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목수 Jun 15. 2024

쓰임새를 발견한다는 것

십장(什長)과 장인(匠人) 사이

“이거 구멍이 너무 헐거워서 안 되겠는데…” 

“그럼 어떡하냐? 본드라도 좀 집어넣어서 스크루를 박을까?”

“본드 넣는다고 되냐? 본드가 바로 마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데 힌지(경첩을 박으면) 또 그 자리도 메꿔야 되고 일이 커지는데…”

“팀버(나무) 비스킷 같은 거 없나, 아 맞다~ 젓가락!”


오래된 화장실 레노베이션을 마쳤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화장실 문을 다시 설치하려고 할 때였다. 문에 페인트칠도 새로 하고 겉으로 보기엔 완전히 새로운 문처럼 보였지만 경첩과 문 프레임이 연결되는 부위는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 경첩이 달린 문을 문 프레임에 연결하려 했지만 이미 스크루 구멍이 너무 헐거워져 문의 무게를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이대로 스크류를 박으면 얼마 못가 문이 떨어질게 뻔해 보였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점심 식사때 컵라면을 먹으며 썼던 나무젓가락이었다. 나는 문을 설치하다 말고 쓰레기 통을 뒤졌다. 쓰레기 더미에서 끝이 빨갛게 라면국물에 젖은 나무젓가락을 찾아내었다. 나는 그 나무젓가락을 여러 조각으로 부러뜨렸다. 그리고 그 끝을 칼로 깎아서 구멍에 쑤셔 넣고 망치로 쳐서 박아넣었다. 나무젓가락이 스크루 구멍을 빈틈없이 메우며 밀려 들어갔다. 그렇게 쓰레기였던 나무젓가락은 문짝과 팀버프레임과 한 몸이 되었다. 그 위에 경첩을 올려 다시 스크루를 박았다. 스크루가 짱짱하게 나무에 물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문을 설치하고 화장실 레노베이션을 마무리했다.

화장실 레노베이션


적재적소(適材適所)란?


내가 목수 일을 하면서 바뀐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목수는 주변의 의미 없어 보이는 사물과 지형지물 그리고 널려있는 쓸모없어 보이는 쓰레기들에서 쓰임새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서두의 사례 말고도 수많은 일례들이 있다. 그래서 목수는 기억력과 임기응변에 능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오랜 시간 이 일을 하다 보면 기억과 임기응변에 능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늘지 않는다면 목수는 몸이 좀 더 피곤하고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써야 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수많은 공구와 자재와 공사장에 널브러진 수많은 쓰레기 같은 사물들의 위치를 기억하고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각각의 사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인식할지에 따라서 수많은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들을 대처하고 해결해 나갈지가 결정된다.


목수는 안목의 깊이도 중요하겠지만 그 넓이가 더 중요해 보인다. 목재의 질감과 느낌과 형태를 잘 깊이 잘 이해해서 견고하고 아름다운 목조 구조물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기 다른 재질의 자재들과 그 자재들을 연결하고 이어주고 서로 맞물리는 수많은 부자재와의 융합과 연결을 넓게 이해하는 것이 수많은 상황들을 해결해 나가는 지혜를 가져다준다. 이런 지혜는 오랜 시간 수많은 자재들을 보고 만지고 자르고 다듬으면서 손으로 그 질감과 쓰임새를 익혀야만 가능한 것이다.


“아놔! 저 사람은 입으로 일하나?”

“저 사람은 올바르게 일하는 걸 원하는 게 아냐,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거지”

 

목수일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현장에서 말 많은 사람치고 일 잘하는 사람을 못적은 별로 없다. 며칠 전 그런 말 많은 한 이태리 사장 곁을 떠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떠났다. 왜 떠나는지는 내가 그곳에서 4개월이란 시간을 일을 하며 지내보니 십분 이해가 되었다. 그곳에는 스스로 올바르게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시키는 대로 혹은 보여주기와 눈치 보기로 버티는 자들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어차피 문제가 터지고 사고가 나도 책임은 없다. 물론 사장의 짜증과 화가 미치긴 하지만. 그러니 알면서도 그냥 시키는데로 한다.


열에 하나까지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지시하는 그 사장은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되는 것 마냥 말하고 행동했다. 그리고 거기 남아있는 자들은 모두 자신이 아는 전문 지식과 경험과 노하우보다는 그의 말을 우선했다.  자신이 과거 거쳐왔던 과오를 다시 되풀이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생계를 위해서는 옳지 않은 일도 해야만 한다.


과거 한국에서 직장 생활할 때의 그 모습들이 다시 떠올랐다. 믿고 맡기지 못하는 보스는 그들 위에 굴림하려고 한다. 보스는 그들의 생계는 이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의 역량과 생각을 넓혀주진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욱더 그 보스에게 더 매달리게 된다. 삶이 피동적이고 수동적으로 변해간다. 리더가 아닌 보스에 충성한 결과이다.


