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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Jul 03. 2023

정반합(正反合)의 불편한 성장

[열한 계단] 채사장

"'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닌 것과 대면하게 되었다. 자아와 반자아의 투쟁이 시작된다"


                                            - 책 속 인용문 -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10년 후의 나는 같은 나일까? 여기서 말하는 "나"는 외형적인 모습이 아닌 내면의 정신을 의미한다. 물론 완전히 똑같을 순 없지만 만약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내가 크게 다르지 않다면 당신은 자아와 반자아의 투쟁이 그리 많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건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익숙한 세계에만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는 뜻이다.  


우리는 새로운 관계와 환경 그리고 지식과 정보들을 접하면서 새롭게 재창조되는 과정을 거친다.

만약 당신이 접하는 관계와 환경과 지식과 정보가 불편하면 불편할수록 당신은 더욱 새로운 자아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반합(正反合)의 성장 과정이다.




또다시 채사장의 책을 집어 들었다. 과거 그의 웬만한 베스트셀러들은 다 읽었다. 그의 책은 흡입력이 있다. 그는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청년시절 짧지 않은 시간 백수 생활(3년)을 하며 매일 도서관에 출근하다시피 하며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손이 가고 눈길이 가는 데로 서고에 있는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 장시간의 도서관 칩거 생활이 지금 저자의 폭넓은 교양과 분야를 넘나드는 통찰을 키웠던 모양이다. 그 시간은 아마도 나중에 작가가 이뤄낸 방대한 집필의 초석이 되었을 것이다.

도서관

나 또한 과거 길진 않았지만 비슷한 경험을 했다. 퇴사 후 호주로 오기 전 3개월 정도의 공백기에 매일 도서관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매일 조용한 공공 도서관에 앉아 손길 닿는 데로 책을 읽고 낮잠도 자고 배가 고프면 도서관 구내식당에서 저렴한 백반 정식으로 끼니도 때우며 학생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을 느꼈다. 그 짧은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직장 생활 10년이 넘도록 동안 10권도 읽지 못했던 책을 그 짧은 시간 10권이 넘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도서관에서 눈물 흘리며 소설도 읽었고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깨달음을 주는 교양서적들도 읽었다. 조용한 서고 사이의 책냄새와 아늑한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그때부터 도서관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호주에 와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곳곳의 도서관을 누비고 다녔다. 3개월이 이러할진대 3년이면... 작가는 분명 적잖은 깨달음을 얻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저자처럼 오랜 시간의 목적 없는 공부(서평참조)가 교양인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목적 없는 공부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교양인이 되기 힘들다.


"두 가지의 방법이 있는 것이다. 익숙한 세계의 깊이를 더하는 방법과 불편한 세계의 지평을 넓히는 방법."

                                             - 책 속 인용문 -


나는 독서를 좋아하게 되었다. 아니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가 더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이 말은 과거에는 아니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럼 왜 독서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독서가 가져다주는 이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읽기 없이는 쓰기가 늘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이 써야 늘지만 쓸 거리는 읽기에서 구한다. 글감뿐만 아니라 많이 읽다 보면 적절한 단어와 표현법이 익혀지는 것이다. 목수도 수많은 자재와 공구들을 눈에 익히고 또 사용하는 법도 곁눈질로 계속 봐야만 적재적소에 사용한 자재와 공구를 파악할 수 있고 또 따라서 만들 수 있다. 한두 번 본다고 절대 몸에 익지 않는다. 많이 보고 많이 하는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은 너무도 정직한 과정이라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목수라도 조금만 같이 일을 해보면 연륜이나 경력이 드러난다. 글짓기랑 집 짓기는 닮아있다. 단지 쓰는 근육이 다를 뿐.


 감명 깊게 혹은 의미 있게 읽은 것들은 어느 순간(몰입의 순간) 다시 튀어나오게 되어 있다. 진정한 독자가 아니고서는 진정한 작가가 될 수 없다. Input 없는 output이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인풋 없이 만들어진 아웃풋은 티가 난다. 확실하게.


독서의 종류


독서를 하는 사람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익숙한 책을 많이 읽는 자와 불편한 책을 찾아 읽는 자이다. 전자는 전문가로 가는 길이고 후자는 교양인으로 가는 길이다. 전자는 성공(成功)으로 가는 길이고 후자는 성찰(省察, introspection)가는 길이다. 세상 사람들은 너도 나도 성공을 꿈꾼다. 그래서 이 세상엔 전문가들은 넘쳐나지만 교양인은 갈수록 줄어드는 이유이다.


"하나의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은 우리를 먹고살게 하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게 하며 사회를 발전시킬 것이다."

                                                 - 책 속 인용문 -


우리는 인간다운 교양인보다는 인정받는 전문인이 되고 싶다. 그렇기에 우리는 교양을 쌓기보다 전문지식과 자격증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리고 우리는 전문인은 당연히 교양이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착각 속에 빠져 살아간다. 그들은 외적으로 교양을 포장할 줄 알기 때문이다. 교양과 철학이 없는 전문가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위험천만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이성적 인척 하며 비이성적으로 살아간다. 왜냐 이성적으로만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얻는 게 쉽지 않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처세(處世)는 비이성과 기만이 병행된다. 비이성의 다른 말은 자기 전문 분야로만 세상을 설명하려 드는 사람이다. 나는 진실로 이성적인 사람은 교양이 쌓여야만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불편한 책을 읽을 것"


교양을 쌓으려면 넓고 얕은 지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좁고 깊은 굴만 끝없이 파고 들어간다. 마치 두더지처럼 말이다. 그래서일까 두더지는 눈이 멀어 다른 곳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버린다.


