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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Sep 06. 2024

첫 단추의 운명론

데모도 ep3

우리말에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호주에서도 그와 비슷한 의미의 말이 있다. 


[호주 처음 왔을 때, 공항에 누가 널 픽업 나오느냐에 따라서 네 호주에서의 삶이 결정된다]


택건은 호주에  이후  말을 실감했다호주에 와서 무슨 일을 하든 처음 만난 사람과 처음 하게 되는 일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이곳에 오기  이미 자신의 길을 정해놓고  사람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대부분이 현지에 발을 딛고 얼마간의 호주의 낭만과 여유를 즐긴다그러다 계좌잔고가 간당간당해지면  낭만과 여유는 사라지고 어느새 피와 땀으로 얼룩진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어떤 천혜의 환경이라도 여행과 정착은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택건도 마찬가지였다시드니의 천혜의 자연과 날씨가 주는 여유와 낭만은 숨만 쉬어도 빠져나가는 살인적인 생활비와 체류비로 얼마 못 가 종지부를 찍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택건아수호 녀석 연락 없지?"

"... 형님"

"녀석도 힘들거라, 네가 이해해라"

"...."


재영영어이름은 다니엘(Daniel)이며 집주인 아니 정확히 말하면 렌트 주인이다택건은 처음 지내던 셰어하우스에서 나온 뒤 새로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그곳은 택건의 친구인 수호가 소개해 준 곳이었다. 

 

수호는 택건이 호주에 온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 공항에 마중 나오기로 했던 친구는 3시간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그때 택건은 처음으로 세상에 홀로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낯선 땅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 홀로 떨어진 기분을 처음 느꼈다. 그때부터 서바이벌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 게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모든 생각과 행동은 현재에 집중해야만 했다. 오늘 당장 잘 곳과 끼니를 해결할 곳등 현재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런 시행착오를 피하고 줄이기 위해 지인으로부터 도움을 얻는다. 택건도 그걸 바랬지만 그건 그저 바람일 뿐이었다.  

 

어째, 우리 집은 지낼만하냐?”

네 괜찮아요”

애들 때문에 많이 시끄럽지?”

아녜요, 뭐 애들도 다들 귀엽고 착한데요”

그래 애들은 귀엽고 착하지, 마누라가 귀엽고 착하지 않아서 글치… 푸우우”

하하하”

 

데니얼은 밤하늘을 향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했다. 택건은 그 한 마디가 품고 있는 복잡한 의미를 이해했기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빵 터져 버렸다.

 

"근데 몸은 좀 어때? 

이제 많이 좋아진 거 같아요”

참 셰어비  돈은 있어이제 아무 일이라도 시작해야 되지 않겠어?"

예, 이제 일자리를 좀 찾아보려고요”

그래 이제 무식한 중국애들 일하는데 가지 말고 좀 안전하고 믿을 만한 데서 일해라. 그러다 몸 훅 간다.”

 

택건은 얼마 전 중국인들이 쓰는 메신저인 위쳇(Wechat) 커뮤니티를 통해 찾은 중국인들이 시공하는 건축현장에서 일을 했다. 창고 천장에 지프록 보드 붙이는 일이었는데, 그때 안전장치도 없이 3m 높이의 스케폴딩에서 일을 하다 발을 헛디뎌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지프록 보드가 쌓여있던 곳으로 떨어져 크게 다치진 않았다. 하지만 그때 어깨를 부딪치며 타박상을 입었는데 그날의 후유증이 두 달이 넘게 갔다. 그런데 치료비는 커녕 오후에 일을 제대로 못했다고 오후 일당을 빼려는 것을 사정해서 간신히 받아내었다.


네 안 그래도, 이젠 좀 제대로 된 데를 찾아보려고요”


데니얼은 푸근한 뱃살에   접힌 두툼한 턱살까지 중년 가장의 전형적인 체형을 가졌다그는  손에는 빨간 코카콜라 캔을 손에 들고 다른  손에는 담배를 꼬나문  별이 반짝이는 하늘에 연기를 연신 품어낸다연기 속에 빛나는 별들은 마치 은하수를 연상케 한다택건은 그 모습이 신기해 사진을 찍었다. 사진과 현실의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은하수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이미지는 현실의 많은 것들 배제한다. 그래서 낭만적이다.

 

형님, 요즘 정수기 사업은  어때요?”

