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승리는...

평범한 남자 EP 27 (개정판)

by 글짓는 목수

출근 후 아침부터 사장실의 티라노(이구아나)와 한 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후였다. 오늘 따라 녀석의 히스테리가 만만치가 않다. 반신욕 중에 계속 도망치려는 녀석을 제압하던 중 녀석의 갈고리 같은 발톱이 목덜미를 스쳤다. 붉게 부어오른 자국에선 선홍색 핓물이 조금씩 비집고 스며 나온다. 회사 유니폼도 녀석이 튀긴 물로 곳곳이 물방울 자국으로 젖어버렸다.


"오늘따라 얘가 왜 이래? 외롭냐?"


녀석도 홀로 우리에 갇혀 지낸 지 1년이 넘어간다. 암놈인지 수놈인지 모른다. 검색을 해봤지만 구분이 어렵단다. 어쨌든 성체가 다 되어 아직 짝이 없어 스트레스가 적지 않으리라, 최근 많이 사나워진 걸 보면 발정기가 분명해 보인다. 이제 족히 1m는 되어 보인다. 녀석의 우리가 좁아 보인다.


"녀석이 이제 너무 크지?"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제 좀 쉬어~ 허허허"

"예?!"


녀석의 우리를 청소하는 나를 등 뒤에서 바라보던 사장이 한마디 던진다. 난 사장실에서 나오면서까지 그가 던진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그가 했던 말의 의미를 알아챌 수 있었다. 기획실 문을 열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팀원들이 나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희택 씨야!"

"봤어? 인사 공고?

"가는 거야? 정말?"

"예? 무슨 말씀이세요?"


키다리 아가씨가 우리 부서로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번의 인사 발령이 났다. 그 대상은 다름 아닌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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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파견의 건]

양주동방아태선박기자재유한공사 (2009. 3/1~)

(扬州东方亚太船舶配套有限公司)

- 조선해양 본부 해양플랜트팀 장대한 상무보

- 전략기획실 전희택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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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도다리가 조용히 회의실로 부른다.


"희택아~, 놀랐지?"

"예~ 팀장님 무슨 일입니까? 느닷없이 파견이라니요?"

"그게 원래 해외사업부에 노대리가 가야 할 일인데... 너도 알다시피 노대리가 결혼을 앞두고 있고 또 지금 대련공장이 상황이 말이 아니잖아, 해외사업본부장 박상무랑 공장 안정화 때문에 왔다 갔다 정신이 없어서... 차선책으로 네가 가는 걸로 사장님께서 결정을 내리셨어"

"…"


1년 전쯤 회사에서 양주에 있는 중국의 태평양그룹과 신규투자에 관한 양해각서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를 체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합자회사를 하나 설립했다. 양쪽이 각각 5백만 불(50억)씩 출자하여 장쑤성(江苏省) 안에 태평양 집단에서 경영하는 조선소에 데크하우스(Deck House: 대형 선박에 조타실을 비롯한 선원들이 주거하는 공간, 선상의 아파트 같은 개념)를 공급하기 위한 블록 공장을 짓기로 계약했다.


국내에선 자사가 데크하우스(Deck House: 선상의 선원 거주 아파트) 외주화(아웃소싱)에 선구자였고 건조능력과 납기 또한 탁월했다. 당시만 해도 중국 조선소는 데크하우스를 외주 생산하는 기술은 생소했다. 일반 선박블록과는 달리 복잡 다양한 건조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데크하우스의 아웃소싱 없이는 도크회전율(선박을 건조하는 공간으로 바닷물을 유입시켜 배를 띄우는 설비)을 최상으로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다. 한국 조선이 세계 1위로 올라선 건 다름 아닌 모든 선박 블록의 아웃소싱을 통한 도크 회전율의 제고(提高)에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던 태평양 집단 산하 조선소도 자사의 그런 공정 노하우를 흡수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초기 공장 착공 전 운영자금으로 각각 100만 불씩 중국은행에 투입되었지만 공장설립 관련 쌍방의 이견(異見)으로 공장 착공이 계속 지연되고 있었다. 나라 안밖의 뉴스에 관심없던 나에게도 그해(2008) 가을 미국의 어떤 형제들이 큰 사건을 터뜨렸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왔다. 그 여파였을까 조선경기 침체까지 겹침에 따라 중국 사업이 지지부진한 답보상태에 돌입하고 있었다.


회사는 기존에 공장 설립 관련해서 파견한 10명의 주재원들을 복귀시키고 나와 장상무를 파견하여 투자금을 회수하고 사업 철수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문제는 중국 사업이란 게 돈을 넣긴 쉬워도 빼긴 힘든 곳이라는 것이다. 쌍방은 사업 추진 의사는 없이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업 철회를 누가 먼저 얘기하기가 애매한 상황이었다.


남녀가 헤어질 때도 먼저 이별을 통보하는 쪽이 나쁜 놈이 되는 것처럼 사업 또한 먼저 신뢰를 저버리는 쪽이 명분을 잃게 마련이다. 그래서 만남보다 헤어짐이 더욱 조심스러운 것 아니겠는가? 더욱이 돈이 걸린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복귀 일자가 없던데요?"

"음... 사장님은 완전히 사업 철수가 되는 시점까지라고 생각하시나봐, 너도 알다시피 중국에서 투자금을 회수하고 완전히 사업을 철수한다는 게 쉽지 않잖아,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어서겠지"

"그럼 기약 없이 떠나란 말씀이십니까?"

"잘 되겠지… 뭐 가라면 가야지 어쩌겠니?"

"…"


그렇다. 회사의 인사명령은 말 그대로 명령인 것이다. 명령 불복종은 전시(戰時) 상황일 경우 즉결 사살이고 지금은 전시는 아니니까 즉결 퇴사인가? 양자택일이다. 떠나느냐? 나가느냐?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저녁에 동구를 불러내었다.


"아~ 씨발... 인생 한 치앞도 알 수 없네"

"그래 어쩔 건데?"

"가면 못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이직 준비하던 것도 다 물거품으로 돌아가는데..."

"그래도 우짜겠노, 더러워도 댕기야지, 힘들게 들어간 회산데... 대기업이 아니고 그만

한 회사가 어딨니, 웬만하면 버티고 댕기야지 아직 어디 갈 데도 없는데..."

"이 놈의 회사 하는 꼴이 이제 남은 정(情)도 없다."


푸념을 늘어놓을 곳은 역시 죽마고우 밖에 없다. 동구는 옆에서 나의 반복되는 푸념에 어깨를 토닥이며 빈 소주잔을 채워준다.


"오떡이한텐 얘기했어?"

"아니..."

"얘기해야지"

"안 본 지 꽤 됐어, 너도 알다시피 주말마다 공부한다고..."

"공부는 핑계겠지!"

"뭔 말이고?"

"니가 더 잘 알겠지, 내가 말 한들 뭐하겠노"

"넌 아냐? 너를?"

"..."


'사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마음이 내는 소리와 머리가 내는 소리가 다르다. 그런 내가 싫지만 나도 어쩔 수 없다.


[사랑의 유일한 승리는 도망치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남긴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지만 공감이 가는 건 왜일까? 남자는 항상 여자와 성공이라는 두 가지 사이에서 고민하며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결정과 선택은 항상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 수많은 선택들이 나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


난 또 하나의 큰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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