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도 ep5
써니(Sunny)와 문(Moon)은 둘 다 자녀를 가진 한 가정의 가장이다.
하지만 두 가정의 상황은 둘의 이름처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해와 달, 음과 양의 만남이다.
써니는 일찍이 목수 자격증과 영주권을 취득해서 호주에서 자리를 잡았다. 지붕 목수로 독립해서 일을 하며 적잖은 돈을 모아 집도 사고 지금은 꽤나 여유 있는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반면 문은 영주권 없이 생활비와 비자비용, 자녀들의 학비 그리고 각종 보험비 등을 모두 사비로 벌어서 해결해야 했다. 써니의 삶은 빛으로 충만했고 문의 삶은 어둠 속에 갇힌 듯 보였다.
“그래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틀리지 않아”
택건은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싱글인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다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의식주 해결도 힘겨운 상황 속에 종족번식의 욕구는 사라진 지 오래다.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것보다 현재 자신의 유전자를 지키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이다.
적어도 대학교육까지 마친 지식인으로서 순간의 욕정에 사로잡혀 빈곤의 늪으로 빠져드는 어리석은 인간은 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혼자니까 그나마 벌어서 조금이라도 저축을 할 수 있지 않은가
“선부론(先富論)이라고 했다. 일단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무식한 자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욕정을 컨트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들 하는 거 다 하면서 언제 가난을 벗어나겠는가? 욕망을 억제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문은 이전에 동료로서 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때와 써니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이제는 서로 대등관계가 아닌 종속관계가 되어버렸다. 이제 그가 믿을 곳이라곤 써니 밖에 없었다. 생계와 체류(비자) 모두 그에게 달려있었다. 한 인간의 생존이 한 인간에게 종속될 때 생기는 가장 큰 변화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무엇인가? 충성이다. 충성은 믿음이 맹목적으로 변할 때 생기는 현상이다.
“옛썰~ 뽀쓰~!”
예전에 같은 회사에서 일할 땐 서로 존칭도 대충 생략하고 이름을 불렀다. 서로는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성향이 극과 극이라 일을 할 때 서로 부딪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때는 티격태격거리며 서로 주거니 받거니 서로 눈치를 살피며 일을 했지만 같이 동업을 시작하고 생계와 비자가 엮이면서부터는 이제 일방적으로 문이 눈치를 보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문은 이런 상황을 애초에 만들지 않으려 말투를 존칭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리고 택건이 들어오고 난 후부터는 둘이 사전에 조율을 했는지 호칭이 아예 보스로 바뀌었다.
문은 어떻게든 별 탈 없이 취업비자 기간을 채우고 영주권을 신청해야만 하기에 그의 말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써니가 부르면 주말도 마다하지 않고 함께 일을 다녔다. 물론 그도 두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선 밤낮과 주말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영주권 없이 두 아이의 학비와 의료비를 전적으로 그가 혼자서 부담해야 했기에 쉴 새 없이 벌어야만 했다. 문이 처한 상황은 써니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과 헌신적인 노동을 이끌었다. 더욱이 머리가 똑똑한 문은 일을 빨리 익히고 효율적으로 하는 덕에 써니는 개인사업자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물론 문이 열심히 일하고 실력이 늘어난 만큼 써니는 그의 웨이지도 올려주며 그에 보답했다 하지만 문의 급여보다 써니의 수입이 증가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문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나가는 지출을 자신의 급여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살림은 나아지지 않고 현상유지만 해 나가는 상황이었다.
"택건, 넌 여기 왜 왔냐?"
"미세먼지가 싫어서요, 여긴 공기 좋잖아요"
"헐, 그게 다야?"
"뭐 시선도 싫고 각박한 것도 싫고"
"한량이 따로 없구먼, 호주라고 뭐 다를 거 같아? 넌 처자식이 없어서 시선도 없고 각박함도 안 느껴지는 것뿐이야"
"그런가요?"
"그냥 생각 없이 왔음 빨리 생각 고쳐먹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더 나을 거야 여긴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만만한 데가 아냐 너도 이제 곧 마흔인데"
택건은 아침마다 문의 집 앞까지 걸어가서 문의 작업용 픽업트럭을 타고 출근을 했다. 출근길은 항상 그와 동행했다. 문은 세상의 시련을 다 겪은 사람처럼 항상 택건에게 부정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문은 아침 출근길에 차 안에서 항상 핸드폰으로 한국의 팟캐스트 방송을 틀었는데 대부분이 한국의 정치 이야기였다. 그는 호주에 살면서도 항상 한국의 정치판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은 떠나와 있지만 언젠가 한국이 지금과는 다른 환경으로 변하면 돌아가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삶이 나아지지 않으면 이건 노력 부족이 아닌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믿게 된다. 그때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색깔이 나눠지고 그 색깔은 변하지 않고 갈수록 짙어진다.
