 목수들 중에는 현장에서 주머니가 하나 달린 공구 벨트 혹은 허리춤에 줄자와 연필 하나만 달랑 들고 다니는 자들을 많이 봤다.

측량

측량이 시작이다.


모든 일에는 계획과 목표가 필요하다. 계획과 목표를 세우기 위해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이 현 상황이다.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고 목표치를 설정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작년에 매출이 1억이었으면 올해는 1억 5천의 목표를 세운다는 구체적인 그리고 정량적인 목표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계획과 목표는 숫자로 표현되어야 한다. 모든 공사도 측량에서 시작해서 측량으로 끝이 나게 마련이다. 현재의 상황을 측량하고 나중에 만들어진 상태를 측량해서 도면(목표)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해야 한다.

 

오프라인 공간의 모든 측량은 줄자로 이루어진다. 뭐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레이저로 측량하기도 하다. 10m가 넘어가는 긴 거리는 줄자로 측량이 힘들다. 대부분의 줄자가 10m를 넘지 않는다. 가장 흔히 쓰는 것이 8m이다. 나는 보통 5m 줄자를 휴대한다. 툴 벨트(못주머니)에 여러 공구를 휴대하는 나는 경량화에 신경을 많이 쓴다. 8m 줄자의 무게는 조금 부담스럽다. 더군다나 실내 인테리어에서 8m까지 측량할 일이 많지 않다. 공사가 시작되면 일단 공사가 시작될 현장에 공간이 도면과 일치하는지 측량하기 위해 이리저리 치수를 재어본다. 만약 기존의 인테리어가 있다면 데몰리션(철거)부터 시작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측량부터 시작한다.

Pricing

숫자(Number)는 2D에서 3D 그리고 다시 가격(Price)으로


플랜(Plan)을 세워야 한다. 플랜이 도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호주에서 드로잉(Drawing)이란 말보다 플랜이란 말을 자주 쓴다. 처음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서 고생했다. 계속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그들의 말에 무슨 놈의 계획은 그리도 세우는지... 영어가 달리니 몸이 고생이다.


2차원의 도면 위에 그려진 평면도와 여러 방향의 측면도의 그림을 3차원의 공간에 구현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공간을 나누는 일이다. 주어진 공간 안에 또 다른 공간을 나누는 Structure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쉽게 얘기하면 벽을 세우고 용도별 공간을 구분하는 일이다. 집으로 보면 방과 거실, 화장실 등의 공간을 벽으로 구분하는 작업이다. 벽이 세워져야 그 공간 안에 인테리어 작업과 조이너 리(목공, 시공 작업)가 가능해진다.


그럼 다시 줄자를 들어야 한다. 도면에 축소된 그림을 현장의 바닥에 재현해야 한다. 바닥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줄자로 실제 길이대로 벽이 세워질 자리에 선을 긋는다. 모든 선은 벽을 기준으로 긋는다. 설사 도면과 벽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 오프라인의 벽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선은 벽에서 직각으로 나와서 그려진다. 줄자로 치수를 재고 두 사람이 먹줄로 텅 빈 공간에 직선의 어지러운 향연이 시작된다. 줄자를 수십 번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숫자(Number)를 길이(Length)로 길이를 선(Line)으로 선을 공간(Space)으로 만드는 일이 진행된다.


평면 위의 숫자들은 입체 공간으로 변해가며 질량과 부피를 가지게 된다. 수많은 숫자의 조합으로 탄생한 사물과 공간은 가치를 가지게 된다. 우리는 그 가치를 가격이라는 또 다른 자본주의적 가치로 전환해서 비교하고 거래한다. 이를 반대로 얘기하면 가치 있는 것들은 모두 수치화되고 가격화 될 수 있다. 이건 비단 사물과 공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인간도 정량화


어린 시절 TV에서는 해마다 '미스코리아 대회'라는 미인 선발 대회를 방송하곤 했다. 수컷의 본능 때문인지 그 방송만은 놓치지 않고 봤던 기억이 있다. 미스코리아는 미모를 겸비한 여자들에게 연예계에 발을 들이는 등용문과도 같은 것이었다. 방송에서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여성 참가자들이 한 명씩 소개될 때마다 아래 자막에 항상 표시되는 것 있었다. 그건 키와 몸무게를 비롯해서 여성의 가슴과 허리 그리고 힙 사이즈였다. 그렇게 인간도 숫자로 표현되어 마치 도량형 사물처럼 묘사된다. 그리고 마치 올림픽 경기의 금은동처럼 진선미(眞善美)라는 또 다른 표현 방식의 1,2,3의 등수를 매긴다. 공간과 사물을 2D 도면에 표현하는 것처럼 사람도 평면 브라운관에 상품처럼 숫자로 표현된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우리의 삶도 그렇다. 우리의 일상 또한 수많은 숫자들로 점철되어 있지 않은가? 나의 연봉, 나의 키와 몸무게, 내 집의 평수 등 우리는 모든 것을 정량화시켜서 자신을 표현한다. 지능(IQ)과 감성(EQ) 그리고 관계(궁합도)등 도량형으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던 것들까지도 수치화시키고 시각화시켜서 비교하고 가치를 매기려 든다. 온라인 공간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좋아요와 구독자의 숫자가 나의 온라인 정체성에 가치를 매기고 있다.


인간은 이상하게도 모호하고 규격화되지 않은 상태를 싫어한다. 그래서일까 모든 것을 수치화시키고 상류와 중류와 하류로 구분 짓는다. 사실 그게 과학이라는 학문이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과학(물리학)은 세상 모든 만물의 이치를 숫자와 공식으로 표현해 내고자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애매모호한 섭리를 정량화시키려 애를 쓰고 있다. 이미 컴퓨터 속 매트릭스 세상은 1과 0이라는 숫자로 모든 걸 구현할 수 있다.

1과 0의 매트릭스 세상

"나 얼마만큼 사랑해?"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큭큭"


우리는 마음도 측량하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그도 나를 사랑하고 있을까? 누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더욱 측량하고픈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래서일까 줄자로는 상대방의 마음을 측량할 수 없기에 돈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한다. 이윤 추구라는 내가 준 것보다 많이 받아야 하는 자본주의 논리가 예외 없이 적용되고 그것이 마음을 대변한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얘기다. 여자는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금전적 소비를 하느냐로 남자의 마음을 측량한다고 한다. 그래서 명품을 사줄 수 있는지 없는지 좋은 집과 차를 제공할 수 있는지가 마음의 크기로 대변된다.  그 마음은 더 좋은 명품과 더 좋은 집과 차가 나타나면 결국 사라지게 된다. 마음은 측량하는 순간 불행이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한다.


우리는 겉으로는 삶을 측량할 수 없다고 얘기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측량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지금 줄자를 들고 이곳저곳을 재어 보듯이 세상도 지금 나를 줄자 위에 올려놓고 이리저리 재어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측량하면 당신도 측량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직 측량할 수 없는 것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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