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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Sep 27. 2024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

데모도 ep9

"택건 행님 식사하셨어요?"

"아니 아직근데 녀석은 찾았어?"

" 일단 식사하러 가시죠"

" 나만 보면  생각나냐내가 그렇게 밥맛이냐?"

"하하하,  먹고살자고 하는  아입니까?"

 

그의 이름은 가인아름다운 여인을 떠올린 만한 이름이지만 안타깝게도 아름다운 여인과는 아주 반대의 느낌을 가진 남자이다땅딸만  키에  벌어진 어깨가 마치 역도 선수를 연상케 한무거운  너무 많이 들어서 키가 줄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얼굴의 하관과 굵은 목에 걸친 뭔가 날카로운 것에 베인 것 같은 흉터 때문에 웃고 있는데도 섬뜩한 인상을 준다걷어붙인 소매 아래 팔뚝에도 칼로 베인듯한 상처가 군데군데 보인다누가 보면 조폭이라고 해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만한 인상이다.

 

"행님! 일은 할만하십니까?"

 

그의 말투에는 강한 경상도 사투리까지 섞여있어  조폭스러움을    해준다.


"그냥  그럭저럭 평생  하던 노가다 하려니 쉽지는 않네"

"하하하, 차차 적응되실 겁니다나중에 우리랑 같이 일하려면 목수일도  배워놓으면 좋으실 거예요"

"같이 하긴 하는 거냐? 그리고  사투리  적당히 "

아이   그랍니까 같은 고향사람끼리 하하

 고향사람 만나러 여기 온 거 아니거든

 

가인은 택건이 시드니에 온 이후 사적으로 알게 된 첫 번째 인물이었다. 여기서 사적이라는 말은 그 어떤 이해관계도 섞이지 않고 알게 된 관계라는 말이다. 또한 여기서 이해 (理解+利害)란 서로 잘 알지도 못하며 이익과 손해의 관계도 엮여있지 않는 순수한 관계를 지칭한다. 물론 먼 훗날에 생겨날 더 크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의도한 만남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현재로서는 그랬다.  

 

[택건 형님 맞으시죠?]

 

시드니에 오고 몇 주가 지났을까? 느닷 없는 신원불명의 사람인지 AI인지 모를 존재로부터 카톡이 접수되었다. 일단 택건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정보의 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택건은 일단 답장을 보내기 전에 사전 정보 수집을 위해 그의 카톡 프사를 확인했다. 


호주 국기가 펄럭이는 하버브리지가 보였다. 같은 시드니에 머물고 있다는 정보만 확인된다. 카톡 프로필 변천사를 드려다 보았다. 기타를 치며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는 사진, 헬스장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사진, 국적을 알 수 없는 여러 외국인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그리고 자신의 차인지 아니면 그냥 어디서 캡처해서 올린 것인지 알 수 없는 검은색 포르셰 카이엔 사진이 있었다. 택건이 사진으로 미루어 추측할 수 있는 건, 이 자는 몸이 꽤나 좋은 편이고 노래나 악기에 능하며 사교성도 나쁘지는 않다 것이었다. 그리고 자동차 사진으로 보아 돈이 아주 많거나 아주 없는 자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누구세요?]

[아, 네 전 수호 형님이랑 같이 일했던 동생인데요, 수호 형님한테 연락처 받고 연락드려요]

 

호주에    달이 넘어가도록 친구인 수호의 얼굴은  적이 없는데수호의 지인이 택건에게 연락을 했다. 수호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친구의 걱정은 되었던 모양이다가인을 처음 만나던  택건은 그가 포르셰 카이언이 아닌 폭스바겐 그것도 20년이 넘은 99년식 파사트 왜건을 타고 자신의 앞에 나타난 것을 보고 그가 돈이 아주 많은 쪽은 아니란  확인했다.

 

하지만 가인은 친절했다. 택건을 데리고 시드니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도 시켜주고 호주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도움  만한 정보와 요령들을 알려주곤 했다주말만 되면 그는 택건을 찾아와서는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거의 매주 가인과 택건은 함께 만나서 밥을 먹는 사이가 되었다택건은 그의 과도한 호의와 친절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다친구도 아닌 생판 남에게 어찌 이렇게 관심을 가질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가인은 수호와   전까지만 해도 같이 일을 했었다둘은 호주에서 꽤나 유명한 중국계 화교가 운영하는 건축회사의 플라스터(plaster) 보드 프레이머(Framer) 기술자로 일하고 있었다여기서는 지프록커(Gyprocker)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플라스터 보드의 대표적인 브랜드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렀다.


