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리 오늘 일과 마치고 7시까지 시지에 XX포차로 와! 구 과장한테는 적당히 다른 핑계 대고 나와]
주 팀장으로부터 사내 메신저를 통해 메시지가 왔다. 그냥 말로 하면 될 것을 굳이 쪽지를 보낸다. 그는 참 비밀스럽다.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비밀스럽고 뭔가를 감추는 듯한 그의 행동은 팀원들로 하여금 신뢰가 가지 않게 만든다. 팀장이면 팀장답게 팀원에게 당당히 얘기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눈치를 살피면서 행동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오후 6시쯤 되니 주 팀장은 사무실을 조용히 빠져나간다. 그는 퇴근하거나 외근을 나갈 때도 말없이 사라진다. 팀원들은 그래서 항상 그의 위치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급한 결재 건이 있거나 할 때 낭패를 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구과장님, 오늘 먼저 좀 퇴근해 보겠습니다"
"어이! 전대리 왠 일?!"
"저녁에 개인적인 약속이 있어서요"
"오! 이제 연애 시작하는 거가? 그래 결혼은 해야지 어서 가봐"
"예, 그럼 수고하세요"
퇴근시간이라 차가 붐빈다. 늦은 시간 한적한 시골 밤길만 달리다가 이른 퇴근에 어색하다. 술을 마셔야 할 거라는 걸 알기에 영대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지하철을 타고 시지로 나간다. 그가 말한 XX포차에 도착하니 7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팀장님"
"아냐! 괜찮아 앉아 참! 구 과장한테는 뭐라고 나왔어?"
"그냥 뭐 약속 있다고 하고 나왔는데요"
"그래? 그냥 순순히 보내주디?"
"예"
"다행이네, 그 녀석은 참 속을 알 수 없단 말이야"
'헐 난 네 속을 더 모르겠는데요'
사돈남말 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가 보다. 혼자 속으로 중얼거려본다.
"참 내가 갑자기 불러서 놀랐지? 그러고 보니 전대리랑 따로 이렇게 술 마시는 건 처음이네"
"네 그러네요"
"자! 한 잔 받아"
그는 소주잔을 나에게 건네며 소주병을 들어 나의 잔을 가득 채운다. 그가 소주병을 놓자 나는 잽싸게 병을 집어 그의 빈 잔을 채워 넣는다. 그는 나와 잔을 부딪치고는 소주를 목구멍으로 한 번에 털어 넣는다. 나는 그가 소주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걸 보고 몸을 반쯤 틀어 소주를 들이켠다. 마침 안주가 나온다. 커다란 접시에 새빨간 육회 꽃이 피었다. 그는 젓가락을 들어 육회를 한 점 집어 참기름에 찍어 입안으로 넣는다.
"먹어봐 이 집 육회가 좋아"
"예, 잘 먹겠습니다"
"보직 변경 신청했다던데..."
"아!? 팀장님이 어떻게..."
"전대리, 회사에 비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런 건 윗선에서 팀장까지 알게 모르게 다 내려와 뭐 회사에서는 개인 비밀 유지 보장이라면서 자율적으로 애로사항이나 순환보직을 신청하라고 하지, 그거 다 뻥이야! 그런 거 하면 다 알게 된다니까 그리고 결국 당사자에게만 불이익이야. 회사가 뭐 그리 호락호락하냐? 조직 생활 적응 못하는 거 티 내는 직원 누가 좋아할 거 같아? 그런 직원은 어딜가나 똑같아”
"..."
"난 전대리가 그래도 좀 생각이 있는 줄 알았는데... 뭐 구과장 때문에 힘든 건 알지만 뭐 회사 생활 안 힘들게 하는 사람이 어딨어? 참고 견디면서 잘해 볼 생각을 해야지"
"뭐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뭐? 그럼 뭔데?"
"그냥 제가 생각하던 해외영업이 아닌 것 같아서요, 업무 성격도 저와는 안 맞다는 생각을 그전부터 해왔습니다."
"아~놔 참..."
그는 나를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조용히 잔에 소주를 채우고 혼자 들이킨다. 그리고 이번엔 육회 여러 점을 한 번에 집어 입안으로 구겨 넣고 우걱우걱 씹어먹는다. 나는 조용히 잔을 들어 1/3쯤 남은 소주를 입안으로 털어 넣는다.
"전대리 이제 직장생활 몇 년차지?"
"전 직장까지 합하면 5년 차입니다."
"음... 근데 아직 직장 생활에 적성을 따지고 있어?"
"예?!"
