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도 ep2
아버지는 항상 일찍 잠들었다.
택건은 그것이 싫었다. 저녁 9시도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드는 아버지 때문에 집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고등학교 때쯤부터였다. 엄마와 아빠는 같이 동침하지 않았다. 엄마는 안방에서 아빠는 거실에서 생활했다. 거실은 공용공간으로 설계되었지만 용도에 맞지 않게 아버지만의 독립적인 전용 공간처럼 이용되었다. 나머지 식구들에게 거실은 부엌과 화장실 혹은 집밖으로 나가는 통로 역할을 하는 공간이었다.
34평의 아파트에 네 식구는 각자 서로의 공간에 나눠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안방, 택건과 동생은 각자의 방에서 거실은 아버지에서. 거실에 있는 소파와 TV는 그의 차지였다. 그 때문에 안방에는 엄마의 전용 TV가 있었고 택건과 그의 여동생도 케이블 TV 겸용 컴퓨터 모니터를 가지고 있었다. 한 지붕 네 식구가 같이 앉아 TV를 본 지도 옛날이 되어버렸다. 1인 1 핸드폰에서 1인 1 TV 시대가 도래했다.
택건이 회사에서 퇴근하고 돌아오면 집안은 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거의 매일 이어지는 야근으로 저녁 9시가 넘어야 집에 도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와 숨소리가 제일 먼저 귀에 들려온다. 불이 꺼진 거실의 카펫 바닥 위에는 일찌감치 이불을 깔고 잠들어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그의 눈가에는 항상 물에 적신 하얀 수건이 얹혀 있었다. 그때는 그 수건이 왜 눈가에 얹혀 있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10년 훌쩍 지난 지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택건이 시드니의 공항 근처 타운하우스 건축 현장에 일을 나갔던 날이었다. 강철빔을 세우는 골조작업이 있던 날이었다. 대형 크레인까지 동원되어 빔을 세우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헐! 이거 뭐야 빔에 브라킷은 어디 간 거야?
“아놔~ 이 자식들 또 설계 오류네요”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디자인을 맡은 회사가 인도 계열 회사였다. 항상 설계 오작으로 자재가 잘못 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럴 때마다 현장 작업자들이 자재를 현장 맞춤으로 수정해서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아 공사 진척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로 시공사와 설계회사 간 다툼은 끊이질 않았다.
“야~ 전화해서 빨리 용접사 불러오라 그래”
목수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철제 빔에 철판 브라킷을 붙여야 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한 시간이 좀 지났을까? 한 인도인 작업자가 로보캅 같은 복장을 하고 현장에 나타났다. 그가 인도 사람이라는 건 그가 잠시 용접마스크를 벗었을 때 드러난 밀크 초콜릿 피부빛을 보고 나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강철빔에 추가적인 용접작업을 해서 철제 브라킷을 붙이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마침 택건은 현장에 다음 공정에 들어가는 자재가 도착하지 않아 목수일이 잠시 중단되어 인도 작업자가 용접하는 것을 유심히 구경했다. 생각 없이 옆에 앉아서 멍하니 바라봤던 그 용접 불빛 때문에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많은 눈물을 쏟아내었다. 물론 자의도 타의도 아닌 그 어떤 감정도 싣지 않은 단순한 신체적 반응에 의한 눈물이었지만 택건은 자신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그때 어린 시절 항상 보아왔던 아버지의 모습과 같이 젖은 수건을 눈 위에 얹고 잠을 뒤척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하루 종일 용접 불빛에 노출된 아버지의 눈도 아다리(용접화상)가 걸려 밤이 되면 통증과 눈물로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택건은 아버지가 깰세라 살금살금 까치발을 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불빛이 새어 나올까 자신의 방에 몸을 다 집어넣고서야 방에 불을 켠다. 한밤 중에 화장실을 갈라치면 항상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거실을 지나다녀야 했다. 냉장고 안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과 화장실에서 샤워할 때 새어 나오는 빛과 소리에 그가 뒤척이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그땐 잠자고 있는 그에게 미안함 마음 보다도 불편함에 짜증이 먼저 났다.
