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이 소중해진 이유

평범한 남자 시즌 2-62

by 글짓는 목수

"고맙습니다 대리님 이렇게 태워주셔서"

"저도 집에 가는 길인데요 뭘"

"참! 말 편하게 하세요 대리님"

"아직 편하지가 않아서 하하 편해지면 그럴게요"

"어떻게 하면 편해질까요? 대리님? 하하하”

“음… 뭐 시간이 지나면 편해지겠죠?”

“그럼 대리님과 자주 시간을 가져야겠네요 하하"

“...”

“출출하지 않으세요? 저희 편의점에서 들러서 삼각김밥에 컵라면 한 그릇 하고 가실래요? 시간도 가질 겸 하하하 제가 쏠게요. 이렇게 집까지 데려다 주시는데 보답을 해야할 꺼 같아서요 "


밤이 깊었다. 나는 그녀는 야근과 청소를 끝내고 같이 회사를 빠져 나왔다. 그녀의 제안에 공단 안에 위치한 편의점에 잠시 차를 세웠다. 편의점 문을 열자 딸랑땅랑하는 벨소리 울린다. 늦은 시간이라 공단 안의 편의점엔 아무도 없다. 불 꺼진 어두운 공단 안에 홀로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알바생은 계산 테이블에 턱을 괴고 졸고 있다 벨소리에 놀라 깨어난다.


"대리님, 삼각 김밥 뭐 드실래요?"

"참치마요 먹을게요"

"와! 나도 참치마요 좋아하는데"


그녀와 나는 편의점 창가에 서서 어둠이 내린 공단의 공장들을 바라본다. 유리창 밖의 야경에서 편의점 유리창으로 시선의 초점을 옮겨온다. 그녀와 내가 삼각김밥이 얹혀져 있는 컵라면 용기를 감싸 쥐고 있는 모습이 유리창 벽에 비춰 눈에 들어온다. 컵라면의 뜨거운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노곤함을 불러온다. 그 때 창밖에는 한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졌다. 유리창에 부딪친 빗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앗, 비가 오네요”

“그러게”

“비오니까 술 한잔 생각 나네요, 대리님 맥주 한 잔 할래요?”

“난 운전해야돼서”

“아, 맞다!”

“유진씨 먹고 싶으면 한 잔해요, 전 괜찮으니까”

“그래도 되요?”


유진은 냉장고로 가서 맥주를 한 캔 꺼내온다. 계산대에서 맥주를 계산하며 종이컵을 하나 같이 가져온다.


“치이이익! 탁!”

“자 대리님도 한 모금 정도는 괜찮죠?”


유진은 종이컵에 맥주를 반 잔 정도 따라부어 준다


“자~ 짠! 오늘도 무사한 하루를 기념하며!”


그녀와 나는 잔을 부딪치고 맥주를 들이켠다. 씁쓸한 맥주가 목을 적신다. 컵라면의 뚜껑을 열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그녀와 나는 라면과 김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근데 도서관 만드는데 왜 혼자서 해요 이 늦은 시간에?"

"그게 음... 사실 저 혼자 하는 일이에요?"

"무슨 말이에요?"

"사실 팀장님한테 사내 도서관을 만들자는 기획 예산안을 올렸는데 기각됐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래서 제가 못쓰는 서류 창고를 활용해서 도서관을 만들어보겠다고 했죠 책은 직원들한테

기부받는 형식으로 하구, 어차피 서류창고에 기한 지난 서류들을 파기해야 해서 그걸 제가 치우는

김에 비워지는 공간을 이용하는 거라 팀장님도 알아서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대신 일체의 회사비용이나 인원투입은 불가하다고 하더라구요"

"헐…. 시키지도 않는 일을 왜 굳이 사서 고생이예요?"

"대리님이 얘기하셨잖아요 아무런 지원도 안 해주면서 요구하는 것만 많은 회사 때문에 힘들다고 하하하"


그녀는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을 자처해서 하고 있다. 어느 누가 회사에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일과 시간 이후에 자신의 일처럼 할 수 있을까 마음속에 내가 괜한 말을 한 것 같아 미안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일에 만족하는 표정이다. 매일 시키는 일에 치여 썩어가는 나의 얼굴과는 달리 그녀의 얼굴은 아직도 생기발랄한 표정이다.


일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과 스스로 찾아서 하는 일이다. 전자는 대부분 생계를 위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써 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누군가의 지시를 잘 완수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간다. 일의 과정보다 결과에 집착하게 된다. 괴롭고 힘든 과정을 참고 견디는 건 결과에 대한 달콤한 보상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타인의 칭찬과 인정에 목말라 있다. 그것이 자신을 움직이는 동력이고 성공으로 이끄는 길이라 믿는다.