플라스터 공정은 건물 내부의 파티션을 나누는  구조물을 만드는 공정인데 분야는 대부분 중국계 이민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영역이었다. 그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 순식간에 벽을 만들고 사라지는 가성비 최강의 인해전술을 구사하고 다녔다. 수호는 원어민 수준의 중국어 실력으로 오래전부터 중국계 건축회사에서 일을 해왔다 10 가까이 플라스터 일을 하며 중국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기술자의 자리에 올랐다수호는 우연히 교회에서 알게  동생 가인에게 플라스터 일을 추천했고 그렇게 그는 수호의 부사수로 일을  해왔던 것이다.


가인은 호주에서 꽤나 규모가  중국화교의 건축회사에서 일하는 덕에 현지 한인들이 받는 급여 수준에 두 배에 가까운 웨이지를 받으며 여유 있는 생활을 누릴  있었다. 가인은 중국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지만 수호라는 쉴드 같은 울타리 속에서 중국인들과 섞여 일을   있었다. 다행히 호주는 영어를 공용어로 쓰기에 일하는 동료들과 영어로 간단한 의사소통은   있었다. 중국인들이 대부분인 중국 화교 회사에서 일하게 된 건 온전히 수호 덕분이었다. 


"수호 녀석 찾았어?"

"에이형님 일단  먹고 얘기드릴게요"

"근데 이거 어떻게 먹는 겁니까?"

" 마라탕  번도  먹어봤냐?"

"... 아직"

"야~ 시드니에 마라탕  널려 있는데 수호가  번도  데려가디?

"수호 형이랑은 거의 한식만 먹어요호주라고 딱히 먹을게 마땅치가 않아요시간이 지나면 다들 자기네 음식을 찾게 되더라고요"

"그래 따라와!"


택건의 메뉴 선택으로 둘은 이스트우드의  마라탕 집에 자리를 잡았다이스트우드는  주변으로 상권이  조성된 번화가였다. 유동인구도 많고 주말이면 사람들로 붐볐다트레인 역을 중심으로  쪽은 한인촌 다른 한쪽은 중국인촌으로 나눠져 있었다각자의 생활터전이 기찻길을 기준으로 명확히 구분된다그래서 한국인은 한인촌으로 중국계는 차이나촌으로 모인다그런데 두 한국 남자는 중국촌으로 발길을 옮겼다. 가인은 택건을 따라서 처음으로 차이나촌에서 밥을 먹었다.

 

택건은 플라스틱 바구니와 집게를 들고 갖가지 채소와 고기와 완자 등을 바구니에 담는다그걸  가인도 따라서 담기 시작했다.

  

“15” (15불입니다)

"这儿走?” (여기서 먹어요 아님 가져가실 거예요?)

"这儿这两个一起结账吧” (여기서 먹고 가요이거   같이 계산해 주세요)

另一外是35 50块钱”(다른 하나는 35불입니다합쳐서 50불이요)

 35?打卡可以” (! 35불요카드 되죠?)

打卡的有百分之十的手续费” (카드 하시면 10% 수수료 있어요)

那就” (그럼 그냥 현금으로 할게요)

"형님 듣던 데로 중국어 잘하시네요 뭐라고 하신 거예요?"

"그냥 간단한 일상 회화 정도야, 우아! 근데 35불어치 먹는 사람이 있네,   먹을  있겠냐?"

"형님이 계산할라고요? 됐심미더, 제가 낼게요 how much?(얼마예요?)"

"fifty dollar!" 

"이번엔 내가  테니까… …"


택건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인은 탱크 같은 몸으로 택건을 계산대에서 밀어내고는 50불짜리 지폐를 여종업원에게 건넸다결국  가인이 밥을 샀다그는 항상 택건에게 밥을 사고 호주에서 필요한 이것저것들을 챙겨주며 마치 보호자인 양 행동했다. 

 

 이러지 않아도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돕고 살아야죠

 

택건은 그의 호의가 부담스러워 그러지 말라고 매번 얘기했지만 그는 일방적인 호의를 멈추지 않았다.


"  혹시 게이 아니지 나라 게이 많다던데…"

갑자기 무슨 얘깁니까?”

아니 내가 무슨 여자도 아니고  이렇게 퍼주냐는 거지 너에게 줄 게 없어 큭큭

"하하하 형님 저도 여자 좋아합미데이"

"... 수상한데..."

