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랑

데모도 ep39

by 글짓는 목수

"오랜만이네요. 택건 씨"

"그러네요 윤아씨, 호주는 잘 다녀왔어요?"

"예 그럼요"

"수호는 거기서 어떻게 지내고 있던가요?"

"네 그이는 뭐… 하하"


택건과 윤아는 저번과는 달리 시내 번화가가 아닌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조용한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수호와 윤아의 결혼 이후 두 번째 만남이었다. 수호의 안부를 묻는 택건의 말에 입가에 돌던 윤아의 미소가 사라졌다.


"난 윤아씨가 이제 호주에 계속 있을 줄 알았는데 어찌 다시 들어오셨네요?"

"아 관광비자로 잠시 들어갔었거든요, 뭐 한국에 정리해야 할 일도 좀 있고 해서 이번에 이제 제대로 준비해서 다시 들어가야죠. 택건씨도 이제 곧 호주로 들어가실 거라면서요?"

"네... 드디어 가네요, 수호 녀석 한동안 연락이 안 돼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이에요"

“아, 그러셨군요…”


택건도 수호와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그전부터 택건에게 호주로 오라고 수없이 유혹하던 그가 막상 택건이 호주에 가려고 결심을 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그의 도움이 절실했지만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연락이 닿으면 수호는 일 때문에 바빴다는 말로 둘러대곤 했다.


“진짜!? 그만뒀어 회사?”

“어 그렇다니까, 니가 호주 와서 같이 한번 인생 역전 해보자며? 네가 적극 밀어준다며?”

“그.. 그래 그랬지… 근데 네가 진짜 올 거라 생각 못했네”

“야~ 장난치냐? 나 이래 봬도 한 번 입으로 뱉은 말은 지키는 놈이다”


수호도 택건이 정말 멀쩡하게 잘 나가던 직장을 떼려 치우고 호주로 올 거라는 생각까진 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막상 택건이 온다고 하니 생각해야 될 것이 많았다. 지금 자신의 상황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 친구까지 챙겨야 한다는 게 난감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그렇게 호언장담하며 택건에게 떠벌였던 말들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수호는 윤아가 유산 후 다시 송이를 데리고 호주로 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수호는 윤아에게 유학원을 통해 호주 입국을 위해 비자 및 준비해야 할 것들을 모두 알려준 상태였고 택건에게는 윤아를 한번 만나서 관련 얘기를 전해 들으라고 한 것이었다.


"술 한잔 할래요? 비도 오는데..."


윤아는 다 마신 커피잔을 테이블에 놓으며 택건을 바라보고 얘기했다. 창 밖에는 윤아가 처음 호주 가기 전 둘이 만났을 때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카페 입구에 선 둘은 잠시 굵어진 빗줄기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았다. 택건은 우산이 없어 입은 코트를 벗어 윤아와 자신의 머리 위를 가렸다.


"자! 하나 둘 셋 하면 저 앞에 보이는 포차까지 뛰어요!"

"예!?"

"하나 둘 셋!"


둘은 바로 옆 건물에 있는 포장마차로 뛰어갔다. 택건은 포차 입구에 서서 비에 젖은 코트를 털어냈다. 윤아는 그런 택건의 모습을 쳐다보다가 택건과 눈이 마주치자 서둘러 포차 안으로 먼저 들어가 버렸다.


"비도 오는데 파전에 막걸리 어때요?"

"하하하, 윤아씨랑은 안 어울리는 거 같은데..."

"왜요?"

"그... 그냥 그래요 뭐 말로 설명하기가... 좀.."

"나 막걸리 좋아하는데…"

"의외네요"

"그래요? 도대체 제가 어떻게 보이길래요?"


윤아는 첫 만남부터 뭔가 택건이 다가가긴 힘든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온화함과 냉정함이 한치에 밀림 없이 평형을 이룬 상태라고 해야 할까. 그런 상태가 만들어내는 기품 같은 것이 있었다.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냉정과 열정 사이에 머물고 있는 여성 같았다.


그런 모습 때문에 택건은 항상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가 힘들었다. 보통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얼마 동안의 탐색을 거치고 상대방이 어떤 부류의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자신의 행동 패턴을 정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윤아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좋게 얘기하면 신비로운 여자였고 나쁘게 얘기하면 미스터리한 여자였다. 그래서 택건은 그녀와 같이 있는 자리가 흥미롭고 또 어색했다. 택건도 여자에게서 이런 아이러니한 감정을 느껴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 흥미로운 어색함 때문에 동갑임에도 그녀에게 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녀가 먼저 말을 놓지 않아서였기도 했지만 그녀의 격조 있는 말투와 태도가 어쩌면 택건으로 하여금 그녀에 대한 신비함과 궁금증을 더욱 유발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둘은 동갑임에도 그냥 계속 존칭을 썼다.


다섯 번째 만남이었다. 첫 만남은 늦은 밤 어느 나이트클럽의 룸 안에서였고, 두 번 째는 수호와의 데이트 현장에 윤아의 절친인 ‘사랑’과 함께였다. 세 번째는 둘의 결혼식 사회를 맡으면서 식장에서였고 마지막으로 본 건 윤아가 처음 호주에 가기 전에 카페에서였다. 네 번의 만남을 가지는 동안 서로에 대한 사적인 대화는 전무했다. 모두 우연한 만남과 필요한 만남이었을 뿐이었다.


