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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목수 Oct 04. 2024

세상에 변하지 않는 한 가지

데모도 ep11

"아놔  쌍년이 자꾸 열받게 하잖아, 이젠  멱살까지 잡는다니깐"

 

수호와 택건은 고깃집 앞에  있었다. 수호의 얼굴이 울긋불긋하게 달아올랐다. 화가 치밀어 올라서  그런 것인지 술기운이 올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가지의 원인이 융합된 결과인지는   없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가로등 불빛 아래 더욱 붉게 느껴진다. 수호는  전에 말아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담뱃잎이 떨어지지 않게 엄지와 검지로 끝으로 돌돌 말린 담배 끝이 그가 들이 마신 공기 속의 산소를 빨아들이며 타들어 간다. 붉은빛을 내뿜으며 종이와 담뱃잎이 타들어갔다. 수호가 담배에서 입을 떼자 담배 끝에서 아지랑이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잠시   속에서 유해물질이 걸러진 조금은  유해한 연기가 그의 입에서 한숨과 함께 뿜어져 나왔다. 빛이 사라지면 연기가 피어오르고 빛이 발하면 연기는 잦아든다. 연기는 빛이 타고난 모습이다.

 

씨발! 돈도 없어가 이제는 담배도 말아서 핀다. ~”

 

수호는 쭈글쭈글 볼품없이 말려진 담배가 찌그러질까 검지와 엄지로 집게처럼 살포시 잡고 깊이 빨아댄다. 그러면서 담배  돈도 모자라 담배도 말아서 핀다며 한숨 섞인 불평을 내뱉었다. 수호는 담배를  모금 빨고는 택건에게 건넸다. 택건은 아깝지만 담배  개비도 나눠 피려는 수호의 모습에서 아직까지는  친구의 모습이 조금은 남아있는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윤아 씨가? 설마?!"

 

수호는 아내와의 불화로 집에서 도망 나와 며칠째 PC방을 전전하며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택건은 과거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윤아의 모습으로는 도저히 그녀가 수호의 멱살을 잡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택건에게 윤아는 마치 조선시대 양반집 규수 같은 모습으로 기억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택건은 아직도 윤아를 처음 만났던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 어디야?"

"어디긴 집이지"

"빨리 나와!"

" 시간에? 어딘데?"

"나이트클럽"

 

 그때 택건이 바라본 벽시계는 11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연말연시에다 금요일 밤이었지만 회사 일로 야근에 시달리다 10시가 다되어서 집에 왔다. 녹초가  몸을 침대에 뉘이고 잠이 들려는 찰나였다.

 

" 너무 피곤하다,  보면  되겠냐?"

"! 친구가  건너   한국까지 왔는데 이러기냐?"

"그저께 저녁에도 봤잖아"

"!  형님 다음 주면 돌아가신다."

"그니까  보면 되잖아"

"안돼 지금 나와! 중요한 일이 있다"

" 시간에  중요한 일이고"

"我需要" (네가 도와줄 일이  있다)

 

 택건은 다른  쉽게 거절해도 도움의 손길만은 쉽게 거절하지 못했다. 길게 하품을 하며 이불속에서 나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늦은 시간 버스 안은 한산 했다. 택건은 버스  제일  전망 좋은 구석 자리에 앉아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 라디오 채널을 듣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에 미쳐가는 애청자 사연을 끝으로 티아라의 [너 때문에 미쳐] 음악이 흘러나온다.

 

 너에게로 꽂혀 꽂혀

끌리는 내 몸이 꽂혀

너땜에 내가 미쳐  ♫

 

음악을 들으며 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을 구경하고 그것이 지겨우면 다시 시선을 돌려 차 안의 풍경을 구경하는 것은 택건에게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택건은 불금의 늦은 밤, 무언가에 미쳐있는 친구의 다급한 목소리는 분명 이성의 유혹 때문일 거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올라간 혈중 알코올 농도는 그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본능을 일깨웠을 것이다. 본능에 충실한  마리의 발정 난 수컷으로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빠른 템포의 음악과 눈앞에 펼쳐진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택건의  좌석에는 목이 뒤로 꺾인  졸고 있는 중년의 남자가 보였다. 벌어진 입에서는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택건이 앉은 제일 뒷좌석 반대편 구석에는 젊은 연인  쌍이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붙어있는  둘의 무릎 위에는 깍지   손이 마치 오늘  아기 예수라도   만들 분위기다.

