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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Sep 09. 2024

해와 달의 관계

데모도 ep4

그의 첫인상은 마치 안경을  임꺽정 같았다.

 

그는 펍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택건의 눈에 띄었다. 망사 그물이 달린 형광색 라운드 창이 있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모습은  시골에서  매는 아낙네들이 볕을 막아보려 창이 넓은 모자와 목에 수건을 두르고 있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그는 택건과 데니얼이 앉아있는 테이블을 보더니 모자를 벗으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며칠 동안 면도를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깎은 지  사나흘쯤 되었을까 잔디처럼 빳빳하게 일어선 검은 수염과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 수염과 얼굴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어 놓았다.

 

" 왔어?  늦었네 오래간만이야 이제  마치고 오는 길이야?"

"어, 현장이 멀어서, 네가 말한 애가 얘야?"

"? ! 그래 인사해! 택건이라고 우리 집에 셰어하고 있는 동생"

"안녕하세요 이택건입니다"

"어,  써니(Sunny),  마실래들?"

 

데니얼은 반가운 표정과 함께 써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써니는 하얀 팔토시를 벗으며 표정 없이 대답만 하고 자리에 앉았다. 데니얼은 무안한 손을 내리며 택건을 써니에게 소개했다. 어두운 색이 들어간 안경렌즈 뒤에 숨은 그의 눈동자는 택건을 아래위로 한번 훑어보았다. 그리고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바(Bar) 테이블로 발걸음을 옮겼다. 데니얼은 그가  멀어지기 전에 그에게 브이비(VB : 맥주 브랜드)라고 소리쳤다. 택건도 얼떨결에 같은 걸로 부탁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써니는  테이블에 서서 맥주를 주문했다.

 

"차갑지?"

"?! 뭐가요?"

"사실 저 친구 나랑도 별로  친해.  와이프랑 쟤네 와이프랑 그리고 애들끼리 친한 거지"

 

둘은 띠가 다른 동갑이다. 데니얼은 76 용띠 써니는 75 토끼띠였다. 데니얼은 1월생이다. 빠른 76이다. 그리고 데니얼은 이민 1.5세대이고 써니는 이민 1세대였다. 데니얼은 부모 따라 호주에 왔고 써니는 혼자 왔다.

 

써니는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도 아니고 호주 와서 학부모 관계로 알게  사이였다.  써니는 친구인 양 말을 놓는 데니얼이 못마땅한  보였다. 택건은 둘의 모습에 어쩌면 이곳이 한국보다  보수적인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사람들은 한국을 떠나올  시간에 멈춰있어"

 

언제인가 데니얼이 여느 때와 같이 막내딸과 한바탕 취침 전쟁을 피해   담벼락에서 담배를 피우며 택건에게 했던 말을 기억났다.

 

" 인마! 어디 감히 하늘 같은 형님한테..."

 

데니얼은 말버릇처럼 택건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가끔씩 상하 경계를 넘나드는 택건의 친밀한 행동이나 말투에 자신의 권위를 지키려 하지만  모습이  웃기 친근하게 느껴지는  어쩔  없다. 택건은  모습에서 가끔 그가 마치 한국의 90년대 머물러 있는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행인  그도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데니얼도 고등학교  한국을 떠나온  시점에서 시계가 멈춰있었다고 했.  멈춰진 시계 때문에 낯선 호주 땅에서의 학창 시절이 고통의 시간으로 바뀌었다고 털어놓았다.

 

시간이 멈춘 공간 속에 홀로 남겨진 듯한 느낌이랄까? 자신의 시계는 멈춰있고 다른 이들의 시계는 계속 움직인다. 이건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장면과도 같다. 주인공이 번화가 길거리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홀로 멈춰있는 장면이다. 갑자기 낯선 곳에 떨어지면 이방인이 된다.

 

현지인과 이방인이 겉보기에 다른 점이 있다면 이방인은 두리번 거리며 걷는다는 것이다. 일상의 터전인 현지인은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만약 현지인이 두리번 거린다면 그 자는 뭔가 수상한 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방인은 적잖은 시간을 멈춰 서서 어울리지 못하고 그곳을 관찰한다. 1.5세대와 1세대가 다른 점은 이 멈춰진 시간의 길이가 다르다는 것이다. 1.5세대가 더 길다. 그건 부모라는 울타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세대에게는 울타리가 없다.

