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P 28 (개정판)
"나 중국가~”
"언제 가는데?"
"3월 초에 갈 거 같아"
"여기 있어도 보기 힘들더니… 이젠 아예 못 보는 거네…"
"…"
"얼마나 있는 건데?"
"글쎄… 단기 파견이긴 한데… 일이 마무리되어야 돌아올 수 있을 거 같아. 짧으면 6개월 정도… 길면 1년?!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르도"
"기약이 없는 거야? 어떡하냐? 너 이직하려고 열심히 공부하더니... 이직도 못하고 중국에 끌려가서..."
"음... 세상일이 다 내 맘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냐, 일단 회사는 다니면서 준비해야지, 중국 가서도 계속 공부해야지 뭐, 그리고 중국에서 일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아"
"그래... 뭐 너 하고 싶은데로 해야지, 내가 뭐라 한들 넌 이미 결정하고 말하는 걸 테니... 잘 다녀와"
오떡이는 말해 뭐하겠냐는 듯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얘기한다. 그녀와 나는 산 정상에서 조금 떨어진 인적 드문 곳의 바위에 앉았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산에서 맺어진 인연이라 우리의 데이트 장소는 항상 산이었다. 나와 그녀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을 좋아한다. 자주 가는 산에는 항상 우리만 아는 숨겨진 명당자리가 있다. 싸온 도시락을 까먹고 서로의 몸을 베개 삼아 돗자리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산을 오르면서 흘린 땀이 마르면서 나는 체취가 서로의 성욕을 자극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정난 짐승처럼 서로의 몸을 탐닉한다. 가끔씩 근처 등산로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서로 움찔하다가도 다시 서로의 몸에 집중한다. 가끔씩 날아오는 이름 모를 새들이 나뭇가지 위에 앉아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 거리며 우리를 내려다본다. 우리는 어쩌면 그런 상황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도 에덴동산에서 벌거벗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서로의 몸을 탐닉했으리라. 지금은 죄의식은 생겼지만 대신 스릴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태초에 지은 죄로 영원히 숨어서 성욕을 들어내어야 하지만 죄의식 속에서 느끼는 쾌락의 중독성은 더욱 강력해진 듯하다.
"야~ 춥다 내려가자!"
지금은 서로의 몸을 탐닉할 시기가 아니다. 앙상한 가지를 들어낸 나무들은 우리를 숨겨줄 수 없을뿐더러, 산 위의 차디찬 칼 바람은 드러낸 살을 찢어버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등산으로 흘린 땀이 식기 무섭게 몸이 얼어간다. 산에서 냉동육으로 발견되지 않으려면 움직여야 한다. 올해 겨울은 유난히도 춥다.
중국 파견 건과 관련하여 떠나기 전에 상의할 건으로 총책임자인 장상무가 나를 찾았다. 그는 국내 계열사의 대표이사 자리를 맡고 있었다. 과거 본사의 구조물 사업본부장부터 관리본부장까지 역임했던 핵심 실세였지만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사장이 집권하면서 사장과 코드가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변방으로 쫓겨났다. 하지만 그의 경영능력은 변방에서도 빛을 발했다. 매출액이 50억도 되지 않던 회사를 그가 집권한 3년만에 300억이 넘는 회사로 성장시키는 쾌거를 달성했다. 그의 그런 능력을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려놓으려는 듯 보인다.
"네가 희택이냐?"
"예, 그렇습니다."
"중국말은 좀 하구?"
"예 의사소통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의사소통 가지고 되겠냐? 회사 정리하러 가는데..."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아 보인다. 옅게 색이 들어간 안경을 쓰고 넉넉한 풍채를 가지고 있다. 말투가 야전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듯 약간은 거친 느낌이다. 담배를 옆으로 꼬나문 모습이 흡사 맥아더 장군을 연상케 한다. 아마 맥아더 장군처럼 이번 일을 잘 해결해 주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 섞여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빨리 끝내고 돌아와야지 안 그래?"
"예... 예"
"네가 잘해야지 빨리 끝나지, 안 그래? 잘하자!"
"예, 알겠습니다!"
도대체 뭘 잘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대답을 하고 보니 궁금해진다. 난 그냥 옆에서 통역하고 시다바리 역할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넌 직원들 어떻게 내보낼지 그거부터 생각하고 와~ 알겠지?"
"예?"
