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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Mar 31. 2021

우리는 관종이다

[인간관계론] 데일 카네기

   제목을 먼저 적고 글을 써 내려가는 건 처음이다. (난 항상 제목을 나중에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이 책에 대해서 글을 꼭 써보고 싶었다. 머릿 속에 대강의 주제를 생각해 놓고 꽤 시간이 흐른 뒤 적게 된다. 이전에 교회의 한 동생과의 대화에서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가 대뜸 나에게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어보면 다 알게 된다며 나를 무시하는 투로 얘기하던 게 기억난다. 당시에는 웃으며 넘어갔는데 띠동갑이 넘는 까마득히 어린 동생에게 그런 말을 듣고 나니 내심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했었다.


'나 원 참! 어린놈이... 어른을 가르치려 드네, 얼마나 대단한 책이길래?'


  그때 그가 한 말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아 일부로 책을 찾아서 읽었다. 손아랫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책 추천을 받아보기도 하는구나 하며 집어 들었던 책은 정말 주옥같은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는 인간관계에서의 최고의 고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간관계에 대한 저자의 깊고 넓은 통찰이 엿보이는 책이다. 만약 인간관계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없는 사람이 이상할 듯) 꼭 한 번쯤을 읽어보길 권한다. 책은 사람을 다루는 법부터 결혼 생활에 관한 것까지 방대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부분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 한다.


 "개는 먹고살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저 당신을 사랑할 뿐이다"

                                                                                           - [인간관계론] 중에서 -


    최근 일인가구의 증가와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사람과 사람이 멀어지고 자신만의 공간과 세계 속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사람 간에 느껴지던 체온을 반려동물들이 대체해 가고 있다. 그걸 증명하듯 세계 반려동물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관련 시장과 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관심받고 싶지만 그렇다고 다짜고짜 관심 달라고 구걸할 순 없다. 그래서일까 달라고 하지 않는데도 귀찮을 정도로 관심을 주는 반려동물을 이뻐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박수홍과 다홍이(반려묘)의 사연을 접하고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반려묘에게서 위로받는 박수홍의 모습에 말 못 하는 동물이 가족보다 더 낫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배신하지만 동물은 그렇지 않다. 그냥 눈만 마주쳐도 주인의 체취만 맡아도 꼬리 치고 달려들며 좋아하는 그 모습만으로도 우리의 자존감은 올라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런 반려동물을 마치 솔 메이트처럼 아끼고 보살핀다. 사람에게 가지 못한 관심이 반려동물에게로 향하고 있다.


   왜 내 주변에는 사람이 없을까?


  우리는 관심에 굶주려 항상 어떻게 하면 관심을 끌 수 있을까에만 집중한다. 수많은 SNS에는 다른 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매일 예쁜 글과 사진 혹은 동영상들을 끊임없이 업로드하고 있다. 나 또한 끊임없이 글을 쓰고 올리는 것 또한 그런 류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도 관종이긴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넘쳐나는 관심 구걸 SNS와 상업성 광고들로 도배된 인터넷 세상에 지쳐간다. 진정성은 사라지고 상업성만 가득한 곳으로 변해간다. 나 또한 이전에 블로그를 하다 이 브런치로 넘어온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그나마 이곳은 걸러진 글쟁이들의 진정성 있고 인간미 묻어나는 글들이 많기 때문이다.  


   SNS의 구독자와 좋아요가 많아질수록 그 세계 속에 빠져 더 많은 관심을 받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그곳에 쏟아붓는다. 정작 현실에서 자신의 모습은 어두운 방 안에 홀로 앉아 더 흥미롭고 자극적인 영상과 콘텐츠들을 만들기 위해 찍고 올리고를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안타깝지만 그들의 관심은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만들어낸 콘텐츠일 뿐이다. 당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갈수록 초조해지고 더 집착할 수밖에 없다. 왜냐? 당신이 만든 콘텐츠보다 더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콘텐츠를 찾아 떠나갈 구독자와 그 관심들을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떠나가면 자신의 존재감을 사라지게 된다. 견딜 수 없는 공허함만이 그 자리를 대신할 뿐이다.