"이제 네 적성을 업무에 맞춰야 되는 거 아냐?"
세상에 대부분의 직장인은 적성에 맞는 직장을 찾아다니지만 결국 직장에 맞는 적성으로 바꾸어간다. 직장이 대부분 거기서 거기인 세상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인간으로 변해간다. 마치 공장에서 찍혀 나온 기성 제품처럼... 여러 가지 고유한 성질을 지닌 원재료들이 모이고 섞여 하나의 동일한 제품을 만들어 내는 제조 공장처럼 기업은 고유의 성질을 가진 다양한 인간들을 모으고 모아서 결국 한 종류의 인간으로 만들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과거 자신이 고유한 성질을 지니고 살아가던 그때가 세상 모르고 철없던 시절이었다고 얘기한다.
고유함과 다양함은 사라지고 동일함만 남는다. 동일함을 유지하는 것이 기업의 목적이고 사명이 된다. 나는 기업에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하나의 불량품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품질은 회사의 생명이다. 우수하고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해 내는 것이 제조기업의 사명이다. 그 사명에 누를 끼치는 인간은 없어져야 할 대상일지도 모른다.
산업자본주의 세계는 그렇게 고유한 형질과 성질의 인간을 동일한 기준에 맞는 기성품으로 만들어 간다. 제품의 규격화는 인간의 규격화로 이어진다. 규격화된 인간들이 규격화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규격화된 제품들을 사용한다. 그 말은 반대로 얘기하면 인간이 규격화되지 않으면 규격화된 제품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산으로 보내달라고?"
"예"
"사무 관리직이 생산직으로 가는 게 말이 되냐?"
나는 생산 라인에서 제품이나 만드는 것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기계의 속도에 발맞춰 나의 몸이 기계화되긴 하지만 정신세계의 변형은 덜하다. 일과시간이 종료되면 육체노동은 종료되고 정신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근무시간과 퇴근시간의 구분이 없는 사무직은 몸은 편할지언정 정신은 항상 일과 엮여있다. 차라리 생계만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기업 생산 노조처럼 고임금에 쾌적한 근로 환경까지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어도 근무시간 이후 정신적인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같은 노동이라도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천차만별이다. 열악한 근로환경 속에서 박봉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고임금에 갖은 복리후생을 누리며 여유로운 노동을 하는 자들이 있다. 노동의 난이도와 강도는 전자가 강하다. 그 차이의 근원은 명판이다. 대기업, 명문대의 간판 없이는 삶의 질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결국 별반 다를 게 없는 직장인이지만 명판이 있고 없고에 따라 직장인 또한 계급이 나눠진다. 그렇게 우리는 사회에 나가면서 각자 계급이 나눠지며 과거 동등했던 가족, 형제, 친구들과 조금씩 멀어져 간다. 보이지 않는 계급은 각자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시간이 갈수록 벗어날 수 없는 자신의 숙명 같은 계급에 고통 받는다.
스스로가 그 계급 속에 자신을 가둬둔 채 평생을 살아간다.
"안녕하세요!"
"희택 형제, 누구?"
"아! 저희 회사 동료예요"
"반갑습니다. 배유진이라고 합니다."
"제가 교회 다닌다고 하니까 자신도 가고 싶다고 해서 저희 목장으로 데려왔어요"
"아... 그러시군요"
"아~이야, 희택씨 애인 아임미까? 어이서 이런 미인을 데리고 왔데, 재주도 좋아 하하"
"아... 아닙니다. 직장 동료일 뿐이에요"
"희택 아저씨, 얼굴 빨개졌다 하하하"
"大叔! 是否心里有鬼? 哈哈哈" (아저씨! 혹시 딴 맘 있는 거 아녜요? 하하하)
"没有!你别想太多!” (아냐! 너 상상 좀 적당히 하지)
오늘은 교회 목장 모임이 있는 날이다. 주말 저녁이면 목녀인 안에스더 집에서 모여 한 주의 삶을 나누며 같이 식사를 한다. 그녀의 연인 요한이 죽기 전에는 그의 집과 그녀의 집을 번갈아 가며 모임을 가졌었다. 그가 떠난 후 잠시 멈췄던 목장 모임은 그녀의 신앙심으로 다시 재개 되었다. 조선족 최씨 아주머니의 한마디로 나와 유진의 관계는 누구나 상상하는 그런 관계로 정의되는 모양이다. 뭐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자신이 의도와는 다르게 세상이 원하는 데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 반박하고 저항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들게 된다. 때론 그런 상황이나 환경에 무뎌질 필요가 있다.
