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도 ep8
"아 따가워 왜 이렇게 온몸이 따끔거리지?"
택건은 온몸이 간질거리고 따끔거리는 기분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나서도 그 따가움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택건은 오늘 하루 종일 하우스 팀버 프레임 아래에서 인슐레이션(단열솜)을 자르고 올리는 일을 했다.
"택건! 인슐레이션 빨리 올려!"
택건은 하우스 지붕 프레임 아래에서 써니와 문이 지붕에서 불러주는 사이즈의 길이로 인슐레이션을 재단해서 올렸다. 커터칼로 자른 인슐레이션을 기다란 팀버 끝에 걸쳐서 써니와 문이 있는 지붕 프레임 쪽으로 들어 올린다. 그물망처럼 엮어진 팀버 프레임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서 올려야 한다. 써니와 문은 하우스 프레임 위에서 서서 택건이 자른 인슐레이션을 받아서 손타카로 찍어 팀버에 고정시키는 작업을 했다.
뙤약볕 아래 지붕 위에서 일하는 써니와 문에 비하면 하우스 아래 그늘에서 푹신한 솜이나 자르고 올리는 일은 훨씬 수월하다. 하지만 현재의 편안함은 나중에 당할 고통에 대한 선보상이었을 뿐이었다. 택건은 온몸이 간지럽고 따가워지기 시작하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것 눈치챘다. 단순한 솜이라고 생각했던 인슐레이션이 유리섬유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그 고통이 시작됐을 땐 이미 미세한 유리섬유 입자가 온 피부를 덮고 모공 속을 파고들고 있었다
“야 미친놈아! 거기 위에 누워있으면 어떻게!”
그것도 모르고 푹신한 인슐레이션 위에 눕고 뒹굴었다. 솜이불의 포근함 느낌은 잠시였고 따가운 고통은 길었다. 데모도인 택건은 아직 지붕 프레임 위를 오고 가는 일을 하지 않았다. 택건은 밑에서 둘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기만 해도 아찔해 보였다. 원칙대로라면 안전장치를 하고 해야 하지만 작업의 불편함과 속도 때문에 제대로 하고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대형 공사현장 같은 곳은 그런 안전규정이 강제화되어 지켜지지만 소규모 작업현장들은 그런 것들을 일일이 지켜가며 하면 남는 게 없다. 시간이 돈이기에 속도와 효율을 올리지 않으면 자칫 자원봉사가 되어버릴 수 있다. 이곳 호주는 대규모 토목, 건축 공사는 대부분 오지인들이 잡고 있다. 간혹 재력 있는 중국 화교들도 있다. 써니나 문처럼 소규모로 움직이는 팀들은 대부분 하청에 하청을 받아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려오면 올수록 단가가 낮아지는 것은 한국이나 여기나 매 한 가지이다. 한국인들이 큰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경우는 워커 아니면 하청이 대부분이다. 원청으로 공사를 따내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다.
호주도 자국민이 우선이다. 크고 중요하고 돈 되는 대규모 토목, 건축공사는 자기들이 직접 한다. 특히 학교나 병원 등 공공 부분 공사는 더욱 그렇다. 그런 곳은 단가도 세고 해서 많은 건축종사자들이 참여하고 싶은 공사이지만 아무나 할 수가 없다. 그런 공사는 말 그대로 인맥이 있어야 한다. 아니면 과거 공사 이력이 있어야 참여가 가능하지만 인맥도 없을뿐더러 인맥이 없으니 해본 적이 없어 이력도 없다. 첫 삽을 뜨기 조차가 쉽지 않은 잡이다. 그래서 한인들은 대부분 각개전투로 홀로 하거나 작은 팀으로 자영업으로 뛰는 것이 그나마 낫다.
써니도 호주에서 초창기 어중간한 한인 빌더 밑에서 소규모 하우스 공사를 전전하다. 웨이지도 잘 오르지 않고 올라봐야 그 끝이 어디라는 것도 알고 나서는 항상 독립을 생각하고 있었다. 과거 한인 빌더들은 밑에 직원이 기술과 경험이 오르면 웨이지를 올려 다른 곳으로 도망가거나 독립하려는 걸 잘 알았기에 일을 잘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항상 몸 쓰고 단순한 작업들을 반복시키고 좀 까다롭거나 기술적인 일들은 직접 혹은 기술자들에게만 시키다 보니 데모도가 기술자로 커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빌더들도 데모도나 중간기술자에게 일을 시켜 낭패를 보거나 실패비용을 감수하고 싶지 않을 것이기에 안전하게 가려는 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옆에서 보조하거나 도와주면서 일을 익힐 수 있도록 해 줘야는데, 그런 것조차 막아버리니 실력이나 기술이 올라갈 일이 막연하다. 항상 하는 일만 반복시키며 단순 레이버(노동자)로 싸게 오래오래 써먹으려고만 한다.
이곳 호주에는 여러 민족의 이민자들이 있지만 한인처럼 독고다이로 살아가는 민족은 드물다. 중국이나 베트남, 레바니즈, 그리스 등 여러 다수의 이민자들은 대부분 그들이 빨리 정착하도록 도우며 자신들의 영역을 키워가는 반면 한인들은 새로 유입되는 한국인을 이용해 먹으려는 자들이 많다. 현지 상황이나 여건을 잘 모르는 한국인은 결국 같은 한인들을 찾게 되고 그들을 믿고 의지하다 실망과 상처를 받고 돌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야! 잘해줘 봐야 소용없어! 어차피 돌아갈 사람들 잘해줘서 뭐 할 거야 떠나면 그만인 것을! 정 붙여 봐야 나만 손해야, 나도 처음에 얼마나 당했는데... 그것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택건은 언젠가 써니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그 또한 과거 호주 생활 초창기에 누군가에게 이용당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정착한 이들은 정착하려는 자들을 이용하고 핍박하며 핍박받은 자들은 상처를 받고 나쁜 기억을 안고 떠나간다. 그중 누군가는 독하게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자들은 그들이 당하고 배운 데로 또 새로 유입되는 이민자들을 이용하고 핍박하며 부를 채워 나간다. 그것이 이곳에서 정착해 나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민사회는 새로운 이민자의 지속적인 유입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를 잘 아는 사이일수록 서로를 더 잘 속이고 이용할 수 있다. 되물림은 계속된다.