 

 앞에는 진한 화장과 야한 차림의 여자가 핸드폰을 귀에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어폰 음악에 덮여  통화 내용은 들리진 않지만 택건의 상상 속에는 자유로움 몸이  여자를 다시 구속하려는 헤어진  남친의 구걸하는 스토리가 연상된다. 새로운 낭만을 찾아 떠나갔지만 새로운 낭만을 가져다준 여자는 현실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고 빈털터리가   남자, 기댈 곳도 의지할 곳도 없어진 남자는 아무것도 없던 자신만을 사랑해 줬던  여친에게 마지막 전화를 걸었지만 싸늘히 식어버린 여자는 이제 자신을 홀렸던  낭만적인 여자로 변해버렸다. 여자는 전화를 끊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택건과 같이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창밖을 바라봤다. 그때 버스 안에 울려 퍼지는 라디오 소리

 

[뉴스 속보입니다.   마포대교에서 자살 소동을 벌이던  30 남성이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다가 결국 강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소방당국은 물에 빠진 남성을 구출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헬기까지 동원해서 수색 중입니다… 다음 뉴스입니다.]

 

택건과  야한 차림 여자는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에 심취해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와는 동떨어진 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택건은 다시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버스기사 뒤에 앉은  아저씨는 기사에게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붕어빵을 하나 건네며 웃음 짓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연말연시 버스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다사다난했던  해가 느껴진다.

 

"  이렇게 늦었어?"

"버스 타고 온다고"

"아놔! 스크루지 나셨구먼  시간에  버스냐? 택시 타고 오면 되지"

"내가 너랑 같냐? 택시 타고 다니게"

씨발~ 여전하네

 

   택건은 수호의 짜증 섞인 말을 들으며  안을 스캔했다. 나이트클럽의  안에 다섯 명의 사람이 앉아있다. 한쪽 소파에는 여자 셋이 나란히 앉아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호기심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맞은편 소파에는  남자가 자신 앞에 앉은  여자를 응시하고 있다. 수컷 비둘기가 암컷 비둘기 주위를 맴돌며 몸을 부풀리며 구애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남자는 택건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을 막아보려 술잔을 들어 그녀에게 권한다. 암수의 균형이 맞지 않은 곳은 보이지 않는 경쟁이 느껴진다.

 

"인사해,  형은 나랑 호주에서 같이 일하는 성일이 형이야"

 

  성일은 택건을 본체만체 고개도 돌리지 않고 손만 들어 인사했다. 그의 손바닥 택건의 얼굴이 서로 인사했다. 수호는 택건의 팔을 잡아끌어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 너가 이해해,   지금  여자한테 꽂혀서 지금 아무것도 눈에  보여"

"그래..  아무것도  보일 만하겠다"

 

성일의 시선을 고정시킨 여자는 어둑한  안에서도 빛이 나는 미모를 가졌다. 처음  안에 들어왔을 때부터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해 김연아가 남아공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 프리젠이션   입었던 옷과 흡사했다. 단정하고 격식 있는 의상이 나이트클럽을 마치 상류층 무도회로 격상시키는 느낌이다. 그녀는 소파에 등을 기댄  팔짱을 끼고 무료한 표정으로 성일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네가  도와줘야겠다."

"?"

" 여자 셋이 친자매라고 하는데 성일  앞에 앉은 여자가 막내인가 봐 중간에 앉은 여자가 첫째고 다른  옆이 둘째"

"세 자매? 진짜?"

"! 내가 사이드에 둘째를 맡을 테니까 네가 가운데 첫째를 맡아.  여자가 짝이 없어 기분이 언짢아 보여, 짝이 맞지 않아서   데리고 도망갈 판이야, 성일 형이  막내를 어떻게 해보려고 난리인데 도와줘야   같아, 너도 여친 없으니  잘해봐 나머지 둘도  나쁘지 않은  같은데"

"아놔~   오밤 중에 전화해서  도와 달랐는가  했더니 생판 얼굴도 모르는 남자 연애 사업에 들러리 하러 부른 거야?     형한테 밑진  있냐?"

