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장소와 환경만 바뀌었을 뿐이다. 나는 그대로다. 장소와 환경이 바뀌면 나도 바뀌어야 하지만 나는 이제 쉬이 바뀌지가 않는다.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현재로서 내가 가장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지만 글이 좀처럼 써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계속 읽기로 했다.
오늘은 명지에 있는 국회도서관으로 향했다.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넜다. 한국에 온 이후 자전거가 나의 발이 되었다. 반경 10km 이내는 자전거로 이동한다. 가는 길에 미술관을 만났다. 작가가 예술을 지나칠 수 없다. 예술관을 둘러본다. 예술 작품보다 그것을 품고 있는 건물에 더 큰 관심이 간다. 녹색의 덩굴들로 둘러싸인 건물은 친환경을 나타내려는 걸까? 전시관에도 기후변화 환경보전에 관한 예술작품들이 전시 중이다.
평일 오전의 한적한 미술관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가져본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을 소모하고 또 소모하며 다음 세대에게 줄 것은 남겨놓지 않고 다 쓰고 갈 모양이다. 어쩌면 아이를 낳지 않는 한국의 청년들은 가장 현명한 판단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들은 숨쉬기도 힘들고 황폐해진 지옥 같은 세상에 생명을 남겨놓고 가진 않으니 말이다.
부산 현대 미술관
"우리는 모두 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럼 우리가 아이를 가지고 낳는 일은 죄를 영속하는 것인가요?"
예전에 교회에서 이런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긴 힘들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원죄설을 주장한다. 이 말은 유교에서 순자의 성악설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악과 죄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 남녀가 만나 교합하고 생명을 잉태하는 일이 과연 좋은 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 이 논리(원죄설, 성악설)를 역으로 생각해 보면 생명을 이 땅에 내어놓는 일은 죄을 이어가는 일로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죄를 영속하는 일을 왜 고귀한 일인 것처럼 생각하게 된 것인가? 모순이지 않은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두 인간이 오염시켰고 타락시켰으며 황폐화시켰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속에서 순환하며 살아간다. 인간만이 그것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 결과 지금의 수많은 재앙(이상기온, 산불, 홍수, 전염병, 전쟁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는 이런 사실들은 거의 명명백백해지고 수많은 데이터와 근거들이 쌓여 더 이상 기업가들과 정치인들조차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여태껏 살아온 방식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조금씩 자연에 관대해지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 욕망을 줄여야 함을 견디지 못한다. 과거 산업혁명 이후 고작 200년의 시간이 지구의 수백만 년의 역사를 종결짓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 봤던 유튜브에서 봤던 짧은 공익광고 영상이 뇌리에 남아 계속 상기된다.
한 모자(母子)의 조각상이 도심에 놓였다. 어머니와 어린아이가 손을 잡고 있는 조각상이 뭔가 조금 이상하다. 많은 이들이 의아하게 바라보며 지나간다. 그 이유인 즉, 어머니의 조각상은 그대로인데 아들의 조각상은 시간이 가면서 천천히 그 형상이 일그러진다. 아이의 조각상은 얼음으로 만들어졌다. 뜨거운 햇볕아래 아이의 조각상은 눈물을 흘리며 점점 녹아내린다. 그리고 아이의 조각상이 다 녹아내리자 글귀가 나타났다.
다음 세대가 살아갈 터전 그리고 환경은 온전히 남겨두지도 않은 채, 아이를 가지고 낳는다는 것은 어쩌면 더 큰 죄악을 저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몇 년 만에 만난 오래된 친구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 친구는 어려서부터 항상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친구였다. 현실 감각이 아주 뛰어난 지극한 T(Thinking) 형으로 현실의 삶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되는지 너무 잘 아는 친구였다. 역시나 몇 년이 지나 다시 만난 친구는 직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현실에서 내가 이루지 못한 모든 것들을 다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도 한 가지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걱정이 있었다. 그건 바로 자녀 걱정이었다.
"요즘 세상이 참 뭐 같아서 애들 키우는 게 무섭다."