후자는 생계보다는 그 일 자체에 의미를 두고 하는 일이다. 당장의 금전적이 보상이나 인정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다. 그 일 자체에서 즐거움과 존재감을 찾는다. 결과를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과정을 즐긴다. 누가 시키는 일이 아니기에 구속되지 않으며 창의적이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에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성공을 믿고 하는 일이 아니라 믿고 하다 보니 성공이 오는 경우가 많다. 성공이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성공을 기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자는 의존적이다. 타인에게 자신을 맞춰가는 일이며 세상의 기준을 따라가는 삶이다. 후자는 독립적이다.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일이며 세상의 기준을 창조하고 바꾸는 삶이다.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개인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어디서든 자신이 그 삶에 만족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불행한 사람은 자신이 속할 수 없는 곳에 억지로 얽매여 있는 사람이다. 안타깝지만 대다수의 직장인이 그렇다. 나도 그 중 한 명인 듯 보인다.


"대리님 근데 제 이마가 이상해요?"

"예? 아... 아뇨 왜?"

"처음 저 봤을 때부터 계속 이마를 보시길래"

"아, 기억하는군요, 음... 미안해요 그냥 나도 모르게 그리로 시선이 가네요"

"내 이마가 너무 넓은가... 앞머리를 내릴까 봐요"

"아... 아뇨, 보기 좋아요 유진 씨 매력 포인트인데요"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쁘다, 섹시하다, 잘생겼다, 매너있다. 이런 시각적인 외면에서 기억되는 것과 이성적이다, 감성적이다, 논리적이다, 감정적이다. 같은 시간의 흐름 속에 드러나는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들로 기억되는 것이 있다. 짧은 만남에서는 이런 시각적인 외면의 모습으로 상대방을 파악할 수 밖에 없다.


그 사람을 겪어보고 나서 그 사람의 성향을 통해 기억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그 사람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에서는 상대방의 외모로 기억할 수밖에 없다. 내가 제일 기억하기 힘든 부류의 사람이 외모에 뚜렷한 포인트가 없는 사람이다. 전체적으로 화려하거나 수수한 사람은 기억하기 힘들다. 그 중에서도 어느 한 포인트를 찾으려 한다. 쉽게 찾아지고 뚜렷한 포인트가 있는 사람은 쉽게 잊히질 않는다. 그녀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대리님은 야근 좋아하시나 봐요, 많이 하신다던데"

"어떻게? 아 봉래씨?! 쓸데없는 얘기를... 야근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하하"

"정말 일이 많으신가 봐요"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인 거죠 뭐 일머리가 없어서, 습관처럼 하다보니 이제 야근을 안하면 이상해요"

"너는 장미에게 바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 장미가 그토록 소중해진 거야"

"..."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이에요"

"갑자기 왜?"

"그러게요, 시간을 쏟으면 그 만큼 집착하게 되더라구요, 그게 마치 소중한 것처럼 되어버리죠"

"음..."

"대리님은 야근에 바친 시간이 길었기에 일이 아닌 야근이 소중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하하하"

"하하하, 그럴지도..."


그녀의 말이 알 수 없는 먹먹한 울림을 가져온다. 그녀의 말처럼 야근이 습관이 되어 이제는 실체가 없는 행위가 소중해진 것일까? 매일 일상처럼 반복되는 행위는 결국 무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이상해지는 그런 기분이랄까.


인간은 의미 없는 일에 시간을 쏟아 부으며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실제로 의미가 있건 없건 그건 중요치 않다. 사실 나에게 의미가 되어간다는 것이 더 중요하며 그것이 바로 실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미는 시간의 축적이 만들어낸다. 일이든 관계든 의미있는 성과는 시간 없이 만들어 질 수 없다. 의미없이 반복되는 야근도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것 자체에 의미를 두게 된다.


이제 평일엔 퇴근시간 이후 약속을 잡지 않는다. 일 때문에 약속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될수록 차라리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게 된다. 어쩌다 일이 일찍 끝나 제때 퇴근이라도 하는 날이 어색하다. 기분이 좋긴 한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연한 권리가 특별한 혜택이라도 받은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소중한 시간과 바꾼 야근이 계속될수록 야근이 소중해진다. 그 대신 다른 것은 소외되어 간다.


그렇게 쏟은 시간과 노력의 시간이 언젠가 보상이 되어 돌아올 것을 믿고 싶다.

아니 믿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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