"그런가, 내가 이상한 건가요? 난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난 오히려 택건 씨가 좀 특이한 거 같은데…

“제가요? "


윤아와 택건은 서로에 대해 직접적으로 아는 것은 거의 없었다. 윤아가 택건에 대해 아는 것은 모두 수호를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수호를 통해서 들은 택건 또한 그리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수호에게서 택건의 얘기를 많이 전해 들었다. 수호에게 친구라곤 유일하게 택건 하나밖에 없는 듯 보였다. 대학 시절부터 한국을 떠나 타국을 떠돌며 다른 친구들과의 인연은 대부분 끊겼다. 한국에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는 택건이 유일했다.


“손님! 주문하신 파전동동주 세트메뉴 나왔습니다!”

“자! 택건 씨! 우리 건배해요!”

“음… 뭘 위해 건배할까요?”

“음… 우리의 행복한 호주의 삶을 위하여?!”

“오케이, 행복한 호주의 새로운 삶을 위하여! 건배”

“건배! 하하하”


택건은 양은그릇에 담긴 뽀얀 동동주를 한 번에 들이켜고는 머리에 털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윤아도 웃으며 그 행동을 따라 했다. 택건도 따라 웃었다.


“택건씨는 짝사랑을 그렇게 오래 했다면서요?”

“예?! 수호가 그런 얘기도 했어요?”

“아! 하면 안 되는 얘기였구나?”

“아쒸! 그 자쉭은 별 얘기를 다 했구만”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빨리 얘기를 해야죠, 왜 그렇게 뜸을 들여요? 사랑은 타이밍인데… 큭큭”

“그런가요? 뭐 이뤄지지 않을 걸 알기에 말하지 않은 거 아닐까요?”

“예?! 그걸 어떻게 알아요? 말도 안 해보고”

“뭐 그런 예감 같은 게 있잖아요”

“그래도 예감이 맞는지 틀린 지는 말해봐야 알 수 있죠.”

“말해버리면 바라볼 수 있는 기회마저도 사라질 수 있으니까요”

“네?!...”


윤아는 택건이 왜 연애를 하기 힘든지 알 것 같았다. 여자란 자고로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남자에게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아주 미워하거나 거부감이 들지 않는 상대라면 관심의 표현이 호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남아있다. 윤아는 사랑이 이런 가능성에 도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사랑은 고전적이고 용기 있는 남자가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윤아는 사랑에 대한 고전적이고 수동적인 일반적인 여자의 생각을 택건에게 설명하려는 듯했다.


“그래도 사랑을 쟁취하려면 고백을 해야죠”

“그래서 사랑을 쟁취하고 나면 어때요?”

“그야 당연 행복하죠”

“그럼 윤아씨는 지금 행복해요?”

“예!? …”


윤아는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스무고개 하듯 흥미롭게 문답을 이어가다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그녀는 짧은 순간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자신이 먼저 다가갔고 원하던 사랑을 쟁취했고 남들이 원하던 축복 속에 결혼을 했고 그 결실로 아이도 생겼다. 하지만 사랑을 이루기 전에 가졌던 그 설렘과 행복감은 어디론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모순이었다. 자신이 택건에게 권유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쟁취했음에도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할 줄 알고 했지만 사랑을 얻고 나니 사랑이 사라지고 행복도 함께 사라진 것 같았다.


“음… 택건씨 말을 듣고 보니, 행복을 위해 사랑을 한다는 건 어쩌면 잘못된 생각일지도 모르겠네요”

“사랑이라는 게 참 신기해요. 가지고 나면 서서히 자취를 감춰가는 것 같지 않아요?”

“뭐예요 하하 택건씨의 사랑학 개론인가요? 하하”

“사랑이란 그냥 오래 참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주고 내 이익을 구하지 않는 그런 상태가 아닐까요”

“음… 그런 사랑이라면… 좀 어렵네요”

“그래서 전 사랑을 잘 못하나 봐요 하하하”

“….”


택건은 시선을 옮겨 창밖에 쏟아지는 비를 올려다봤다. 윤아는 그런 택건을 쳐다봤다. 윤아는 처음이었다. 대부분 자신이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사람은 비상식적이거나 아니면 무례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택건은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었다. 택건은 듣는 사람이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대답할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래서 말을 쉽게 내뱉을 수 없었다. 윤아는 택건과 함께 있으면 생각이 깊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깊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런 사랑이 있을까요?”

“음… 글쎄요 뭐 어딘가엔 있지 않을까요?! 하하”


택건은 사랑은 쟁취하는 목표나 가질 수 있는 물건 같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느끼는 것이다. 그것을 소유하고 쟁취하려는 것은 욕망에 가깝다. 욕망은 그것을 이루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사라진 욕망과 함께 사랑도 같이 사라진다. 욕망을 참고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인내하지 못하는 사랑 또한 결국 사라져 버린다. 오래 인내하며 지켜내는 것만이 사랑이라 생각했다. 가슴 설레고 두근거리는 느낌은 사랑의 시작하는 신호 일 뿐이며 사람들이 그것만 욕망하기 때문에 사랑은 완성되지 못하고 계속 시작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다. 사랑을 느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움과 고통과 시련의 과정을 품고 있는 것이 사랑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경험하게 되면 그것을 표현할 수 없게 된다. 순간의 느낌은 표현할 수 있지만 많은 것을 품은 과정은 표현할 수 없다. 말로 혹은 글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


“저도 그런 사랑을 한 번 해보고 싶네요”


윤아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 표현할 수 없기에 사랑 앞에 ‘그런’이라는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관형사를 붙여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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