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비비비 삑 삐비비비 삑~”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는다. 택건은 새벽 핸드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알람을 끄려고 핸드폰에 손을 가져가 화면을 터치하려고 했지만 손가락이 펼쳐지질 않는다. 마치 술안주로 나온 접시 위에 놓인 닭발 같다. 닭발에 고추장 양념만 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택건을 자신의 두 닭발을 얼굴 앞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닭발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와 동시에 모든 신경을 손가락으로 집중시켰다.
“으으으아 하아~ 뭐야 왜 안 펴지는 거야?”
두 손은 펴지지도 않을뿐더러 주먹이 쥐어지지도 않는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마치 탱탱한 비엔나소시지처럼 부어 있다. 각 손가락 마디가 접히질 않는다. 하루아침에 손 병신이 되었다.
'아놔! 어쩌지? 이래서 어떻게 일을 간담? 세수도 못 하겠구먼'
택건은 어제 하루 종일 컬러 본드(Colorbond : 함석 패널)를 함석가위로 잘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성인이 된 뒤로 가위를 쓸 일이라곤 철판에 삼겹살을 구울 때나 써봤지 가위로 철판을 잘라볼 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두툼하게 살집이 붙은 함석가위의 칼날이 힘을 줄 때마다 얇은 철판이 서걱서걱 썰리며 잘려나갔다. 두툼하고 날카로운 함석가위로 철판을 자르는 느낌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기분이다.
‘철로 철을 자를 수 있구나’
철이 철을 자를 때 전달되는 느낌과 소리는 가히 즐겁지 않다. 같은 동족을 죽이는 것이라서일까? 같은 물질도 더 강하고 날카로운 것이 여리고 무딘 것을 이긴다. 강한 존재는 그 보다 약한 존재를 자기 마음대로 자르고 깎고 갈아내며 원하는데 모습으로 만들 수 있다. 그건 마치 인간 세상에서 강자가 약자 위에 굴림하고 통제하며 자신이 원하는 인간으로 만들어가는 것과 같아보였다.
“위이이잉, 지이이잉”
"야! 너 뭐 해?”
“패널 자르는데요!?”
“누가 그라인더로 자르라고 했어?”
“이걸로 자르면 더 빠르고 편하지 않나요?”
“아놔~ 이 새끼야! 내가 몇번이나 말했지? 넌 시키면 그냥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내가 가위로 자르라고 했잖아!”
택건은 왜 이 많은 패널들을 손가락이 팅팅 부어가면서 가위로 잘라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팅팅 부어 오른 손가락에 다시 힘을 줘서 패널을 잘랐다. 사장 목수가 왜 저리도 손가락이 두툼한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나중에 문 목수가 조용히 택건에게 알려줬다. 전동 그라인더로 잘린 면은 금방 녹이 슬기 때문에 외장 지붕으로 쓰이는 함석 패널은 가위로 잘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택건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도 이와 같았다. 그냥 닥치고 시키는 대로 하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하는 데는 분명 무슨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입력한 데로만 하는 로봇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더 낫지 않는가? 늦게나마 이유를 알면 다행이지만 그냥 닥치고 시키는 데로만 반복해 온 누군가는 그 이유를 모른 체 그렇게 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 그 자는 이유도 모른 체 그냥 또 다음에 오는 사람에게 그렇게 가르친다. 그때는 정말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알려 줄 수 없다. 아마 세상엔 그렇게 이유 없이 하는 말과 행동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택건은 과거 그러했다. 상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질문을 삼가고 귀찮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가 결국 택건 또한 밑에 후임에게 똑같은 것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말고 하라면 하라는 데로 좀 하라고 윽박지르게 된다. 그렇게 영문을 알 수 없는 관습들이 대물림된다.
“택건! 빨리빨리 잘라서 올려!"
"예! 알겠습니닷"
함석 패널이 잘리는 느낌을 감상할 겨를이 없다. 써니와 문은 지붕 위에서 택건이 잘라서 올리는 철판을 인스톨(설치)하고 있다. 둘의 인스톨 속도에 맞춰 재빨리 재단한 패널을 지붕으로 올려야 한다. 써니는 스타크래프트의 옵져버(observer)처럼 항상 지붕 위에서 택건의 위치와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 속도를 올려야 한다. 손가락에 힘을 줘서 쉴 새 없이 잘랐다. 손가락에 힘이 빠진다. 이제 한 손으론 역부족이다. 두 손으로 자른다. 잘린 철판을 들고 지붕으로 올리고 또 자르고를 계속 반복했다.
학창 시절 반에서 싸움 좀 한다는 껄렁껄렁한 몇몇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왜 책상 밑에서 악력기를 조몰락 거리며 놀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도 그때 그들과 같이 어울렸다면 지금 이렇게 손가락이 고통스럽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슉~ 우우우~ 푹욱!"
택건은 함석 패널을 지붕으로 올리려 계단을 오르다 힘이 빠진 손가락 때문에 철판이 손에서 미끄러졌다. 철판이 건물 아래로 떨어졌다. 얇고 날카로운 철판은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며 수직으로 자유 낙하해서 공사장 밑에 쌓아둔 흙더미에 깊숙이 꽂혀버렸다.
"What the fuck!?! #%@#%@#%!" (야이~ 씨발!)