“한인 공동체가 크지 못하는 건 다 서로 덕 볼 생각만 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제일 못살지”
호주는 이민자들이 이룩한 국가이다.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세계 각지 여러 나라에서 갖가지 사연을 가지고 온 자들이 건설한 곳이다. 그중에서도 중국, 인도, 베트남, 레바논, 필리핀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은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호주 내에서 그들의 영역을 확장하고 뿌리 깊게 뻗어나간다. 한국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하는 시기질투심 때문인지 누가 잘되는 꼴을 지켜보지 못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의 서로를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만 했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제는 한국인의 그런 습성을 잘 알고 있었다. 뭉쳐서 살아남으려기 보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간다. 다른 민족이 잔디 같다면 한국인은 마치 선인장과 같다. 푸르게 번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황량한 사막에 홀로 서있는... 남을 이용하고 기만하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택건은 항상 나르고 자르고 박고 옮기고 정리하고 치우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줄자로 뭔가를 측량하고 재료를 직접 재단하고 각종 공구들을 사용해서 조립하는 일을 직접 해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들과 같이 일을 한지 세 달이 다 되어가도록 항상 하는 일은 별생각 없이 힘만 쓰고 나르고 자르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 덕분인지 날이 갈수록 체력만 좋아진다. 택건의 체력이 좋아질수록 사장인 써니의 체력과 체형은 더 나빠져 가고 있었다.
"앗! 쿵"
"엇! 형님 괜찮아요?"
"아~~ 괘.. 괜찮은 거 같아, 아 옛날에는 로깅 밟아도 가뿐했는데 이제는 몸이 너무 무겁네. 문 내려가서 좀 쉬었다 하자"
"형님 체력이 옛날 같이 않은데요. 살 좀 빼야 되는 거 아닙니까? 하하"
"그러게... 택건 콜라 좀 가져와라!"
"예!"
써니는 못주머니를 옆에 던져놓은 채 하우스의 콘크리트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불룩하게 솟아오른 배가 연신 숨을 들이쉬었다 내 쉬었다를 반복하며 출렁거린다. 택건이 아이스박스에 있던 시원한 콜라를 가져오자 그는 상체를 힘겹게 일으키며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크게 트림을 내뱉고는 다시 드러눕는다.
"보쓰! 운동 좀 하셔야는 거 아녜요?"
"옛말이 틀리지 않는 거 같아"
"뭐가요?"
"못주머니 한 번 내려놓기 시작하면 다시 매기 어렵다는 말, 요즘 왜 이렇게 못주머니가 무겁냐?"
"하하하 큰일입니다 보쓰 이제 한창나이인데..."
써니는 택건이 처음 현장에 온 이후부터 줄곧 못주머니를 벗으려 할 때마다 한 소리씩 하곤 했다. 그 때문인지 모르지만 못주머니에 주렁주렁 공구들을 달고 오고 가고 하면서 움직인 것이 엄청난 체력 소모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덕에 써니는 못주머니를 벗고 항상 택건의 못주머니에서 공구를 꺼내 쓰곤 했다. 그것이 이제는 버릇처럼 되어버려 못주머니를 허리에 차는 대신 택건을 자주 불렀다. 택건은 못주머니를 차고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소모된 체력만큼 체력이 증진되었다. 그래서인지 택건은 집에 가면 저녁을 먹고 씻기 무섭게 잠에 빠져들었다. 과거 한국에서 일할 때는 불면증에 시달렸지만 이젠 불면이 뭔지 모르게 되었다.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잔다. 반면 써니의 운동량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매일 먹는 라면과 콜라의 소모되지 못한 칼로리는 피하지방으로 축적되어 가는 듯했다.
"안 그래도 이제 와이프랑 저녁에 배드민턴을 칠까 해"
"배드민턴이요? 보쓰, 지금 몸이 많이 불어서 무릎에 무리 갈 텐데요"
"사장님, 수영을 해 보세요 수영이 살찐 사람들에게는 좋은 운동이에요"
"택건! 너 수영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냐?"
"예 좋아하죠, 뭐 호주에 온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죠. 여긴 곳곳에 야외 수영장이 많아서 너무 좋아요"
"얼마나 했는데?"
"이제 햇수로 5년쯤 됐죠"
"보쓰, 저녁에 택건이 따라가서 수영이나 좀 배우시죠 하하하"
"지랄! 내가 저 녀석한테? 말이가 방귀가? 야! 수영할 시간 있으면 집에 가서 카펜터(목수) 공부나 더 해라"
누군가의 위에 올라선 사람은 그 사람 밑으로 절대 들어갈 수 없다. 사실 운동과 일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인간은 그것을 관계와 구분해서 생각하지 못한다.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려고만 할 뿐이다. 서로에게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가르치는 자도 항상 배워야 하고 배우는 자도 누군가를 가르쳐야 더 잘 익힐 수 있다. 배움과 가르침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영역을 넘나드는 배움과 가르침이 성장을 가져온다. 관계와 역할에서 생긴 쓸데없는 자존심이 자신의 성장과 건강을 저해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배울 게 있고 누구나 가르칠 수 있지만 인간은 학교처럼 사회도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를 구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