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쓰려다 생각을 지웠다

산을 오르며...

by 글짓는 목수

[오전 9:00 오픈입니다]


시계를 바라보니 8:46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발길을 돌렸다. 삼삼오오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산기슭을 향해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산을 바라봤다. 카페에 가려다 산에 올랐다. 생각을 쓰려다 생각을 지웠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들으면 몸이 이완되고 머릿 속엔 상념이 밀려든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몸에 열이 나고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진다. 나의 심장 소리와 온몸의 근육 신경들이 느껴지고 모든 상념은 사라진다. 상념에 빠져들면 내가 사라지고 상념이 사라지면 내가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추석 연휴라서 인지 산에 적지 않은 사람들로 붐볐다. 며칠 전 평일날 오르던 한적한 산과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들리던 산속은 사람들의 숨소리와 대화 소리로 가득하다. 사람들 속에 섞여 등산을 하다 보니 사람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명절이라 오랜만에 만나서 함께 등산길에 오른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오르막길

명절동안 먹은 기름진 지방들을 태워 없애며 추억도 쌓는 일석이조의 좋은 방법이다. 가족끼리 혹은 동호회 사람들과 모여 산을 오르는 사람들 속에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다. 땀을 흘리며 심장박동이 빨리질 때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는 편안한 상태에서 만나는 사람과는 또 다른 감정들이 생겨난다.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 만나는 사람에게는 관심보다 신경이 더 쓰인다. 이것저것 의심의 눈초리로 사람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심장이 빠르게 뛰며 땀이 비오듯 흐르는 상황에서는 모든 신경이 나에게 집중되며 상대에겐 나의 연약함을 드러난다. 서로의 드러난 연약함은 서로에게 관대해진다.


이건 다르게 표현하면 상대에 대한 경계심을 놓게 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함께 운동하며 땀 흘리는 만남 속에서는 친밀감이 더 빠르게 형성된다. 만약 그 장소가 산과 같이 현실 세계에서 벗어난 곳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상황과 환경은 사람과의 관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우리는 사람을 처음 만날 때 이렇게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들 격식과 예의와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긴장과 신경이 곤두선 상태로 상대를 대하기 마련이다. 이런 자세는 방어기제가 풀가동되고 있는 상태이다. 이건 나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상대 또한 그렇다. 서로가 방화벽을 쌓아놓고 필요에 따라 성문을 열고 나에게 유리한 패만 보여준다. 그것이 현실의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손자병법은 전쟁을 위한 것이지만 그것이 유용한 필독서가 된 것은 우리의 삶이 전쟁터가 되어버렸기 때문 아닐까.


전쟁터가 싫어서일까.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자주 산을 찾았다. 자연 속에 있으면 전쟁터를 발아래 두고 멀찍이 구경할 수 있게 된다. 산 위에 올라 회색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그 속에서 총칼이 아닌 말과 글을 이용해 자신은 감추고 타인을 드려다 보려는 사람들의 전술전략들이 떠오른다. 전쟁터를 벗어나야 전쟁을 바라볼 수 있다. 전쟁터에서 총칼을 들고 살육하는 당사자들은 절대 전쟁을 바라볼 수 없다. 전략과 전술을 바라보는 자들은 항상 전쟁터를 떠나서 가상의 전쟁터를 떠올리며 전쟁의 향방과 승패를 가늠하는 법이다.


이것이 당사자와 관조자의 그리고 현실을 사는 자와 이상을 꿈꾸는 자의 다른점이기도 하다. 나는 항상 이 둘 사이를 오고 가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주중에는 회색 콘크리트 속 현실에서 주말이면 푸른 초목 속 자연에서... 하지만 산은 삶터가 아니기에 다시 내려가야만 한다. 과거 예수도 그러했을 것이다. 제자들이 잠든 사이 시나이 산에 올라 제자들이 잠든 마을을 내려다보면 신의 세계와 삶의 세계 사이에 서서 신과 소통하고 다시 인간 세계를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행이지만 일상에 발이 묶인 우리는 자주 여행을 떠날 수 없다. 그래서일까 나는 일상에서 벗어날 시간을 가지기 위해 그렇게도 산에 올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답답하고 괴로울 때면 산속으로 숨어들어 자연에서 충전하고 다시 한 주를 살아갔다.

삼나무 숲

오늘은 아침부터 생각을 쓰려다 생각을 지우는 시간을 보내고 내려왔다. 산 정상에 오르니 드넓은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땀이 날아가며 내 몸에 열도 함께 가져간다. 에너지가 많으면 내어놓듯 상념도 많아지면 내다버려야 하는 법, 머릿속에 복잡한 상념들도 같이 날려 보낸다.


어느덧 흐느적거리는 갈대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하다. 가을이 왔음이 느껴진다. 내려가는 길에 빼곡히 들어선 삼나무숲을 사이를 걸으며 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로 몸 속 나쁜 균을 죽이듯 나의 머릿속의 나쁜 생각들도 죽이고 비워낸다. 비워진 머리는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전쟁터 속에서 다시 복잡한 전략전술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럼 다시 또 찾을 것이다. 비우고 죽이러... 신기하게도 자연은 담아도 담아도 더부룩하거나 배부르지 않다.


하산 후 피곤한 몸은 이내 선잠이 유혹한다. 상념을 지우고 나면 잠을 한 숨 자야 한다. 그럼 개운해진다. 마치 지저분해진 컴퓨터가 리셋되는 것처럼...


나의 계획함이 아닌 또 다른 계획 속에서 복잡해진 마음을 정리해 본다. 감사하다.


산 위에서 전쟁터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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