그는 노가다를 전혀 해 본 적이 없는 사장이었다. 멀리서 눈으로 보기만 했을 뿐이다. 망치를 손에 들고 못을 제대로 박아보지 못한 자가 입으로 집을 지으려 한다. 목수는 뇌로 생각하고 손과 발로 일을 하는 사람이다. 말로 설명하는 것과 몸으로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말은 손과 발이 느끼는 감각과 물리적 저항과 시공간의 장애를 공감할 수 없다.


“이렇게 저렇게 자르고 붙이고 올리면 되겠네요”


입으로는 1분이면 집을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손과 발이 움직여서 구현하는 것은 1년이 걸릴 수도 있는 것이다. 집을 짓는 과정에는 예상치 못한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이건 마치 우리의 인생과도 같다. 물론 집은 설계 도면대로 완성되어야 마땅하지만 그 집이 도면대로 완성되는 과정은 목수마다 천차만별인 것과 같다. 큰 프로세스는 비슷하지만 그 안에 세부공정과 순서는 때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완성된 그림이 같아도 그 과정은 모두 다르다. 그런 수많은 예상치 못한 상황들 속에서 목수의 역량이 커져가는 것이다. 그래서 목수는 다양한 경력과 경험의 시간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목수는 상상이 아닌 체험으로 성장하는 직업이다.


장인(匠人)은 절대 분주하지 않다.


작년에 두어 달간 고급 하우스 공사를 했던 적이 있다. 그곳에는 연로하신 노인 목수 세 분이 계셨는데 그중 나이가 가장 많으신 기술자 목수 어르신이 기억에 남는다. 작은 체구에 말 수가 거의 없으신 분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일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어떤 분주함이나 당황스러움도 없었다. 항상 태연하고 자연스러운 움직임들이 아주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물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주변의 사물들과 공구들을 마치 모두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손과 발이 한치의 머뭇거림 없이 움직였다. 그 노인 목수의 움직임은 느릿느릿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움직임은 모든 불필요한 움직임이 사라진 느림이었다.


“뭐야 이거 누가 벽을 이렇게 세웠어! 다시 다 떼내!”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분주히 움직이며 벽을 세웠다. 하지만 내가 결국 처음에 잘못 세운 벽 때문에 그날 세운 모든 벽들 다시 떼어내야 했던 적이 있다. 나의 몸은 지쳐 쓰러질 정도로 녹초가 되었지만 결국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은 세우고 다음 날은 다 떼내야 했다. 이틀 동안 아무 물리적 변화가 없는 상황으로 되돌리는 일만 했다. 현상은 그대로인데 시간과 노동만 투입되었다. 헛수고다. 물론 느끼고 배운 건 많다.


물론 그때 포맨(Foreman :십장) 목수가 원하는 기대치에 따라서 약간 기울어진 벽도 그냥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그런 것을 받아들일 장인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의 경험이 몸에 베인 자들은 느린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가장 빠른 방법은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이고 지켜야 할 것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십장(什長)과 장인(匠人) 사이


그래서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목수는 두 가지 종류의 나눠지는 듯하다. 넓게 관장하는 목수, 즉 십장(foreman, 감독) 목수와 정교하고 어려운 일을 해내는 장인(전문가) 목수로 나뉜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둘 다 필요하다. 전자는 일을 넓게 보고 사람의 쓰임새를 잘 아는 목수이고 후자는 일을 깊이 있게 보고 공구와 사물의 쓰임새를 잘 아는 목수이다.

A foreman and an artisan carpenter are working together in the house contructon site

이 둘이 조화를 잘 이루면 견고하고 아름다운 집을 만들 수 있다. 리더(Leader)와 전문가(specialist)의 만남이다. 서로가 윈윈(Win-win)하는 관계이다. 서로 소통하며 믿고 의지하는 관계이다. 문제는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라도 리더가 아닌 강압적인 보스를 만나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리더를 만나느냐는 아주 중요하다. 전문가도 보스를 만나면 어느 순간 노예처럼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안타깝지만 내가 목수 일을 하면서 여러 현장을 돌아다녔지만 이런 리더를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쓰임새를 발견한다는 것


나는 이제 조금 공구와 사물의 쓰임새를 알아가는 목수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쓰임새를 안다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거 예수도 집을 지으며 공구와 사물을 쓰임새를 익히고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그가 나중에 수많은 제자들의 리더가 된 건 분명 제자들특징과 쓰임새를 잘 알고 그들의 역량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쓰임새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은 한낱 쓸모없어 보이는 사물과 지식과 사람도 보물과 콘텐츠와 인재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능력은 사물과 지식과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다. 


쓰임새를 발견하는 능력이야말로 이 시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


당신은 어떤 쓰임새를 발견하고 있는가?

Jesus recognizes the talents of the 12 disciples and uses them in the right place
매거진의 이전글 예수가 목수였던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