"당신이 사람들에게 먼저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사람들이 왜 당신에게 관심이 있어야 하는가?"                                                                                                    - [인간관계론] 중에서 -


  책 속에서는 이 물음에 답을 하라고 친절하게 빈칸까지 마련하셨다. 나도 이 물음을 읽고 잠시 고민했다. 내가 처음 떠올린 답변은 사람의 관심이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연예인이나 정치인 같은 공인들이 타인의 인기와 관심을 통해서 먹고사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시대이다. 대중의 관심을 통해 부를 창출 한다. 결국 이건 생계와 경제적 성공을 위한 일인 것이다.  이런 류의 관심은 소비자의 취향과 트렌트에 따라 계속 바뀌게 되어 있다. 인간적 관심이라기보다 소비심리에 가깝다.  


  진정한 관심은 내가 먼저 관심을 가질 때 돌아오는 관심이다. 그 관심이 바로 나를 향한 것이다.


  물론 타인의 관심이 익숙하지 않아 부담스럽고 불편한 사람에게 계속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은 자제해야겠지만 그런 시도 조차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사회가 흉흉해지면서 타인에 대한 관심이 불순한 의도로 오해받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타인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관심 좀 가지려다 쇠고랑 차고 싶진 않을 테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 로마의 시인, 푸블리우스 시루스 -


  관심은 관심을 낳는 법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네가 나한테 관심이 없는데 내가 왜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무관심은 무관심을 낳는다. 누가 먼저 관심을 가지느냐에 집착한 나머지 상대방의 관심만 기다리는 자들도 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이 그런 경향이 강하다. 오랜 유교 속 선비사상이 낳은 폐해라고 볼 수 있다. 명분이 중요하다. 명분도 꼭 빠져나갈 명분만 찾는다.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네가 사귀자고 했잖아", "네가 결혼하자고 했잖아"등 나중에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을 찾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보지도 못하고 관심을 접어버린다. 그리고 다시 불특정 다수에게 관심을 구걸하기 시작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 김춘수의 [꽃] 중에서 -


    책 속에는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의 일화를 소개하며 그는 항상 부엌에서 식기 닦는 하녀의 앨리스의 이름을 불러주며 그녀가 만든 콘브레드를 사람들이 잘 먹지 않는다는 불평을 들어주며 손수 콘브레드를 들고 먹어가며 하인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녀와 그의 하인들은 평생 루스벨트를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얼마 전에 쓴 감사일기에서 호주 시드니의 한 수영장 리셉션의 할머니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녀는 내가 입장할 때마다 나의 이름을 불러주며 미소 짓는다.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기에 그녀는 나의 일기장에 주인공이 되었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사소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인간 세상은 이런 사소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의미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몇 살이세요?"

"고향이 어디예요?"


   한국 사람은 처음 만나면 상대방의 이름보다 상대방의 배경이 더 궁금하다. 서열을 만들고 공통점이 뭐가 있는지 찾기 전에 일단 상대방의 이름부터 알아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될 것 같지 않다고 생각되면 관심은 커녕 이름조차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것이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40]


  그 옛날 예수도 가장 보잘것없어 보이는 자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가졌고 그 관심으로 그들을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내가 얼마나 주변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았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이 멀어져 가는 것은 내 탓이 아니라 몹쓸 세상의 변화 탓이라 생각했다. 본디 인간은 문제의 본질을 내 안에서 찾기보다 밖에서 찾으며 자신을 위로하려 한다. 사람들은 얘기한다. 인간관계는 겪어봐야 안다고 하지만 겪어봐도 몰랐던 것을 읽고 나서 알게 되었다. 인간관계에 회의가 올 때마다 차 안에서 습관처럼 이 오디오북을 틀어놓고 들었다. 가히 인간관계의 바이블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데일 카네기는 얘기한다.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하는 수고를 감수하라. 시간, 에너지, 이타심, 배려를 요하는 일들을... 우리는 본디 관종으로 태어났다. 관심 없이 살아갈 수 없다.


관심받고 싶다면 먼저 관심을 가져라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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