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도 ep7
벌써 한 시간이 넘게 어둠 속에서 광활하게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시드니를 벗어났다. 장거리 출장 공사다. 택건에게 시드니는 아직도 이색적인 모습이다. 하물며 처음 보는 시드니 교외의 풍경은 더욱 이색적이다. 택건은 비록 써니와 문 사이의 간이 좌석에 샌드위치처럼 끼여 앉는 모습이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들로 인해 그 기분만큼은 소풍 길처럼 설레는 기분이다.
멀리 여명이 솟아오르며 어둠에 덮여있던 하늘이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붉은빛은 어둠을 몰아내고 푸르름 선사한다. 불이 붉은빛에서 푸른빛으로 바뀌며 강한 열을 발산하듯 빛 또한 붉은색으로 빛을 잃어가고 파란빛으로 강해지며 온 세상을 밝힌다.
하늘이 푸르게 물들자 도로 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들판도 그 푸르름을 드러낸다. 하늘과 다른 푸르름이다. 햇살이 밤새 식은 대지를 다시 데우기 시작한다. 푸른 들판 위에는 소들이 드문드문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부러운 녀석들이군, 녀석들 한국 소들은 하루 종이 우리에 갇혀 사료만 먹고 살아가는데 니들은 참 복도 많다?’
소나 인간이나 어디서 태어나느냐는 참 중요하다. 같지만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건 소나 인간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라면 인간은 그 다름을 알 수 있지만 소는 알 길이 없다. 소는 살아서 국경을 넘어갈 일이 없으니까… 밀봉된 진공포장으로 각 부위가 분리된 채라면 모를까.
택건은 광활한 대지를 이곳저곳 누비며 자유로이 풀을 뜯는 소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면 속으로 혼잣말을 해본다. 곳곳이 산과 빌딩으로 뒤덮인 한국은 차창 밖으로 뻗어나간 시선은 얼마 가지 못해 건물과 산에 부딪쳐 버린다. 한국에서 지평선을 볼 일은 거의 드물다. 이곳은 정말 눈이 시원하다. 낯선 호주의 광활한 대지의 풍경을 눈에 넣느라 지겨운 것도 모른다. 그와는 달리 양쪽에 앉은 써니와 문은 이미 이런 경치가 무료해진 지 오래였다. 써니는 고개를 떨구고 코까지 골며 잠에 빠져있었다. 문은 운전대만 잡고 전방만 주시할 뿐이다. 문은 졸음이 몰려오는지 가끔씩 고개를 흔들거나 눈알을 뒤집거나 하며 졸음을 쫓아보며 애쓴다.
얼마 전 써니가 규모가 제법 큰 하우스 지붕 공사 계약을 따냈다. 시드니에서 차로 2시간 반이나 떨어진 외딴 시골의 하우스 지붕공사이다. 왕복 5시간을 도로에서 낭비하면서까지 그곳까지 가는 건 그만큼 많이 남는 장사라는 의미이다. 오늘은 그 새로운 공사를 시작하는 날이다. 어제 써니와 문은 어제 하루 종일 지붕 방수 보수공사를 마무리하느라 하루 종일 지붕 위에서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과 사투를 벌이며 진을 뺐다. 오늘 새 공사를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택건도 어제 지붕 아래에서 쉴 새 없이 팀버와 컬러 본드(패널)를 날라 올리느라 온몸이 뻐근하다. 전날 너무 무리하게 일을 했던 탓에 피로가 많이 쌓였다. 택건도 온몸이 뻐근하다. 그래도 처음 보는 바깥 풍경 때문에 졸음을 잊었다.
"문형! 위험해욧!"
"앗!"
"뭐!! 뭐얏?"
무거워진 눈꺼풀이 문의 눈을 잠시 가린 사이 차는 차선을 벗어나 들판으로 나가떨어질 뻔했다. 다행히 택건이 외치는 소리에 문이 정신을 차리고 핸들을 꺾었다. 그 소리에 놀란 써니가 잠에서 벌떡 깨어났다.
"야~ 안 되겠다. 저 앞에 주유소에 세워 내가 운전할게"
"아~ 괜찮아요!"
"야 인마! 괜찮긴! 택건이 아녔으면 다 같이 천국 갈 뻔했구먼 잔말 말고 그냥 세워!"
다같이 천국에 갈지 알 수는 없지만 아직 갈 때가 아니었나 보다. 문은 한적한 고속도로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문은 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켜고 자기 손으로 뺨을 때리며 잠을 쫓으려 했다.