“유진씨도 하나님 믿으세요?”
“음… 네 그런 거 같아요. 아직까지는 하하하”
“예?!”
“믿음이 없이는 행복해지기 쉽지 않더라구요”
“그게 무슨 말이예요?”
“인간이란 원래 연약한 존재잖아요, 무언가를 믿고 의지 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그렇죠 우린 하나님 안에서만 완전해 질 수 있어요”
“음… 그런가요?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완전해 지시는 건 아닐까요? 하하”
“예?! 그게 무슨?”
안에스더는 자신이 다소 이해하기 힘든 유진의 얘기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유진도 미국에서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가정교회처럼 교회 안에 별도의 작은 목장 모임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녀도 교회를 찾던 중 내가 가정교회를 다닌다고 하니 자신의 니즈와 궁금증을 충족하기 위해 나를 따라왔다. 어린 시절 양부모를 따라 습관처럼 따라나가던 교회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도 하나님에게 기도하면 모든 걸 들어주신다는 양부모의 말을 듣고 매주 예배당에 걸려있는 십자가를 향해 기도했다고 한다.그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체 그냥 알려달라고 빌었다. 왜 자신이 친부모로부터 버림받았냐고…
하지만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유진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한동안 하나님 그리고 예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헤메었다. 성경과 각종 역사 및 종교서적들 그리고 각종 철학 서적들을 뒤적이며 예수와 하나님의 존재를 파헤쳤다고 한다. 부인하고 부인할수록 자신이 명확해지고 승리할 거라 생각했지만 부인하고 부인할수록 자신이 허무하고 무의미해짐을 느꼈다고 한다.
“어쨌든 하나님은 있는 게 없는 거 보단 훨씬 낫잖아요”
“…”
“있는게 나으니까 믿어야죠, 인간에게 신은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인 거 같아요. 한국에서는 믿음과 신이 같다면서요. 믿을 신(信)그리고 신 신(神), 믿음은 신으로부터 생겨났고 믿음이 신을 만들었다는 말이 있더라구요.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하하하”
“…”
유진의 다소 이해하기 힘든 말에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믿음과 신, 유진의 말처럼 뭐가 무엇을 만들었는지 헷갈린다. 인간은 수 만년 동안 서로를 죽이는 역사 속에서 같은 인간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요즘같이 가족도 죽이는 세상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전적으로 믿는다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오늘에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인간의 역사는 인간에게 영원한 믿음을 주는 무언가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죄…죄송해요 제가 너무 말이 많았죠?”
“아… 아녜요, 유진씨는 정말 남다른 생각을 가지신 분 같아 보이네요”
“그러게 음마, 내래 이런 얘기는 처음 들어보기요”
“아~ 头疼啊(머리 아파)~ 나는 정말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요”
“근디 둘은 어찌 주둥아리 접선은 한 기라요? 하하하”
“푸하하”
“하하하”
최씨 아주머니의 발언에 또 한 번 폭소가 터진다.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목장에 모인 식구들은 내가 데려온 새로운 식구에 대한 관심이 나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진다. 성인 남녀의 만남은 어딜 가나 이성관계로의 발전을 염두하는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 이런 의혹은 둘 중 한 명이 기혼자이거나 아니면 이미 교제상대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짝없는 암수의 만남은 언제나 이성보다 감성의 지배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저 남자 친구 있어요”
“예?!”
“아~이미 있는기라요? 어디에 있음매?”
“프라이빗이라 거기까지 말씀드리긴 좀 하하하, 다 다들 식사하지죠?”
“프라빚은 또 무슨 빚이매? 빚도 있음매? 휴우”
“하하하”
"하하하"
또 한바탕 폭소가 터진다. 유진의 말에 나 또한 적잖은 놀람을 감출 수가 없다. 안 에스더 목녀를 제외한 연변 아주머니와 그의 딸 향미 그리고 쑨샹은 의혹 가득한 모습으로 다들 나를 쳐다본다. 유진은 그런 모습을 아무렇지 않은 듯 재미있게 관망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녀는 이런 목장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식사가 늦어진 거 아닌가요? 하하”
"그래요 자! 그럼 일단 기도부터 할까요?"
안에스더의 어수선하던 분위기를 가라앉힌다. 다들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은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희택 형제가 저희 목장에 새로운 식구를 데려왔습니다. 새로운 교제의 시간을 갖게 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오늘도 따뜻한 식사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과 서로의 삶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허락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아~멘!"
"아~멘!"