 

과거 데니얼도 적잖은 시간 방황했다. 한참 예민한 청소년 시기 낯선 땅에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떨어졌다. 보통 청소년기는 세상을 이해하는 시기가 아닌 자신이 이해받길 원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질풍노도의 시기이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 반항으로 일관한다.


이해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세상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봉착했다. 유년기와 소년기를 거치며 이제 좀 적응했다 싶었는데 다시 유년기로 돌아가야 한다. 누군가로부터 이해받길 원하고  원했지만 아무도 그를 이해해주지 않았다. 부모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마찬가지이다. 혼돈의 시기가 시작된다. 더욱이 언어 장애까지 극복해야 한다. 그런 혼돈의 시기를 함께 친구도 없다. 부모와 학교를 향한 무저항 같은 반항이 시작된다. 그것만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시계는 한국을 떠날 때에 멈춰버렸다.

 

그는 자신이 먼저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호주에 온 후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데니얼은 대부분의 호주의 한인 이민자들의 시계가 멈춰있었던 시간만큼 현재의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멀어지는 거라고 했다. 그렇게 정체성이 바뀌어 간다. 정체성은  세대  세대가 넘어가면서 완전히 바뀌어 버린다. 한국인의 유전형질만 유전될   문화와 가치관은 모두 바뀐다.

 

다른 환경과 언어 그리고 시스템을 거부하고 기존의 것들을 지키려고 했던 것이 시간은 결국 호주도 한국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었다. 이민 세대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이다. 호주인도 한국인도 아닌 그들만의 정체성이 생겨난다.

 

 때문인지 이곳에 정착한 지 오래된 한인 이민자들은 이곳에 오는 새로운 이민자들과 워킹 혹은 유학생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물론 그 반대쪽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서로는 멈춰진 시간과 떨어진 거리만큼 이질적이다. 생김새와 언어가 같다고 비슷할 것이란 착각이 가장 무섭다. 안타깝지만 사람들은 그런 오류를 쉽게 범하고 그 때문에 오해가 생기고 상처를 받는다. 시공간의 괴리는 관계를 어렵게 만든다.

 

"그래   일은  해봤고?"

"아니요"

" 한국에서 회사 다니다 왔데"

" 나도 한국에선 회사 다니다 왔어, 일이야 배우면 되는 거고 나이는?"

"서른아홉 80년생입니다."

"적지 않네, 그래도 다행이네"

"?!"

 

택건은 써니가 다행이라고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없었다. 하지만 잠시  나타난   명의 까무잡잡하고 깡마른 사내를 보고 나서야 그 말을 이해할  있었다.

 

"~  늦었습니다. 정말 주차할 데가 없네 리드컴에 왜 이렇게 차가 많아진 거야? 한참을 돌았네요"

"왔어! 앉아, 인사해 이제 같이 일할 동생이니까"

"~ 형님! 그럼 이제 내가  (Pack-up)  해도 되는 겁니까? 반가워요! 잘해봅시다. 반문입니다. 그냥 문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나이는 마흔이고요 79년생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택건입니다. 형님이시네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문은 깡마른 체형과는 달리 입심이 강했다.   없이 말을 한다. 말을 한다기보다 숨을 쉬듯이 끊임없이 내뱉는다는   어울리는  같았다. 말은 많은데  말은 별로 많지 않다고 해야 할까? 말을 많이 해서인지 열린 입으로 수분이 증발하는지 맥주를 홀짝홀짝 자주 들이켰다. 다른 이들은 반도 마시지 않은 500cc 생맥잔이 순식간에 비워졌다. 문은 사장인 써니를 쳐다봤다.

 

"형님,    마셔도 됩니까?"

"적당히 마셔라 내일   많다"

겨우 맥주 2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

"니들도  마실래?"

"아니요  괜찮습니다."

"나도  됐어"

 

써니는 지갑에서 10불짜리 지폐를 문에게 건네줬다. 그는 지폐를 낚아채듯 집어 들고는  테이블로 향한다. 문은 바에서 아는 지인을 만났는지 누군가와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는 맥주를 주문하고는 이쪽은 잊은  그 지인과의 새로운 수다에 집중했다.  좋게 말하면 사교성 뛰어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오지랖이 풍년이었다.