"택건! 가서 마더(Mother) 3개 사와!"
"예? 마더요? 엄마?!"
"으이그... 휴~ 에너지 음료 말이야"
"아... 네"
에너지 드링크 이름을 기가 막히게 지었다. 어머니는 생명을 근원이자 에너지의 원천이다. 인간은 모두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왔고 어릴 때부터 무슨 일만 생기면 울면서 엄마를 찾았다. 군대 입대해서도 왜 엄마 소리만 들으면 그렇게 눈물이 앞을 가렸는지 모르겠다. 훈련소 조교들은 고된 훈련을 버티는 에너지가 어머니에게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힘든 고비 순간만 되면 어머니를 크게 외치라 했다. 그러면 없던 힘이 생겨나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건 동양이나 서양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가 보다.
써니는 지갑에서 20불짜리 지폐를 택건에게 건네주며 엄마를 사 오라고 한다. 택건은 엄마를 찾으러 휴게소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그는 에너지 음료가 있는 냉장고 앞에 서서 엄마를 찾아본다.
"브이. 몬스터, 레드불, 록스타 뭐가 이렇게 많아. 무설탕도 있네, 맛도 참 가지가지구만, 오! 여기 마더가 있네"
호주는 에너지 드링크 천국이다. 커다란 냉장고 하나를 에너지 드링크가 다 채우고 있다. 택건은 호주가 노다가 천국이라는 말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처음엔 왜 노가다 천국일까에 대해 몰랐지만 호주에 오고 시간이 좀 지나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호주는 사계절이 온화해 바깥 일하기가 좋다. 한국은 겨울엔 살을 에는 추위와 여름에 푹푹 찌는 무더위와 싸우며 거기에 고된 육체노동이 더해진다. 때문에 바깥일을 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게다가 최근엔 미세먼지까지 더해져 최악의 조건이다.
그에 비해 이곳 호주 특히 시드니는 혹한의 기후도 없고 여름엔 태양이 강해 뜨겁긴 해도 건조하기 때문에 나무 그늘에만 있어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 건축 쪽은 급여 수준도 타 업종보다 높은 편이고 수요도 많다. 호주의 광활한 미개척지가 아직은 지어 올려야 할 것이 많다는 얘기일 수 있다. 그래서 호주로 온 워킹이나 학생들 중 많은 수의 남자들이 이쪽 노가다 업계에 입문한다. 몸은 좀 고되지만 땀 흘리는 만큼의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시드니의 높은 생활비를 충당하려면 시간당 단가가 높은 일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 건축 쪽 일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단가도 센 편이다. 몸이 고되지만 고된 만큼 대가를 지불한다. 또한 몸이 고되면 돈을 쓰는 시간은 줄어든다. 몸이 편한 시간은 보통 소비를 하는 시간이다. 육체노동은 삶을 심플하게 만들고 소비를 줄이게 된다. 퇴근 후 쓸 시간보다 쉴 시간이 절실하다. 건축에는 다양한 분야가 있고 한 가지 분야에서 기술을 잘만 익히면 몸값도 빨리 올릴 수 있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배워놓은 기술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디서나 집은 짓는다.
택건은 빨간색 500ml짜리 대용량의 마더 두 캔과 365ml짜리 코카콜라를 한 캔을 사서 차로 돌아왔다. 문은 콜라만 마신다. 그것도 빨간 캔에 든 코카콜라만 마신다. 그는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면 몸에 이상반응이 온다. 그가 처음 고용량 고카페인의 에너지 드링크를 들이켠 날 밤새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잠 못 이루었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일을 하다 양쪽 콧구멍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쏟아졌다. 그 이후로는 에너지 드링크에 손을 데지 않았다. 콜라를 자주 마셔서일까 그의 얼굴은 콜라처럼 새까맣게 변해가는 듯하다. 콜라의 맛 제대로 느끼려면 진짜 뜨거운 태양 볕을 맛본 뒤에라야 비로소 알 수 있다. 택건도 지붕일을 하면서 그 맛을 알았다. 콜라가 호주에선 왜 이렇게 불티나게 팔리는지는 땀 흘리는 육체 노동자 삶을 살아보면 알 수 있다.
써니가 운전석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다시 공사 현장으로 향했다. 30분쯤 더 달려 공사현장에 도착했다. 정말 말로만 듣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이 파란 팀버로 뼈대만 선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의 축구장 크기 만한 들판 위에 족히 500평은 넘어 보이는 2층 구조의 하우스였다.