"와!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자! 어서 드세요. 양이 부족하지 않을까 모르겠네요 희택 형제, 담부턴 손님 데리고 오시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테이블 위의 냄비 안에는 빨간 양념에 졸인 닭볶음탕이 보기만 해도 입안에 침을 고이게 만든다. 안 에스더는 국자로 닭볶음탕을 그릇에 담아 목원들에게 나눠준다. 그녀의 음식 솜씨는 이미 교회에서도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일품이다. 교회의 행사가 있으면 그녀는 항상 메인 셰프가 되어 교회의 음식 준비를 총괄할 정도이다. 교회에 호텔 식당에 일하는 교인이 그녀의 음식 솜씨를 보고 그녀에게 요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할 정도이다.
그런 그녀의 음식 솜씨 때문인지 목장 식구들은 주말 저녁이면 모임에 빠지는 일이 거의 없다. 예수의 말씀보다 그녀의 손맛이 사람들을 모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오죽하면 교회의 다른 목장에서도 그녀의 목장으로 오고 싶어 할 정도이다. 그녀는 매주 그렇게 정성 들여 목원을 위해 음식을 준비한다. 테레사 수녀의 [먼저 먹이라]를 몸소 실천하는 인물이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 보내고 정말 수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다. 그럼 개신교가 아니 천주교로의 개종인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본다.
"우~와! 첨 먹어봐요 이런 맛 정말 맛있는데요!"
"감사해요! 많이 드세요"
"그렇죠? 저희 목녀님의 음식 솜씨가 좀 훌륭하죠"
유진 씨는 붉은 양념을 머금은 닭다리를 한 입에 배어 물고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안 에스더는 그녀의 칭찬에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대답한다. 다들 음식 맛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냄비 속 닭볶음탕은 바닥을 드러낸다. 다들 조금 아쉬운 모양이다. 식사를 마친 안 에스더는 주방으로 가더니 과일과 차를 준비한다. 목원들은 자기가 먹은 그릇을 들고 싱크대가 가져다 놓는다. 각자는 자신이 맡은 역할이 있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나와 최씨 아주머니는 같이 설거지를 하고 쑨샹은 안 에스더를 도와 디저트를 준비한다. 연변 아주머니 딸인 향미는 테이블을 닦는다. 유진 씨는 미안한 마음에 뭔가 도우려 하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른 체 서서 우리를 지켜본다.
"유진 자매님 미국에서 오셨다고요? 그럼 우리 새로 오신 유진 자매님 얘기 좀 들어볼까요?"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가 준비된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려 한다. 안 에스더는 유진 씨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그녀는 안 에스더의 물음에 앞에 놓인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검지 손가락으로 찻잔의 표면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나와의 첫 만남부터 여기 대구까지 오게 된 사연을 얘기하기 시작한다. 다들 그녀의 진지한 답변에 숨죽여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음... 유진 씨에게 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
"언니, 힘내세요, 친어머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제가 기도할게요"
"그게, 엄니 만날 수 있을 끼라요. 너무 기케 걱정 마시라요"
"다들 감사해요, 전 괜찮아요 아무렇지 않아요"
유진 씨는 다들 위로와 격려의 말에 눈시울을 붉히더니 고개를 돌려 이내 밝은 표정으로 바꾸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어 보인다.
"음... 그럼 우리 다 같이 유진 씨를 위해 기도할까요? 하나님 아버지! 여기 오랜 세월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보냈을 유진 자매에게 어머니를 용서하고 다시 재회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시옵고..."
"아~악!"
순간 동공이 확장된다.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귀 속을 뚫고 지나간다. 동공이 확장되고 깨질듯한 두통이 나의 머릿속을 엄습한다. 마치 바늘 같은 물체로 귀 속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반복적으로 찾아온다. 나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방바닥을 뒹군다. 머릿 속에는 알 수 없는 영상이 마치 테이프 빨리 감기가 실행된 것처럼 순식간에 스쳐지나간다. 너무도 빠르게 지나가는 영상은 영상 속 이미지를 확인할 수 없다. 내가 고통 속에서 깨어나고 기억나는 것이라곤 오직 비명 소리와 빗소리 뿐이다.
"대리님! 왜 그러세요?"
"아저씨! 괜찮아요?"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래?"
그 통증은 과거 안에스더와 띠아오챤을 위해 기도할 때 느꼈던 그것과 비슷하다. 통증이 차츰 사그러진다. 온 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버렸다. 통증으로 찡그렸던 얼굴 근육이 조금씩 이완되며 눈을 뜬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두 여자의 얼굴이 동시에 눈 안으로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