 

"아직  없지?"

""

"나중에 문자로 주소 보내줄 테니까 아침 5 반까지 그리로  여기서 그리 멀지 않으니 걸어오면  거야"

" 알겠습니다."

 

과묵하고 묵직한 사장 목수와  많고 가벼운 중간목수 그리고 가운데 끼인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어중간한 신입 데모도  셋의 조합은 외관상으로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그 셋이 체형만 보면 마치 저팔계와 사오정 그리고 손오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체형과 서열이 뒤섞였다.


그렇게 목수 팀이 만들어졌다. 써니와 문은 같이 사업을 시작한 1 정도 되었다. 둘은 하우스 지붕공사나 수리일 주로 했다. 지붕 목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목수 일 중에서 지붕 일이 단가가 가장 셌다. 그리고 택건이 그 사실을 알았을 때쯤 지붕 일의 강도도 그만큼 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써니가 외벌이 목수일로 세 자녀 플러스 원이 가능한 이유였다.

 

써니는 지붕 목수일만 10년째인 베테랑 기술자였다. 한국에서도 건축회사를 다녔다. 그때는 시공이 아닌 설계업무 및 현장 관리였다. 그가 처음 호주에 왔을 때는  피팅(Shopfitting:인테리어)부터 하우스 프레이밍(Framing), 데크(Deck) 공사  이것저것  가리고 했다. 이후 지붕일이 수입이 짭짤하다는  알고는 평소 알고 지내던 목수와 같이 지붕일로 전업했다.

 

목수일이 분야가 광범위하고 사용하는 공구나 자재도 많다 보니 여러 가지를 다하면 시야가 넓어지고 실력은 늘어날지 몰라도 효율은 떨어진다. 무엇보다 돈을 벌려면 효율을 올려야 하는 법이다. 

 

빌더(Builder:시공업자) 되지 않는 이상  밑에서 목수일로 날일을 해서 받는 돈은  거기서 거기이다. 노가다 날일로 부자 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가지로 전업해서 전문적으로 하면 속도와 효율뿐 아니라 공구나 자재 등의 비용적인 부분도 절감된다. 거기에 손발이  맞는 팀원만 있으면 직접 영업하며 트레이더로 혹은 시공  수리전문팀으로 움직이면 적지 않은 돈을 만질  있다는  알게 되었다.

 

아파트형 주거형태가 대부분인 한국과는 달리 지붕구조인 하우스(단독주택) 대부분의 호주는 지천에 널린 것이 지붕이었다. 좁디좁은 한국은 주택을 지을 때도 지붕을 옥상으로 만들어 공간을 활용한다. 그것도 모자라 옥탑 방까지 만들어 주거 공간으로 활용하니 도시에서 온전한 지붕을 가진 하우스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호주는 비라도  많이 내리거나 우박이라도 쏟아지는 날이면 지붕 방수 공사  수리 요청이 빗발친다. 일이 넘쳐난다. 다만 외부 작업이라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아 날씨가 궂은날은 일을   없다. 그리고 높은 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에 사람들이 기피하는 업종이기도 하다. 진입장벽이 높다.  그래서 단가가 높다.   있는  바짝 벌어야 한다. 소소하고 잡다한 집안 내부 수리 공사야 유튜브를 보며 DIY(Do It Yourself) 가능하지만 지붕 공사는 엄두를 낼 수 없다. 누구도 목숨을 담보로 DIY 하지 않는다. DIY 하다가 DIE  수도 있다.

 

써니가 이곳 호주에서  아이의 아버지 아니 뱃속에    있으니  아이의 아버지가   있었던  자신이 벌어들이는 수입이 그에 상응했기에 가능했다.

 

결국 인간의 종족 번식은 수컷이 가진 것의 많고 적음과 관련이 깊다. 가진 것도 없는데 종족 번식이 왕성하다면 그건 무지에서  행위이고  극심한 가난을 가져다줄 뿐이다. 아프리카의 최빈국들은 그래서 그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루하루 생계도 해결하기 힘든 삶은 하루살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써니는 개인 사업자이고 대부분의 지붕공사의 수입이 개별 고객들로부터 캐시(현금)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는 개인 세금 관련 분야 전문가인 한인회계사 만난 덕에 세금을 최대한 늦게 그리고 적게 내는 노하우를 모두  섭렵한  보였다. 더욱이 다자녀의 가정에 대한 적지 않은 호주의 세제혜택까지 꼼꼼히  챙겨 받는 일석이조의 행운으로 호주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반면 문은 상황이 달랐다.

