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목수 Dec 13. 2023

반국가 세력은 누구인가

[서울의 봄]을 보고 난 후...

오늘은 12월 12일 그날이다.


12.12 The day. [서울의 봄]의 해외 상영판 제목이다. 이곳 호주에도 그 화제의 영화가 상륙했다.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이곳 한인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많은 한인들이 영화관을 찾았다. 나도 주말 저녁 홀로 영화관을 찾아 몇 개 남지 않은 좌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두 시간 반가량의 긴 상영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긴박감 있는 스토리 전개와 극 중 인물들의 리얼한 연기가 마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는 듯했다. 결말을 알고 본 영화였지만 마지막은 적지 않은 씁쓸한 여운을 남겼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 언짢은 기분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44년 전 오늘 한국은 한 인간의 야욕으로 인해 이후에 닥칠 수많은 희생의 서막을 열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가 국가의 원수로 등극하는 다음 해(1980.9월) 가을의 시작과 함께 세상에 나왔다. 나는 군부 독재의 시작과 함께 탄생했다.


"엄마, 장래희망 뭐라고 적을까?"

"장군 적어라"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를 다닐 때는 해마다 학년이 바뀌면 생활기록부를 작성해야 했다. 그 생활기록부에는 항상 해마다 장래희망을 적게 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꿈이 뭔지도 모르고 마냥 친구들과 놀고먹는 것에만 관심 있던 나는 항상 장래희망을 엄마에게 물어봤고 나의 장래 희망 장군이 되었다. 엄마의 꿈은 내 꿈이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대검을 차고 늠름하게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은 한 손에 책(훈민정음)을 들고 앉아 있는 앉은뱅이 세종대왕보다 더 위엄 있고 멋있어 보이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총과 칼이 힘이 되던 시기가 있었다.

이순신 장군 동상

그래서였을까? 당시 초등학교에서는 싸움 잘하는 아이들이 학교를 휘어잡고 있었다. 우리들 말로는 '통'이라고 했는데 요즘으로 치면 '짱'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초등학교마다 그 학교의 '통'이 있었는데 그들은 패를 이끌고 이 학교 저 학교를 다니며 무력의 서열을 매기고 다녔다. 내가 어릴 적 다니던 초등학교의 '통'은 싸움을 곧잘 하는 아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주변 초등학교 '통'들을 때려눕혀서 부산에서는 꽤나 이름을 날리는 친구였다.


그 친구랑은 4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그때부터 주먹이 유명해서 5, 6학년 선배들도 그를 건드리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키가 아주 커서 반에서 가장 뒤에 앉았고 번호도 가장 끝 번호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항상 1번 아니면 2번이었다. 그때도 1번이었다.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키 순서로 번호를 매기고 그 번호 순서대로 책상에 앉았다. 그 당시 한 반에는 50~60명이 있었다. 그와 나는 특별한 접점이 없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그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 항상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지금의 꼬치친구들이다. 한 번은 그 친구들과 돈가스를 먹으러 갔던 적이 있다. 그런데 돈가스를 먹으러 2층에 자리한 경양식 가게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서 다른 학교 '통' 무리와 마주쳤다. 그들은 쳐다보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옆 골목으로 우리를 끌갔다. 그때 친구 중에 그나마 덩치가 가장 큰 친구가 그 통에게 몇 대 얻어맞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덩치가 너무 왜소하고 작아서 건드리지도 않았다. 나는 맞지도 않았는데 가장 많이 떨었던 것 같다. 제일 큰 친구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벌벌 떠는 손으로 지갑을 그 패거리들에게 건네려는 찰나였다.


"퍽!"


그때 뒤에서 그가 나타났다. 그는 전광석화 같은 몸놀림으로 다른 학교 패거리들을 하나둘씩 때려눕혔다. 그리고 마주한 두 '통' 하지만 아쉽게도 두목 간의 맞대결은 볼 수 없었다. 상대편 통은 이전에도 맞대결에서 이미 한 번 쓴 맛을 본 뒤였고 녀석은 자신이 그의 일대일 상대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 녀석은 입술이 터지고 눈퉁이가 밤탱이가 되어 바닥에 뒹굴고 있는 부하 잔당들을 데리고 골목 밖으로 뒷걸음치며 사라졌다. 도망가면서도 이를 갈며 매서운 눈빛으로 우리와 '통'을 쳐다보며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는 골목 돌아서 사라졌다.