보통 그런 류의 방송은 좌 아니면 우로 나뉜다. 그는 가진 게 별로 없어서인지 좌로 치우친 모양이었다. 매일 좌로 치우친 방송을 들으며 출근을 하다 보니 좌도 우도 없던 택건에게도 좌에 대한 신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이해하자면 우에 대한 불신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인간은 보고 들은 대로 말하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무엇을 자주 보고 듣느냐가 자신의 방향과 색깔을 결정한다. 물론 택건도 가진 게 별로 없어서 인지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기득권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말들이 적지 않은 쾌감과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가진 자는 지키기 위해 보수가 되고 못 가진 자는 가진 자의 것을 뺏기 위해 진보가 된다]
택건은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책에서 읽었던 문구가 떠올랐다. 나이가 들고 세상이 공정하고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을 쯤이면 이미 자신의 색깔이 정해져 있다. 공정하고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부와 권력을 쌓은 자들과 공정하고 평등하다고 믿고 부와 권력을 놓친 자들은 두 가지 색깔로 나눠져 서로를 비난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색깔이 존재함에도 정치에는 이상하게 두 가지 색만 존재한다. 정치인들은 항상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대중을 향해 외치지만 그들은 한 가지 색만 바라본다. 아이러니하다.
그 색은 한 번 정해지면 물과 기름처럼 그 경계선은 뚜렷해지고 한 번 만들어진 경계는 다시는 넘나들지 못하게 분리된다. 이젠 섞일 수 없다. 좌우도 없고 색깔도 없던 순수한 존재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그럼 때가 되면 자신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방향과 색깔을 적으로 간주하고 남은 생을 적과 투쟁하며 살아간다.
“장비 내리고 빨리 작업 준비해”
“옛썰!”
택건은 공사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목장갑을 끼고 픽업트럭 위에 실려진 작업 장비들을 내렸다. 써니는 한 손에 김이 피어오르는 롱 블랙(Longblack : 아메리카노)을 들고서 오늘 데크를 인스톨할 곳을 살펴보고 있다. 문은 써니와 함께 현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오늘 할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택건은 필요한 손공구와 전동공구들을 작업할 장소로 나른다. 작업 준비와 정리는 이제 문에서 택건으로 넘어왔다. 데모도는 모닝커피를 즐길 여유가 없다. 작업 준비를 다 끝내면 그들의 작업 전 회의가 종료된다. 그럼 택건은 다 식어버린 커피를 냉수 마시듯 원샷하고 일을 시작하곤 했다.
"택건! 배터리 방전됐잖아. 야~ 현장 오면 먼저 파워포인트(전기 전원) 찾아서 배터리부터 충전하라고 몇 번을 말했어?"
"아!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놔! 답답해 미치겠네,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먹냐? 오늘 데크 인스톨(설치)할 거니까 저기 쌓여있는 데크 팀버들 작업장 앞에
사이즈별로 구분해서 옮겨놔"
"예"
택건이 그들과 처음 공사현장에 왔을 때 써니와 문이 작업 시작 전 나누는 대화를 옆에 서서 들었다. 그때 써니는 인상을 찌푸리며 가만히 서서 미팅 내용을 듣고 있는 택건을 꾸짖으며 현장에 도착하면 무조건 공구와 자재들부터 세팅을 하라고 지시했다. 써니는 정해진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택건이 잠시도 가만이 멈춰 있는 것을 지켜보지 못했다. 그는 귀신같이 그런 모습들만 보이면 핀잔을 쏘아대었다.
그래서 택건은 데모도는 계속 움직여야만 하는 존재라 생각했다. 그것이 익숙해지자 현장에서 아무 일 없이 가만히 있을 때면 핀잔이 날아들까 불안했다. 그렇게 택건은 매일 자신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그리고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모른 체 그냥 그때 그때 시키는 일만 해야 했다. 한국에선 항상 업무 계획서와 업무 일정을 꼼꼼히 챙겨가며 일을 해왔던 그에게 완전히 새로운 일의 세계가 펼쳐졌다. 한 시간 뒤도 알 수 없다.
나중에는 그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날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미리 알면 무슨 공구나 자재를 쓸지 알기에 미리 준비하고 일하는 동선도 대충 알 수 있기에 도움이 되겠지만 만약 그날 힘든 일이나 어려운 공사를 한다는 걸 미리 알아 버리면 아침부터 초장에 힘이 빠지는 면치 못한다. 모르면 그냥 닥치는 대로 일을 하지만 알면 근심이 앞선다.
택건은 서둘러 픽업트럭에서 차져(Charger:충전기)를 가져와 파워포인트(Power point : 콘센트)에 연결하고 전동공구 배터리를 충전시켰다. 전날 작업으로 배터리가 완충되어 있지 않아 항상 작업 전 예비 배터리들을 충전시켜놓아야 한다. 작업 중에 배터리를 다 써서 전동공구를 쓰지 못해 작업이 중단되는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목수는 전동공구 없이는 일을 할 수 없다. 목수는 다재다능하지만 공구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전동공구 하나 때문에 작업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목수에게 공구와 배터리 관리는 중요하다. 데모도가 이 모든 관리의 책임을 진다.
“이 팀버는 엠보싱 모양으로 예쁘게 디자인되어 있네요 데코레이션 용인가요?”
