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어둠이 깔린 이른 새벽,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총총걸음으로 차안으로 향한다.
"부르릉"
창에 시동을 걸고 라이트를 켰다. 빛이 어둠을 밝히고 기화된 연료가 폭발하며 얼어있던 차에 열을 전한다. 어젯밤 늦은 시간 귀가해 나의 체온이 차 안에 남아서 밤새 차가워진 바깥공기와 신경전을 벌였던 모양이다. 온도 차가 너무 다른 둘이 만나면 슬퍼진다. 눈 앞 유리창엔 습기가 가득 맺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와이퍼를 작동시킨다.
"키이익~ 키이익~"
"헐~ 뭐야 이건!?"
순간 금속 물질이 유리에 닿았을 때 나는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가 차 안으로 전달된다. 와이퍼의 팔 반쪽이 날아간 채 팔꿈치의 쇠고리가 유리창 표면에 닿아 긁고 있다. 나는 바로 와이퍼 작동을 멈추고 차에서 내려 와이퍼를 확인했다. 누군가가 밤새 나의 나 와이퍼 두 짝을 훔쳐갔다. 황당하다.
"아놔! 이런~ XX!"
순간 입에서 한숨과 함께 욕이 터져 나온다. 이런 오래된 차(2001년식 캠리)의 와이퍼를 떼어갈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고급차나 좋은 차 유저라면 이런 걸 떼 가지도 않을 거라는 발상의 전환을 한다. 아마 이걸 훔쳐간 사람은 분명 나와 같은 올드 캠리의 유저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분노의 감정은 애처로운 감정으로 바뀌었다. 자기 딴에는 달아버린 자신의 와이퍼를 바꾸거나 아니면 자신도 도둑맞아 본 분노의 경험을 복수로 나에게 갚아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근거는 없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은 상상을 해본다.
어쨌든 쇠고리로 유리를 닦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단 차 안에 있던 휴지로 차에 서린 습기를 닦아내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러 차를 움직여야 했다.
"It's total 40 dollar for two wipers" ( 와이퍼 두개 40불입니다)
결국 자동차 용품점을 찾았다. 도둑맞은 와이퍼 때문에 나의 소중한 돈과 시간이 낭비되었다. 찝찝한 기분은 쉽게 가시질 않는다. 와이퍼를 훔쳐간 그 자의 기분은 어떠할까? 그 자도 과연 나처럼 찝찝함을 느낄까? 그 자가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아마 운전을 할 때마다 눈앞에 보이는 훔친 와이퍼가 계속 눈에 밟힐 것이다. 하필 훔친 물건이 차에 탈 때마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라 더욱 그럴 것이다. 만약 그런 찝찝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면 그 자는 아마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거나 혹은 이런 짓에서 희열을 느끼는 자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양심에 무뎌지고 무심해지게 되면 어느 순간 양심을 짓밟을 때에 오히려 희열을 느끼게 된다. 이런 자들은 선한 양심이나 선의를 경험해 보지 못한 자들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새로 산 와이퍼를 들고 주차해 놓은 차로 가서 와이퍼를 조립하려고 할 때였다.
새 와이퍼 교체"Hey! you don't need to use it"(저기, 당신은 그걸 쓸 필요가 없어요)
갑자기 옆에 주차된 차에서 인도 사람으로 보이는 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내가 와이퍼 포장을 뜯으려고 하자 나에게 뜯지 말라며 손바닥을 내보이며 나의 행동을 멈추려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차 트렁크에서 와이퍼를 꺼내 나에게 가져왔다.
"You just use these, these are almost new. I don't need it anymore." (이거 쓰세요, 이거 거의 새거예요 나는 더이상 필요없으니까요)
그는 멀쩡해 보이는 와이퍼를 나에게 건네며 이전에 타던 자신의 차가 캠리였다며 이 와이퍼를 쓰면 될 거라고 하면서 가져온 와이퍼를 나의 차에 조립해 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다소 황당하면서도 고마운 이 상황에 연신 땡큐를 연발했다. 그는 괜찮다며 어차피 자신이 쓰지도 못하는 거라며 웃으면서 자리를 떠났다.
나는 새로 산 와이퍼를 다시 샵으로 들고 가서 환불했다. 결국 나는 돈을 세이브했다. 나는 하루 사이에 지옥와 천국을 오고 가는 불행과 행운을 둘 다 경험하는 하루를 보냈다. 만약 오늘 아침 나의 차에서 와이퍼가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악의도 선의도 경험하지 못하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기억되지 못할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마도 내 삶에서 쉽게 잊어지지 않을 하루가 될 것이다. 아름답고 기쁘고 맛있고 환상적인 기억도 오래 기억되지만 우리에겐 잊히지 않은 또 다른 기억이 있다. 그건 일상적이지 않은 것이나 익숙하지 않은 것 혹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을 누리지 못할 때이다. 더 아름답고 더 기쁘고 더 환상적인 일들은 이전의 좋았던 것들을 잊히게 하지만 후자는 계속 회자된다. 만약 그런 상황이 오늘처럼 반전의 상황까지 함께 선사했다면 이건 더욱더 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감사 일기까지 쓰게 된게 아니겠는가.
만약 오늘 불행으로 하루가 끝났다면 나에겐 악의가 남았겠지만 행운으로 끝났기에 나 또한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 수 있는 양심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 선은 선을 낳고 악은 악을 낳는 법이다.
불행에서 시작했지만 행운으로 끝나게 한 오늘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