‘안방에 들어가 주무시면 될 것을... 왜 이른 저녁부터 거실에서 자서는 식구들을 힘들게 할게 뭐람, 아 빨리 돈 벌어서 독립해야지 뭔.’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택건도 저녁 9시가 되기도 전에 잠에 빠져든다. 자고 싶어 자는 것이 아니다. 자기 싫어도 몸이 버틸 수가 없어 잠에 빠져 든다. 아버지를 이해하는데 무려 4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날 밤 아버지가 매일 용접일을 하며 흘렸을 눈물이 떠올랐다. 택건의 아버지는 건축 일을 하셨다. 주로 철일이었는데 철제 자재들을 다루는 일을 주로 하셨다. 그가 어릴 때는 그 사실을 잘 몰랐다.
“엄마, 아빠 직업 뭐야?”
“그냥 회사원이라고 적어”
택건은 국민학교 때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적었던 아버지의 직업란은 항상 '회사원'이라는 단어만 반복해서 적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회사원이라면 떠오르는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고층 빌딩숲의 어느 사무실로 출근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아마 TV속 드라마가 만들어낸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가끔씩 잠결에 새벽 일찍 일을 나가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면 양복 대신 지워지지 않는 얼룩과 곳곳에 작은 구멍들이 송송 뚫린 옷과 안전화를 신고 집을 나서는 모습이 회사원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았다. 택건은 어린 시절 아빠의 작업복 곳곳에 난 작은 구멍들이 아버지의 옷에 벌레가 살고 있어서인 줄 알았다. 택건은 퇴근 후 집안에 벗어놓은 아빠의 구멍 난 작업복을 볼 때면 인상을 찌푸리며 피해 다니곤 했던 기억이 있다.
“내 옷이랑 같이 빨지 말란 말이야! 더러워!”
어머니가 아버지의 옷을 세탁하려 택건의 옷도 같이 세탁기에 넣으려 할 때였다. 택건은 그때 어린 마음에 자신의 옷도 아버지의 것처럼 벌레가 옮을까하는 걱정에 자신의 옷을 붙잡고 같이 빨지 말라며 떼를 쓰다 어머니에게 호되게 맞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아빠의 옷에 난 구멍들은 지금 택건의 작업복 곳곳에 남아있다. 그 구멍은 벌레가 파먹은 구멍이 아니었다. 그건 그라인더 절단기로 철제 건축자재들을 자를 때 튀기는 뜨거운 쇳가루가 옷에 닿아 만들어진 흔적들이었다.
호주에서 처음 한인 건축현장을 들어서던 때였다. 택건은 복장만 바뀌었을 뿐 기대와 걱정으로 가득 찬 마음은 처음 한국에서 첫 직장의 사무실로 출근할 때와 매한가지였다. 다만 검은색 슈트는 형광색 작업복, 넥타이는 귀마개와 마스크로, 구두는 안전화로 바뀌었고 어깨에 메던 서류 가방은 허리에 찬 못 주머니로 바뀌었을 뿐이다. 헤어 왁스로 한껏 멋을 낸 머리는 안전모로 덮여 더 이상 아침에 머리를 감고 말릴 필요가 없어졌다. 출근시간이 많이 단축되었다.
“핫쭈~ 마스크에 안전모까지... 아주 그냥 지만 살라고 제대로 하고 왔네 나 원 참!”
“에이~형님 왜 그러십니까 PPE(Personal Protective Equipment) 잘 지켜서 왔는데...*화이트 카드(White Card) 교육 제대로 받았나 본데요 하하하”
목수 사장은 현장에 들어서는 택건의 모습을 보고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듯이 쳐다보며 말을 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검은색 기지바지에 은은한 빛이 나는 무광 구두를 신고 있는 젊은 사내가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했다. 그는 잠자리 선글라스를 쓰고 담배를 꼬나물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삼십 대 초반정도로 택건보다 한참은 어려 보였다. 그 뒤 좀 떨어진 곳에는 깡마른 또 다른 남자가 못 주머니를 차고 전동 공구들을 챙기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목수 사장의 중간 기술자였다.
“어이~ 뭐 하고 섰어? 거기 팀버(Timber) 좀 이리로 가져와”
“예? 틴버요?”
“아~놔 어이가 없네 팀버가 뭔지도 몰라?”
“하하하 써니형! 뭐 처음인데 모를 수도 있죠. 택건 형님이라고 하셨나요? 저기 저 쪽에 쌓아놓은 목재를 말하는 거예요”
팀버가 뭔지도 못 알아먹는 택건을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목수 사장과는 달리 옆에 짝다리로 서서 담배를 꼬나문 그 젊은 사내는 택건에게 손가락으로 팀버가 쌓여있는 곳을 가리키며 친절하게 알려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목수 사장에게 공사 발주를 준 빌더(Builder : 건축업자)였다.