“헐~ 경험도 없고 생각도 없네, 저 자식?!”
“평평한 반대면을 쓸 거야 그리고 뒷면 엠보싱 처리는 디자인이 아니라 변형방지를 위한 거야”
써니가 한숨을 내쉬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택건을 째려보며 말했다. 문은 귀찮은 표정을 하면서도 택건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해줬다. 공사장 한쪽 구석에는 길고 납작한 데크 팀버들이 팔레트 위에 한가득 쌓여있다. 엠보싱 패턴은 팀버가 휘어지는 변형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로 그렇게 가공된 것이었다. 목재는 변형에 취약하다. 두께가 얇을수록 변형은 심하다.
택건은 팀버를 어깨에 얹고 나르기 시작했다.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깨에 올려진 납작한 데크 팀버는 걸을 때마다 아래위로 춤을 추듯 출렁거린다. 그때마다 어깨뼈에 부딪치는 충격에 통증이 계속되었다.
"같은 사이즈로 다 깔아버리면 안 되나요?"
"저 자식, 또 개념 없는 소리를 하네? 묻지 마! 여기가 학교냐? 시끄러우니까 그냥 시키는 거나 해!"
써니는 짜증 나는 말투로 택건의 초보적인 질문을 무시해 버린다. 데크 팀버는 엇갈리게 인스톨을 해야 한다. 팀버의 끝과 끝이 만나는 곳이 연속되면 안 된다. 그렇기에 긴 것과 짧은 것을 적절히 섞어서 골고루 분포시켜야 한다. 일렬로 정렬한 팀버 하나가 틀어지거나 변형되면 모두가 틀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간단한 설명 한 번이면 알 수 있을 사실을 한 달이 지나고 데크 공사가 다 마무리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번 궁금한 것을 물어볼 때면 돌아오는 험악한 표정과 말투에 기분이 상했지만 택건은 기분이 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하는 것이 중요했다.
'휴~ 학교 가서 돈 내고 배울 거면 여기 호주까지 오지도 않았지'
택건은 한숨을 내쉬며 아무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낮은 톤으로 혼잣말을 했다. 질문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로봇이 아닌가? 이유를 모른 체 시키는 데로 일만 하는 건 로봇이 아닌가? 과거 학교에서도 묻지 못했고 사회 나와서도 묻지 않고 일했다.
써니도 문도 그리고 택건도 그렇게 배워왔고 훈련되었기에 그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택건은 한국이 아닌 이곳은 좀 다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과거에 칠해진 색깔과 흔적들은 환경이 바뀌어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데크 테라스는 여러 가지 길이의 팀버들이 테트리스 하듯 촘촘히 역이고 끼워져 맞춰진다. 세상도 한 가지 종류의 인간들만 있으면 반듯해 보일지 모르지만 위태로워지듯이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섞이고 어울려 더 강하고 견고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아놔! 이거 팀버 상태들이 왜 이래?"
"형님 이거 고생 좀 하겠는데요"
"아놔! 봉 빌더 이 개새끼! 안 되겠다 택건! 너도 이리 와서 도와라"
아래쪽에 쌓여있던 팀버들이 좌우로 많이 휘어져 있다. 써니는 팀버의 한쪽 끝을 들어 눈앞에 가져다 대고는 좌우로 보면서 짜증 섞인 말투로 자재를 가져다 놓은 빌더를 욕했다. 써니는 택건을 불러 휘어진 팀버의 한쪽 끝을 잡고 버티라고 한다. 힘으로 변형을 바로 잡아서 스크루를 박는다. 쓰지 않아도 될 힘을 팀버를 휘는데 다 써버렸다. 택건은 휘어진 팀버가 튕겨나가려는 힘을 온몸으로 버텨내길 여러 번, 손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야! 힘 안 주냐!"
"안 되겠다 클램프(Clamp) 가져와!"
"그게 뭐예요?"
써니의 고함 소리에 다시 힘을 줘 보지만 끙끙대는 소리만 나올 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때 문이 클램프를 가져왔다. 클램프로 한쪽은 휘어진 팀버를 잡고 다른 한쪽을 인스톨된 팀버에 고정하고 레버를 당기니 적은 힘으로도 팀버의 변형이 잡힌다. 클램프에 붙잡힌 팀버는 굳이 사람이 버티려고 힘을 주지 않아도 된다.
'아놔~ 이런 거 있음 진작에 줄 것이지'
모르면 몸이 고생이다라는 말이 이럴 때 쓰나 보다. 목수는 공구가 수십 수백 가지이다. 모르면 힘들게 할 일도 알면 적절한 공구를 제때 쓰면 훨씬 일을 쉽게 할 수가 있다. 그건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기에 초짜 목수들은 일을 힘들게 하고 시행착오가 많다. 그래서 목수는 연륜과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 장인정신이 필요하다. 요즘같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시대에 한 가지 직업으로 살아간다는 게 쉽지 않지만 목수는 한 길만을 가도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넓고도 깊은 길이다.
노가다에는 수많은 직종이 있지만 적어도 목수는 로봇으로 대체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