"괘안나?"

"어...!"

"니 1번 맞제?"

"어..."

"돈가스 무로 왔나?"

"어..."

"내도 무로 왔는데 같이 올라가자"

"어..."


그렇게 우리는 '통'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돈가스를 먹었다. 그때 그 친구와 처음으로 말을 섞으면서 그가 생각보다 순수한 친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순수함이 지나쳐 무식하게 보인다고 해야 할까? 싸울 때의 모습과는 달리 말은 어눌하면서 더듬거리는 모습이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그는 아마도 말로는 세상에 자신을 드러낼 수 없음을 일찍이 깨달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는 듯했다. 그게 자신을 업신여기지 않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는 우리를 구해준 은인이긴 했지만 그의 주먹에 묻은 핏자국과 험상굳은 얼굴 때문에 돈가스를 먹는 내내 어색함과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인간은 무력의 두려움 앞에서 음식의 진정한 맛을 느끼긴 쉽지 않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무력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무력이 설사 나를 지켜준다고 할지라도 그 무력은 언제 어떻게 나를 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같은 편이라도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서울의 봄] 중에서

"대한민국 육군은 다 같은 편입니다"


                                   - [서울의 봄] 중에서 -


영화는 무력 앞에서 초라해지는 인간들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무력은 생명과 직결된다. 말과 글은 생명을 앗아가진 않지만 무력 앞에서는 목숨을 담보할 수 없다. 그렇기에 모두가 무력 앞에서 꽁무니를 내리고 일단 목숨을 부지하려 한다. 이건 생명을 가진 모든 동물의 본능과도 같다. 이런 무력 앞에서는 대의와 정의와 선의는 자취 감춘다. 무력은 가장 빨리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는 수단이다. 무력이 권력이 되면 안 되는 이유이다.

[서울의 봄] 중에서...

"인간이라는 동물은 안인나,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리드해 주길 바란다니까"


                                 - [서울의 봄] -


강력한 무력을 따르는 것은 복종이다. 복종하는 자들만 있는 세상은 자신의 지배하는 자의 생각과 능력 이상의 것이 생겨날 수 없다. 복종받는 자는 또다시 누군가를 복종시키는 방식으로 조직과 공동체를 움직인다. 상명하복의 군인 정신이 세상을 지배하면 다양성과 창의성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똑같은 옷(군복)을 입고 똑같은 행동체계와 똑같은 사상을 가진 곳은 기계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다. 무력으로 싸우는 것은 가장 하수이고 가장 최후의 수단이다. 그 말은 갈 데까지 갔다는 말이고 더 이상의 인간다움은 찾아볼 수 없는 강육강식의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가 없다.


나 또한 2년 2개월을 영화 속 수방사(수도 방위 사령부 = 과거 영화 속 수도경비단) 예하에 있는 전투 부대에서 군생활을 했다. 군생활을 떠올리면 씁쓸한 미소가 묻어난다. 나는 군인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국방의 의무 아닌가? 물론 누군가는 군인과 어울리는 성향을 가진 자들도 있을 것이다. 폭력과 폭언이 난무하고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곳, 분단위와 초단위로 짜인 일과와 훈련, 개인의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곳은 나에게는 어쩌면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힘든 후임병의 시간이 지나고 내가 소대의 최고참이 되었을 때 내 별명은 '물병장'이었다. 내가 소대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지만 나는 존재감이 크게 없었다. 왜냐 나는 그런 분위기를 싫어했기 때문에 내가 겪어온 그리고 받아왔던 방식으로 누군가를 지배하고 다스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군대라는 것이 또 그런 분위기를 유지하지 않으면 유계질서 무너지기에 나는 모든 권한을 내 동기와 바로 밑 후임에게 모두 일임했다. 그리고 나는 관심을 끊었다. 나는 마치 내부반에 얹혀있는 방관자(관조자)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내부반의 후임들은 나를 편하게 대했고 심지어 짬 좀 먹은 후임은 나를 무시하기 까지도 했다. 그래도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권력에 관심이 없었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기쁘게 해주는 것보다 내가 스스로 기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항상 그것이 무엇인지 찾았고 지금도 찾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군 제대 후 나를 찾는 전우라고는 내 군 동기 녀석 딱 한 명 밖에 없다. 녀석은 꽤나 권력의 맛을 즐긴 녀석인데... 녀석은 당근과 채찍을 법칙을 잘 활용하는 녀석이었다. 화가 나면 밑에 후임들을 얼이 빠지도록 얼차려를 고 또 평소에는 그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챙겨주곤 했다. 나는 채찍은 없고 가끔씩 당근만 챙겨주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제대할 때 내 동기는 전우들과 얼싸안으면 울고 불고 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나는 그냥 악수로 그들과 간단한 이별을 고한 것에 비하면 그의 전역은 뭔가 모르게 감동적인 드라마 속 상황 같기도 했다.