" 50받아라 내가 거지냐 맨날 얻어먹게"

"됐심미더, 행님, 데모도로 일해 가꼬 별로 버는 것도 없으실 텐데"

 

그는  택건이 건네는 지폐를 뿌리쳤다도저히  되겠다고 생각한 택건은 그가 잠시 화장실에  사이 그 몰래 가방에 50불짜리 지폐를 쑤셔 넣었다그제야 조금 기분이 편안해졌다


" 근데 이 마라탕 정말 맛있네요. 진작 알았으면 자주 먹었을 건데"

"그래다행이다근데   많은  진짜  먹는구나. 대단하다완전 소네 소야"

"하하하  먹고살자고 하는  아입니까?"

"  소리네 그렇게 먹다가 더 빨리 죽을  같아 보인다"

"하하하 에이 행님도 농담은"

“농담 아닌데, 소식이 장수의 비결인 거 모르냐?”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  함미까 하하하

"그래 먹어라 먹어, 근데 참! 어딨노? 그놈은?"


택건은 밥도 먹었으니 가인이 자신을 만나러  가장 중요한 이유를 물었다택건의 물음에 가인은 식후의 포만감에 찬 나른한 표정이 금세 굳어버렸다그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찔렀다택건이 그의 손가락 끝의 연장선을 따라 시선이 옮겼다. 그곳은 PC방이었다


"수호 녀석 PC방에 있어?"

" 아마도"

"어떻게 알았어연락됐어?"

"아뇨, PC방에 연락해서 물어보니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기서 뭐 하는데?"

"아마 LOL 하고 있을 거예요?"

"LOL? Laugh Out loud  크게 웃고 있다고

하하하 아뇨!

그럼?"

"하하하 형님도 게임과는 담쌓고 사시는 분인가 보네요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라고  빠지면 세상모르고 하는 그런 게임이 있어요"

"그래서 녀석이 잠수 타고 PC방에서 게임하고 있다는 말이야?"

 

택건과 가인은 PC방으로 향한다. PC방에는 중국계 화교들이 대부분이다

간간히 오지인들과 동남아 쪽 계열을 사람들도 몇몇 섞여있다

 

“Lets go let go~ 2 o’clock, move move!”(가자 2 고고~!)

肏你媽! I’m under attack, help me “ (씨팔 공격받고 있어 도와줘!)

what the fuck! 真的吗?(아놔 뭐야, 진짜야!?)

 

중국말과 영어가 뒤섞인 소음들로 PC방이 시끌벅적하다대부분 어디로 공격 가자는 욕이 섞인 중국어와 영어가 난무하다택건과 가인은 PC 안을 샅샅이 뒤졌다수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가인아수호  보이는  같은데..."

" 그럴 리가 없는데..."

 

 가인은 PC 카운터로 가더니 여자 종업원에게 뭐라고 얘기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택건에게 돌아온다


"... 아마도 우리가 오기  전에 나간  같아요"

"종업원이 어떻게 알고?"

"수호 형님 여기 거의 단골이라  중국 여종업원도 잘 알거든요 제가 오기 전에 전화로 쟤한테 확인하고  거였어요"

 

가인은 머리를 긁적이며 눈알을 좌우로 움직이며 생각에 잠긴다1분쯤 지나 그는 택건에게 다른 곳으로 가보자고 얘기했다그가 데려간 곳은  앞에 있는 (Pub)이었다그는  안에 있는 머신 도박장으로 들어갔다그를 따라 들어간 택건은 일명 뿅뿅이 도박 머신 앞에 멍하니 앉아있는 수호를 발견했다

 

호주에    달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그의 모습을 도박장에서 보게 되었다뭔가에 홀린듯한 눈은 머신 기계의 화면으로 향해 있었고 듬성듬성 솟아오른 수염이 며칠 동안 면도를 하지 않은 모습이다택건은 한걸음 한걸음 수호에게 발걸음을 옮겼다수호는 그가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머신 기계의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수호야"


슬롯머신 화면에 눈이 풀어진 채 락(Lock)이 걸려있던 수호의 눈동자가 확장되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택건을 바라봤다놀라움과 당황함이 섞인 표정으로 택건과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말문을 열지 못했다


"너, 여기서  하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이 있다.  속담은 자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친한 사람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끌려 덩달아하게 되는 경우를 일컫는다우리는 때론 불편하고 내키지는 않지만 친구와의 우정과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친구를 따라서 무언가를 경험하는 경우가 있다택건은  속담이 좋은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왜냐 하면 강남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의미 때문이었다. 강남은 부와 성공의 상징이 아니던가. 친구를 잘 만나면 그것을 얻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택건은 그런 친구를 따라 강남보다 훨씬  호주까지 따라왔다.


지금 수호와 얼굴을 마주한 순간  속담이 어쩌면 나쁜 뜻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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