"  그런  있어  도와주삼"

“그리고  내가 첫째를 맡아야는데?”

둘째는 내가 밑밥을  던져놔서 괜찮은데, 첫째가 지금 뾰로통한 상황이라…”

 

세 자매의 탄생의 순서와 그 미소의 순서는 반대였다. 번식은 하면 할수록 유전자는 진화하는 모양이다. 둘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룸에 들어와서 다시 보니  명의 여자가 닮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택건은 성일의 옆자리에 앉았다. 성일은 택건이 옆에 앉은 지도 모른  앞에 앉은 미모의 막내 여성과의 대화, 아니 일방적인 프레젠테이션에 집중하고 있다.

 

"반가워요! 동갑인  같은데,  최윤아예요"

 

  과연 최진사댁 셋째 딸이란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닌가 보다.  자매가  괜찮은 미모를 가졌지만 셋째가 그중 단연 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일 앞에 앉은 윤아가 갑자기 택건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를 했다. 방금  따분한 표정은 사라지고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윤아가 내민 손은 순백이다. 꽃무늬로 수가 놓인 하얀 장갑에 덮여있었다. 택건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윤아의 손을 바라보자

 

 미안해요

 

그녀는 손에  장갑을 벗으며 다시 손을 내밀었다. 택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갑다.

 

"어..  택건, 이택건이에요"

"손이 정말 따뜻하네요. 손난로 같아요 하하하"

 

뜨거움은 차가움에게 온기를 내어준다. 택건의 손에서 전해진 온기를 느낀 윤아는 냉랭하던 조금 전의 표정과는 달라져 있었다. 성일은 그런 둘의 모습을 언짢은 표정으로 째려봤다.


택건은 그때 자신을 바라봤던 그녀의 온화하고 아름다운 미소와 차갑고 부드러웠던 그녀의 손의 감촉의 기억하고 있었다. 마치 추운 겨울 따뜻한 방 안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기분이랄까. 그녀와의  만남은 비록 어둠 속에서였지만 빛이 났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네 윤아가 그럴 리가 있냐?"

" 니가  믿을  알았다, ~ 여자는 진짜 같이 살아봐야 안다"   

 

택건은 자신이 알고 있던 그때의 윤아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수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십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변하게 만든 것일까?  호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슨 사연이 있는지   없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택건은  걱정할 처지가 아니었다.


" 근데 이제 어떻게  건데?"

"... "

"?! 휴우~ 네가 얘기했던  말이야"

"그게... 말이야..."


아내 얘기로 흥분하며 분노를 쏟아내던 수호는 이내 고개를 떨구며 말을 잊지 못한다. 그때 가인이 고깃집 안에서 걸어 나왔다.

 

"형님들 들어오실 생각을 않네요,  대화를 그리 오래들 하십니까 하하하 이제 그만 가시죠? 시간도 늦었는데..."

"... 그래 미안, 얘기가 길어졌네 계산은?"

"제가  했어요"

"그걸  네가 계산해?"


 택건은 50불짜리 지폐를 가인에게 들이밀어보지만 끝내 받지 않았다. 수호는 답답한지 다시 담뱃불에 불을 붙였다.

 

"수호야~  일단 집에 들어가라, 가인아! 미안한데  집에다  태워다 줘라"

"형님은요?"

" 그냥 트레인 타고 갈게 방향도 다른데  그리고 담엔 내가  산다, 알았지?"

"에이 형님도  얼마 한다고, 괘안심 미다"

"  오늘  집에 들어가라 애도 있는 아빠라는 놈이 가출이나 하고 잘한다.  얘긴 내일 다시 하자 전화  받아라 알았지?"


수호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가인의 차에 올라탔다.   표정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술 취한  같이 보였다. 택건은 멀어지는 가인의 차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세월이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예전에  자신감 넘치고 당당하던 수호의 모습은 이젠  어디서도 찾아볼  없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한 가지를 얘기하라면 그건 아마도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일 것이다. 세월이 가면 모든 것은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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