그때 나는 인간이란 결국 강력한 누군가가 리드하는 것에 길들여지면 그것이 정이 고 추억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불병장은 기억해도 물병장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그 불병장과는 친구처럼 연락하며 지낸다. 군대에서 건진 유일한 친구이다. 나보다 어리고 입도 거칠며 나와는 완전 상극인 성격임에도 그와 함께 있으면 재밌고 편안하다. 그건 아마도 우리 둘이 힘든 시기를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와는 추억이 너무 많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와 관련된 군대얘기를 소설로 써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인간은 길들여지는 동물이다. 이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부모와 학교와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양육되고 교육받고 훈련받는 것 모두가 길들여지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모든 울타리에는 우두머리가 있고 우리는 그 우두머리가 보스이던 리더이던 상관없이 따라야만 하는 존재이다.


당신이 독재보스를 만날지 혹은 성인군자를 우두머리로 만날지는 알 수 없다. 그건 신의 뜻에 달렸다. 하지만 당신은 그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면 당신은 독재보스를 닮든 성인군자를 닮든 싫든 좋든 배운 데로 닮을 수밖에 없다. 싫어도 교육되고 훈련되면 몸이 기억하고 몸이 반응하게 된다. 길들여진 것이다.  


과거 오랜 시간 군부독재의 시간(30여 년) 길들여진 우리의 역사는 아직도 우리 주변에 잔존하고 있다. 우리가 길들여진 이 시간이 우리의 경제를 그만큼 빨리 발전시켰다고 말한다. 군대식의 '안되면 되게 하라' 정신은 한국의 모든 힘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군대의 막강한 화력과도 같은 힘을 발휘했고 정말 '한강의 기적'이라는 기적 같은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빛나는 영광만을 바라봤을 뿐 너무도 강한 빛이 만들어낸 어둠 보지 못했다.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어둠도 더 짙어지는 법이다. 우리는 외형의 영광을 얻었지만 내면의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것들이 이제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인간성의 말살, 빈부 격차, 황금만능주의, 결과/성과주의, 결혼출산인구의 감소, 환경오염 등등.


선택과 집중의 경제학 그리고 성공학 논리는 틀리지 않다. 무언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문제는 모두가 그 한 가지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군인은 모두가 한 가지 목적, 즉 적을 섬멸하는 것으로 모인 조직 아니던가. 그리고 그 적은 두목이 정한다. 문제는 그 두목이 누구인가이다. 군인은 선악을 구분할 수 없으며 정의를 논할 수 없는 자들이다.(설사할 수 있다고 해도 그들은 하면 안 되는 조직이다) 그들은 생각하고 판단하는 조직이 아니라 행동하는 조직이다.


그래서 군인(우두머리)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면 국가는 군대가 되고 국토는 전장이 되고 국민은 적이 된다.


그렇게 수많은 국가의 적(반국가 세력)이 자국에서 죽었다. 지금도 그들이 적인가?


[12.12 The day] in Sydney


반국가세력은 누구인가

https://www.instagram.com/reel/C0ypVZmxZ1N/?igshid=MzRlODBiNWFlZ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