그 철판 패널이 공사장 밑을 지나던 다른 오지(Aussie : 오스트레일리아 약칭) 작업자의 바로 앞에 떨어졌다. 그는 택건을 올려다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물론 그 말이 욕이라는 것은 짐작했지만 얼마나 심한 욕인지는 알 수 없었다. 택건은 연신 고개를 꾸벅거리며 ‘아임쏘리’를 외쳤다.
"야~ 이 새꺄! 너 미쳤어? 조심 안 할래! 저거 잘못 맞으면 사람 잘려나간다고! 아놔 저 새낀 뭐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하아 놔~"
"보쓰! 식사하시죠 점심시간 다 됐는데요, 택건! 밥 먹게 준비해!"
“네!”
다행히 문목수가 길게 이어질 갈굼을 끊어 줬다. 점심시간의 반가움은 노동의 강도와 비례하는 듯하다. 허기도 허기지만 한 여름 호주의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택건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작업용 픽업트럭으로 향했다. 차 안에 각자 싸 온 도시락 가방들을 모두 챙겨 공사장 한 구석 나무 그늘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전기포트로 물을 끓이고 휴대용 버너와 냄비를 준비한다. 택건이 점심 식사 세팅을 하는 동안 써니와 문은 천천히 지붕에서 내려온다.
"라면 다 됐어?"
"예 좀 늦게 내려오셔서 좀 불었는데요"
써니는 국물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 그래서 택건은 점심때마다 라면을 끓여야 했다. 택건이 팀에 합류하기 전까진 문이 끓였다. 이젠 그 역할이 데모도인 택건에게 인수인계가 되었다. 써니는 불은 라면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는 항상 일부러 늦게 나타난다. 다 불은 라면을 덜어서 자신의 도시락 밥 위에 얹고 국물을 그 위에 붓는다. 식은 밥을 국물로 데워 면과 함께 국밥처럼 만들어 먹는다. 탱탱한 면을 좋아하는 택건은 그런 그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문도 이전엔 탱탱한 면을 좋아했었다고 했다. 지금은 불은 면을 곧잘 먹는다.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 사장이 오기도 전에 숟갈을 먼저 뜰 수 없는 한국의 식탁문화가 먹기 싫은 음식도 먹게 하는 편식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근데 사장님 왜 항상 진라면 순한 맛만 먹어요? 매운맛은 안 드십니까?"
"야! 그럼 네가 라면 사 와!"
"..."
"그냥 주면 주는 데로 먹으면 될 것이지 거 참! 말 더럽게 많네"
택건은 또다시 괜한 말을 꺼냈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대화의 물꼬를 터볼 요량으로 던진 질문에 항상 된서리를 맞는다.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택건은 점심시간 입을 닫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은 그런 나를 보며 자신도 과거 당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눈치를 보며 써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다른 주제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럼 써니는 이내 얼굴에 화색을 드러내며 문과 대화를 이어갔다. 택건은 항상 대화에서 소외되었다. 한 번 박힌 미운털은 쉽게 빠지지 않는다. 써니와 문은 그런 택건을 그냥 돈 주고 쓰는 일용직 인부 정도로만 생각하는 듯했다. 택건은 점심시간 그냥 입을 닫고 호주의 드넓고 푸른 들판을 눈에 넣고 불어오는 시원한 산들바람을 느끼며 밥알 하나하나를 음미했다.
택건이 팀에 합류한 이후 시간이 갈수록 문과 써니의 관계는 돈독해지는 듯 보였다. 셋 중에 하나를 소외시키는 건 나머지 둘이 돈독해지는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이다. 문제는 셋 중에 하나가 사라지면 둘은 다시 서로를 시기하기 시작한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의 결속을 다지는 인간의 악한 본성은 아주 효과적이지만 지속성이 떨어진다. 계속 적을 만들어야 한다.
“외장 지붕에 쓰는 철판은 그라인더 쓰면 안 돼, 전동 그라인더로 자른 면은 금방 녹슬기 때문이야. 그래서 가위로 잘라야 돼, 전동 리블러(Nibbler Cutter) 있었는데 얼마 전에 고장 나서 지금 수리 맡겨놨어, 며칠 동안은 가위로 잘라야 할 거야, 아마 내일이면 손가락이 좀 욱신거릴 거야, 집에 가면 손바닥 냉 찜질해 주고 자! 그리고 써니는 매운 거 못 먹어.”
문은 퇴근 후 써니가 돌아가고 둘이 남은 자리에서 택건이 입을 닥쳐야 했던 이유를 알려줬다. 택건은 움직이지 않는 두툼해진 손가락을 바라보며 그제야 문목수가 어제 해줬던 말의 이유를 이해할 것 같다. 책상 앞에 앉아 매일 컴퓨터 키보드만 치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날이 갈수록 굵어지고 딱딱해지고 있었다.
“야! 이게 손이냐? 발이냐?”
택건은 과거 공작 기계를 다루며 항상 손톱 밑 그리고 지문에 기름때가 잔뜩 끼어 있던 친구의 손이 기억났다. 마치 곰 발바닥 같이 굳은살로 두툼해진 친구의 손을 보며 놀리던 자신의 모습이 새삼 떠오르며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그 친구는 지금 택건이 불혹이 다 된 나이에 느끼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 느꼈을 것 아닌가? 누가 그랬던가 손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고 입은 거짓말을 하지만 손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구두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구두 끝을 보면
검은 것에서도 빛이 난다
흰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 천양희 [그 사람의 손을 보면] 중에서 –
지금 내 눈 앞에도 시커멓게 때가 타고 두툼해진 손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