 아직 홍보가   되서인지 일주일에 세네  정도 문의가 있긴 한데… 아직 여기 오지(Aussie) 사람들은 아직 정수기 물을 먹는 개념이 정착이  돼서 아직은 수돗물을 먹는 애들이 대부분이야이제 조금씩 바뀌고 있긴 한데… 지금부터 바닥을 닦아놔야지언젠간 한국처럼 되겠지” 

그럼요  되실 거예요, 물은 계속 오염되니까요 하하

  

그도 이제  시작한 정수기 사업은 수입이 형편없었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이라 항상 셰어생을 두고 같이 생활해 왔다렌트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시드니는 온전히 스스로 렌트비를 감당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조금이라도 렌트비를 아끼려면     정도는 셰어생에게 내어주어야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생활을   있다.

 

집을 임대해서    안에 방과 거실 심지어 주차장까지 다시 렌트를 돌리며 렌트비 부담을 줄인다집주인 아래 임대인  아래 셰어인이라는  하나의 먹이 사슬이 추가되었다.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또 다른 형태의 주거문화이다렌트비가 비싸다 보니 렌트비 부담을 줄이려 타인과 어울려 사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일까 다행히 이곳은 한국처럼 그렇게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만연하진 않은 느낌이었다. 싫든 좋든 몸을 부대껴야 하는 주거형태가 만든 결과일까? 오랜 시간 셰어생과 함께 살아와서인지 데니얼은 한국에서  셰어생들의 고초를 아주 잘 아는 듯하다그는 호주 생활이 처음인 택건에게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딸아이의 아버지였다. 택건과 데니얼은 늦은 저녁,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 시간이면 항상   담벼락에 기대 서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야! 너 당장 TV 끄고 방으로 올라가~ 엄마가 다섯까지 셀 동안 안 올라가면 어찌 되는지 알지?”

싫어~~~~! 안 잘 꺼야! 만화 볼 거얏!”

하나, 둘…”

싫어, 싫어 싫다고~~~!”

셋, 넷”

으아아아앙~~”


 부부는 매일 밤 세 살배기 막내딸을 재우기 위해 한 바탕 전쟁을 치른다. 아이가 잠들면 비로소 평화가 찾아온다. 택건은 매일 그 전쟁을 지켜보며 육아의 고통을 간접 체험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힘든데 직접 겪는 건 어떨까? 데니얼과 그의 아내는 딸의 취침 습관을 만들려 매일 밤 연합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마음이 약한 데니얼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구원의 눈길을 보내는 막대 딸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져 아내의 훈육으로부터 딸을 구해주곤 했다.


이제는  이상 그럴  없다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있다초장에 잡아야 한다이제 엄마의 훈육 시간이 되면 데니얼은 그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간다. 그럼 택건도 전쟁의 소음을 피해 함께 집밖으로 피신했다한참 동안 집안에선 아이의 울음소리와 엄마의 고함소리가 뒤섞이며 교전이 이어진다.

 

“오늘은 전쟁이 좀 길어지네요 하하”

“그렇지? 미안해. 매번 우리 때문에 피해를 주는 것 같아서”

“육아가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어요. 같이 살아보니 실감이 나네요 하하하”

“그래 넌 애 낳지 마라, 애는 진짜 함부로 낳는 거 아니다 쩝”

“그러네요 왜 애를 안 낳고 사는지 이해가 좀 되는 거 같네요”

“참! 너 일자리 알아본 데 있어?”

"알아봐야죠

아는 지인 중에 목수일 하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요즘 사람을 구하는가 보더라고 그래서  얘기를 했더니   보자고 하더라"

"목수요?"

"여기서 목수일 배워놓으면 나쁘지 않아 친구도 여기 와서 목수일로 집도 사고 애도 셋이나 키우잖아 얼마 전에 뱃속에  하나 만들었더라고 대단한 녀석이지  그래?"

"애를 넷이 나요? 그게 가능해요목수 일해서  넷이나 키워요?"

"여기 호주는 특별한 기술 없음 노가다가 최고야 봐라   키우기도 버겁다어쨌든 내일 저녁에 보기로 했으니 시간 비워놔"


한국에서  넷이면 국가유공자 대우를 해줘야  수준이다택건은 주에 와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느낀   특이한 것은 공원이나 쇼핑센터에 유모차에   그리고 양손에 하나씩 그것도 모자라 등에도 하나 둘러업고 다니는 부모를 어렵지 않게 본다는 것이다물론 한국계는 아니지만 한국계 이민자도 두세 명은 기본이다요즘 한국에는   명은커녕 결혼도 하지 않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택건은 목수라는 직업보다  넷을 키울  있다는 데니얼 말이 뇌리에  깊이 새겨졌다.