택건은 그의 친절한 말투와 표정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원래 본성이 아니라는 게 느껴져서였다. 왜냐하면 일을 시작하기 전 엿들은 목수 사장과 나누는 이야기에서 욕설이 섞인 음담패설들이 난무하는 말들을 너무 자연스럽게 내뱉었기 때문이다. 돌연 택건에게 그런 다정한 말투로 바뀐 것은 아마 이 나이 먹고 타향만 리 해외 노가다 현장까지 와서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불쌍한 인간에 대한 동정쯤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택건은 그 빌더가 가리킨 곳으로 달려가 목재를 하나 집어 들었다. 그런데 너무 무겁다.
“허우~ 나 참! 야! 팀버 가운데를 들어야지 그렇게 해서 어떻게 들 건데? 하아 미치겠다 정말... 휴~”
택건은 팀버의 끝부분을 잡고 들어보려 했지만 다른 끝부분은 들어 올려질 생각을 않았다. 힘을 주면 줄수록 허리만 아플 뿐이다. 목수 사장의 말이 한숨으로 끝나기 무섭게 팀버의 가운데로 가서 다시 들어본다. 이제 들어 올려진다. 택건은 앞뒤의 무게 균형을 맞추고 팀버를 옮기기 시작했다.
“아놔~ 야! 여기 산책 나왔어? 하나씩 날라서 언제 다 옮길래?”
그 사이 중간 목수는 팀버를 한 번에 세 개씩 어깨에 짊어지고 옮기고 있었다. 깡마른 체형과는 다르게 팀버를 번쩍번쩍 가볍게 들어 올려 어깨에 얹히고는 뛰는 건지 걷는 건지 모를 속도로 운반하고 있다. 택건은 그에 질세라 팀버를 세 개 집어서 어깨에 얹혀본다. 순간 팀버 무게에 무릎이 휘청거린다. 간밤에 내린 비에 물기를 가득 머금은 팀버는 평소보다 훨씬 더 무거워진 상태였다. 육중한 팀버의 무게가 한쪽 어깨를 짓누른다. 무게 중심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앞 혹은 뒤로 처박힐 듯 위태한 모습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다.
“쨍그랑”
“아이고~씨펄! 결국 사고를 치는 구만”
공사장의 좁은 골목을 지나 코너를 도는 순간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기다란 팀버의 앞만 보고 그냥 몸을 돌렸다가 팀버 뒤쪽 끝이 낮은 담장 너머 옆집 창문에 부딪쳤다. 옆집에 사는 오지(호주 현지인을 줄여서 부르는 말) 집주인이 놀란 표정으로 뛰쳐나와서는 영어로 뭐라고 구시렁 거린다.
써니는 오지 집주인에게 굽신거리며 사과를 하고 수리 비용을 주며 사태를 수습했다. 택건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냥 고개를 떨군 채 죄인처럼 서 있었다.
“뭐 하고 섰어! 일 안 해? 나르던 거마저 날라야지! 넌 그냥 두 개씩 날라! 그리고 오늘 일당은 없는 줄 알아!”
“예?! 예…”
택건은 일당이 없다는 소리에 온몸에 기운이 쭉 빠졌다. 호주에 온 뒤로 수입 없이 거의 3개월이 흘렀다. 호주 올 때 가져온 돈도 모두 바닥이 나 버렸다. 셰어하우스의 방 렌트비도 2주 치나 밀려있는 상황이었다. 주거비에 학비까지 숨만 쉬어도 빠져나가는 시드니의 살인적인 생활비는 미세먼지 없고 인구밀도 낮은 쾌적한 호주의 삶을 누리는 대가 치고는 너무 값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왜 우리 조상 중에는 큰 바다로 나가서 이런 광활한 대륙을 개척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이렇다 할 기술이나 인재도 없이 잘 먹고 잘 사는 호주인들은 천연 자원이 풍부한 땅덩어리를 발견했다는 이유만으로 대대손손 잘 먹고 잘 산다. 위대한 탐험가나 모험가가 없는 민족은 좁은 땅덩이에서 항상 주변에 당하기만 하고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으며 살 수밖에 없어 보인다. 택건은 느닺없이 애꿎은 조상 탓을 해본다.
'다음 생엔 한국에선 태어나지 않기를...'
*화이트카드(White card) : 호주에서 건설, 건축현장에서 일하기 위해 현장 필수 교육을 이후하고 받는 증명서, 이것 없이는 공식적으로 관련 일을 할 수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