 

그는 영어에 일본어까지 능통한 능력자였다. 지(智)적으로만 본다면 써니는 문에게 한참 모자랐다. 그렇지만 지적 능력과 부를 쌓는 능력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는 일본에서 시작해 동남아를 거쳐 호주까지 북반구에서 남반구까지 미끄럼틀 타듯 내려왔다. 지구본을 따라 내려온 그의 삶도 내리막과 같았다. 내려올수록 상황은 악화되었다. 일본 회사에서 배운 무역 관련 지식을 동남아에서 써먹으며 사업을 시작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이론(지식)과 실전은 일치하지 않았다. 동남아에 벌여놓은 사업들은 하는 족족 모두 망했다. 그리고 그 사업을 제대로 수습하지도 못하고 야반도주로 호주에 넘어왔다.

 

호주에 온 이후 가진  없이 이일 저일 닥치는 대로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속에서 비슷한 처지의 한국 여자를 만났다. 동병상련의 처지가 연민을 불렀다. 그리고 연민은 사랑이 되었다. 사실 둘은 연민과 사랑을 구분할 줄 몰랐다. 타향만 리에서의 오랜 고달픔과 외로움에 시달린 둘은 마른 장작과 같았고 작은 불씨에도 활활 타오르며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  사랑인지 연민인지 모를 관계는 빠른 결실을 맺었고 어느새  아이의 부모가 되어있었다.

 

불타는 사랑 속에서는 현실을 바로 볼 수 없는 법이다. 진실된 사랑은 달콤하고 행복하다. 하지만  달콤한 사랑의 시간은 아직 대가를 치르지 않았다. 사랑의 대가는 언제나 후불이다. 달콤한 만큼 씁쓸한 대가가 기다리고 있다.

 

사랑의 불씨가 잦아들고 보이지 않던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현실은 타고 남은 장작 숯불의 온기마저 꺼뜨릴 듯이 차갑고 냉혹했다.

 

 아이의 부모로 비자(영주권) 없이 더군다나 이렇다  기술이나 안정된 직업도 없이 호주에서  자녀를 양육하며 온전한 가정을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이다. 꿈만 같던 짧은 사랑의 시간은 지옥 같이 긴 현실로 변했다. 다행히 둘의 연민 같은 사랑 혹은 사랑 같은 연민이 진실했기에 지옥을 견딜 이유가 되었고 그 결실인 아이들은 그 지옥을 견딜 책임이었다.

 

써니와 문은 5  타운하우스(연립주택) 공사 현장에서 중간기술자와 데모도로 만났다. 거기서 맺은 인연이 현재까지 이어졌다. 써니는 이미 한국에서 건축을 전공했지만  호주에 온 이후 테이프(TAFE: Technical And Further Education) 호주 공립 기술 대학) 통해 카펜트리(Carpentry:목공) 자격까지 취득했다. 그리고 호주 건축회사에서  년간 일하며 영주권을 취득한 상태였다.

 

써니는 문과 같이  개월간 함께 일하며 호흡을 맞추었다. 그리고 서로에게 필요함을 느꼈고 써니가 문을 설득해 개인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문을 설득시킨 결정적인 조건이 취업비자를 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써니는 자신이 취업비자를 내줄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지인의 사업체를 통해 문에게 비자를 내주었고 일은 자신과 하는 편법을 이용했다. 문은 학생비자로 분기마다 나가는 적지 않은 돈을 세이브하고 취업비자로 나중에 영주권을 신청할  있는 길을 열어준 그에게 충성스러운 직원이  수밖에 없었다. 써니는 문에게 유일한 구세주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둘은 건축 현장에서 빌더 밑에서 같이 일하는 워커(작업자) 만나 서로를 이해(理解)하는 관계로 시작해 이제는 이해(利害, 이익과 손해를 함께 하는) 관계로 바뀌었다. 눈에 보이는 관계의 형태는 같아도 그 속성은 시간에 따라 변해간다.

 

써니(:Sunny) (:Moon) 관계는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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