 

다음날 저녁 택건은 데니얼과 함께 역전에 있는 (Pub)으로 향했다저녁시간 펍에는 하루의 일과를 마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뒤섞여 북적였다스테이크 혹은 칩스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하루의 노곤함을 푸는 일상의 노동자들의 쉼터이다 한쪽에 걸린 커다란 모니터에는 경마 방송이 나오고 종이를 손에  오지(Aussie)의 백인 노인들이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그리고  한쪽 구석 공간에는 일명 뿅뿅이(슬롯머신)들이 즐비하게 놓여있고  화면을 멍하게 바라보며 버튼은 두드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택거나! 넌 절대 뿅뿅이 할 생각 마라!"

"왜요? 형님"

"인생 망치는 지름길이다, 수호도 저거 하다 많이 날려먹었다.  지금도 어디 숨어서 저거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큭큭"

"..."


호주에서 남자의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여기서 인생 망친 남자들 얘기 중 이 세 가지 범주에 들지 않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첫째는 도박, 둘째는 마약, 셋째는 여자이다. 이건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문제는 여기에서는 이 세 가지 대해서 큰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모두 합법이다. 아니  불법이 아니라고 하는 게 맞겠다.


“여긴 마약 파는 놈은 잡아도 하는 놈은 안 잡어”


데니얼의 앞뒤가 맞지 않는 비상식적인 말이 여기선 비공식적인 상식처럼 통하는 곳이다. 물론 마약은 불법이지만 마약을 개인적으로 구매하고 사용하는데 강력한 제재가 없다. 마약을 유통하는 자들은 처벌하지만 개인적으로 마약을 하는 자들에 대한 제재가 허술하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마약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매춘과 도박이 합법적이기에 이에 대한 제재 또한 전무하다.


문제는 이 세 가지 중 하나에 빠지면 다른 것들도 따라서 중독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미노 현상이랄까. 하나가 무너지면 줄줄이 무너진다. 마약의 쾌락은 성관계를 통해서 더 큰 쾌락을 가져오고 마약의 중독에서 벗어나려 다른 중독을 찾다 보면 도박이 눈에 들어 온다. 결국 세 가지 다 한다. 파국으로 치닫는다. 몸과 정신 모두가 망가지는 것이다.


“근데 도대체 저게 무슨 재미가 있어서 하는 거예요? 별 재미도 없이 앉아서 버튼만 누르고 있는데”

“야~ 한국이야 놀 때가 천지지만 여긴 남자들이 살기엔 정말 심심한 나라야”

“전 미세먼지 넓고 한적한 공원에만 있어도 좋은걸요, 그리고 곳곳에 넓은 야외수영장도 많고”

“하~ 참 특이한 놈일세 너도 참”


호주는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일인당 국토면적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조금만 외지로 가면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이다물론 불모지가 대부분이지만 한국도 대부분이 산악지형인걸 감안하면 호주는 축복받은 땅이다국토면적 대비 사람이 많은 나라치고 살기 좋은 나라는 없다이곳은 드넓은 잔디 공원을 배경으로 독사진이 가능하다

 

택건은  넓은 공간을 혼자 누릴  있다는 것이 가장 행복했다호주는 복지 수준이나 치안 또한 선진국 수준이다. 그래서일까 이곳에 여행 혹은 워킹 등으로 왔다가 이런 호주의 매력에 빠져 정착한 이들이 적지 않다.


다만 이곳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도박이다. 이곳은 합법적으로 동네마다 도박장이 운영된다. 스포츠 도박부터 뿅뿅이(슬롯머신), 대형 카지노까지 온갖 도박이 성행한다. 사행성 복권(로또)도 유행이다.


역전 곳곳 혹은 쇼핑센터에는 복권 판매처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호주 사람들 최소 셋 중 하나는 복권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권 당첨금에 세금이 일도 없다. 정말 인생역전이 가능하다. 


데니얼도 매주 아내 몰래 복권을 산다. 일확천금의 꿈이 삶의 유일한 희망처럼 보인다. 그는 도박은 안되지만 복권은 괜찮다며 매대 위에 놓은 복권을 들여다보며 택건에게도 한 번 해보라며 손짓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 숨 가쁘게 돌아가는 분주함과 각박함이 없어서일까 누군가에겐 여유롭고 평화로운 이곳의 일상이 누군가에겐 도박과 마약 같은 중독으로 벗어나야 할 무료함이 될 수도 있다.

 

같은 환경 속에서도 누군가는 평화로운 삶을 누리고 누군가는 권태로운 삶을 견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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