"와! 장난 아니네요! 이거 컬러 본드로 지붕 다 올리려면 고생 좀 하겠는데요 피치(지붕 경사각)도 장난 아닌데요"
"뭐 이 정도 가지고, 난 이거보다 더 큰 사이즈에 피치도 45도짜리 지붕도 올렸어"
"역시~ 뽀쓰! 대단하십니다요"
"택건 너 뭐 하냐?"
"예?!"
"빨리 장비 안 내리냐? 아놔! 이제 말 안 하면 안 움직이네"
공사현장 앞에 서서 멍하니 하우스의 웅장함에 넋을 놓고 있던 택건은 써니의 핀잔에 재빨리 몸을 움직여 트럭 뒤 공구함을 열고 필요한 공구들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때였다.
공사장 옆에 놓인 40피트짜리 컨테이너 박스에서 하얀 러닝셔츠에 누런 남방을 걸쳐 입은 오지 백인 남성이 담배를 입에 물고 밖으로 나온다. 집주인이었다. 컨테이너 박스는 집을 공사하는 동안 가족들이 생활하는 임시 생활공간으로 보였다.
"How are you! Boss! I'm Logan, house owner. you are suppose to be Sam, right?"(안녕하세요 사장님! 전 로건입니다. 집주인이죠. 당신이 써니 맞죠?)"Yes, I'm Sunny, nice to meet you! I have heard about you from Nick" (예 제가 써니입니다. 반갑습니다. 닉에게 당신에 대해 들었습니다.)
써니는 집주인에게 다가가서 지붕공사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동안 나와 문은 공구들을 세팅하고 자재들을 준비했다.
"이거 적어도 한 달은 걸리겠는데..."
"그렇게 오래 걸려요?"
"저기 쌓여있는 자재 안 보이냐?"
"지붕에 페이샤(Facia), 가터(Gutter)까지 작업 다하려면 게다가 여기 왔다 갔다 하는 시간 때문에 낮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 한
달 넘을지도 몰라 날씨 때문에 매일 일할 수도 없을 거고 그리고 이런 시골은 아침에 이슬이 오래 맺혀서 있어서 아침에 지붕일 하기도 힘들어"
“왜요?”
“이슬 맺힌 지붕 위에서 미끄럼틀 타고 싶니?”
“아… 네”
“낮에는 뜨겁고 아침엔 미끄럽고 지붕 일이 일하기 지랄 같아 정말”
얼마쯤 지났을까? 컨테이너 박스에서 아이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 그리고 사람 만한 레트리버 개 한 마리가 따라 나왔다. 그리고 또다시 네 번째 아이가 나오고, 다섯 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갓난아이를 하나 품에 안고 나오며 컨테이너 박스의 문을 닫았다. 도합 6명의 자녀들이다. 아이들은 각자 가방을 둘러메고 등교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집 앞에 세워져 있는 9인승 하얀색 카니발에 줄줄이 탑승했다.
"See you later! I look forward to your good job"(나중에 봅시다, 잘 부탁합니다)
집주인 로건은 손을 흔들며 가족이 모두 탑승한 카니발의 운전석에 올라타고는 천천히 집 울타리를 빠져나갔다.
"와! 정말 대단하네요 애가 여섯 명이라니!"
"난 8명도 봤다! 시골에 가면 많아 이런 집, 밤이 길면 뭐 하겠니 애나 만들겠지 안 그래? 큭큭큭"
"그렇죠 보쓰, 이런 외지는 주변에 갈 곳도 없고 해지면 어두워서 어디 돌아다니지도 못하니까 집안에서만 생활할 수밖에 없겠네요 그래서 집도 큰 건가? 큭큭"
택건은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 같아 보인다. 할 일이 없어야 애를 만든다는 말, 과거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던 시절도 집에 대여섯의 자녀들은 기본이었다. 택건의 아버지도 여섯 형제였던 걸 보면 시골의 심심하고 기나긴 밤은 남녀가 아이를 만들 수밖에 없는 의도치 않았지만 불가피한 환경과 상황을 만들어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꺼지지 않는 밝고 화려한 조명 불빛으로 밝혀진 도시에 사는 현대인은 심심할 겨를이 없다. 일과 공부 그리고 유흥에 빠져 새벽이 되어서야 쓰러져 잠이 든다. 아이를 만들 에너지와 시간은 없다.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것보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연장하는 것에 몰두할 뿐이다.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은 오히려 자신을 생명을 위태롭게 할지 모른다는 두려운 존재로 바뀌어 버렸다.
현대의 도시는 심심함이 사라지면서 아이도 사라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