"가기 전까지 준비 잘하고 공항에서 보자"
양주(扬州)는 중국 장쑤성(江苏省)의 성도 남경(南京)의 동쪽에 위치한 작은 소도시이다. 한국에선 직항으로 가는 비행기가 없다. 가려면 인천에서 직항으로 남경으로 가서 육로로 2시간 가량을 이동하거나 아님 부산에서 상해로 가서 6시간 차로 이동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우리는 후자를 선택했다. 다행히 양주 자회사에서 상해 푸동공항까지 배웅을 나오기로 되어 있었다. 부산에서 상해 푸동공항까지 2시간가량의 짧은 비행이 끝이 나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상하이(上海)의 습하고 번잡한 공기가 콧속으로 스며든다. 돈이 넘쳐나는 상해는 올 때마다 바뀐다. 상전벽해(桑田碧海)는 상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새로운 건물이 넘쳐난다. 이젠 새로 생긴 건물도 얼마 뒤면 바뀐다. 중국 경제 중심지답게 변화의 속도가 엄청나다.
"차 불러라~ 희택아!"
"예 상무님... 아니 총경리님!"
그는 공항 밖 쓰레기 통 옆에서 서서 담배를 한 대 물며 나에게 말한다. 그는 이제 공식적인 양주동방아태선박기자재유한공사(扬州东方亚太船舶配套有限公司 이하 양주공장)의 총경리(법인장)의 직함으로 불러야 한다. 그럼 난 뭐지? 일단 오기 전에 받아두었던 회사 차량 기사의 번호로 전화를 했다.
"你好~您是王师傅吗?" (안녕하세요, 왕기사님이신가요?)
“对!对!" (예 예)
"我们已经到了,你在哪儿?我们在七号出口" (저희 이미 도착했는데, 어디시죠, 저흰 지금 7번 게이트에 있어요)
"好的,我在停车场等你们,等一下我马上到" (알겠습니다, 전 주차장에 기다리고 있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도착합니다)
하늘색 회사 점퍼를 입은 검은 피부의 남자가 "DB중공업 장대한 총경리님"라고 한글로 적힌 조그만 플랫카드를 손에 들고 다가온다.
"你们是DB重工的?"(당신들 DB중공업입니까?)
"是!是! (예예)"
"我是扬州东方管理部的王司机,请上车" (전 양주 DB중공업 관리부 왕기사입니다, 차에 타시죠)
왕기사는 우리의 짐을 낚아채듯 서둘러 싣고는 출발한다. 창밖으로 상해 푸동의 희뿌연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희택아~ 저 기사 녀석 한국말할 줄 아냐?"
"아뇨 할 줄 모르는 거 같습니다"
"같습니다가 어딨어? 확인해봐!"
"你会说韩语吗?" (한국말 할 줄 아세요?)
"不会不会" (아뇨 못해요)
"못한답니다."
"그래.. 오케이, 앞으로 네 생각을 얘기하지 말고 사실을 보고해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잠시 뒤에 기사의 핸드폰이 울렸다. 기사는 말을 듣자 하니 양주공장에 있는 중국인 부총경리와 통화하는 내용이다. 우리를 잘 픽업했냐는 확인 전화인 듯하다. 난 총경리에게 들은 내용을 전달하기 전에 기사에게 다시 물어보고 사실을 확인한다.
"副总经理在办公室等你们来,今晚跟你们一起吃饭,餐厅都订好了"(부총경리님께서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저녁 같이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을 예약해놨습니다.)
난 총경리에게 다시 전달했다. 그는 알겠다며 피곤한지 의자를 뒤로 젖히고는 눈을 감는다.
"너 중국 직원들 어떻게 정리할지 생각해왔어?"
"예...? 아...직 "
"언제까지 생각할 거냐? 니가 할 일은 그거야 알겠냐?"
"예... "
"그리고 너는 오늘부터 양주공장에선 직함이 부장이니까 그렇게 알아둬, 사원처럼 행
동하지 말고 알겠어?"
"예?!... 예"
난 잠시 어리둥절한 기분에 멍하니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입사한 지 고작 2년 된 사원이 부장이 되었다. 뭐 물론 명목상의 부장이긴 하지만 얼떨떨하다. 그럼 난 구조조정 본부장이 되는 것인가?
난 그렇게 떨떠름한 초고속 승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