그에게 자녀는 기쁨이기도 했지만 또한 걱정이기도 했다. 하필 때 맞춰 그와 나는 도심의 번화가를 걷고 있었고 우리의 눈에는 골목에서 실오라기 같은 옷을 입은 앳된 여자아이들이 삼삼오오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들은 지나가는 우리 둘을 흘겨보며 담배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친구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걱정이다 혹여 내 딸도 저럴까 봐"
"세상 걱정 남 걱정 전혀 없던 너도 니 아이들은 걱정인가 보네"
"너도 키워봐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고것들이 요즘 같은 세상에 어찌 될까 생각하면... 으으으흐"
"그러고 보니 너네 아이들은 2100년까지 살겠네"
"하아~ 휴~"
친구는 나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2100년이 올까. 다음 세대는 이제 그들의 수명만큼 살 수 있는 터전이 있을지가 의문이다. 국가와 기업과 사회는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들이다. 사람을 생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꾸 뭐라고 핀잔 섞인 말을 쏟아낸다. 사회 문제라고 일색들이다.
우리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 지금의 결과가 생긴 것은 아닐까.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그저 노동력으로만 치부했기 때문에 지금의 현상을 초래한 것은 아닐까. 국가와 기업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노동력이 필요하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오랜 시간 그 많은 노동이 이뤄낸 것이 성장과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남겨놓은 것이라곤 오염과 황폐였다는 사실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우리는 발전에만 집중하고 성장에만 환호했다.
빛이 강해지면 그림자도 짙어진다는 명백한 사실을 우리는 애써 망각하며 살아왔다. 빛만 쫓으며 그림자를 무시했다. 이제 그 그림자가 더 강해질 시간이 찾아오고 있는 듯하다.
빛이 강했던 시간을 누린 만큼 이제 그 그림자 속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우리의 다음세대는 이제 그 그림자(어둠) 속의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현재의 것들을 멈추지 않으면서 다음 세대가 빛 속에 살아가길 바라는 것은 모순이 아니겠는가. 지금 바로 우리가 그 어둠의 시간을 감수하고 덜어가야 한다. 발전과 성장이 아닌 정체와 정화의 시간을 받아들이고 자연과 생명이 살아날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시간은 또한 우리의 인간성이 다시 회복되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얼마 전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한동안 세계의 공장이 멈추고 인간의 활동이 멈췄을 때를 기억해 보자. 떠나갔던 동식물들이 다시 찾아들고 물과 공기는 다시 눈에 띄게 맑아졌다. 그것도 잠시 인간들은 그 정체와 정화의 시간을 견디질 못했다. 다시 우리가 말하는 일상의 바쁨, 즉 생산과 소비의 시간으로 돌아왔다. 200년간 황폐화된 세상이 회복되기엔 너무나 부족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지금 누리는 것들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이기적인 생각일 수 있다. 왜냐 나만 살고 누리다가 떠날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적어도 다음 세대를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그들이 그 황폐화된 세상에서 고통받으며 살아가게 하는 것이 더 이기적이고 가혹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국 청년들이 지구를 위해 가장 헌신과 희생을 하고 있는 인간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역발상을 해본다. 우리의 미래(다음 세대)가 사라지면 지구의 미래가 살아날 수 있으니까... 더 이상 황폐화 시킬 인간이 없는 지구는 다시 회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나는 세상에 이로운 존재인가? 비록 국가와 기업과 사회에는 불필요한 존재일지언정...
"무리 속의 한 여인이 그에게 말했다. '너를 낳은 자궁과 너를 먹인 유방에 복을 빌어라! ' 그가 그 여인에게 말하였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진심으로 지킨 자들이 복이 있도다! 너희가 ' 아기를 가진 적이 없는 자궁과 젖을 먹인 적이 없는 유방이여, 복되도다 '라고 말할 그런 날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 [도마복음] 79장 -
1 A woman in the crowd said to him, "Blessings on the womb that bore you and the breasts that fed you. "2 He said to her, "Blessed are those who have heard the word of the father and have truly kept it. 3 For there will be days when you will say, ' Blessed are the womb that has not conceived and the breasts that have not given milk.' "
자녀가 고통 속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모두가 자녀가 잘되고 행복하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은 자녀들이 고통받는 세상만을 만들고 있진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자녀를 낳지 않는 것이 어쩌면 그들에게 고통을 주지도 않으며 우리 또한 그런 고통을 지켜보지 않아도 될 수 있지 않은가?
[도마복음] 속 구절이 너무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건 나만 그런가?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옛 말이 문득 떠오른다. 그럼 지금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현명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인가?!
[The Airport] - John Akomfrah - 외계인이 지구를 떨어져 본다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