종교인은 과학서적을, 과학자는 종교서적을, 문학인은 경제서적을, 경제인은 문학서적을 불편해한다. 같은 종교인이라고 기독교는 불교를, 힌두교는 기독교를 불편해하듯 같은 분야에서도 불편한 지식들이 많다. 우리는 사실 이런 것들은 알아보지도 않고 배척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사실 그들의 세계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공감하긴 힘들 수 있지만 적어도 이해할 수는 있게 된다. 그들도 그들만의 탄탄하고 완벽한 이론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정말 불편한 과정이지만 교양이 쌓여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교양은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쌓일 수 있는 것이다. 나와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서두에 말한 문장과 같이 기존의 내가 부서지고 변화되는 과정이며 자아와 반자아가 충돌하며 새로운 자아가 창조되는 과정이기도 한다.

Georg Wilhelm Friedrich Hege



"이제는 '정(正)'도 아니고 '반(反)'도 아닌 새로운 성숙한 정신(합, )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 책 속 인용문 -


이것이 바로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헤겔(Hegel, 1770~1831)하면 떠오르는 변증법(辨證法, dialectic)이다. 기존의 자아(정, 正)가 대립되는 지식이나 상대(반, 反)를 만나서 새로운 결과 혹은 자아를 만들어내는 과정(합, 合)이다. 헤겔은 인간은 이런 정반합(tesis-antitesis-sintesis)의 과정을 반복하며 성장해 나간다고 봤다. 그러니까 우리는 불편한 상대와 지식을 접하면서 기존의 세계를 해체하고 한 단계 더 높은 과정으로 올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인격 고양의 과정이다.


정과 반의 연결


나는 요즘 [알뜰신잡] 같은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가지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관점이 서로 다른 자들의 의견을 듣는다는 건 불편하고도 흥미로운 일이다. 이건 자신의 지평을 넓히는데 아주 좋은 방법이다. 과거 소크라테스나 공자를 비롯해 대부분의 성인들은 이런 방식으로 가르침을 전했다. 문답의 토론 방식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내고 새로운 생각을 도출해 내는 과정이다.

[알뜰신잡] 중에

최근 분야 간의 교류가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철학은 과학으로 과학은 문학으로 문학은 종교로 종교는 예술로 예술은 또다시 철학으로. 과거 유명한 철학자나 과학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심취했던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인슈타인도 철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의 연구실에는 쇼펜하우어의 사진이 걸려있을 정도였다. 그는 철학적인 사유 속에서 수많은 과학적 발견을 이뤄냈다. 철학자 니체는 음악을 통해 수많은 철학적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음악가 바그너를 흠모했다. 심지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능통했고 모든 분야를 연결시켰다.


"이해란,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이 내가 이해했던 것과 정합적으로 모순이 없이 연결된 것이다"


                                                                                          - 김상욱 교수 -


이런 과정이 모두 변증법적 사고, 즉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창조하는 과정인 것이다. 자신의 익숙한 분야가 아닌 낯설고 불편한 분야를 접함으로써 막혀있던 의문들의 실마리를 찾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앞으로 고도로 전문화되는 지식 영역은 AI가 섭렵해 나갈 것이다. 수많은 의학지식과 시술이력 그리고 수많은 법조문의 해석과 판례는 이제 빅데이터로 옮겨왔다. 그것들을 가장 효율적이고 적절하게 찾아내고 적용하는 것은 인간보다 AI가 더 잘할 것이다. 다만 적용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이건 기술이나 데이터 부족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전문가들이 그 기득권을 놓고 뺏기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인간은 고도로 전문화된 각 영역들을 연결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신은 분명 이 세상을 모두 치밀하게 연결시켜 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연결하는 과정 속에서 인류가 아직 알아내지 못한 진리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성장보다 삶


세상이 이도록 어지럽고 복잡해지는 건 아마도 교양인은 사라지고 다들 지(知) 잘난 전문가들만 넘쳐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 우리가 교양인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우리가 성장하고 인격을 고양하는 데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이유는 삶의 시간이 너무 제한적이고 또 힘겹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상을 꿈꾸지만 대부분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에 엮여있는 먹고사는 문제들은 우리가 불편한 책을 읽고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당장 다음 달 카드값과 주택담보대출금 이자를 상환하고, 내년에 학교에 들어갈 아이의 선행학습을 위한 학원비와 내년이면 태어날 둘째를 위해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모아야 한다. 또한 부모님의 생일과 가족친지들 그리고 직장상사와 동료들의 경조사도 챙겨야 한다. 이 모든 상황은 돈과 시간을 요구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런 현실적인 요구들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할 수도 없다.


"불편함은 삶을 죽음으로, (또) 죽음에서 초월로 밀어 올린다."

                                                    - 책 속 인용문 -


그러려면 현재의 분야에서 좀 더 전문화 고도화되어 더 많은 소득을 이뤄내야만 한다. 다른 곳에 한 눈 팔 시간은 없다. 이것이 우리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는 이유이고 우리가 성장하지 못하고 교양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이며 삶이 죽음으로만 향하고 초월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이다.


당신은 어떤 불편한 것들을 외면하고 있는가?

그 불편함을 들여다 보라.

그럼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성장하게 될 것이다.


[열한 계단]


"성장, 이것은 일생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내가 성취해야만 하는 숙명일지 모른다."

                                                                                                  

                                                                                                         - 책 속 인용문 -



https://www.youtube.com/watch?v=5oHHZ3m2fMI&t=5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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